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님들중 키미가 대체 어떤사람인가 하고 궁금해 하시는 님들이 계실겁니다.
새로 가입하신 님들은 모르고 계실겁니다.
기사님으로 부터 불교에 대한 설명을 들은후 우리님들은 분명히 키미의 종교는
무엇일까 궁금해 하실거란 생각을 했었습니다.
잠간 저의 어릴때 자라난 배경을 올려보겠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않아 양초와 종지를 쓰며 컸었고
치약대신 소금으로 이를 닦고
샴푸대신 쌀뜨물로 머리감고
비누없어 그냥 물에만 세수하고
목욕은 가끔 필요할때 한번씩 가마솥에 물데워 어머님이 시켜 주셨고
구두가 없어 검정 고무신을 사시사철 신고 자랐답니다.
털모자 대신 보자기 마후라를 썼고
오바대신 다우다 잠바 (가장싼잠바) 하나로 겨울을 지냈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언뜻보기에는 가난한 그런생활이었지만 동네아이들 모두가
그렇게 자란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자유롭고 가장 행복했던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오래돼지않은 1960년대 였기에
먹는것 입는것 모든것이 풍요롭지 못했던 시절이었었지요.
그러나 마음은 한없이 행복했던 시절이기도 하지요.
7살때 외할머니로 부터 아주작지만 두꺼운 신구약성서를
선물받아 그때부터 교회를 다니다 머리가 약간 커지고부터
교회를 그만뒀답니다.
12살때 까지 교회를 열심히 다녔고 부모님 따라 사찰에도
잘도 다녔답니다.
부모님은 교회를 나가지는 않으셨지만 제가 교회가는걸
또한 막지도 않으셨답니다.
제가 친정 아버님으로 부터 글읽는걸 배우기 시작하여
5살때 부터 친정아버님께 서울에 계시는 큰아버님으로 부터
편지가 오면 읽어드리곤 했었답니다.
그때 친정아버님으로 부터 아주작고 얇은 책한권을 선물받았는데
명심보감 이란 책이었습니다.
이책을 아주 보물처럼 여기고 오랫동안 간직했었는데 미국에
이사오던해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에서 폭풍을 맞아 모두 떠내려가
잃어버렸답니다.
저의 종교 백그라운드 랍니다.
기독교 불교 유교 그어느종교서적도 버릴게 없는 인간에게 좋은 보약을
주는것이 사실이라는게 저의 개인적인 소견입니다.
제게 종교가 무엇이냐 딱꼬집어 물으신다면
저는 무종교인이지만 종교인처럼 생각한다라고 대답합니다.
저의 친가쪽을 보면 불교 유교 기독교 천주교 등등
종교가 짬뽕이네요.
외가쪽에도 살펴보면 모두가 짬뽕입니다.
친가쪽으로 봐서 종교가 아닌 집안의 뿌리는
어느종교를 가장 많이 영향을 받았는가 ? 라고 묻는다면
그건 종교라 말하기 보다는 생활철학이라 해야 더 옳을듯한
공자 맹자 등 유교쪽이 가장 영향을 크게 받았다 말할수있겠습니다.
그래서 친정아버님께서 명심보감 즉 공자께서 쓰신 글을
제게 어릴때 선물로 주신거랍니다.
궁금해 하시는 우리님들께
키미의 종교배경이 제대로 이해되셨으면 합니다.
저보다 연상이신 키미님. 저도 60년 후반에 태어닜지만. 70년대만 해도 여수나 남해나 깡촌이죠. 여수는 그래도 정유공장이 들어서서 크게 번창했었어요. 키미님 고향면은 그렇지 않았지만요. 어린 시절 기독교 교회에 가셨다니 약간 쓴 웃음이 나네요. 동생 예수의 가르침을 쫓는 키미님ㅎㅎ. 이건 아니잖아 ㅎㅎㅎ. 유교도 예수의 유산물이기는 하네요. 동생이신 예수님이 마음성찰. 다스림에는 역쉬 일가견이 있나 봅니다. 읽으면서 저의 어린 시절. 돌이켜보면 가장 행복했던시절이었어요. 아이들 남의 집에 가서 놀다가 식사때면 같이 밥 주었던 시절. 젖먹는 어린 아이의 어머니가 젖이 나오지 않으면 동냥젖으로 컸던 어린시절. 어머니들이 젖가슴 내놓고 아이들 젖먹여도 누구 하나 이상한 눈빛을 보내지 않든 시절. 음 우짜다가 세상이 이렇게 각박하고 시기.질투하고 비교하고 분석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는지 ㅠ. 돌아가고싶다. 60. 70년대 한국 시골 마을으로.....
