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외 3편
윤 종 영
출근해서 두통약을 먹었다
내 통증에는 약이 있다
읽기 시작한 소설*은 재미있었다
치매에 걸린 늙은 살인자의 시간
정교하게 어긋나는
되돌이표의 세계
살인했으나 기억이 없고
기억이 없으므로 죄책감도 없는,
짐이 곧 국가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장미와 국화뿐
저 붉은 혀와 풍만한 가슴
깨고 싶지 않은 꿈
열여섯 소년처럼 찾아온 몽정
그의 병에는 약이 없다
왕의 시간은
향기에 취해 춤추는 노을 같은 것
어둠이 노을을 삼킬 것이다
별들의 시간은, 반드시 온다
단숨에 읽었으나
숨이 끊기지는 않았다 다행히
금세 자란 손톱을 깎았다
월요일이다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석양
은행나무잎 깔린 노란 언덕길
노란 자전거 올라간다
이파리는 최선을 다해 물들었다
온몸의 힘을 다해 길 만들었다
길 벗어날까
조심스럽게 내려가던 걸음
멈춰 서서 뒤돌아보니
최선을 다해 페달을 구르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흔들리는
노랗게 물든 석양이 있다
균열
아내가 또 나간다고 카메라를 챙긴다
삼일째 같은 시간에 같은 곳에 간다
금강 하구둑 철새 도래지
석양이 강물에 진달래처럼 번질 때
태양을 배경으로 춤추는 새들을 담고 싶은 것
어제도 엊그제도
날씨는 맑아 배경은 더할 나위 없는데
새들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원하는 사진을 건지지 못했다고 한다
오늘은 찍고 오려나
봄빛, 새 떼의 꼬리를 물고 오는 저 봄빛
수만 번 날갯짓, 수백만 번 자맥질이면
창백하게 떨던 강물에도
꽃물 들지 않겠는가
오늘 가고 내일도 가고
부지런히 가고 또 가면
새들이 응답하지 않겠는가
겨울은 물러나게 되어 있는 것
작은 새 한 마리 몸짓에서 시작되는 균열
경계에서
빗줄기가 길 잃은 고양이처럼
담장을 기웃거린다
겨울과 봄의 경계
압수수색 당할까 두려워
마당 구석 감춰 놓은 봄볕
봄비가 담장을 넘는다
마당에서 피어오른 흙냄새가 저쪽
담장을 넘는다
이 비 그치면
담장 위는 개나리 꽃밭
배를 들어내고 누운 고양이 같은 봄볕이
늘어지게 기지개 켤 것이다
남서풍이다
등단작
조선일보를 보며
새벽닭은 울지 않았다
별들 몇몇이 꼬리를 감추고
지난밤 동안의 추위와 안녕에 대해
안부인사하며 흩어졌고 정작
올 것은 오지 않았다 지난
새벽에는 미군 전투부대가
세계의 평화를 위해
사막에 증파되었고 한국의 대통령은
범죄와 전쟁 중이었다 부질없이
기다렸던 새벽닭은 역시
부질없음으로 오지 않았고
더 많은 폭력과 학살만이
밤의 고통으로 잉태되었다
가끔, 아주 가끔은
꿈꾸듯 찾아오는 희망도 있었지만
서울이나 대전, 혹은 그 밖의 어느 도시에서도
이제는 쓸모 없어진 가로등만이
차갑게 서 있을 뿐
기다림의 소리를 들리지 않았다
지난밤의 희망과 기다림은 이렇게
도둑고양이처럼 찾아온 조간신문
머리기사로 잊혀진 옛이야기가 됐고
사막은 불바다로 되었으며
한국의 모든 감옥은 전쟁에 진
포로들로 아우성이었다
제6공화국은 오늘도 안녕하였다
대표작
시인詩人
물방울 떨어진 곳이
강의 중심이다
작은 점이 일으킨 파장이 우주를 만든다
당신 눈물 떨어진 자리가
나의 중심이다
나는 당신이 일으킨 물결의 가장자리에서
가슴 치는 파문을 맞는다
나는 언제 당신들의 중심이 될 수 있을까
산문
걷기의 시학
눈이 나빠졌다. 피곤하면 초점이 흐려지고 사물이 겹쳐 보인다. 특히, 운전할 때 더 어렵다. 전화위복으로 삼아 운동이나 하자고 차를 놓고 출․퇴근한 지 1년쯤 됐다. 출근은 시내버스로 하고 퇴근할 때는 웬만하면 걷는다.
