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시인 신경림
내가 좋아하는 민중시인 신경림님이 하늘 나라로 가셨다. '농무',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난 나에겐 공통적으로 심금을 울리는 시구(詩句)이다.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 좋은 말씀이나 글로서 우리들에게 사랑과 마음에 위안을 주는 종교의 창시자나 선각자들 그들에 감사한다. 무형의 자산을 누구에게나 아낌없이 공짜로 주기 때문이다.
(농무) 젊은시절 고향엘 갔다가 가설무대에 섰던 추억이 떠오르고, (가난한 사랑의 노래) 가난의 굴레에 불편함을 느꼈지만 불의한 것을 취한적 없다.
티비 슬픈 뉴스의 주인공들은 우리를 힘들게 한다. 우리는 스스로 험난의 길을 선택하고 애써 외면한다.
우리에게 좋은 글 주신 그에게 감사드리고, 영혼이 안락한 곳에서 머물기를 빈다. 시인의 시나 가슴에 담아봐야겠다.
[농무]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벼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서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