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물고기의 전설》
비록 카일라스 순례는 무사히 마쳤지만, 결국 마나사로바 호수의 ‘꼬라’는 악천후로 완주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치우곰바(Chiu Gomba)에서의 며칠 간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라싸에서 급조된 12명의 다국적 혼합순레단은 일정대로 모두 떠나갔지만, 해동의 나그네와 일본인 야마시다[山夏]는 서쪽으로 가는 신장공로(新藏公路), 즉 티베트의 서부 마지막 도시인 응아리를 거처 신강의 실크로드의 요충지 카슈가르 쪽으로 방향을 잡았기에 히치하이킹 차편을 기다리기 위해서 치우에 남았다. 떠나가는 이들도 비록 다양한 국적을 가진, 순례자들이었지만, 한 달간을 동고동락했던 정 때문에 둘만 남은 우리들에게 돌아보며 손 흔들며 그렇게 떠나갔다.
“안녕 쿠슈라!(Bye bye dear friends)"
그리고 그 다음 날 야마시다 마져 우편트럭을 얻어타고 응아리로 떠난 간 다음 날은 갑자기 텅 빈 호숫가의 완전한 조용함이 우렛소리처럼 크게 고막을 때렸다. 그래서 잠시도 앉아 있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서성이면서 푸르디 푸른 신비한 호숫가를 내려다보면서 하루를 지냈다. 그 다음날은 한낮의 태양 볕이 수그러들 무렵 또 하나의 신비한 호수를 향해 길을 떠났다. 마을의 온천수가 흘러내려 이룬 하천을 따라, 달뜨면 돌아오려고 의도적으로 혼자 느지막이 길을 떠난 것이다.
물론 간밤에 난로 가에서, 동네사람에게서 내가 아는 전설을 재차 확인해 본 다음날이었다. 사실 오래전부터, 이곳에 전해오는 황금물고기의 전설에 빠져 들었기에 실은 이번 순례도 카일라스 순례뿐만 아니라 그 전설을 내 두 눈으로, 내 두 귀로 그리고 내 영혼으로 받아드리고자 하는 숨겨진 목적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 화두의 모티브는 강가추라는 이름의 하천이었고 그 하천은 바로 내가 며칠을 머물고 있는 치우곰바 아래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추(Chu)는 티베트어로 하천이란 뜻이기에 이 하천의 이름은 그냥 한마디로강가(Ganga), 즉 갠지스였다. 인도의 갠지스 강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당장은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어떤 식이라도 연결고리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불자들에게는, ‘강가’는 “항하(恒河)‘란 이름으로 오히려 친근하다. 그리고 그 강이 붓다의 고향 인도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는 부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원래 ’강가‘는 강의 이름이기 전에 어느 여신의 이름이었다. 그녀는 원래 사바세계의 뭇 중생들을 하늘나라의 은하수를 건너서 피안으로 가게 하는 여신이었다. 한편 태양을 숭배하는, 고대 아요디야(Ayodia)왕조의 싸가라왕(Sagara)에게는 6만 명의 말썽꾸러기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싸가라왕이 말을 바치는 희생제를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을 때, 이때 신들의 중의 최고로 파워가 쎈 번개의 신 인드라(Indra)가 어느날 갑자기 장난기가 동하여 제사에 쓸 희생마를 훔쳐서 불의 신 까피라(Kapila)의 숲속 오두막 앞에 묶어 두었다. 그러자 싸가라 왕의 수많은 아들들은 이를 오해하여 까피라를 도둑으로 몰아 죽이려고 덤벼들었다. 그러나 오히려 까피라는 신통력으로 덤벼드는 아들들을 모조리 태워 죽여 버렸다. 이에 수많은 아들들을 졸지에 잃은 싸가라왕은 절망에 빠져 울부짖으며 용서를 빌면서 아들들을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자, 이를 측은히 여긴 까피라신은 싸가라 왕에게 그의 아들들의 타고 남은 재를 갠지스의 성스러운 물에다 뿌려 속죄시키도록 일러주었다.
이런 사연을 전해 들은 왕의 친척 바기라따(Bhagirata)선인은 하늘나라 은하수를 지키는 강가여신이 사바세계로 내려와 누군가 그 위력을 느낄 수 있도록 약속할 때까지 고행을 계속하였다. 이에 원칙을 중요시하는 막강한 로드 쉬바(Lord Shiva)는 강가여신을 제어하겠다고 나섰고 강가여신 또한 쉬바를 뿌리치고 세상을 정화시키겠다고 마음 먹고 사바세계로 하강하였다. 하지만 108일간의 용호상박하는 싸움 끝에 강가여신이 패배를 자인하자, 이에 쉬바신은 강가여신의 미모에 이끌려 본 마누라의 질투를 우려하여 그의 머리카락에 감춰두고 가끔 밀회를 즐기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하늘나라의 은하수였던 강가여신은 까일라쉬 산 아래 마나사로바 호수로부터 흘러내리기 시작하여 히말라야산을 돌고돌아 인도대륙을 적시며 온 인류의 죄를 정화시키게 되었고 따라서 싸가라왕의 6만 명의 아들들도 정화되어 승천하게 되었다 한다. 바람둥이 쉬바는 인류의 속죄를 위하는 척하였지만, 사실은 그녀를 그의 머리카락으로 붙잡아 놓고 가끔 밀회를 즐긴다고 하며, 눈치 빠른 그의 본부인 빠르바띠 여신은 가끔 해골바가지를 박박 긁으며 쉬바신에게 눈을 홀긴다고 인도신화는 전하고 있다.
