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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the law)
샬롬! 새 봄이 오고 있습니다. 2월도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하나됨에 이어서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의견이 있는 부분입니다. 저의 이해는 모든 분께 새로운 흥미와 관심을 줄 것입니다. 모든 분이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완성하는 그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랍니다. 모든 지혜를 주신 성령님을 찬양합니다.
롬 7: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는 이해가 쉬운 말이 아닙니다. 진실로 율법에 대해서 자유를 누린 사람의 고백이며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에베레스트 8,000M 급 고산을 전부 등반을 해 본 사람이 산의 정복에 대해서 남긴 말을 이제 동네의 작은 야산을 오르고자 하는 이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진실로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누려보지 못한 사람이 아무리 연구를 해도 머리를 짜도 이해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성경 구절에 대한 이해가 분분한 실정입니다. 바울 사도는 홀로 율법을 가말리엘에게 잘 배우고 이 율법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쳐본 사람입니다. 그리고 율법으로 자신은 흠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고 믿었습니다. 그 정도로 율법을 구절 구절 잘 배우고 실제로 삶에서 실천했고 율법에 대해서 신뢰가 두터웠습니다. 그리고 모든 유대인이 자신과 같이 율법을 잘 배우고 실천하기를 바랐습니다. 실제로 율법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살아야만 된다고 강조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율법으로 즉 율법을 그대로 잘 지켰으므로 스스로 의롭다 여기면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이런 자신의 생각이 틀리고 착각임을 알 수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자신의 신념과 다르게 행동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자신이 믿는 유대교에 대적하는 사람으로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잡아서 옥에 가두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자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옳다고 믿던 신념 체계가 송두리째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과거에 자신이 누리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헌신했습니다. 그렇게 적어도 20년 이상을 외치며 다니다 이제 고린도에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자신과 같이 살라며 이 편지를 보냈습니다. 기원후 약 57년 경 이었습니다. 그 내용이 우리가 오늘 배울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진실로 율법을 어려서부터 조문 조문 잘 배우고 이 율법대로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살고자 했던 사람이 이렇게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외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이해를 해야 우리도 이 구절을 이해하고 바울 사도가 누린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비로소 누리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제는 율법의 묵은 것이 아니라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과연 영의 새로운 것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수가 있는가? 이 문제가 풀려야 합니다. 영의 새로운 것은 과거 바울이 체험하지 못한 새로운 체험이었습니다. 우리는 영의 새로운 것이 성령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령을 모르고 성령이 없던 사람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서 이렇게 주장을 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의 새로운 것과 예수님과는 너무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됩니다. 이 관계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해를 해야만 됩니다. 이 이해가 없이 우리는 절대로 이 구절의 올바른 이해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영어로는 영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성령의 방법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섬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3년을 같이 보내며 예수님께 하늘나라와 신 구약에 말씀에 대해서 잘 배운 제자들도 성령에 대해서는 깊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물세례 시에 성령이 비둘기와 같이 예수님께 내린 것을 본 제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성령에 대해서 들은 바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세례에 대해선 모든 제자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기 전에 말씀을 하실 때에도 잘 이해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는 말로만 성령세례를 들었지 과연 그 의미가 무엇인지 직접 체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역시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모든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도 당시의 성령을 받기 전의 제자들의 상태로 보면 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직접 체험하지 못한 일에 대해선 아무리 귀로 들어도 믿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20명의 성도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마가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고 말씀을 볼 때 성령께서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와 함께 임하셨습니다.
불의 혀 같은 것들이 각 사람의 머리 위로 임하는 것을 모두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각자에게 임한 성령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갑자기 다른 나라의 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도 체험했습니다. 자신들이 배우지 못한 외국어를 마음대로 하는 자신들을 보고 자신도 놀라고 당시에 명절을 맞아서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도 놀랐습니다. 이를 보고 놀라는 동족에게 베드로가 설교를 하니 5천 명, 3천 명이 믿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기적을 보고 또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며 병자를 위해서 기도할 때 치유가 되는 기적이 일어남을 보았습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성령을 받자 권능을 받고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실현이 됨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어떻게 이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가 묻는 동족에게 베드로는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이 구절의 말씀이 바로 바울 사도에게도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바울 사도는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섬긴 20년이 넘는 자신의 경험을 로마서 7장 6-7절에서 하는 것입니다.
