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황진이
운명의 갈림길에 선 김정한과 황진이!
오늘 밤(木) 제 22회를 보지 않는 한, 이 둘의 운명을 놓고 함부로 말 할 수는 없다. 필자는 대개 어떤 글을 쓸 때 염두에 두는 게 있다. 나름대로의 원칙이다. 그것은 ① describe ② explanation ③ predict ④ prescription 의 순서에 의해 글을 쓰는 것이다. 필자는 이 원칙을 꼭 지키는 것은 아니나,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 때까지의 극의 상황을 사실대로 describe 하고, 그리고 나서 인과관계를 살펴내어, 원인-결과에 대한 explanation을 시도한다. 이 과정이 잘 이뤄지면, predict와 prescription은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다.
그러나 ‘황진이’의 작가는 도무지 예측불허의 작가라서, 이 4개의 과정에 의한 글쓰기가 통하질 않는다. 학문세계에서나, 신문기자의 작문세계에서나, 이 4개의 순서에 의해 글을 쓰는 것은 아직도 ‘철칙’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황진이’의 작가는 너무 변덕이 심하다. 말 그대로 ‘변덕’이다. 논리성이 없다는 얘기다. 한 회에도 몇번씩 일관성 없이 스토리가 바뀐다. 그래서 드라마 ‘황진이’에 대한 소감문도 기실은 쓰고 싶지 않은 것이다.
비교적 글쓰는 순서에 따라 탄탄하게(?) 시청소감문을 써봐도, 예측불허의 극의 전개로, 시청문을 쓴 시청자들만 스타일을 구기기 일쑤다. 그래서 싫다. 시청자들을 순간 순간 속여넘기는 작가의 그 상투적인 방법이 싫은 것이다.
이제는 작가가 시청율을 올리기 위해 잔재주를 부리는 듯한, 그러한 방식에 속아넘어가고 싶지 않다.
오늘 이 시간(12.21 木 오후 5:00) 까지의 상황으로 본다면, 분명 김정한과 황진이는 운명의 갈림길에 섰다. 이 둘의 운명은 과연 어찌될 것인가?
(1) 둘다 죽는 시나리오가 있다. 김정한은 처형장으로 가서 거열형(?, 작가의 말)에 처해 지고, 황진이는 진연에서 좋은 춤을 추나 벼슬아치들의 몰(沒)인정에 의해 ‘만사휴의’로 끝나는 경우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윤심덕과 김우진” 등 둘다 죽는 비극은, 비록 비극이지만 오랫동안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
(2) 둘중 하나는 살고 하나는 죽는 경우이다. 먼저 황진이는 살고 김정한은 죽는 케이스. 황진이는 진연에서 매혹의 춤을 추고, 중종의 심금을 울려 살아 남으나, 문제는 어전 진연과 사형장의 처형이 동시에 진행된다는 데 있다. 황진이의 춤에 사로잡힌 중종이 마음을 돌리나, 앗뿔사, 이미 김정한의 처형은 집행되어 버린 상태이다. 영화 “암흑가의 두사람”에서도 ‘알랑들롱’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나, 그의 사랑스런 애인은 ‘알랑들롱’의 아기를 가진 채(…having your baby) 살아 남는다.
(3) 김정한은 살고 황진이는 죽는 경우가 있다. 황진이가 아무리 좋은 춤을 추었다 해도, 그래서 중종의 마음이 돌아섰다고 해서, 황진이가 반드시 산다는 보장은 없다. ‘쿠데타’군의 “반정(중종반정)”에 의해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중종이나, 허수아비 임금으로서 조정을 장악하지 못해 왔다. 권신들에 의해 권력을 분점당한 상태에서 영의정과 석천대감 등이 결사반대한다면, 황진이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중종은 이 때, 황진이의 목숨은 내주나, 권신들과의 타협에 의해, 아끼던 신하 김정한의 목숨만은 보전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도 황진이의 춤이 빨리 끝난다는 전제 아래서이다. 그만큼 황진이는 속전속결로 춤을 끝내야 한다. 정인 김정한을 살리기 위해서는, 황진이는 자기의 목숨과는 관계없이, 빨리 춤사위를 맺어야 한다. 영화 “애수”에서 ‘로버트 테일러’는 살아 돌아오지만, 그 덕분에 ‘비비안 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4) 김정한과 황진이 둘다 사는 경우가 있다. 더 말할 필요도 없이, 황진이는 최상의 춤을 추어야 하고, 흡족해진 중종이 권신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황진이를 살리는 경우이다. 그리고 이런 황진이의 춤이 나오게 해준 ‘숨은 후견인’ 김정한까지 살려주는 일이다. 권신들에게 많이도 시달리겠지만, 중종의 굳은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겠다. 이 때 ‘이생’의 아버지가 탕자(자기 아들, 즉 이생)를 집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싫지만 김정한을 살리는데 ‘쬐끔’ 힘을 보탤 수도 있다. 이미 이생의 父는, 아들 이생으로부터, 집에 돌아와 가문을 잇는 조건으로 “김정한을 살려달라”는 부탁까지 받아놓고 있질 않은가?
그러나, 몇번이나 강조했드시, 역시 황진이는 김정한의 사형이 집행되기 전에 춤을 끝내야 한다. 기초 동작이니 워밍업이니, 이런 것 할 시간이 없다. 김연아는 기본동작을 충실히 하였고, 고난도의 위험을 피한 안정적인 ‘연기’로 세계정상에 섰지만, 황진이는 그럴 계제가 아니다. 빠른 승부를 걸어야 한다. “밑자락 까는” 그런 연기 하지 말고, 곧장 가라. 속전속결하는 자세로 ‘트리플악셀’, ‘쿼드로플’ 까지 신들린 듯이 보여줘야 할 것이다. 기본적인 동작을 되풀이 하거나 평범한 춤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최고로 빠른 시간내에 최고 난이도의 춤을 ‘환상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자기가 살고, 김정한이 사는 길이다.
한가지 머리를 스치는 것은, 어전 진연에서 부용의 춤 순서가 먼저이다. 모든 상황을 짐작하고 있을 부용이 혹시 ‘지연작전’을 쓴다면…?!
“서울1945”에서 오철형과 최은희도 생사의 고비에서 둘다 살아 남았다. 그러나 이산가족이 됐다. 황진이와 김정한이 둘다 살아남는다 해도, 남은 생을 둘이 함께 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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