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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의 새 지도자 몽양 여운형_ 도올김용옥_ 광복80주년 기념 특별강연
new 책
<새 시대의 새 지도자 몽양 여운형> 김용옥 통나무
몽양기념관
새 시대의 새 지도자 몽양 여운형 김용옥 통나무
2025년 08월 15일 몽양기념관 광복 80주년기념 도올선생님의 특별 강연
탁월한 지도자 없이 새 시대는 열리지 않는다!!
대한민국 불멸의 지도자 몽양 여운형!!
이제 광복 80년, 좌절된 여운형의 리더십을 새롭게 완성하자!!
우리민족이 일제의 강점에서 풀려난 후로, 그 시대의 잘못된 역사 실타래를 바로잡으려는 민중의 노력은 줄곧 추동되어 왔지만, 그것을 좌절시키려는 세력의 노력 또한 집요했다. 그 집요함이 단적으로 표출된 것이 최근 내란사태이다. 그러나 우리는 국민 스스로 내란을 상식으로 극복하였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 있다. 새 나라의 지도자상은 어떠해야 할까? 이 책은 몽양 여운형의 삶과 비젼을 그 답으로 제시한다. 흉탄으로 좌절된 몽양의 리더십을 지금 이 땅에 제대로 꽃피우게 하기 위해서다.
몽양 여운형은 우리민족 불멸의 지도자이다. 여운형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의 혼란기에 활동했던 선각자적 사회개혁가이며 독립투쟁에 매진한 탁월한 정치지도자였다. 그는 국제적으로도 자이언트였다. 그의 생애는 20세기 현대사에서 민족의 독립과 통합과 도약을 위한 노력의 최고봉이었다. 저자 도올 김용옥은 이 책에 고난 속에서 항상 새 시대를 개척해 나가는 여운형의 철학사상과 그의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지도자로서의 측면에 역점을 두어 세밀하게 그려낸다. 우리는 훌륭한 사람을 훌륭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위대한 몽양의 리더십은 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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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라는 것은 나의 현대적 실존을 구성하는 “틀”이다. 현대사가 없이는 나의 존재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17
현대사는 여러 가지 개념들로 구성되어 있다. 빨갱이니, 좌파니 우파니,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계급이니, 혁명이니 하는 말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이 개념들은 궁극적으로 나의 관념의 토대를 이룬다. 18
우리의 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몽양만큼 손쉬운 방편이 없을 것이다. 몽양의 삶은 닫혀있질 않다. 모든 이념의 의미를 공평하게 구현한다. 18
해방정국에서 그 혼란을 정리하고 민족을 이끌어간 지도자로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자는 여운형이었다. 23
헨더슨은 말문을 열었다. "1948년 8월 15일, 중앙청 앞에 섰어야 했던 인물은 우남이 아니라 몽양이었네." 36
이제황은 자연스럽게 여운형의 수행비서가 되었고, 또 무도인으로서 그를 경호하는 경호실장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55
이제황은 광화문 근로인민당 당사에서 서울운동장으로 향하는 몽양의 관을 걸머멨다. 서울 한복판의 60만 인파, 유사이래 보기 힘든 성대한 애도의 물결이었다. 그 곁에는 손기정이 눈물을 떨구며 묵묵히 몽양의 관을 메고 따랐다. 57
손기정은 양정고등보통학교를 다녔는데, 여운형의 둘째아들 홍구鴻九와 동급생이었다. 72