행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이제 이 과정을 바울 사도에게 적용을 시켜봅시다. 과연 바울 사도는 이런 과정을 겪었을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말에서 떨어지고 눈이 멀게 된 장면으로 가 봅시다. 예수님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순종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된 바울 사도에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행 9: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이제 예수님을 직접 만나니 과거의 모든 일은 송두리째 잊고 예수님에게 순한 양이 됩니다. 자신이 모르던 예수님의 본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고, 눈이 멀게 되었으니 과거의 일은 이제 모두가 흘러간 일이 되었고 이제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눈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3 일을 먹고 마시지도 못했으니 먹고 마시는 것을 회복하는 일도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졸지에 가장 잘 났다고 기세가 등등하던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볼품없고 쓸모없고 희망이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나니아가 자신의 생명의 소망입니다. 아나니아를 만나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아나니아에게도 예수님께서 오셔서 명령을 하십니다. 그래서 둘이 만납니다. 아나니아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신 바울의 눈의 회복과 성령의 충만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의 행전 2장 37-39절의 말씀과 같이 절차를 행합니다. 우선 회개는 이미 예수님을 만났을 때 너무나 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분도 아니시고 만만히 대해야 할 분도 아니시고 자신을 죽고 살릴 생명의 주인이 되심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과거에 믿던 것들이 전부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죽어도 예수님께 덤빌 생각도 없어졌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을 잡으려 갈 생각도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자신이 살 수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과거의 일들을 모두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회개입니다.
이제 아니니아가 안수합니다. 예수님이 이름의 물세례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지은 모든 바울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베드로 사도가 설명한 성령을 받는 요건이 충족이 됩니다. 성령께서 바울에게 오십니다. 성령 충만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아라비아 사막에서 예수님의 훈련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자신이 있던 구약의 말씀을 성령의 조망으로 다시 봅니다. 그리고 구약에서 약속하신 메시야가 예수님이심을 너무나 정확하게 이해합니다. 이제 예수님께 천국에 대해서 교육을 받은 서기관 1호가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 즉 주인과 같이 때에 따라서 옛 보물도 새 보물도 보물 창고(성경책)에서 나누어 줄 능력자가 됩니다. 사실 보물 창고가 바로 예수님 자신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을 만나는 것이 됩니다. 지구 전체가 다이어먼드가 되어도 성경책 한 권 보다 귀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성경책의 주인이며 성경책의 주인공이 예수님이시니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이렇게 복된 일입니다. 바울 사도의 변화는 예수님과 만남에서 비롯됩니다.
마 13: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그리고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니 성령님께서 성경도 가르치시고 능력도 행하게 하시고 복음도 전하게 하시고 선하게 살게 하십니다. 만능이십니다. 율법을 그대로 조문 조문 예수님의 말씀대로 지키게 하시고도 남을 능력의 분이 바울 마음속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이제는 영의 새로운 것으로 모든 이를 섬깁니다.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말씀으로 세웁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웁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약속대로 늘 함께 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3층 천으로 초청을 하셔서 말도 다 이를 수 없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이제는 성령의 인도를 너무나 잘 받게 마음도 부드럽게 되었습니다. 에스겔서의 내용이 그대로 바울 사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주가 되신 예수님께서 늘 함께 하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예수님의 보호와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고 순종 하면 죄를 지을 틈이 없습니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바울은 절대로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핵심인 모세 오경의 율법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율법 조항은 그대로 존중하면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데로 순종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사랑 중에서 가장 큰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온 한국의 땅을 다 자식에게 물러 주어도 복음을 전하지 못하면 그 자녀는 겨우 70-80년 이슬과 같은 짧은 삶을 살다가 죽습니다. 지옥에 갑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물려 주지 못해도 예수님을 자신의 자녀를 믿게 하면 놀라운 축복이 임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를 돌봅니다. 이 땅에서 복된 일만 하게 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시고 상도 받게 하십니다. 이렇게 전도는 귀한 일이고 사랑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가장 큰 사랑을 실천하는 일을 일생을 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악을 행치 말고 선하게 의롭게 사라고 늘 외칩니다. 율법의 완성은 사랑을 하면 된다고 하셨는데, 이 사랑의 실천으로 모든 율법을 다 지키게 되고 실천하게 됩니다.
