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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석근 전 울산시인협회장·수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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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차 대전이 끝난 1945년 8월, 그 이전이나 지금도 한반도의 바다는 어렵기만 하다. 마땅히 전쟁이 끝나고 일제 치하에서 해방이 되면 대한민국은 통일국가로 조서시대와 같이 하나 된 나라이기를 모두가 기다렸다. 그러나 남북으로, 민주와 공산국가로 분리된 채 반세기를 훨씬 넘겼다. 북한은 잘 살고있는 남한을 무엇이 그리도 마뜩찮은지 기회만 있으면 도발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온갖 악행을 자행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제3차 핵실험을 지하벙커에서 실시하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대한민국 국민들은 한 치의 동요 없이 군은 국방을 지키고 국민들은 대북규탄 성명을 하나로 일치하며 맡은바 책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이런 위중한 시점에서 일본이 호시탐탐 노리는 영토 지배권의 야욕은 눈덮인 들녘의 배고픈 늑대와 다를 바 없다. 우리의 동해, 용의 여의주 같은 독도를 저들의 것이라 우겨대는 억지는 절대로 그냥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주변국이나 약소국가의 영토를 가지고 싶은 탐욕을 저버리지 못한다면 어찌 그들을 좋은 이웃, 일등 국민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일본의 탐욕은 군국주의 시대를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독도뿐만 아니라 소련의 북방 5도를 비롯해, 중국과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는 센카쿠(다오위다오)열도도 굶주린 야수같이 집어먹으려고 기회만 노리고 있다. 하지만 절대 빼앗길 수도 없는 일이다.
독도는 고유한 대한민국의 영토이다. 그래서 2차 대전이 끝나고 1945년 8월 이후 미군정이 남한에 들어서서 미처 해상권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을 때 대마도와 시마네현의 어부들이 일제치하에서 한동안 고래잡이를 하던 독도 근해까지 와서 어업을 했었다.
당시 국내정세를 살피던 선친께서는 수산물 채취를 위해 당국에 독도상륙허가를 신청했으나 치안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1946년도에 신청한 허가는 1947년 하반기에 승인이 되어 준비에 착수했다.
어머니와 해녀 14명, 인솔책임자 1명(선친), 경리 1명, 뱃사공 1명, 허드렛일 1명, 모두 18명이 1948년 3월 초에 포항에서 울릉도, 울릉도에서 독도로 일엽편주 돛단배를 타고 서도에 상륙했다. 서도에는 수면 가까이 자연 동굴이 있었고, 20여명이 쉴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다. 돌과 모래를 고르게 펴고 그 위에 나뭇가지와 볏짚을 깔고 숙소를 마련했다.
상륙한 뒷날부터 미역채취를 시작했고, 작은 전마선 한 척이 계속 채취한 미역을 뭍으로 날라서 어머니와 남자들은 단(單)을 붙여 건조시켰다. 1주일에 한 번씩 울릉도에서 식량과 물, 땔감을 싣고 오는 목선에 돌아갈 때는 건조한 미역을 실어 보냈다. 이렇게 두달 가량 작업을 해서 울릉도로 운반한 미역을 다시 큰 배를 이용해 포항으로 날랐다. 포항에서 다시 기차 화물칸을 이용해 서울 동대문 시장까지 운반해서 큰 창고를 빌어 차곡차곡 쌓고 대상(大商)과 거래를 맺었다.
이렇게 시작된 독도 수산물 채취 사업은 6·25동란이 일어나기까지 3년에 걸쳐 이어졌다. 선친의 독도생활은 파란만장한 인생드라마이다. 풍운아처럼 젊은 시절부터 전 동해안 해삼을 건조해 상해까지 무역을 했고, 훗날엔 전복장사로 부를 쌓기도 했다. 그러나 한 때나마 내나라 영토인 독도에서 강치(물개)와 해산물 남획을 일삼는 해적과 같은 일본어부들과 옷섶 잡고 싸우면서 독도바다를 지켜낸 선친의 그 의기가 자신도 모르게 경외심을 갖게 한다.
해방이후 독도1호(1964년)인 최종덕, 2호(1986년)인 조준기, 3호(1986년)인 김성도보다 앞서 독도에서 기거하며 3년동안 수산물을 채취했던 아버지는 독도 거주 원조인 셈이다. 그땐 미처 독도경비대도 없던 시절이었다.
이제 일본은 아베총리 체제로 전환되면서 주변 국가들의 따가운 눈총도 마다않고 총리산하에 분쟁지역 ‘영토관리 특별부서’까지 만든다는 보도를 보면서 저들의 검은 속셈을 일시에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심케한다. 일본이 탐욕의 속내를 감추지 않을 때일수록 선친의 독도에 대한 사모의 정이 더욱 그립고 절실해진다.
한석근 전 울산시인협회장·수필가
출처-경상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