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거리 속을 걸식을 하면서,
누구에게도 속박받지 않고 유행(遊行)하는 것은, 정말로 즐겁다.
오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생활은, 고타마를 그 옛날로 데려다주었다.
옛날로 돌아가니, 발걸음도 가벼워지고,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얼마쯤 가는 동안에 유행의 기분은 일신되어 왔다.
깨닫기 전의 유행이라면, 깨달음을 여는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붓다는, 그때의 붓다가 아니었다.
이미 목적을 이루고, 현재는 다섯 사람을 만나러 가는 도중일 따름이다.
유행의 즐거움에서,
『이래서 되는 것일까.
지금의 자신은 인생을 도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붓다의 가슴을 스쳤다.
사회는, 분업(分業)의 형태를 갖추고 유지되고 있다.
놀고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농민은 야채와 쌀을 생산한다.
상공업자는 그 상품을 팔아서 생활한다.
저마다 자기 자리를 지키며, 올바르게 일에 정진하는 것이 사회생활의 기본적인 법칙이다.
상인이나 공업자, 위정자가 욕심에 이끌려,
올바르게 정진하는 것을 잊거나 게으른 자가 나오면,
전체의 조화를 잃고, 빈부의 차가 심하게 되어 간다.
생산을 높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며
독점은, 가장 큰 폐해를 동반하는 것이다.
또한 의사는 환자를 고치고, 법률가는 사회질서를 지키기 위한 파수꾼이기도 했다.
붓다의 지금의 입장은 어떠한 것인가.
정법에서 벗어나 바닥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중대한 사명을 지고 있고.
그 임무는 사회생활을 중도(中道)라고 하는 궤도에 올리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다.
붓다의 일은, 사람들을 잘못된 생활로부터,
정도로 되돌리는 신리(神理)의 전도(傳道)이며,
유행(遊行) 그 자체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될 일이었다.
팔정도의 목적과 ₍₃₎피안(彼岸)의 깨달음은
인간이 만들어낸 물질문명과 그에 수반되는 지위, 명예, 재산이 아니라,
조화라고 하는 중도에 입각한 불국토,
즉 유토피아의 인류사회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인생의 가치는,
주어진 직장과 환경을 통해서 조화(調和)라고 하는 신(神)의 마음,
인간생활을 보다 풍부하게 하는 혼의 진화에 얼마만큼 공헌하는가에 달렸다,
따라서 직장이나 환경은 말하자면,
혼(魂)의 진화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며, 여기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붓다에게는 미망에 빠진 사람들을 구한다고 하는 중대한 역할이 주어져 있다.
그 임무의 수행에 마음에 구름을 만들어서는 안 되며
둥글고 풍부한, 순수한 마음이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붓다는, 이 점을 깨닫자,
현재의 상념과 행위에 대해서는 결코 도피나 자기만족이 아니라
주어진 사명의 중대함에 새삼 자신(自信)과 용기가 솟아나는 것이었다.
붓다의 여행은 계속되었다.
파다리가마에서 캇시국으로. 산천초목을 벗으로 삼으면서, 바라나시의 거리에 드디어 도착했다.
(1) 심안(心眼) ;
문자 그대로 마음의 눈을 말한다.
제3의 눈이라고도 하는 데,
상념(想念)이 정화되고 마음이 넓어져가면 자연히 심안이 열린다.
물론 동물령이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여, 저 세상의 모습이 보이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인다고 해서, 전부 심안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노여움, 질투, 중상의 상념을 가지면서,
오히려 육안 이외의 것이 보이는 경우는, 주의를 요한다.
대개는 동물령이 빙의해서 그러한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2) 동물령 ;
이 세상의 동물이 저 세상으로 돌아가면 모두 동물령이 된다.
그러나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동물령은,
주로 뱀, 여우이다.
뱀, 여 우는 생명력이 강인하고 지구에서의 생활은 인류보다 오래이다.
그만큼 지상생활, 즉 세상물정에 능하다.
뱀은 교활하고 여우는 동물본능이 강렬하다.
인간의 의식이 동물본능에 휘말리게 되면 이런 동물령이 빙의하고 있다.
지상에서의 그들은 인간과 대화가 불가능하다.
진짜는 가능하지만, 인간쪽이 그들의 의지랑 언어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의 말이나 의지를, 좁은 범위이지만 읽어내는 능력을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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