이 놀라운 율법의 완성을 몸으로 실천하고 눈으로 보고서 로마서 7장에서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다 보니 자신이 그렇게 율법을 통해서 의롭게 되고자 했던 꿈을 이루게 된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다른 서신서에서 쉬지 않고 외칩니다. 율법이 아닙니다. 행위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으세요 그리고 성령으로 섬기세요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하면 사람들이 너무나 귀한 율법을 함부로 할까 보아서 율법에 대해서 쉬지 않고 또 말씀을 하십니다.
롬 2: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율법으로부터 자유는 율법을 이제는 잘 알지만 그 조문 조문 지키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은 것으로 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유롭게 되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도 하지 못하는 율법의 완성을 이제는 성령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내 마음속에 오셔서 나를 거듭나게 하시고 나를 새롭게 창조하심으로 가능하게 하십니다. 율법을 잘 지킬 마음이 부드럽게 된 새로운 인간 즉 창조물이 된 우리, 거듭난 우리에게 능력의 영이신 성령께서 오셔서 직접 모든 율법이 지켜지게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하는 한 가지가 있으니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에덴에 살게 하신 후 지금까지 너무나 간절하게 모든 인류가 율법을 지키기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천 년을 지켜보셨습니다. 율법이 잘 지켜지기를 간절히 바라셨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이스라엘은 실패했습니다. 이제 삼위 하나님께서 다시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시고, 이 인간은 이제 율법을 잘 지킬 정도도 부드럽게 마음이 된 창조물입니다. 즉 이제는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율법을 잘 지킬 수 있는 인간으로 죄인들을 재창조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의 사역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이제 홀로 율법을 지키도록 내 버려 두시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한 분이신 성령님께서 마음속에 직접 오셔서 내주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감동하시고 인도하시고 기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하십니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선하게 살게 하십니다. 결국은 율법을 완성시키는 방향으로 인도하십니다.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는 결국 예수님과 성령님을 통해서 율법을 조문 조문 잘 지킴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거시적으로 사랑으로 그렇게 하시고 미시적으로 율법의 준수를 통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놀라운 영적인 비밀입니다.
참고로 새 피조물 즉 새 창조물이 어떤 사람인지 도표로 표시를 했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에 대한 인식과 고백이 있어야 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게 됩니다.이제 하나님께서 이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으니(물 세례) 과거에 그가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이제 이 사람이 사도 행전 2장 37-39절의 말씀대로 성령을 선물로 받을 사람입니다. 기다렸다가 성령을 받게 되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사역하심으로 새롭게 창조가 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작품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작품에 성령께서 도장을 찍습니다 화가가 그림을 다 그려놓고 낙관을 찍어 자신의 작품임을 표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이 사람은 마음이 부드럽게 되어 율법을 잘 지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초대 교회 바울 사도와 모든 성도는 이렇게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들이 성령의 인도를 받고 율법을 잘 지키게 될 때 이들이 율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 중에서 적당한 때에 하나님께서 의롭다 인정을 하십니다.
