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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하나님 집에 들어갈 때에 |
본 문 | 전 5:1~7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 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한 것이 더 나으니 네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라 천사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
일 시 | 2024 06 21 주일예배 |
우리 교회 성도는 얼마 되지 않지만 다만 몇 사람이라도 예배를 드리는 자세는 일등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교회는 사람을 보러 오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뵈러 오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교의 장이 아니라 경배드리는 신성한 곳입니다. 교회는 사업 기회를 찾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 내 정성을 드리는 곳입니다.
현대를 예배 위기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배란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부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감사하며 찬양하며 높이는 것입니다.
예배는 감동이 있어야 하며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입으로는 고백하지만, 온전히 경배하는 마음이 따라가지 못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전, 교회들이 무능하게 전락하고 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립됩니다. 영이 소생합니다. 염려와 근심으로 쌓여 있던 마음들이 자유하게 됩니다.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전(殿)은 성전을 의미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장소입니다. 저는 예배당만 하나님의 전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우리를 만드신 조물주 하나님을 뵙는 곳은 어디나 하나님의 전입니다.
하나님의 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입니다. 그래서 우매한 자가 제물을 드리는 것보다 말씀을 듣는 것이 낫다고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전에 나아오면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살다 보면 우리는 세상살이에 지쳐 아니면 피조물에게서 실망을 당하게 될 때 우리도 눈을 창조주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그럴수록 더욱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고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전에서 기도할 때 들으십니다. 하나님의 전에서 희생을 드릴 때 받아 주십니다. 하나님의 전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에서 무엇을 우선하십니까? 사람과의 만남이 우선입니까? 사람과의 대화가 우선입니까? 사람과의 교제가 우선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1장 12절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예수께서는 마가복음 7장 6절이하에서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여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하나님의 계명으로 가르쳐야 하는데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한다’고 말씀합니다.
즉 몸 따로 마음 따로 하는 형식적인 예배는 받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는 자가 지킬 몇 가지 원칙들을 제시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이행하고 계시지만,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한다고 예배드리는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새겨봅니다.
하나님의 전에서는
첫째로 삼가야 합니다.
본문 1절입니다.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을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여기의 '삼가다' 라는 말은 원어로 '솨마르' 입니다.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다' 라는 뜻입니다. 철저하게 지키고 보존하라는 의미입니다. 즉 '네 발을 삼가라' 는 것은 영이신 하나님과의 만남을 지키고 보존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전에서는 하나님만 보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만남이 사라진 예배는 헛된 예배입니다. 영적 만남을 위해 하나님의 전에서 경거망동한 행동은 삼가야 합니다. 신중하고 거룩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예배 외의 다른 목적으로 가는 발을 삼가해야 합니다. 오로지 하나님께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일에 치중해야 합니다. 귀로 듣기만 할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을 꿰뚫어 보고 있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반대로 말씀을 들어도 사랑을 못 느끼겠고 위로도 못 받겠고, 가책도 못 느끼겠고 찔림도 없다고 느낀 적은 없습니까? 말씀이 나를 휘몰아치지 않으면 회개와 결단도 없는 예배가 되고 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모세를 통해 주시는 말씀이지만, 그 말씀 앞에서 떨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가 누구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에 따라 그날 예배를 판단합니다. 틀렸습니다. 같은 말씀을 드려도 대형교회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목사님이 말하면 고개를 끄떡거리고 아주 작은 교회의 이름 없는 목사님이 전하는 말은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리는 자세는 하나님이 말씀을 받는 자세가 아닙니다.
누가 말씀을 전하든지 간에 그대로 받고 그것을 내 것으로 하고자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에서 다른 일은 삼가고 오직 말씀을 듣는 일만이 목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하여 인간적인 것들을 삼가야 합니다. 영적인 가치들을 지켜나가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기 바랍니다.
둘째로 함부로 입을 열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2절입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저는 이 말씀을 성결과 인내하라는 말씀으로 받습니다. 성결로 하나님을 대하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함부로 입을 열지 않습니다. 단순히 기도와 말만을 짧게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함부로'와 '급한' 마음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권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 입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성을 다해야 하며 기도한 대로 살려는 자세로 기도해야 합니다. 길게 하고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실수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지키지도 못할 말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원망의 불평도 하지 말기 바랍니다. 광야에서 하나님께 불평하다 결국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던 점을 기억하십시오. 언제나 죄와 멸망으로부터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기 바랍니다.
