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학법 국회토론회 토론문
(2017. 8. 10. 14:00-16:00)
국립대학법은 국립대학의 설립목적을 최고로 실현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국립대학법 토론문2017-8-10.hwp
강원대학교 평의원회 의장 원정식
언론에서 ‘헬조선’이란 말이 회자되고 젊은이들의 얼굴에서 짙게 드리워진 ‘헬조선’의 그림자를 볼 때마다 대학교수인 나는 부끄러웠다. 그리고 무수히 반문하였다. 무엇이 대한민국을 이 모양으로 만들었는가? 그 해결책은 무엇이고 도약의 길은 무엇인가?
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희망이 보였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첫 걸음이 “대학다운 대학”을 만드는 것이고, 국립대학을 국립대학답게 만드는 것이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을 ‘헬조선’에서 탈출시키고 새로 도약시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대학을 대학답게 만들고 국립대학을 국립대학답게 만들려면 어디서부터 출발할 것인가? 바로 이 자리에서 논의하는 국립대학법 제정이다. 이에 대하여 토론자로서 작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고등교육 정책과 그 집행을 담당해온 교육부는 최소한 지난 30년간 직무유기를 하고 직권 남용을 했다. 바로 헌법에 보장된 “대학의 자율성”을 지켜야 할 책무를 저버리고 오히려 “대학의 자율성”을 해치고 대학을 권력과 자본의 노예화하는 각종 법령을 만들고 집행하였기 때문이다. 대학의 입장에서 볼 때 당면한 ‘헬조선’도 여기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대학 노예화와 대학 죽이기 정책은 바로 우리 사회와 국가를 단명케 하는 범죄라고 말할 수 있다. 대학이란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등교육법제28조) 한마디로 대학이 교육과 연구를 통해 우리 사회와 국가, 그리고 인류사회를 장기지속토록 만드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국립대학을 국립대학답게 만들기 위한 첫걸음은 국립대학의 설립목적을 최고로 실현할 수 있도록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의사결정구조를 만드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구성원들의 책임과 권리, 역할이 국립대학 설립 목적을 최고로 달성될 수 있도록 명확하게 정하는 것이다. 보통 국립대학의 구성원으로 교원, 학생, 직원을 들지만 이들의 범위, 책무, 권리 등이 각종 법률에 다르게 규정되거나 심지어 충돌하며, 국립대학 설립 목적 달성이란 대원칙과 동떨어진 채 구성되거나 역할이 부여되어 있고, 이것이 현재 대학구성원간의 갈등을 야기하고 향후 대학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고등교육법에서는, ‘대학은 교직원과 학생으로 구성된다. 교직원은 교원(교수, 부교수, 조교수)과 행정직원(직원, 조교)로 구성된다. 교원은 학생을 교육·지도하고 학문을 연구하고, 행정직원 등 직원은 학교의 행정사무와 그 밖의 사무를 담당하며, 조교는 교육·연구 및 학사에 관한 사무를 보조한다.’(고등교육법제15조 축약)고 명시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이 규정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문제는 대학 자율 관련 법률 미비(제왕적 총장 체제 등), 대학의 지위 불명, 교육부의 통제적 관점과 자의적인 법해석 등이 현장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현재 진행되는 총장 선출 방식 및 구성원 참여 비율 논란 등이 그 일단이다.