출․퇴근뿐만 아니라 술 약속이나 저녁 약속에 갈 때도 한 시간 남짓한 거리는 여유를 갖고 걸어간다. 걷는 게 습관이 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퇴근길에 늘 다니던 길 말고 다른 코스를 선택했다. 정림동 육교 아래를 걸었다. 육교 기둥에 누군가 예쁜 그림과 함께 "뜻하지 않은 길을 가다 뜻하지 않은 즐거움을 만나다"라고 써 놓았다.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봤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식 나왔다. 글귀 자체가 나에겐 뜻하지 않은 즐거움이었다. 걸으니 좋다. 퇴근하는 방향이 서쪽이기 때문에 지는 해를 이마에 직접 받으며 걷는 길이 뜨겁지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더 크다.
잡념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다. 자동차를 타고 지나갈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여서 좋다. 매일 아침 초록 깃발을 들고 초등학생들의 등교를 도와주는 아저씨와 주고받는 눈인사가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여름날 길가 교회에서 시민들을 위해 내놓은 생수가 예수님의 생명수처럼 달다. 예수님의 은혜가 폐지를 모은 리어카를 끌고 고물상으로 향하는 저 노인의 굽은 허리에도 강림하길 기원해 보기도 한다. 늦가을 노란 은행잎으로 덮인 길에서는 노란 자전거를 타고 힘겹게 고개를 오르는 초로의 사내를 보고 시적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시가 한 편 나오기도 한다.
걸으니 좋다. 마을도 보이고 간판도 보이고 사람도 보이고 때로는 시詩도 보인다. 무엇보다 안 써지는 시보다 무서운 뱃살도 빠진다. 자연스럽게 눈도 좋아지는 것 같다.
오늘은 또 어떤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을까. 어떤 시를 만날 수 있을까. 씩씩하게 걸어볼 일이다.
윤종영/ 윤종영 대전 출생. 1991년 《문학과 비평》 등단. 시집 『구두』 외.
곁, 맨발로 걷기 외 3편
안 차 애
뭘 하며 지내냐는 안부전화에, 친구는
어싱earthing을 하며 지낸다고 한다
어 씽?
노래교실 같은 거냐는 내 물음에
그녀는 깔깔 웃으며 맨발로 흙길을 걸어 다니는 거란다
소화에도 좋고 피로회복에도 좋대
너처럼 음주飮酒형 인간에겐 더욱 좋을 거야
하긴,
지구는 46억 년 전부터 맨발로 걷는 중이었지
멈추면 끝장나거나 끝장날 때에야 멈추는
현재진행형 존재
지구는 쉬지 않고 걸었지
쉬지 않고 돌았지
쉴 새 없이 낳고 철썩철썩 엉덩짝께나 두들기며 키웠지
걸으면서 울고 콜록거리고 뿌옇게 마스크를 쓴 채 앓았지
길을 걸었지 누군가 곁에 있다고 느꼈을 때, 라는 옛 가수의 노랫말도 있지만
누군가 곁에 없어도, 걷다보면
곁이 열리고 곁이 스며들고 곁이 웃고, 끝없이 맨발로 걷기
콩벌레처럼 같이 굴러온 거야
곁을 진행형명사라 말해도 될까
지문에 지문을 포개고
물기에 습도를 맞추고
서로의 알갱이와 알갱이를 페로몬처럼 교환했지
모르는 곁과 얼굴 없는 곁이 길이 될 때까지
걷는 자를 곁인 자라고 해도 될까
곁의 리듬, 곁의 체온, 곁의 호흡에 올라타는 자를
오늘의 음유시인이라고 불러도 될까
쉼 없는 맨발의 진행형으로
내가 곁일 때 너의 길 위에서,
옛날과 스무고개
-명리시편26, 기축일주己丑日柱