성령의 체험도 없고 인도도 없고 오직 성경을 배워서 이를 풀고자 하면 정말로 어렵고 시간이 가도 풀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미련한 저도 게으른 저도 하나님의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과 은혜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보혈과 십자가 대속의 사랑으로 성령을 받아서 이렇게 설명을 드립니다.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고 약 32년을 살고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앞에서 보여드린 도표로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동그란 원은 지구의 둘레입니다. 약 40.000km입니다. 초록색과 빨간색은 각각 248구간과 365구간으로 나누었습니다. 약 200km와 130km 길이의 구간이 지구의 둘레에 각각 248개와 365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간 중간에 스탬프를 찍는 막사가 있고 각 구간에 다 휴식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구상에 불신자, 유대인 그리고 예수를 믿는 이가 살고 있습니다. 248구간과 365구간의 각각 모세 오경의 율법 조항을 의미하는데 하라는 조항은 248 조항 초록색입니다. 하지 말라는 조항은 365 조항 빨간색 구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살면서 반드시 초록색의 구간 248구간을 발로 걸어야 한다고 정해 두었습니다. 그 구간을 걸을 때마다 상급이 있고 사는 날 동안에 복을 받고 살고 난 후에 천국에 가는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빨간색 구간은 가면 이 땅에서 저주를 받고 너무 어기면 지옥에 간다고 정해 두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초록색 구간을 걸어도 되고 홀로 가도 되고 친구와 같이 가도 됩니다. 그리고 빨간색 구간도 역시 그렇게 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 구간 중간에 지나갔음을 확인하는 스탬프를 찍는 곳이 빨간색과 초록색 구간마다 다 있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경우에는 복을 받고 벌을 받는 조건에 조금 부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초록색을 모두가 걸을 때 온 지구상에 평화와 질서가 있고 하나님의 축복이 넘쳐서 천국이 됩니다. 그런데 빨간색의 길을 걸을 때 지구는 무질서와 불행이 임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정해 놓은 법이라 합시다. 그런데 직접 파란색과 빨간색 구간을 실지로 걸으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기준에 충족이 됩니다. 그런데 이와 달리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법으로 올바르게 살면 또 초록색 구간을 걸은 것으로 보아 준다고 정했습니다. 그리고 악하게 살면 빨간색 구간에 직접 가지 않아도 간 것으로 보아 스탬프가 찍힌다고 합시다. 하나님께서 정해 준 기준으로 사는 법이 직접 40.000km의 지구 둘레를 완주함으로 성취하는 방법이 있고 또 세상에서 기준대로 살면 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빨간색의 길과 파란색의 길에는 나름대로 사람을 끄는 일들이 숨어있다고 합시다. 아무리 가지 말라고 해도 빨간색의 길에는 달콤한 유혹이 있다고 하고 초록색의 길에도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다고 합시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정해 두었다고 합시다.
유대인은 이를 믿고 어려서부터 자녀들에게 이를 교육을 잘 시킵니다. 반드시 초록색의 구간을 일생을 통해서 다 걸을 수가 있게 교육을 시킵니다. 구간의 종류와 특징에 대해서 잘 배워줍니다. 그리고 가서는 아니 되는 구간에 대해서도 잘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틈이 나는 대로 가서 초록색의 구간을 걷고 스탬프에 도장을 잘 찍습니다. 일생을 사는 동안 자신도 이를 잘 지키려고 하고 아들과 딸에게도 잘 순종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도 역시 정직하고 정의롭게 살고 그렇게 살도록 자녀를 가르칩니다.
이를 믿지도 않고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 또 있습니다. 이방인입니다. 이들은 이런 약속에 대해서도 무지하고 그 구간에 대해서도 무지합니다. 그래서 마음대로 살다가 보니 자연스럽게 빨간색 구간만 쉬지 않고 방문하는 결과가 됩니다. 빨간색 구간의 스탬프가 쉬지 않고 찍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의 법을 지키며 초록색 구간의 길로 걷는 사람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용서해 주고 이 구간을 걷지 않고 육지도 다니고 물로도 다니고 그리고 하늘로도 다닐 수 있는 하늘 차를(도표에 있는 차) 한대씩 주고 운전자도 붙여준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원할 때 그 초록의 구간을 차를 타고 가거나 날아서 갈 수가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스탬프가 있는 곳에 내려서 스탬프만 자신이 찍도록 했습니다.
차의 성능도 너무나 우수해서 40.000km를 단숨에 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운전자는 너무나 나와 잘 맞습니다. 운전자는 모든 상황을 알고 나를 이 땅에서도 행복하게 즐겁게 살고 그리고 그 초록색의 길도 쉽게 가게 합니다. 내가 싫다고 하면 나를 기다립니다. 내가 빨간색 구간으로 가고자 하면 아니 되다고 막습니다. 이 차를 그냥 준다고 합니다. 단 예수를 믿어야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차, 차는 선물인데 반드시 예수를 믿고 베드로가 말한 조건을 지켜야 준다고 합니다. 이 하늘 차가 성령의 선물입니다.
