공지영씨의 소설 『도가니』가 일으킨 파장은 문학의 영역을 넘어서 사회·정치적 영역으로까지 확산되었다. 문제의 광주 인화학교가 폐쇄되고 ‘도가니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등 장애인의 인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과 관심이 획기적으로 전환되었다. 아마 작가 자신도 한 편의 소설이 이처럼 엄청난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된 데는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져 근 오백만 명의 관객들에게 충격적인 내용이 직접 전달된 것이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이것은 정말 ‘사회악’이었다 |
알다시피 이 소설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의 내용이 사실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고, 상당 부분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편집되고 가공된 허구이다. 그것은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제작진은 그래서 “이 영화는 실화 및 이를 바탕으로 씌어진 원작 소설 『도가니』를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으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무진’이라는 지명 및 극중 인물과 교회, 상호 등 각종 명칭은 모두 실제 사건과 다른 가상의 명칭을 사용하였으며, 일부 등장인물 및 사건 전개에는 영화적 허구가 가미되어 실제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불필요한 오해를 사전에 막으려고 했다. 양승태 대법원장도 “영화가 실제 사건을 모델로 했지만, 구체적인 부분은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히려 했다. 그러니 소설과 영화가 “(사실과 다르게) 과도하게 표현돼 국민감정이 격앙됐다”면서 공지영 작가를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한 여당의 인권위원회 소속 변호사는 소설의 허구적 본질을 간과한 듯하다. “영화에 경찰의 모습이 사실과 다르게 왜곡돼 표현됐는데도 경찰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고 경찰을 질책한 같은 인권위 소속 국회의원도 장애인의 인권이나 작가의 표현의 자유보다는 경찰의 체면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은 혹시 이렇게 경찰의 조사를 촉구함으로써 작가와 영화인들을 겁주려고 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공지영 작가의 말대로 그녀를 세계적인 작가로 띄워주려고 ‘꼼 기획’한 것일까? (이 용어를 모르는 사람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나는 꼼수다’라는 프로그램을 들어보시기 바란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나도 영화가 사실과 다르다고 불평을 한 적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사건을 다룬「그때 그 사람들」(2005)은 임상수 감독의 블랙 코메디 영화인데, 나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특히 김부장(백윤식 분)과 민대령(김응수 분), 주과장(한석규 분)의 캐릭터가 실제 인물인 김재규 중정부장과 박흥주 대령, 박선호 대령의 됨됨이와 전혀 다르게 설정돼 있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취재기자로서 내가 실제 재판 과정에서 목격한 이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당당하고 의연한 군인의 표상이라 할 만했는데, 영화 속에서는 우스꽝스런 인물들로 왜곡돼 있는 것이 속이 상했다. 그렇지만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불만을 토로했을 뿐, 이들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경찰에 수사를 촉구하거나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하지는 않았다. |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논하기보다 숨겨진 진실을 읽어야 |
아무리 사실에 기초한 영화나 소설이라도 결국은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내가 소싯적부터 즐겨 읽던 『삼국지』도 진수(陳壽)가 지은 정사 『삼국지』를 바탕으로 나관중(羅貫中)이 대중적 소설로 각색한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약칭 『삼국연의』가 아닌가. 따지고 보면 정사에 기초하되 수백년에 걸친 대중의 첨삭에 의해 민간인들이 좋아하는 통속본『삼국지』가 완성된 것이다. 주여창(周汝昌) 선생의 해설에 따르면 정사에는 유비가 제갈량을 찾아간 대목을 ‘凡三往乃見’(무릇 세 번 가서야 마침내 보았다)고 다섯 글자로 기록하였으나 오육천 자에 달하는 정채(精彩)있는 문자로 묘사된 소설의 삼고초려(三顧草廬) 대목은 얼마나 멋지고 생동감이 넘치는가. 이뿐만이 아니라 『삼국지』의 백미인 적벽대전도 상당 부분이 사실과 다른 허구라고 한다. 주유가 장간을 이용하여 채모, 장윤을 죽인 계책, 제갈량이 도술을 부려 동남풍을 일으키는 것, 안개를 이용해 화살 10만개를 조조군에서 얻어온 것, 방통의 연환계, 화용도에서 관우가 조조를 살려보낸 것 등이 모두 꾸며낸 얘기이고. 정사와 일치하는 것은 화공으로 조조군을 공격한 것과, 황개의 거짓 항복(사항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동남풍과 연환계, 화용도가 빠진 적벽대전은 김빠진 맥주처럼 싱거운 사실 기록에 불과할 것이다. 오우삼 감독의 영화 「적벽대전」1, 2에서도 정사는 물론이고 『삼국지연의』에도 없는 꾸며낸 삽화들이 영화의 감칠맛을 더하고 있다.
왜 사실과 다른 허구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지 주여창 선생의 말을 들어보자. “역사상의 제갈량, 유비, 관우, 장비 등 여러 사람에 대한 『삼국연의』의 지극한 찬양은 동시에 그것이 바로 당시 현실 정치에 대한 준엄한 비판인 것이다. …허구는 이러한 의미에서 말한다면 바로 예술적 개괄이다. 『삼국연의』가 광범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까닭은 바로 그것이 단지 칠푼(七分)의 실사(實事)만으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도가니」가 국민감정을 격앙시킨 것은 많은 관객들이 거기서 묘사된 허구적 진실이 우리사회의 현실을 보다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지난 번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이 많은 관객의 공감을 얻은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김명호 교수의 이른바 ‘석궁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안성기가 내뱉는 한 마디는 비수처럼 우리의 양심을 찌른다.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