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과 섬김'이란 단어가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 너나 가릴 것 없이 모두에게 회자(膾炙)되고 있다.
특히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 추구만을 좇아
세간의 지탄을 피하지 못했던 대기업의 이미지 변신용으로도 훌륭하게 사용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선진사회로 진행하는 과정의 필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선진국의 나눔과 섬김의 정신은
바로 성경에 기초한 기독교 정신이며
그 정신이 실현된 생활문화임을 알 수 있다.
나눔과 섬김은 복음의 핵심이다.
주님의 성육신 사건의 실체가 바로 나눔과 섬김이다.
나눔과 섬김을 도덕과 윤리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은
적어도 우리에게는 잘못된 태도이다.
이미 주님도 나눔과 섬김을 구속의 비밀로 말씀하셨다.
구원이란 예수께서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은혜 안에서 나눠주시며
그 나눔을 위해 낮은 자리에서 죄인들을 섬기시는 것이다.
현 한국기독교는 실제론 대부분의 사회복지 기관이 기독교 계통임에도 불구하고
나눔과 섬김에 있어서는 불신자들에게 정반대의 이기적인 집단으로 매도당하고 있다.
기독교 복지기관의 사역에도 불구하고
지역교회는 나눔과 섬김에 매우 인색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눔과 섬김의 실천은 꼭 사회의 여론 때문은 아니다.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며
성육신의 생활화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이제 지역교회는 나눔과 섬김의 정신과 사역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지역사회와 이웃에게서 시작하여
국내외 오지와 소외계층 및 해외로 확장되어야만 한다.
나눔과 섬김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면 국내 봉사 및 구제, 해외 봉사와 구제 등이다.
그 실천 방법과 대상은 각 지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부르심을 따라 자연스럽게 결정되며 실천될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필자의 교회에서
개척 초기부터 지녀왔던 나눔과 섬김의 정신 및 원칙을 그대로 나누고자 한다.
우선 무엇보다 나눔과 섬김의 철학을
목회자뿐 아니라 온 교인들이 철저하게 인식하고 동의했다.
교회 이기주의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교묘하고 강력하게
우리 안에 들어와 있을 수 있다.
물론 그 뿌리는 타락한 인간의 대표적 본성인 이기주의이다.
이기주의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집단의 이익을 위해 형태를 바꿔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는 개척초기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부채와 자체 경상비도 조달 안 되는 형편이었지만
많아서나 남아서가 아니라, 교회 이기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 그런 몸부림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런 마음을 주님이 어여삐 보시고 교회의 재정과 필요를 우리 생각 이상으로 채워주셨다.
다음으론 꼭 수학 비율처럼 할 필요는 없지만
일부러 나눔과 섬김이 차지하는 재정 비율을 내부 동의를 거쳐 일정하게 유지했다.
무슨 자랑이나 과시로서 몇 퍼센트라고 할 건 없다.
사실 어느 신학자의 말을 따르면 자기 건강을 유지하면서도
밖으로 나눔과 섬김을 가질 수 있는
최적의 비율은 교회 1년 재정의 15% 정도라고 한다.
그 이하는 고인 물이 되고, 그 이상은 자칫하면 외화 내빈의 될 수 있다.
각 교회의 형편과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결정하면 되겠지만
우리 교회는 20~30%를 계속 유지했다.
한국교회는 그 비율이 평균 10%를 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정한 나눔과 섬김의 실천은 교회를 건강하게 만든다.
이 원칙의 유지를 위해 심지어 IMF한파가 온 나라를 엄습하여
교회조차도 재정의 심각한 타격을 받았지만
본교회 사역자들의 사례를 줄이고 동결하는 방식으로
====국내 외 나눔과 섬김을
이전과 동일하게 유지하는 뼈를 깎는 노력을 했었다. ====
그러나 나눔과 섬김의 실천을 위해
우리 교회가 가장 중요하게 했던 것은 그 철학과 원칙이다.
'나눔과 섬김 그 자체를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나가자'는 내부의 약속뿐 아니라
사역 방식에도 철학과 원칙이 있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어떤 경우에도 돈만 보내지 않았다.
꼭 대상자와 인격적인 교제 및 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물질뿐 아니라 삶을 나누었다.
그들의 아픔이나 슬픔, 기쁨과 삶의 온갖 문제들을 최대한 함께 했다.
또한 나눔과 섬김을 마치 약자에게 행세하듯
아니면 큰 시혜를 하는 것처럼 하지 않았다.
이를 위해 후원이란 단어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하나님이 주신 모두의 것을 함께하는 나눔으로 말했다.
결코 우리의 물질이나 재능,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나누었다.
오히려 나누며 섬기는 것으로도
우리는 너무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나눔과 섬김은 교회의 이름을 넘어서서
생활과 비전이 되도록 강조되며 집중되었다.
나눔과 섬김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얼마나 감사한지.
국내외 곳곳에 우리가 행한 나눔과 섬김의 발자취는
비록 그 당시에는 작고 매우 미미하게 보였으나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과 목적을 이루는 열매로 나타났음을 분명 확인했다.
연초에 교회 설립 16년 동안의 재정을
나눔과 섬김의 측면에서 통계로 작성하여 우리 자신을 돌아보았는데 놀랍게도
교회의 현재 총자산보다 나눔과 섬김을 위해 드려졌던 재정이 더 컸음을 발견했다.
14년 만에 마련한 승합차,
불필요한 재정 지출의 억제, 소비성 행사의 교인 부담 원칙,
전도와 선교 및 구제를 위한 과감한 지출이 그 원인이었다.
그 뿐인가! 교회 자체 성장에 상당한 난점으로 작용했겠지만
임대 교회당임에도 불구하고 공간 확충이나 건축을 위해
조급하며 서두르지 않은 불편을 감수한 것도 우리로선 모험에 가까운 행보였다.
올해서야 교회당 건축을 위한 대지를 계약했다.
또 몇 해가 흘러야 건축이 시작될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나눔과 섬김을 통해
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삶으로 보여주는 이 걸음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서울 상계동 섬기는 교회 박정식 목사님의 글.
1차 줄 편집:
2차 줄 편집: 07. 7. 2. 오 갑식 목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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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성도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스크랩 합니다. 저는 박정식 목사님의 이글을 읽고 나눔과 섬김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지혜 주시기를 간구하니 이제는 나눔과 섬김에 대한 나름대로의 비젼도 갖게 되었고 그 비젼의 설계도도 눈 앞에 보이는 거 같습니다.
다들 알고 계실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소개를 하겠습니다. 원문보기를 클릭하시면 오갑식 목사님의 구구단잉글리쉬 카페에 갈 수 있답니다. 저도 여건이 허락한다면 이번 여름방학 때 저의 아이를 오목사님의 영어캠프에 보내고 싶습니다. 영어도 영어이지만, 뭔가 학습을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을 아이가 터득할 수 있겠다는 그런 기대입니다. 장소는 광주광역시 적십자사 수양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