드디어 정말로 오랫동안 별러오던 그 날이 온 것이다. 말벗 삼아 며칠 동안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소년 목동 니마라[Nimala-*대낮에 태어났다고 붙여진 이름]와 함께 당나귀 한 마리를 동무 삼아 데리고 떠났는데, 니마라는 무척 명랑한 아이여서 한시도 입을 가만두지 않고 떠들어 댄다. 사투리가 심하여 그의 말을 거의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그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짓 발짓을 해가며 계속 떠들어 대었다. 그의 말중에서 ‘냐-샤르(Na-Shar)’란 말이 계속 되풀이되었는데 그 말은 ‘물고기, 노란 금색의’이란 뜻이었다. 가만히 종합해보니 바로 ‘황금색 물고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티베트어는 우리와 유사한 점이 많다. 주어 동사의 어순이 같기에 배우기가 어렵지는 않지만 다만 형용사가 명사 뒤에 오는 것이 다른 점이었다.
‘황금물고기’는 나의 오랫동안의 화두였기에 귀가 번쩍 열리며 그를 다시 추궁하여 확인을 해보니 바로 내가 알고 있었던 바로 그 전설임에 틀림 없었다. 이 두 호수, 즉 ‘마나사로바’와 ‘락사스탈’ 그리고 ‘강가추’에 얽힌 ‘황금 물고기’의 전설이었다. 우주적 영적 안테나로 불리는 성산 카일라스 산기슭 아래에 펼쳐진 스와스띠까(Swastika:卍)평원에는 마나스 이외에도 이웃한 또 하나의 호수가 자리잡고 있는데, 바로 ‘락사스 탈(Raksas Tal)’호수인데, 티베트어로는 ‘라앙초’이다. 이 호수는 달의 호수또는 ‘어둠의 신의 호수’로 불려지고 있어 마나스와는 반대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마나스가 해·양(陽)·선(善)·빛·지혜를 상징하는 반면 락사스는 달·음(陰)·악(惡)·어둠·무지를 대변한다
이런 상반되는 성격의 두 호수는 태고적에는 하나의 호수였다고 한다. 히말라야가 바닷속이었지만 지금은 지구의 지붕이 되었듯이, 한 호수가 갈라져 두 개가 되었다고 한다.
그때 그곳에는 두 마리 물고기가 살고 있었는데 호수가 갈라짐에 그만 헤어지고 말았다. 한 마리는 황금색이었고 또 한 마리는 남색이었다. 황금물고기는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여 두 호수 사이에 굴을 파기 시작하였다. 오랜 작업 끝에 터널, 즉 지금의 ‘강가추’가 완성되어 두 호수가 연결되어 두 마리 고기는 다시 만날 수 있었지만 지나친 작업으로 비늘이 모두 벗겨져 황금 물고기는 끝내 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고기 조상들의 전설치고는 상당히 로맨틱하면서도 애달픈 스토리였다. 이 두 마리 물고기가 바로 온 세상의 물고기의 조상이라고 한다. 태초의 생명의 시작을 두 마리 물고기에 연결시켜 탄트라 이론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이 전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황금물고기를 화두로 씨름하고 있었던 내게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귀가 천둥처럼 열리는 중요한 모티브였다.
티베트인들은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 불살생의 계율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도 양과 소는 주식으로 삼고 있기에 라마승도 이런 고기는 먹지만, 그들이 물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는 “신성한 동물이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한다.
왜 신성시하느냐에 대하여는, 대답은 여러가지로 나눠진다. 용신(龍神), ‘나가’의 화신이라는 것, 신성한 호수에 사는 영물이라는 것, 항상 눈을 뜨고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 곧 사람으로 환생할 것, 이라는 등등의 이유이다. 특히 티베트의 팔보(八寶)의 하나인 ‘쌍금어문(雙金魚紋, Two Golden Fishes)’의 의미는 특별하다. 물에서 솟아오르는 음과 양의 두 마리 금어는 윤회에 바다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는 진리에의 추구를 상징한다. 여기서 황금색은 빛을 의미하며 반야의 지혜를 상징하며 음과 양은 생명의 ‘창조의 원리’를 의미한다.
