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 화려한 외출
(농막을 다녀와서)
외출이 별로 없는 일상이라 나는 외출이 항상 즐겁고 행복하다.
좋은것 아름다운 꽃을 안으로 감추고 좋은 맛을 내는 무화과 같은 아내와
외출이라면 봉숭아 씨앗처럼 건들기만 해도 톡 터지는 나.
남들은 외식이 집 밥보다 못하고 지겹다고 하나 외식외출도 아이의 소풍과 같이 설렌다.
무엇을 하러, 무엇을 보러 가는 마음에 밤잠도 설레는 소풍아이가 되어 있었다.
애벌레가 바깥세상을 즐기러간다는 그것이 오로지 오롯한 오감 만족의 행복인데 그곳에서
특별히 추가된 값비싼 음식과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내겐 사치 같은 대접에 소심한 서민으로써는 화려한 음식외출이었다.
‘아! 어느새 내가 외출에 배고픈 식탐이 발동하는 나비의 날개 나이가 되어 있구나!’
마음이 맞고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사람과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생각하지도 않고
대화 없이 멍하니 앉아 있어도 좋을 사람과의 만남이 마냥 좋은 소풍을 즐겼다.
처음 가보는 대촌의 들녘.
흔히 보아온 비닐하우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속내를 알 수 없지만
무언가 탄생을 위해 꿈틀대고 있다는 태동만 어렴풋이 아는 나를 반겨준 농막 안은
눈이 번쩍 뜨이는 신세계였다.
이런 곳이었구나.
출산을 앞둔 엄마의 복부처럼 둥그런 농막, 그 안에 실핏줄처럼 그은 철심들을 보며 태풍과 폭설도
피해가리라 생각하니 창조자께서도 아이 집에 실핏줄 하나도 허투루 라거나 실수로 지으실 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유기농으로 키워내고 있는 호박. 오이. 깻잎. 양상추. 고추들이 날벌레들과 어울려 자라는 친환경
농막 안에 청개구리도 있다는 말을 들으며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는 원전 사고로 자생하려는
검은 청개구리가 나왔다는 보고서를 들려주었다.
3쌍의 부부. 모두들 함박꽃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후두둑 후둑 후두두둑’ 소나기가 농막을 때리고
그 소리가 사람들의 대화를 방해 하는데도 꽃은 여전히 만개를 하고 있었다.
소나기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실핏줄 천정을 보며 시끄럽다고 느끼기보다 오히려 엄마의 뱃속처럼
마음이 차분해지고 가슴 저 밑바닥에 있는 샘물이 작두의 마중물이 되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올라오는 순수100 샘물의 말을 했다.
“빗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일이 없다면 하루 종일 듣고 있어도 좋을 것 같아요.”
“역시 감성적이라......”
짧은 대화였지만 감성이 더 이상 발동하면 소나기 소리에 주책없이 보일 노인의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작두질을 멈추었다.
농막의 하단이 비밀병기가 되어 극장의 막처럼 서서히 걷히고 빗방울과 작은 수수밭이 등장하고
부는 바람에 ‘수수수 사사삭’ 수수한 들녘의 소리를 냈다.
어느 영화처럼 저 수수 잎이 크게 자라 있는 맑은 날에 두 남녀가 숨어 밀애를 나누면,
그가 사랑하는 아내라면 한편의 애정 씬을 찍으면 아주 좋겠다는 다소 19금말을 했다.
유머가 일취월장하는 벗은 장소는 언제나 제공해 주겠다는 말에 흐뭇한 웃음과 함께
농막의 엔딩 커튼이 내려졌다.
화려한 외출!
좋은 벗을 두었다는 행복과 함께 풍성한 삶의 값진 수확을 마음에 가득 담고 돌아왔다.
2022년 시월십일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