여규덕은 여씨 집안에서도 가장 진보적이었고 동학혁명운동을 민중의 정당한 요구로 받아들인 지식인이었다. 104
몽양의 아버지 여정현呂鼎鉉은 전혀 이 집안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였다. 양반과 쌍놈에 대한 규범윤리가 무조건적으로 엄정했다. 119
할아버지 여규신은 괴팍한 신념의 사나이였지만 세속적인 욕망이 없는 정의로운 사나이였다. 143
몽양에게 집안노비해방은 사회적 혁명의 실천이었고, 본능적 결단이었다. 몽양은 태어나면서부터 진정한 모던 맨Modern Man이었다. 146
몽양은 협화서국에서 일하는 동시에 상해거주 교민단장이 되었으며 한국청년들의 구미유학과 도항알선에 힘썼다. 이때 그의 주선으로 구미와 중국 각 학교에 입학시킨 학생이 3백여 명 153
우리민족사의 가장 혁혁한 혁명이라 할 수 있는 3·1독립만세혁명의 주도세력이 여운형이라는 탁월한 개인이라는 이 명백한 사실 159
윌슨의 특사 크레인과 신한청년당의 당대표 여운형의 만남, 그 삶의 만남이야말로 세계사의 장場을 바꾸게 만든 혁명의 출발이었다. 170
신한청년당의 활약은 김규식의 파리행 이후로도 눈부신 것이다. 그들이 국제적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전개한 만세혁명운동은 세계사에 유례를 보기 힘든 것이며, 174
신한청년당의 대표로서 김규식이 파리평화회의에 가있다는 사실의 전제가 독립운동시위를 전 민족적으로 전개해야만 하는 당위성의 근거가 되었고, 그를 지원하는 신한청년당의 호소는 3·1독립만세혁명을 일으키는 데 주요한 동기가 되었다. 175
“일본이 조선을 병탄한 것은 동양평화를 파괴하는 죄악의 시작입니다.” 207
그가 아무리 제국에 대하여 용납할 수 없는 계획을 하고 있었다고 해도, 그를 도덕적으로 비하하고 욕하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요시노 사쿠조오)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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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의 새 지도자 몽양 여운형
도올 김용옥 저자(글)
통나무 · 2025년 08월 15일
작가정보
도올 김용옥
저자(글) 도올 김용옥
인물정보
유학/동양철학자
우리나라의 대표적 철학자 도올 김용옥은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등 90여 권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의 베스트셀러들을 통해 끊임없이 민중과 소통하여왔으며, 한국역사의 진보적 흐름을 추동하여왔다. 그는 유교의 핵심 경전인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등 사서와 《효경》의 역주를 완성하였으며, 그의 방대한 중국고전 역주는 한국학계의 기준이 되는 정본으로 평가된다. 그의 《중용》역주는 중국에서 번역되어(海南出版社) 중판을 거듭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신학자로서도 권위 있는 성서주석서를 많이 저술하였고, 영화, 연극, 국악 방면으로도 많은 작품을 내었다. 현재는 우리나라 국학國學의 정립을 위하여 한국의 역사문헌과 유적의 연구에 정진하고 있다. 또 계속 진행되는 유튜브 도올tv의 고전 강의를 통하여 그는 한국의 뜻있는 독서인들을 지속적으로 계발시키며 쉼 없이 공부하고 있다. 근래에 나온 그의 저서는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금강경 강해》, 《우린 너무 몰랐다》, 《노자가 옳았다》, 《동경대전1·2》, 《용담유사》, 《도올 주역 강해》, 《도올 주역 계사전》 등이 있고, 최근에는 《만해 한용운, 도올이 부른다 1·2》, 《상식─우리는 이러했다》, 《예수님의 육성, 도마복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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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장: 인트로 13