내가 받아서 타고서 운전자와 소통하면서 세상에서 착하게 살고 행복하게 살면서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하신 초록의 길을 쉽게 다 스탬프를 찍으면서 갈 수가 있게 하십니다. 나를 강제로 막 끌고 다니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게 되면 차를 선물로 받고 우리는 마음이 너무나 부드럽게 됩니다. 운전자에게 순종하게 될 정도로 부드럽게 됩니다. 이렇게 즐겁고 쉽게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차와 운전자를 받았는데 내가 내 고집을 부리면 아니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고 이 차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 차를 받고 타고서 평안하게 40.000km의 초록 구간을 완주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땅에서 복을 받고 천국에도 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빨간색으로 가고자 할 때 나를 막아줍니다. 나는 적어도 이 차와 운전자에 대해선 잘 배워 두어야 나를 싣고 다닐 운전자와 소통이 쉽습니다. 그리고 초록색의 248구간과, 빨간색 구간에 대해서 잘 배워두어야 내가 원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 해야 할 운전자의 성향에 대해서도 알게 됩니다. 율법과 성령에 대해서 잘 배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고 이 차를 선물로 받지 못하면 놀라운 능력을 지닌 운전자도 만나지 못하고 그리고 초록색 구간과 빨간색 구간에 대해서 배우지 못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올바른지 그른지 분별도 못함으로 부지 불식간에 빨간색 구간으로 쉬지 않고 다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차가 없기에 초록색 구간으로 가서 내 발로 유대인과 같이 쉬지 않고 일생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유대인에게도 얼마나 힘이 든 과정이요,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지 않고 지키려면 또 너무나 힘이 든 여정입니다.
그런데 여기 놀라운 예수를 믿는 무리가 등장합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그 초록색 구간은 걷지 않아도 저절로 다 지키게 된다. 즉 의롭게 된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이 구간에 대한 공부가 없어서 마음대로 살다 보니 때론 초록색 구간으로 가기도 하지만 또 쉬지 않고 빨간색 구간으로 가기도 합니다. 이들은 그리고 예수를 믿기에 회개만 하면 빨간색으로 간 것은 모두가 다 지워진다 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빨간색으로 갔기에 그들은 그들의 주장대로 빨간색으로 다닌 흔적이 지워질 수가 있지만 그 행위로 세상은 점점 불행해지고 살기에 어려워집니다. 즉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천국이 건설이 되지 않습니다. 무려 이렇게 살고자 하는 예수를 믿는 무리가 세상에 대거 존재한다면 어떤 세상이 되겠습니까? 이들이 어떻게 살든지 모든 죄를 용서받아 오직 초록색의 길로만 다닌 것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고 이들은 주장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예수님을 믿는 이를 통해서 맑아지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편에서는 이들의 행동으로 세상이 너무나 더러워지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이들 죄인을 위해서 피를 흘리고 죽기까지 했는데 이 사랑과 희생의 대가가 아무런 가치가 없게 되었습니다. 과연 이들을 천국으로 반갑게 맞이할 수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이렇게 사는 사람을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율법으로부터의 자유가 율법을 잊고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서 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또 우리가 새롭게 창조가 되어서 마침내 율법을 모두 다 지킬 수가 있게 됨을 말하는 것을 우리는 앞에서 잘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세상은 너무나 살기에 좋은 천국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를 잘못 이해하고 행하게 되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만 사는 세상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악한 세상이 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이 많아도 세상이 그렇게 될 수가 있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을까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절차를 지켜서 죄를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 그리고 성령을 선물로 받고 그리고 성령의 인도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모든 것 중에서 하나라도 결핍이 되면 아니 됩니다. 예수님을 믿습니까?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까? 예수님도 믿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좋아서 지옥에 갈 준비를 이 귀한 생명으로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부디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서 성령의 인도로 이 세상을 행복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도 너도 내 자녀도 행복한 세상을 만듭시다. 절대로 홀로 마음대로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행복한 일생을 사시고 천국에서도 상을 잘 받기를 바랍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 아버지께 돌립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보혈과 십자가 대속의 사랑을 찬양하고 전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내주와 교통하심을 찬양합니다. 주여! 영광을 받으소서!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