국립대학에서 교원, 학생, 직원의 법적 신분이나 역할이 다르지만, 이들의 의사결정과정 참여와 관련하여 그 실태의 일단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직원은 보통 일반행정직, 대학회계직, 조교, 무기계약직 등이 있다. 일반행정직은 사무국장의 명령를 받고 집행하는 공무원이자 행정 조직원으로 공무원법에 종속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자율성 거의 없다. 대학회계직 역시 대학노조를 구성하지만 사실상 공무원 휘하에 있고 사무국장의 지휘 감독하에 있으며, 또 6,7급이 최고직급이고 과장이나 행정실장이 될 수도 없다. 조교는 매년 재임용을 받기 때문에 그 신분이 가장 불안하여 대학내 발언권이 가장 약하다. 따라서 이들이 대학 의사 결정 과정에 다수를 차지한다면 오히려 대학 자율성 및 연구나 교육의 고유성을 훼손하여 궁극적으로 대학의 존립가치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특히 교육부의 지도감독이 대학의 자율성을 위태롭게 하고 학문경쟁력을 훼손시켰던 것도 사무국장-직원 관계를 통해 진행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울러 직원들은 대학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기안단계부터 음으로 양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노조활동을 통해 집단적으로 의사를 관철시키고 있음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학생은 구성원이기는 하지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교육소비자(교육 수혜자)다. 결정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사람에게 결정권을 주는 것은 조직 원리에 맞지 않다. 다만 학생은 최고의 교육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일반소비자와 달리 졸업하면 동문이 되어 졸업한 대학이 평생의 이력이 된다는 점에서 대학의 위상제고 즉 교육과 연구가 최고인 대학이 되어 최고의 교육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의사결정과정에 제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원은 학문과 교육의 주체이고 담당자다. 헌법재판소에서도 헌법에서 유일하게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는 것은 자율성이 대학의 설립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필수적 조건이기 때문이라고 확인한 바이다. 대학의 목적을 해치는 총장의 독점적 결정과 제왕적 대학 운영은 위헌적 발상이고 그러한 총장의 제왕적 지배를 가능하게 한 규정을 고등교육법 등에 명시하고 이를 지원한 교육부의 조치나 법원의 판결은 대학의 존재의의를 강조한 헌법을 배반한 것이다. 아울러 법에서 총장선출방식을 교원의 합의에 따르도록 규정한 것이나 처장, 학장 등 관리직을 교수가 하도록 한 것도, 그리고 공무원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정당가입이나 정무직을 맡을 수 있도록 한 것도 학문과 교육을 담당하는 교원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대학의 의사결정구조에서 교원의 비중을 약화시키려는 어떤 결정도 대학의 자율성과 결정의 책임성을 훼손하여 연구와 교육의 수월성이 약화시키고 극단적으로는 대학의 존립이유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국립대학의 실정을 모르는 사람들 또는 다른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각종 결정 과정에서 국립대학 설립목적 구현을 저해하는 결정을 함으로 국립대학 죽이기와 국립대학 노예화에 동참하였다. 최근의 몇 가지 예를 보겠다.
첫째, 대법원 2015년 판례(학칙개정처분무효확인 [대법원 2015.6.24, 선고, 2013두26408, 판결])에서 “자유로운 진리탐구라는 학문의 자유의 측면에서 보면 그 주체인 교원들이 대학자치의 중심이 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 외부세력의 간섭을 배제하고 대학을 자율적으로 운영한다는 측면에서는 대학의 또 다른 구성원인 직원, 학생도 교원과 함께 대학자치의 공동주체가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 판결문에서는 외부세력이 독재권력이나 천민자본인 현실에서 상명하복체계에 있는 직원의 결정이나 행위가 오히려 외부세력의 간섭을 촉진시켰던 사실을 간과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둘째, 국회에서 지난 10여 년 동안 제출된 법률안들 중에 심의의결기구에 교수 위원의 비중을 구성원의 1/2 미만으로 하여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인데 이 역시 위와 같은 국립대학의 본질이나 실정을 모르는 탁상공론이다.
셋째, 교육부가 2015년 만든 “국립대학의 회계 설치 및 재정 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교육부령 제64호) 제22조을 보면, “교육, 연구, 학생지도 등을 위한 계획서와 그 계획서에 따른 실적에 따라 제2항에 따른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개인별로 차등지급할 것”이라고 규정하였는데, 논문을 쓰는 연구자나 최소한 논문의 특성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제시할 수 없는 내용으로 탁상공론의 전형이자 대학 죽이기 규정이다. 연구는 다리 놓고 우물 파는 일과 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법률 → 시행규칙 → 가이드라인 → 감사 의견”으로 구체화되는 과정을 보면 교육부가 대학이 가진 무한한 잠재력과 헌법에서 보장하는 가치를 어떻게 짓밟고 있는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수많은 법령, 규정, 지침, 가이드라인, 감사 결과 등이 지금 이 순간에도 헌법이 보장하는 대학의 자율성을 박탈하고 대학의 생명력을 빼앗고 있다. 교수의 교권과 재산권과 학문적 자유를 침해하여 연구 동력을 약화시키고, 우리의 미래인 학생들을 생존공포에 몰아넣어 ‘헬조선’ 현상을 증폭시키고 있다. 지금은 우리가 이 모든 적폐를 청산하여 국립대학의 위상을 바로세우는 한편, 국립대학법의 입법을 통해 대학의 존재목적이 최고로 실현될 수 있도록 할 때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 고등교육분야의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하고, 정치권과 우리 모두가 앞장서서 해결해야 할 시대적 과제이자 소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