인연들 15
도올이 본 한국독립운동사 10부작 16
여운형과 더불어 숨쉬다 18
생평生平의 참 의미 20
해방정국에서 민족의 지도자 제1순위로 꼽힌 사람 22
혁명가는 침상에서 죽는 법이 없다 24
그레고리 헨더슨이 말하는 보르텍스 26
사구하이츠의 아주머니 27
짜릿해요! 뻥 뚫리는 것 같아요 28
정상인은 나쁜놈이다 30
렉싱턴의 화이트하우스 32
윤내현과 나와 헨더슨 33
기억되어야 할 한국학의 거성, 죠지 매큔 34
헨더슨의 몽양관 37
여운홍이 헨더슨에게 전한 책 38
내가 여운형 평전에 남긴 한시 39
제2장: 체육과 몽양 45
창주 이제황 47
도의상마는 창주선생의 독창적인 문장구성 48
도道는 형이하학形而下學적인 연마 49
의義는 사회정의 50
욕이위인의 본 뜻 52
무엇 때문에 무술을 연마하는가? 52
몽양과 창주 55
몽양, 이제황, 손기정 57
카노오 지고로오 59
유도는 한국 고유의 몸짓이다! 이제황의 주장 60
여운형의 금릉대학 영문과 입학, 그리고 15년 만의 귀국 61
국내에서 건국을 준비하다 62
우가키 카즈시게의 권유 62
강점기 3대신문 중 하나, 중앙일보 사장에 취임 64
《중앙일보》의 역사 65
《조선중앙일보》가 탄생시킨 문학작품들 66
체력이 국력이다. 권투정신은 독립정신 66
조선의 청년에게 고함: 억센 나라를 건설하자! 67
몽양의 철봉운동 보급 69
몽양과 살므송 투 71
손기정의 가슴의 일장기말소 72
너는 조선인으로서 달리고 있다 73
몽양의 체육철학, 교육의 근본은 체육이다! 74
몽양의 힘에로의 의지 75
심훈의 마지막 시 76
최초의 망연한 경악에서 벗어나 승리의 깃발을 휘두르다 77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제3위 남승룡을 확실하게 기억하자! 79
손기정과 아돌프 히틀러의 악수 79
일장기 말소 패스! 80
조선중앙일보의 자진휴간 81
조선중앙일보의 폐간, 일본제국주의 패망의 단초 81
천하의 명문, “분투와 노력” 83
독립운동 = 우주적 생명의 생존권 발로 87
제3장: 동학과 몽양 89
동학의 핵심은 동학경전 91
케리그마에 의하여 변형되지 않은 유일한 경전 92
동학이 온양된 곳은 전라도 아닌 경상북도 동해안지역 93
영양군 일월산 윗대치 94
혁명에 몸바친 사나이, 이필제 95
교조신원이라는 명분에 감복한 해월의 제자들 95
해월과 이필제의 만남 96
해월의 주도적 참여, 진정한 도바리의 시작 98
이필제의 재평가 98
해월과 강수 99
몽양의 작은 할아버지 여규덕과 해월의 해후 99
함양여씨 세계 101
증조부 여장섭 이하 4대 대가족 102
해월의 스승님에 대한 약속이행 104
수운의 간행요구의 의미 103
인제 갑둔리 각판소. 동학경전 최초 간행, 1880년 목활자본 103
한문과 국문의 무극대도 105
《용담유사》라는 경전의 혁명성 105
몽양의 작은 할아버지, 해월에게 《용담유사》의 간행을 제안 106
《천도교회사초고》의 기록 107
야뢰 이돈화의 왜곡 107
왜곡의 무책임한 전승 108
《해월선생문집》(1906)이 가장 소박한 원래자료 109
몽양 종조부 여규덕 집은 동학의 대표적 집회장소 111
여운형집안이 대중적 동학포덕의 원점 111
여규덕에서 김은경으로, 목천의 경전간행이 동학포덕의 주간主幹 113
충청도의 열린 뜰에서 전라도로 확산 113
친할아버지 여규신도 초기동학의 효시라고 동학역사가 규정한 인물 114
몽양의 할아버지 회상 114
여규신, 여규덕, 여승현, 여준 115
여규신의 중국정토의 독특한 뉴앙스 116
몽양의 이상주의는 조부 여규신의 대국경시사상으로부터 출발 116
증조부 여장섭의 동학귀의 118
여운형은 동학의 성지 단양 샘골에서 회잉懷孕되었다: 태양을 꿈꾸다 118
몽양의 아버지 여정현은 동학과 관계없는 지독한 양반 차별주의자 119
진짜 몽양의 교육은 가족의 군상으로부터 102
천하의 여걸, 호랑마님 엄마 120
자손의 발전을 생각치 않고 산향에 칩거, 가문의 불행 121
모든 종교는 꾀질꾀질, 호랑엄마 소견 122
엄마의 반역 . 122