전쟁 이후라 그런지 거지들이 참 많았는데. 깡촌에서도 먹는 것은 거지에게도 나누어주던 훈훈한 시절ㅎㅎ. 참 좋은시절이었어요. 그 시절 집에 도둑들었다 소리는 못들은것 같아요. 아 논밭에 서리는 있었어요.
@pleiades450 ㅎㅎ근데 그 서리가 졸업식 하고 겨울에 선배들 전통이였는데 서리 안해본 사람없을 정도로요. 근데 키미님께서 도둑질 한 사람들은 손목을 잘라야 된다구 하신 거 기억나서 ㅠ 전통 김치서리. 사과서리. 딸기서리 추억인데~
@우주저편 배고파 음식을 서리하는건 죄가 아니랍니다.............ㅎㅎㅎㅎ
저는 키미님 부모님이 너~~~~무 궁금합니다.
고향이 어디신지부터.........
성격은 어떤 분들이신지.......
한가지라도 알려주세요.......
제 공부에 도움이 됩니다 ㅎㅎ
때가 되면 올려보겠습니다..........ㅎㅎㅎㅎ
감사합니다.
68년생인 저와도 어릴적 생활상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여름에 검정 고무신을 신으면 공기가 통하지 않으니 발에 땀이나서 시커먼 때가 얼마나 꼬질꼬질하고 미끄러운지ㅎ. 그것도 밑창이 닳는다고 들고 뛰어다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종교는 무속과 불교쪽에 가깝지만 교회 나오면 과자와 사탕을 준다고 해서 딱 한번을 나간적이 있는데 주기도문을 강제로 외우라고 하고 기도하는게 이상해서 이후로 안갔습니다,
지금의 종교는 비지니스와 통치이데올로기로 변질된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제사는 늘 큰댁에 가서 지냈는데 제사보다 젯밥(곶감과 고기)에만 관심을 두었었지요. 그것도 12시까지 못 기다리고 자다가 못 먹은 경우가 대부분이였지요. 제사는 원래 정3품 대부 이상의 가문에서만 받들었는데 저희는 가난한 집안임에도 불구하고 축문에는 통정대부라고 나오더군요.물론 가짜이거나 몰락한 양반가로 반도로 이주한 집안이겠지요.
조선총독부와 러시아 자료에 의하면 반도에는 인구가 500만명 정도인데 1800년 중후반부터 엄청난 수의 사람들을 배로 실어나른 기록이 있고, 이후에는 중국대륙에서도 수도 없이 넘어와서(중국에 남아 있던 대고려의 양반들은 문화혁명때 몰살당) 1900년 초에는 인구가 2000만
하하하하.......저와 비슷합니다..........하하하하하
지금 말씀하신 부분 대량인구이동에 대해 상당히 알고 싶어지는 부분입니다.........^^
@kimi 대량인구이동은 교과서 밖의 이야기지만 사실로 알고 있습니다.
영국과 일본의 의해서 의도적으로.
kimi님 어렸을적 모습이 꼭 만화 검정고무신 내용이네요 그 시대를 겪지 못했지만 만화만 보더라도 그때의 어린시절이 얼마나 순수하고 행복한지 느껴집니다 이웃간의 정도 깊고요 유년 시절과 종교에 관한 얘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귀중한 배경 스토리
감사드리나이다 ~♡^
오바,마후라는 쓰던 말이라 아는데 다우다잠바가 기억안나 찾아보았어요..ㅎㅎ
70년대 뜨게 삼각망토 하나 얻어 패션을 알고
언니 입학때 산 코트가 빛나보이다 7살 입학 엄마손잡고 첨으로 고르댕 초록코드를 입고 그감촉에 부자들의 마음을 그때 깨달았던거 같아요^^..
거울속 내모습이 지금도 보여요..ㅎㅎㅎ
네, 참종교인들은 이해의 폭이 넓고 생활에서 말씀을 실천하는 존경스러운 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종교 없이도 자연히 그렇게 사는 훌륭한 분들도 계시지요. 그 사람이 무엇을 말하는지 보다, 어떻게 주변을 배려하고 자기 행동을 단정히 하는지를 보는게 진짜 같아요.
모든 종교는 비지니스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목사님이 헌금 많이 하라고 설교할 때마다 제정신인가 신도들이 듣고 있는 것을 보면 너무 이상했고, 영성 비지니스 하시는 분들도 보이지 않는 세계라고 위험하게 활동하시는 경우 많이 봤어요.