이것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사람에 대해서도 좋은 말을 하기 바랍니다. 간결하고 경우에 맞는 말은 은쟁반의 금사과처럼 아름다우며 사람의 마음을 열며 서로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전에서 무슨 일에 힘을 쓰고 계십니까? 혹 우리는 하나님의 전을 인간의 말만 무성한 강도의 굴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기도함에 있어서도 우리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요즘 이메일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메일에 오는 메일 중 상당 수량은 모두 스팸, 광고와 같은 잡문서입니다. 어떤 이는 "우리 기도의 대부분은 하늘나라에서 잡동사니 우편물처럼 취급당합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스팸 메일을 보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읽어보지도 않고 지워버리지요? 그런데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나라에서 이렇게 취급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하나님 나라에서 소중하게 읽혀지는 편지가 되어야 합니다. 절대로 쓰레기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른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기도에 대한 책을 쓴 어떤 이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상처를 받으신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오지 않은 채 먼 거리에서 일방적 요구를 할 때 하나님께서 상처를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떼쓰며 간청할 때 상처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것은 외면한 채 무조건 많은 것, 무조건 큰 것만을 요구할 때 상처를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철없는 아이가 되지도 않는 요구를 할 때를 생각해 보면 잘 이해가 됩니다.
저는 요즘 기도를 드릴 때 이렇게 기도합니다. 제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과년한 딸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결혼시기를 놓치고 있을 때 부모되는 심정은 얼마나 조급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우리 아이가 빨리 결혼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하신 때에 결혼하게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합니다.
혹시 여러분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기도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정말 좋은 때를 예비하고 계시는데 이것을 무시하고 자꾸 빨리 빨리 재촉하기만 한다면 하나님 마음이 좋으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를 드리기 바랍니다.
기도로 인한 하나님과 정상적인 교제는 최상의 행복입니다. 하나님은 기도의 길이보다 깊이를 보십니다. 짧은 기도라도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드리는 기도는 감동이 있습니다. 뜨거움이 있고 간절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전에서 인간적인 말만 일삼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기도를 드리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셋째로, 서원한 것은 속히 갚아야 합니다.
본문 4,5절입니다.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 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한 것이 더 나으니 네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라 천사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저는 고등학교 때 눈물 콧물 다 쏟으며 거듭남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마치자 말자 바로 신학대학을 가서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서원을 갚기는 갚았는데 너무 늦었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확실한 길이 있었음에도 뒤로 돌아보는 바람에 수십 년이 흘러서야 그 서원을 갚았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갚게 저를 인도하셨습니다. 그 길 외에는 제가 갈 길이 없게 외길로 몰고 마침내 갚게 하셨습니다. 지금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지금, ’서원하였으면 지체없이 행해야 한다‘는 교훈을 새기고 있습니다. 제가 일찍 서원을 행하였더라면 제 일생을 전부 하나님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인데 겨우 십수 년으로 그치고 말았습니다.
한나의 서원을 생각해 보십시오. 브닌나에게 심한 구박을 당하던 한나는 성전에 나아가 자기 슬픈 심정을 하나님께 아뢰고 아들을 주시면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서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낳지 못하던 아이를 낳고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낳습니다.
그리고 서원 드린 대로 겨울 젖을 뗀 아직 어린 사무엘을 하나님 앞으로 데려가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게 합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한나를 돌보셔서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낳게 하십니다.
혹시 여러분은 하나님께 서원하고 아직 갚지 않은 것이 있다면 앞뒤 재거나 가리지 말고 먼저 갚으십시오. 그리고 서원을 드리기 전에 잘 생각해서 자신이 없으면 아예 서원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경외해야 합니다
본문 7절입니다.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세상일에 지나치게 분주함과 무분별한 언사는 신앙의 정도에 걸림돌이 된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분주하게 도모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중요하고 급한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보다 먼저 되거나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바로 그것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우상이 됩니다. 주일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예배보다 해야할 일이 있다고 한다면 그 일이 우상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전에서 우상을 치워 버려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만 경외해야 합니다. 모든 면에 있어서 하나님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가장자리가 아니신 중심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먼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형통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섬기면 놀라운 복을 주십니다. 이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생명에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영혼이 잘 되는 길이요, 범사에 잘되는 길이요, 건강하게 되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아십니까?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죄는 안 보이고 자랑할 생각, 생색낼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두렵지 않으니 자기 자랑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세리는 하나님 앞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두려웠습니다.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죄를 바라보며 기도하였습니다. 세리는 자기에게서는 아무 자랑도 찾지 못하고 그런 자신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바랐습니다.
두 사람 중 누구의 기도를 들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바리새인의 기도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드렸던 세리의 기도를 받으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무엇을 향하고 있습니까? 하나님만 경외하며 신앙생활 하십니까?
하나님의 전에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 주시는 힘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예배가 회복될 때 삶의 회복이 시작됨을 믿고 바르게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드림으로 응답의 문이 열려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