제4장: 3·1독립만세혁명의 세계사적 맥락 125
사건은 수없이 많은 사건들의 집합 127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3·1운동은 운동이 아니라 세계사적 “혁명”이다 128
20세기, 육지면적의 80%가 식민지 128
암리차르 대학살, 모한다스 간디 129
사티야그라하: 3·1혁명을 본받다 129
3·1독립만세혁명과 5·4운동 130
북경대 학생구국회 월간지 《국민》, 기미독립선언서 전문을 싣다 131
정주의 처참한 광경. 오산학교 정신 132
러시아 10월혁명은 관념적, 3·1혁명은 가슴의 공감共感 132
북경학생연합회 선언문 속에 나타나는 3·1혁명 133
중화혁명당-국민당 기관보 《민국일보》 3·1혁명 보도와 논평, 20회 이상 134
진독수·이대조의 《매주평론》, 중국 젊은이들 궐기를 호소 134
중국의 이완용은 누구? 135
부사년의 논문, “조선독립운동이 가르쳐주는 새로운 교훈” 135
3·1운동은 혁명이다! 혁명인 이유 136
혁명은 단순히 엎는 것이 아니다. 새로움의 요소 137
일본에는 혁명이 없다 138
조선의 역사는 혁명에서 시작, 혁명으로 끝났다. 지금도 계속중 138
3·1혁명에서 빛의 혁명까지 139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 = 3·1독립만세혁명 140
몽양의 숙부, 여병현 141
배재학당과 협성회 141
종갓집 여남식 142
화불단행 143
노비해방 단행 145
제5장: 몽양의 신한청년당이 3·1독립만세혁명을 주도 147
몽양과 조동호, 남경 금릉대학에 입학 149
신학지망생이 영문학도가 되다 150
유정 조동호는 몽양의 도반, 한겨레신문의 정신적 뿌리 151
남경에서 상해로! 역사에서 현세로! 152
협화서국 죠지 피치 153
예관 신규식, 한국독립운동사의 갇파더 153
돈과 이상과 도덕성을 구비한 희대의 거물 154
신규식의 교제범위: 미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반 155
진기미·진독수와 이웃하며 156
신규식의 비밀결사 조직활동 156
위대한 사람을 위대하게 대접해야 위대한 역사가 생겨난다 157
3·1독립만세혁명의 진원이자 주도자는 몽양이다! 158
신한청년당은 한국 최초의 근대정당, 몽양이 창당 158
3·1독립혁명의 논리적 필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 159
신한청년당의 창당: 6명의 발기 160
해산 이유 161
신규식이 조직한 신아동제사 162
한인들의 결사조직, 동제사 162
우드로 윌슨의 특사, 찰스 리처드 크레인 164
중국체육인 왕정연과의 우정의 도움을 입다 166
그날 밤으로 면담성사 166
크레인이라는 휴머니스트 167
크레인과 여운형의 만남: 조선역사의 분수령 168
조선민중과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아무런 직접적 관계가 없다 169
사가들이 혁명의 전반부를 빼먹는다 170
크레인의 레코멘데이션: 조선 민중을 봉기시켜라! 170
김규식을 불러 와라! 171
김규식의 영어실력 171
조선독립청원서 완성의 기한, 눈물겨운 노력 172
상해에서 프랑스로 가는 배편,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정육수의 도움 173
운명의 2월 1일, 3월 1일까지 운명의 한 달 174
제6장: 동경제국호텔 연설과 타이쇼오 데모크라시 177
미씽링크 179
신한청년당의 촉발에 대한 조선민중의 반응 179
플레타르키아의 갈망, 홍익인간의 염원은 내재적 180
일본의 충격, 사전에 눈치채지 못했다 181
여운형을 데려와라! 182
이이제이: 혁명가 집단 자체내의 분열 182
타이쇼오 데모크라시 183
타이쇼오 로맨스 184
쿠미아이 기독교회와 척식국 185
찬반 양론이 팽팽 185
여운형이 내건 4개의 조건과 장덕수 186
13일 동안 동경에서 만날 인물들 187
여운형과 코가 189
조선병탄과 회사합병의 비유는 가당치 않다 191
국가에게는 이익 이상의 것이 필요 191
몽양의 일대 반격 196
추상과 구상의 비빔밥 197