키미님께서도 그 시절을 참 힘들게 사셨네요, 당시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들 살았었지요, 저도 그 시절을 기억합니다, 그렇지만서도 그때는 가족끼리 이웃끼리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할 줄 알았었고 가난해도 이웃과 함께 나눠먹던, 또한 다들 양심으로 법이 뭔지도 잘모르면서도 아무도 경우에 어긋나지 않게들 살았고 모르는 어른들에게도 깍듯이 예의도 지킬줄 알았고 잘못하면 어른들께서 내 자식처럼 혼도 내주고 칭찬도 해주던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세월이었습니다, 물질적으로는 어렵게는 살았지만 마음만은 풍성한 그런 시절을 산 덕분에 이제는 인생이 뭐고 인간이 뭔지도 조금은 알게되었나 봅니다, 그 시절을 다시금 회상하게 해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소매가 모두들 코 닦아서 반질반질하고 머리 이가 있는 애들도 있고 제삿날은 친척친구들도 모여 밤새 놀고 아침일찍 온 동네 음식 다 나눠준다고 바쁘고 명절에 온 동네 떡이랑 두부 단술. 강정 만든다고 밤늦도록 다들 일하는 소리 나고 김장배추 100포기 넘는거 몇수레를 계속 가져오시고 메주 만들고 콩나물 길러 먹고 여름엔 누에 기르고 밤새 왕골 깐다고 백열등 하나에 온 집안식구와 친척들 모여 일주일 꼬박 잠 못자고 께기가 별식이고 텔레비 나오고 부터 마당에 온동네 사람들 다 모여와서 방앞으로 티비 내놓고 마당서 모두 시청하든 그 시절 밤은 그립습니다. 꽁보리 밥만 먹다 쌀밥 먹고 고기를 너무 안먹어 20대 후반까지도 생선 고기 김 을 먹질 못했어요. 안 먹어봐서요. 지금은 참 흔하고 제사라고 부르는 것도 싫어하고 얻어 먹으러 가지도 않고 온동네가 조용해요.
애들 뛰어 다니며 시끄러웠던 그 저녁 골목길들 군불에 구워 먹든 고구마 생각이 나네요 ㅎㅎ
누가 보면 한 없이 가난해 보일지 몰라도
허름한 옷 한 벌에 헤진 고무신짝을 신고 요즘처럼 그 흔한 오리털파카가 아닌 솜잠바에 번들번들한 콧물 코팅을 입혀가며 자랐어도 그 때가 참 따뜻한 추억인 것 만은 틀림이 없는 듯 합니다.
너무나 춥고 배고팠어도 오히려 그 시절이 행복하다 여기는건 물질로는 살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죠.
작은 음식과 자연의 과실과 열매에도 감사하고 물 소리 바람소리 입가에 콧등에 또 귓가에 사정없이 부딪치는 계절의 선물들...
눈 한줌을 푹 떠서 우적우적 씹어먹어도 탈 없는 그 자연이 참으로 큰 재산이 되어버렸지요.
배고픔은 먹을 수 있다는 그 자체에 대한 감사를 알게 해주었고,
살을 애는 추위는 어머니의 손바느질 옷의 따스함을 또 알게 해주었지요.
가진 것이 없었을 땐 가지지 못한 자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고,
훗날 많이 가지게 되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꼭 나누고 베풀어야함을 깨닫게 해주었지요.
겪는 과정이야 녹녹찮은 고충으로 없다 아니할 수 없지만 그 많았던 고민과 힘겨움의 눈물은 지금은 선물이 되어버린 것은 틀림이 없는 듯 합니다.
무(無)에서 출발하는 것이야말로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같습니다.
없다는 것은 많은 것을 채울 수 있다는 뜻인 동시에 없는 것에 대한 연민을 알게해주고 또 많았을 땐 겸허하도록 가르치고 있는 듯 느껴지도합니다.
처음부터 많이 그리고 다 가져버리면 진짜 중요한 것을 채울 공간이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주는 홀로 아리랑이 아니라 더불어 아리랑이라 생각되어지기에 우리는 끝없이 화합하고 나누며 서로를 다독이고 이로써 번영해 나가는 것이 창조주의 뜻을 이어간다 여기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는 지금의 사람들은 저마다 숫자에 연연하며 더 많은 숫자를 제 주머니에 채우기 급급합니다.
@바람의 영혼 그러나 정작 그들에게 물어본다면 가진 것은 많은데 마음이 허해진다는 그 말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어째서 많이 가지려하면 할 수록 그들은 외롭고 허탈해지는 것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어릴적 쌓아둔 정서의 창고가 텅 비었거나 모두 소진 된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물질이란 갖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니지요.
