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과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는 것, 그러니 사람 안에서 다스리며 그의 움직임을 활기 있게 하는 이 하느님의 생명을 소유한다는 개념
― 그렇게 사는 복된 사람들은 말하자면 하느님의 생명과 활동의 주관자, 전달자라고 일컬어질지도 모른다는 굉장한 느낌을 줍니다. 이 느낌이 타당한
것입니까?
답:
이 질문에 답하자니 제 마음이 기뻐 뛰놉니다.『천상의 책』에 나오는 글들을 보면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선물로 받은 이 영혼들이
어떻게 “살아 있는 성체”들이 될 것인가를 설명해 주시면서 광희에 가까운 기쁨을 느끼시는 듯한 대목이 여러 군데 있으니 말입니다!
우선,
예수님께서는 성사적 성체에 관하여 당신이 영혼과 몸과 피와 신성으로 그 안에서 참으로 살고 계신다고 설명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실 수 있는
것은 이 성체들 안에는 그분의 뜻에 대립되는 뜻이 전혀 없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분의 말씀에 의하면, 그럼에도 이 성사적 성체들은 단 하나의
애정도 심장 박동도 ‘사랑합니다.’라고 하는 극히 작은 속삭임도 그 아무것도 그분에게 드리는 것이 없어서, 그분에게는 이를테면 죽은 거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사랑의) 교환이 전혀 없는 상태로 홀로 남아 계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분의 사랑은 (축성된 빵을 담고 있는
그릇의) 유리를 깨고 나가서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가기를, 그들 안에서 성사적 성체가 그 방법도 모르고 화답할 줄도 모르는 저 교환을 찾아내기를
몹시 갈망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뜻 안에서 사는 영혼들 속에서 진정한 주고받음을 발견하시고 그들 안에서 ‘참삶’을 사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살아
있는 성체들은
예수님과 교환할 줄 압니다. 그분께 거듭거듭 “사랑합니다!”라고 화답할 줄 아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살아 있는 성체들 안에 계신 예수님은 더
이상 감실에 갇혀 계실 필요 없이 지상의 당신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니실 수 있습니다. 미소를 지으시며 그들과 담화를 나누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