겨울과 언덕 사이의 기분입니까
식어가는 노랑과 몽글거리는 무채색을 동색同色이라고 생각합니까
아직도 옛날을 걷고 있는 중입니까
고드름 매달린 처마를 보면
모르는 쏙독새를 품은 가슴이 이해됩니까
뾰족한 것에 이물감과 친밀감을 동시에 느껴서
입에 가득 물고 있는 것이 울음이라고 생각합니까
후루룩 쏟아진 아버지가 있습니까
이명처럼 들리는 새소리에 대고
엄마라 부른 적이 있고요
그림자, 발자국, 나무문패
갸웃한 물음표의 뉘앙스, 어스름이 닿는 만큼의 산책길,
내 근거가 나뿐이라고 생각됩니까
생래적이라는 말의 의미가 생래적으로 느껴집니까
젖은 집을 너무 오래 메고 다녀서
무거움을 모르는 달팽이처럼
무덤이 되어버린 집이 발등 위에 있습니까
혀 밑의 화살촉을
내내생생 전부터 운반하는 중입니까
일이 없어도 앉지 못하는 소처럼
한 질문에 대한 자세를 여기까지 끌고 오는 중입니까
계속되는 자의 커지는 악력만을 믿는다면,
그 세기로 제 손을 잡아주시겠습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떠나기로 한 날 떠나지 못했다
태극문양을 단 항공사는 다만 연락을 기다리라고만 했다
떠나기로 한 날 떠나지 못해서, 나는
분류하지 않은 수화물처럼 남겨졌다
도착할 남반구의 남쪽 섬은
검은 하늘과 소용돌이치는 바람이 점령한 사이클론의 영토
빽빽한 비구름과 저기압을 걸쳐놓고
나는 한 겹 더 섬이 되었다
등고선의 가장 안쪽,
최종심급의 고요가 되었다.
떠나기로 한 날 떠나지 못해서
전화기는 울리지 않고 SNS도 적막하다
시계와 햇살은 박동 수를 줄이고,
어떤 발자국 소리가 도착하지 않아서
푸카키호수 풀 섶의 나비는 날아오르지 못했다.
고요와 부재 사이를 다시 졸거나
희박한 공기를 두리번거린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이 일어나서
나비의 등고선과 내 지문이 영영 바뀌거나
서로의 꿈을 내내 바꾸지 못하고,
백색소음
거실과 방 하나를 건넌 부엌에서,
잠시 쏟아지는 물소리
탁탁 고무장갑 터는 소리
무를 자르고 대파를 써는 소리
굵은 소금 병인가, 빡빡한 병뚜껑 여닫는 소리
몇 몇 년째 계속 길에게 길을 묻는 여자가 틀어주는
철지난 팝송가락과 번지는 저녁 물기 사이로,
두어 번 방향을 바꾸는 발소리
반쯤 남은 액체의 질감으로
싱크대에서 유리병이 슬쩍 밀리는 소리
다시, 물소리
감기약은 삼키지 않고
오늘의 첫 문장이 다가오는 소리
자판기의 지문이 돋아나는 소리를, 모른 척
암호처럼 귓바퀴에 걸어둔다
등단작
사냥감을 찾아서
1
배꼽에서 비스듬히 3cm 위쪽 지점을 깊이 맞뚫어
피어싱piercing한다
생각보다 많은 출혈량은 있었지만
멧돼지 어금니 모양의 둥근 봉 두 개를 마주 꽂아
기쁨을 장식한다
바야흐로 성인식이다
어제는 들소 뿔 모양 장신구를
그제는 사슴의 목뼈 모양 링을
며칠 전엔 상아 모양 고깔을
미간 귓바퀴에, 귓불과 입술에 바짝 매달았다
비로소 야생 동물의 더운 피가 쿵쾅거리며 온 몸을 뛰어다니고
2
사냥감이야 늘 지천이다
혼다 4기통 오토바이로 시속 100km 남짓 달리다 보면
알타미라 동굴 근처의 바람을 사로잡을 수도 있다
지중해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악을 쓰다 느닷없이
오호츠크해산 고래 한 마리가 친구 입 속에서 튀어나오는 걸
깔깔대며 잡기도 한다
취향이야 늘 바뀌기도 하므로
오늘밤엔 늙은 아버지의 가슴 뼈 밑에 숨어사는
느린 곰의 촌스러운 진지함을 새삼 사로잡아
혓바닥에 박고 싶다 아주 가학적으로
대표작
초록을 엄마라고 부를 때
초록 초록한 것들을 보면 엄마라고 부르고 싶다