다만 그 물질의 역할이 무엇을 향하고 또 어떤 기쁨의 창조를 이뤄낼 수 있는가에 더 큰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우리는 종교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종교보다 더 앞서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지요.
바로 바른 빛을 버리지 않고자 하는 그 마음가짐입니다.
우리는 어둠에의해 오리지널 성서를 도둑 맞았습니다.
그놈들이 그렇게도 숨기고 싶었고 짜집기 해놓았던 그 원문의 내용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바람의 영혼 수 많은 내용이 들어 있겠지만 한 마디로 축약하자면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의 이야기들이지 않을까요.
끝없는 우주체험을 통해 성장해 나가는 수 많은 영혼들을 바라보는 그 기쁨과 환희로움...
그것을 위한 약속을 담은 영혼들의 나침반이자 지침서의 교본이 아닐까요. 창조주의 성서란....
아울러 우리가 '근원의 빛'이라 말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근원의 빛....창조주와 바로 연결된 그 빛이 바로 우리라는 것이죠.
악한 것을 멸하고
시기하지 않으며,
서로 손을 잡고
끝없이 격려하며,
영원히 착한 성장을 이뤄가는 것이 창조주께서 가장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시절 ~먹을게 풍족하진 않았지만 서로 이웃끼리 정겹게 마음 나누던 착하고 순수한 시절이 다시 돌아 올까요..요즘 세상 각박하고 삶에 지칠 때면 ~가끔 아버지 살아 계시던 그시절이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잔소리 마저 그립고 눈물지으며 생각 날때가 문득문득 있곤 한답니다~~^^
키미님께서 인생을 살아왔던 옛날 그때 그 시절이 어려워도 순수하고 정이 많던 시절이었습니다.
반면, 요즘은 그저 생활 자체로 남을 어떻게 시험할까 잔머리만 굴릴 줄 알지,
정이라고는 단 1도 없는 말세죠.
즉, 집단 이기주의가 만연하면 건강하지 못한 사회라 오래 못 갑니다.
순수한 최고의 글 고맙습니다. ^^
저도 어릴땐교회가고
학생시절은 성당에 다니고
군제대후는 절에 기웃거리고
아버지는 유학자시고
어머니 천지신명을 섬기시고
비슷한 시절 살아온 삶이
공감 감니다.
이제 남은생은 짜집기 안됀
성경출현과 가르침을
기다리고 있음니다.
많은이들을 위해 애써주심에
늘 감사함니다.
감사합니다 ~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
꾸준히 한국에서 사셨다면 어떠셨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추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국민학교 시절엔 동네교회가
문화의 광장이었구요
연극ᆞ시낭송도 하고 했죠
저도 운동화를 5학년때 처음 신었는데 뒷꿈치 달아서 잘라서
슬리퍼 만들어 신었던 기억이 나요
카 planet 의 스페이스 크래프트가 지구대기권 진입후 소식이 없어요.
되돌아 갔나요?
아뇨. 계속 오고 있는 중이랍니다. 대기권 지났어도 그거리가 상당히 멀답니다....ㅎㅎㅎ
고맙습니다
어렸을때 마음의 안식을 찾고자 교회에도
가보고 성탄절에 초코파이와 과자먹으러
성당갔었던 기억과 부처님오시날 비빔밥
먹으러 절에도 갔었고 현재 지금 좋은
마음을 가지고 유불선이 합쳐진 삶을
살려 노력하고 있네요. 여기 계신분들 모두다
유유상종이네요
100% 공감합니다! 깜짝 놀랐어요.
전 70년대생 이지만 모든게 제 얘기인듯 해요.
그 시대상이 그런건가? 어릴때와 성장하며 생각한 부분들.... 명심보감까지,신기하네요.다만 제가 생각하는 종교란 모든 종착지는 같다라는 생각이죠..마치 산 정상에 올라가는 길이 여러갈래지만 정상은 같다라는...
넘 놀랍고 반갑고 뭔가 큰 공감대가 생긴것 같아 간만에 댓글 답니다^^ 늘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ㅎ저도 무종교인이지만 종교인처럼 생각하고 공부하는 맘으로 사니... 무척 공감됩니다~^^
요즘은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이 더 착하고 순수하고 법없이도 사는 사람이 더 많다고 봅니다.
종교가 타락해서 일겁니다.
"기독교 불교 유교 그 어느 종교 서적도 버릴 게 없는 인간에게 좋은 보약을 주는 것이 사실이라는 게 저의 개인적인 소견입니다. 제게 종교가 무엇이냐 딱 꼬집어 물으신다면 저는 무종교인이지만 종교인처럼 생각한다 라고 대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