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05/ ~.
Testament는 약속을 넘어 유언(장)
왜 개역 한글판의 틀을 못 벗어나는지 정말 교파, 인물, 전통, 자기 주관 등은 질긴 것을 봅니다. 성경 KJV 진영도 기존 수고하신 개역 한글판의 영향을 받고 있고,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 뿌리가 알렉산드리아의 세상 학문과 섞인 썩은 교리 등이 섞인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모양은 제임스으왕역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내용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무리가 없는 것을 택하다 보니 문제가 있었고, 또 개역 한글판은 내용을 빼었다든지, 아예 절조차 없는 곳도 있습니다. 없음을 표시하지 말고 뒤의 절을 당기면 되지 왜 비워 둡니까? 예를 들어 5절에 내용이 있고, 6절에는 없음이라면, 그 6절을 7절 내용으로 당겨야지 모양만 성경 KJV에 맞춘 것입니다. 그 차이점은 많은 자료들이 인터넷 상에 올라와 있는 것으로 압니다.
testament는 promise나 covenant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것입니다. 물론 하위 뜻에 포함될 수는 있으나, 어디까지나 그 뜻은 유언이나 유언장이 주이지 약속이란 것이 주가 아닙니다. 죽음으로 하는 약속, 곧 변할 수 없는 영원한 약속이요, 확정된 약속으로서 더 이상의 변화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영어를 다 잘하면서 기존 교단, 인물에 매여 양심을 속이면서 고수하는지는 하나님과 양심 앞에 재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장로교나 감리교나 침례교나 성결교 등 수많은 교파나 외국이나 한국의 수많은 거성들의 교리나 그늘에서 자기 직위를 유지하다 보니 성경 단어나 문법은 잘 알면서도 굳이 외면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교리나 지식이나 영적 직분과 관계되는 것이 아닌 성경에 대한 곧 WORDS에 관한 믿음이라고 봅니다. 왜 단어의 쉬운 뜻을 무시하고 기존 잘못된 뿌리의 성경에 기준을 둡니까? 혹자는 성경 제임스으왕역이 첨가했다고 하는데, 그러면 개역 한글판 류의 성경에서 없음을 빼고 뒷 절을 당겨야죠? 요즈음은 그리이스어 직역 등 없음을 보완하거나, 심지어 카톨릭과 합작하여 더욱 썩게 한 성경도 나옵니다. 성경 교리로 불신자뿐만 아니라, 성도들을 혼미케하는 것이 큰 창녀 바빌론이요, 아마겟돈 전쟁임을 깊이 깨우쳐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지옥의 소리가 마음을 울려 어떻게든 정확히 성경을 깨달으려는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만 가능할 것입니다. 살아서 마음으로 죄로 인한 지옥을 경험하지 않으면, 교파 구원으로 구원 받았다고 믿었다가 지옥 불에 참여할 지도 모릅니다. 1억 분의 1이라도 내가 지옥에서 완전히 건져진 것에 대한 믿음에 잘 못이 있다면? 사역자라고 지옥을 피한다는 것은 성경에 없습니다. 오히려 프흐아리세에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스님과 거리가 멀고 책망을 받았으며, 그래서 그들은 구세주를 부인하고 결국 죽인 것이 아닙니까? 유대인들 중에서도 가장 율법적인 자들이 위선자라고 증거되고 마귀의 자식이라는 하나님의 증거를 받았는데, 이방인이 내가 마귀의 자식이라는 성경으로의 깨달음과, 양심에 기록된 죄로 인한 마귀의 자식이라는 깨달음 없이 교파에서 들은 구원이라고 하는 것으로 지옥을 피할 수 있을지 모두 점검해 봐야 할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도 행함, 사랑 등 성경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안 되어 눌리지만, 그럴수록 구원의 복음을 반복해서 듣고, 구원의 확신을 다지며, 또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더욱더 성경 단어하나나 문법에 더 신경을 씁니다. testament가 유언이라는 단순한 차이는 대충 믿느냐, 점 하나 단어 하나, 문법 하나까지 따지느냐 하는 큰 차이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이 하나님인데 대충, 남들과 같이 묻어서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정말 성경과 구원은 자기 생명보다 더 소중히 다루고 정확히 재어야만 합니다. 혹시 일조 분의 일이라도 구원 문제가 잘 못 되어 지옥 간다면, 두 번 다시 나올 수도 없고, 기회도 없는 영원한 지옥 불에서.......말로 어찌 설명을 하겠습니까? 살아서 죄로 인해 마음으로 지옥을 경험 않으면 죽어서 진짜 갈지도 모릅니다. 성경은 정말 정확히 따지며 배워야 합니다. 그것은 복음이 있는 설교자로부터 배워야 하며, 세상 복 주기 위해서, 혹은 교인 들에게 부담 주기 싫어서 죄, 지옥 설교를 피하는 설교자에게서는 영적 생명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더더욱 육신의 병을 기적으로 치유하고 육신의 애로를 상담하는 듯 하는 점쟁이 같은 분들은 피해야 합니다.
testament가 유언이라는 성경의 맨 처음 타이틀에 대한 믿음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성경 신뢰에 대한 정말 중요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 내용도 중요하지만 성경 말씀을 담는 타이틀에서부터 두려운 마음으로 소중히 다루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the Words was God. 라는 요흔 복음의 말씀을 우리는 새겨야 합니다.
HOLY BIBLE King James Vervion,
THE OLD TESTAMENT와 THE NEW TESTAMENT는 반드시 성경 내용 못지않게 신경 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