그 외에도 그들의 고대 전설이 시사하는 상징성은 더 있다. ‘물고기의 고향’은 물고기의 ‘모천회귀성’을, ‘생명의 인자’에서는 현대 현미경이 지금에서야 밝혀낸 꼬리달린 남성의 정자(精子)의 모양을 의미하고 있어 일찍부터 스스로를 원숭이의 후손이라고 지칭하는, ‘뵈릭’, 즉 티베트민족의 초과학적 천재성을 였볼 수 있어 흥미로움을 더하고 있다.
한나절 만에 저쪽 편 호수 락사스탈에 도착하였지만 그곳은 완전한 정적의 호수였다. 일체의 생명체가 없는 죽음의 호수였다. 고빈다 라마도 이 호수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마나스는 많은 사원과 은둔처가 있는 반면에 락사스 주변은 아름다운 풍경과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가만 있을 뿐이다. 그것은 우리가 빛과 선의 화신으로 숭배하는 신성 못지않게 어둠의 무섭고 파괴적인 신 역시 숭배할 만한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빛을 숭배하는 것 못지않게 어둠을 숭배하는 딴트라(Tantra)에서는 이 양극간의 힘의 상관관계를 밝혀내는 데 성공하였다. 이는 딴트라 철학의 위대한 발견이다.”
전설을 되새기며 황금물고기가 파놓았다는 전설의 강가추를 따라 돌아오는 길은 우리 셋의 그림자가 앞서가고 있었다. 그리고 등 뒤로는 오늘도 어김없이 빨간 노을은 지고 있었다.
“사바세계 염부제주 해뜨는 해동나라에 맑은 강물이 흐르고 있었네. 그 강가에 한 사내가 있어 오랜 세월 흐르는 강물만 바라보고 있었네. 물길을 거슬러 올라오는 물고기 떼만 바라보면서….
어느 날 그 사내 한 마리 물고기를 찾아 먼 나그넷길 떠났다네. 산 넘고 물 건너 온 세상을 헤맨 끝에 마침내 전생의 고향 땅에 도착하였네.
그곳은 해와 달과 별들의 고향,
그곳은 눈과 바람과 천둥의 고향,
그리고 그곳은 모든 강들의 고향이었네.
우주의 중심 수미산 밑의 아름다운 호숫가였다네.
그러나 그곳에는 그를 기다려주는
가족도, 일가친척도, 친구들도 없었다네
덧없음에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 본 순간
그의 몸에서 한 줄기 빛이 터지며 ‘황금물고기’로 변했다네.
물도 흘러가야 하듯이, 나그네도 떠날 때를 알아 스스로 떠나야 한다. 그것은 바로흰 구름의 길이 아니겠는가?
언제까지나 떠나고 싶지 않는 마나스 호수이지만 흰 구름은 벌써 서쪽으로 흘러가고 있었기에 떠나기 전날 해거름에 다시 치우곰바로 올라갔다. 토굴로 들어가 버터초에 불을 붙이고 삼배를 하면서 스승 구루 린포체, 빠드마삼바바에게 작별인사를 하였다. 그는 단지 빙긋이 웃으면서 말이 없으셨다.
“안녕! 내 마음의 고향, 마나사로바 호수여!
카레슈아! 내 화두의 고향 강가추여!”
첫댓글 喫茶去
차나 한잔 마시고 가시게나.
차 한잔 마시러 히말라야까정? ㄷㄷㄷ
역시 무게감이 팍팍 느껴지는 글입니다. 역시~~짱
카일라스에서 인도로 걸어 넘어가고파.
십만송
법의 교의가 가슴속에 스며들 땐
바다에 소금이 녹아들듯
내 자신, 진리에 용해되었네.
대 지혜가 내면에서 밝아지니
큰 꿈에서 깨어남을 느꼈네.
삼매에서 깨어나니
긍정도 부정도 없었네.
바른 견해의 법락(法樂)에 젖으니
안개비가 하늘로 사라지듯
만법(萬法)이 제 스스로 날개를 얻었네.
존재의 본질에 도달하니
실체의 대지혜가 밝아져
구름없는 하늘처럼 만상(萬象)이 밝게 빛나네.
불연듯 회윈 여러분들이 모두 보고 싶네요. 언제 자리를 마련해보아야 할텐데요
차 한잔 마시러 가고 싶은 안나프르나...
안나프르나 공기만 마셔도 온 몸 깊숙히 정화되는듯...
가까운 시일내에 카일라스 꼭 다녀오고 싶은사람입니다.
세세한 관련정보와 여러 흥미로운 사연들
감사히 잘 읽고 있습니다.
오늘은 발길이 여기서 머물어 잠시 쉬어 읽고 갑니다.
어디 어느 곳에 계시는지 모르지만
티벳의 서장지역을 걷고 있는 어느 중국인의 연락을 받고 보니
생각이 많이 나서 찾아와 보았네요.
건재하신지요?
저는 이곳 동경에서 뿌리내린지 오랜시간, 그리운 한국의 산야와 수리재가 그리움으로 떠 올릴때가 많습니다.
시간의 흐름속에 묵묵히 맡겨진 인생,,
그리운 얼굴들을 생각하며 잠시,
이곳에서 머물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