초록은 뜯어 먹고 싶고
초록은 부비부비 입 맞추고 싶고
초록은 바람과 그늘을 불러 모으고,
슈펭글러Oswald Spengler는 초록을 가톨릭의 색이라고 했으니, 마리아
엄마, 눈물과 머리카락으로 다시 발을 씻어 주세요
초록은 도착하자마자 휘발하기 시작하고
어느새 모르는 색상표가 나를 둘러싼다
어떤 색을 흐느꼈던 감각은 남고 지문은 사라졌으니
초록의 냄새 초록의 데시벨 초록의,
젖가슴을 찾아 주세요
물색이 번지면 뒷걸음질 치는 초록의 불안
기억이 오류를 견디듯 본색은 제 무게가 힘에 겨웠을까
다가가면 벌써 흐려지거나 독해지는 초록이라는 기호
묽어지는 색처럼 증발하는 중인가요, 마리아
바닥이 없는 아래로 떨어지는 중인가요
초록이 빠진 것뿐인데
모든 색들이 무너지고 있잖아
초록이 빠진 구멍이 엄마, 엄마 부르며
나를 쫓아오고 있잖아
감춘 입들을 쏟아내며, 내내
산문
시의 빛과 그림자
정신분석학자 융은 ‘낮의 작은 것 옆에 언제나 밤의 큰 것이 서 있다. 이를 아는 것이 통합의 필수적 전제조건이다’라고 말하며 드러난 의식뿐만 아니라 그림자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시를 쓴다는 것은 ‘낮의 작은 것’ 옆에 서 있는 그림자 같은 것에 말을 걸고, 더불어 걷고, 감정과 감각을 나누거나 그것에 올라타는 일인 듯하다. 그래서 생래적으로 기울어진 오행의 기운과 낮의 고단한 생활에서 억누른 마음의 평형수를 채우거나 가지런하게 하는 일인 것 같다.
소일삼아 쉬운 심리학책들과 주역, 사주명리입문서 등을 읽는데 재미를 붙이고 있다, 이 책들은 신기하게도 같은 결론으로 나를 이끄는 바, 낮과 빛에 경사된 생활을 했다면 의식이면의 밤과 그림자를 끌어당겨 조화와 통합을 맞추고, 사무실과 컴퓨터의 사각프레임 속을 오가며 살았다면 맨발로 흙과 나무와 물 기운에 몸을 포개며 몸 마음의 밸런스를 맞추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융과 그의 제자들은 동양사상에 심취하여 주역의 음양오행이론을 바탕으로한 MBTI 정신분석표를 만들기도 했는데 나는 MBTI성격분류표상으로는 ENFP이다. 그들의 성격분류에 따르면 외향(E), 직관(N), 감정(F), 인식(P)형으로 분류되니 그에 반하는 부분 즉, 내향(I), 사고(T), 감각(S), 판단(J) 부분이 나의 비활성부분이자 그림자 영역인 셈이다. 시를 쓰면서 혼자 있는 내향인의 시간이 외롭지 않았고, 기승전결의 시구를 가지런히 하면서 시가 정감에 출렁이는 장르라기보다는 과학적 사고력을 더 요하는 글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뿐인가. 하리케인의 등고선 가장 안쪽의 고요, 먼 나비의 꿈속, 오늘의 첫 문장이 다가오는 소리 등을 들어내려 애썼으니 무딘 감각도 조금은 트임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그림자부분을 느끼고 보려는 노력만으로도 세상을 위해 큰일을 한다고 융은 말했으니 우둔한 작업이었지만 시 쓰기는 내게 둘도 없는 정신과적 치료제였던 셈이다. 돌보지 못한 내 어둠과 그림자를 불어내어 노래하고 춤추고 소리 지르거나 울게 했으니 말이다. 한동안 많이 아팠고 우울했다. 시 쓰기 본연의 계량 없는 만족감과 충일함을 잃고 잊은 것이 병명 없는 병증의 원인은 아니었을까.
안차애/ 부산 출생. 200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초록을 엄마라고 부를 때』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