한풍냉설, 십사일생, 강권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 198
국제관계는 무력으로만 승패가 결정나는 것이 아니다 199
코가의 달콤한 제안 199
코가의 저택연회 201
타나카 기이찌 육군대신 201
열석한 사람들 202
타아타닉호는 무엇 때문에 침몰하였나? 204
초가삼칸 다 타도 빈대만 탈 수 있다면 205
정의의 싸움의 강력함 206
미즈노와의 인삿말 206
체신대신 노다 우타로오 208
동경제국호텔 연설의 성대한 분위기 209
3·1독립만세혁명의 피날레: 크레인 면담에서 제국호텔까지 209
연설요지 210
독립: 자기 생존을 위한 자연의 원리인 동시에 인간의 원리 211
“때”의 철학: 독립은 때의 요구: 천국이 임하는 것과 같다 213
우리의 독립혁명은 미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와 상관없다 213
민족자내의 요구일 뿐 213
조선민중의 국가비젼, 일본과 다르다! 215
요시노 사쿠조오 교수와의 해후 216
시모노세키의 복어횟집 217
부록: 몽양 여운형 연표 219
도서 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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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ㆍ몽양기념관
몽양기념관
경기 양평군 양서면 몽양길 66
https://www.yp21.go.kr/museumhub/
몽양기념관은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과 평화통일을 위해 일생을 바친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몽양 여운형 선생의 삶과 정신을 널리 알리고자 2011년 11월 27일 개관했다. 함양 여씨가 양평에 입향한 1715년 지어진 생가는 몽양 선생이 1886년 출생해서 부친 탈상을 끝낸 뒤 서울로 이사 간 1908년까지 사신 곳이다. 6·25 전쟁 중에 소실되었다가 2001년 양평 군민들의 노력으로 생가터가 정비되고 이듬해 기념비가 건립되었다. 2008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된 것을 계기로 서거 64주년인 2011년 생가가 복원되었다. 생가 복원과 함께 건립된 기념관은 서거 당시 입고 계시던 혈의, 장례식에 사용된 만장, 서울 계동 집에 있던 책상, 2008년 추서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등의 유품과 자료를 전시하여 선생의 삶과 정신을 체험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1945년 11월 3일 임시정부 환국 기념 촬영
여운형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 (1886–1947)
여운형(呂運亨, 1886년 5월 25일 (음력 4월 22일) ~ 1947년 7월 19일)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겸 저술가였다. 경기도 양평 출신.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회숙(會叔). 호는 몽양(夢陽). 아버지는 여정현(呂鼎鉉)이며 어머니는 경주 이씨이다. 14세 때에 유세영(柳世永)의 장녀와 혼인하였으나 사별하고, 충주의 진상하(陳相夏)와 재혼하였다.[1] 1945년 8월에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을, 9월부터 1946년 2월까지 조선인민공화국의 부주석을 지냈다. 구한 말 평등 사상을 수용하여 노비들을 해방시키고, 교육·계몽 활동을 하다가 1907년 대한협회에서 주최하는 강연회에서 안창호의 연설에 감화되어 독립 운동에 투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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