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이란
신의 기운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이다.
신굿을 통하여 신과 일체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신이 좌정할 수 있는 신당을 마련하여
무당으로서 신앞에 모든것을 배워나갈 수 있도록 신의 터전을 마련하게 된다.
신당에선 손님을 상대로 개인이나 혹은 가정사,
일반인들이 생활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들을 짚어주며
옳은길로 갈 수 있도록 신의 공수를 전하는 일도 하며
한가정의 조상이 가지고 있는 기운과 자손이 가지고 있는 기운을 읽어내어
그 조상이 전하고자 하는 말들을 전달해 주기도 한다.
이런 행위들이 점사를 본다, 괘를 빼준다는 의미로 알려지며
신당에선 무당 개인의 기도와 정성으로 배움을 닦아가고
축언으로서 인연된 사람들에게 복을 불러주거나
액운을 막아주는 일을 하는 터전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당은 항상 맑아야 하며 신의 맑은 기운으로 넘쳐야 한다.
이 모두가 신명에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무당이 되고서도 옳은 신명을 신당에 좌정시켰다 하더라도
자신을 맑혀 나가는데 소홀 한다면
다시 조상과 접목 되어 처음의 신은 물러서게 되며
허주, 조상이 신으로 행세 하게 됨이라.
그리하게 되면 신당도 맑은 기운이 점차 사라져
무당이 신으로 받아 행했던 원력이 약해져 무당으로서의 자질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무당이되면 부정을 가려야 하는 것이며
나쁜 기운이 묻어들지 않도록 처내고 닦이야 하는 것이며
무당자신의 조상도 해탈 할 수 있도록 맑혀야 하는 것이다.
무당으로서 살아야 하는 일은 어렵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길이다.
무당은 참으로 가야하는 길이고
그 참을 지키려니 어려운 것이다.
무당은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업장뿐 아니라
부모와 조상의 업장마져 닦아가야 하니 어려운 길이다.
그러니 무당은 하늘에서 내는 것이고
원력있는 조상이 천상에서 수많은 시간동안 닦아 신이 되어
하늘의 가르침대로 무당을 가르치고 이끌어가니
그 모든것을 지키고 이어가려니 힘든 길이다.
그러니 하늘과 신당과 무당이 하나됨을 어찌 부정할 수 있게는가?
무당은 선택의 폭이 좁다.
할 수 있는 것들과 하지 말야야 할 것들에 대한 선택이 분명하다.
무당이 신으로부터 받아 행할 수 있는 일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일들이지만 조화가 많은 일들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는 일이며, 들리지 않는 것들도 읽어내는 것이다.
죽어간 조상의 혼을 몸에 접목하여 그 한을 풀어주기도 하며
가족에게 알림을 주기도 한다.
혹은 그 가족에게 조상이 접목이 될 수 있도록 하여
직접 그 조상이 가지고 있는 기운을 느끼게 하고
조상이 전달하고자 하는 말들을 스스로가 할 수 있도록하여
영혼과의 만남을 체험하고 그 깨달음으로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이러한 원력은 신이 가지고 있는 원력이고 무당이 행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어찌 무당이기를 부정하고 무당을 다른 말로 표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신에대한 모독인 것이다.
조상도 신이라 받아주면 신과같이 점사도 본다.
하지만 무당에게 벌어준 많큼 나중에는 손해가 오느 것이 조상이 신의 행세를 할 때이다.
무당은 신의 원력으로 굿이란 행위를 한다.
굿이란 무당으로서 신이 가지고 있는 큰 원력중의 한가지를 복합적으로 보여주고 행할 때인데
조상은 이런일들을 흉내만 낼 뿐이지 실질적으로
맑히고 처리하는데 그 힘이 닿지 못 한다.
그래서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결과를 놓고 판단 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 현세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저 사람이 죽으면
모든것이 다 끝나는 것으로 생각 한다.
하지만 무당은 사후의 세계까지 보며 현세를 살아간다.
신이 없다면 무당도 없는 것이며 조상이 없다면 지금의 나도 없는 것이다.
무당이란 신의 이름으로 끝이없는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일반인과 같을 모습이나 같이 행동하며 살아갈 수 없슴이라.
인간이 존재하는 동안 무당도 존재 할 것이며
신도 함께 할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무당이기를 자부하며 하늘에 감사드린다.
무당은 혼자서 가는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