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호관(年號款)
예를 들면 "영락년제(永樂年製)"ㆍ"대청광서년제(大淸光緖年製)"와 같은 것이다. 중국 도자기가 제왕(帝王)의 연호(年號)를 사용한 것은 아주 빨랐으니, 삼국시대에는 곧 "적오십사년(赤烏十四年)"이라는 관(款)이 있는 청자기가 있었고, 이밖에도 또한 서진(西晋)의 "영안삼년(永安三年)", 북송(北宋)의 "희년사년(熙寧四年)"등이 있다. 원대(元代)에는 한 건의 지정(至正) 십일년(十一年)의 관(款)이 있는 청화자가 있으니, 더욱이 이는 비상히 유명한 기물이다. 그러나 원대 및 원대 이전의 도자기 상에 제왕(帝王)의 연호관(年號款)을 서(署)를 한 것은 우연적(偶然的)인 것이며, 극히 적게 나타나는 것으로, 일천년 이래 단지 몇 건의 실례가 있을 뿐(당연히 또한 새로운 출토ㆍ새로운 발견이 있을 수 있다.), 아직은 정제(定制)를 형성하지 아니하였다. 중국 도자기 상에서 정식으로 제왕(帝王)의 연호관(年號款)을 서(署)를 한 것은 명대(明代) 영락조(永樂朝)로부터 개시되었으며, 아울러 이로부터 정제(定制)를 형성하고, 매조(每朝) 매대(每代)에서 상계(相繼)하여 서(署)를 사용하였으며, 이로부터 간단(間斷)없이, 청 말 최후의 황제인 선통(宣統)에 이르게 되었다.
2. 간지기년관(干支紀年款)
예를 들면 "병오년조(丙午年造)"ㆍ"경오과치(庚午科置)"ㆍ"황명천계병인길단(皇明天啓丙寅吉旦)"등등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종류의 연관(年款)은, 한번 감정(鑒定) 고증(考證)을 거쳐 틀림이 없으면, 그 간지(干支) 기년(紀年)은 절대(絶對) 연대(年代)가 되고, 따라서 이런 종류의 연관(年款)이 있는 고도자는 특별히 중대한 역사와 과학적 가치를 구유하고 있으며, 다방면으로 중국 도자사 연구나, 도자감정 상에 있어, 모두 표형기(標型器)가 될 수 있으며, 감정(鑒定)의 표본(標本)ㆍ남본(藍本)이 될 수 있다.
3. 재당관(齋堂款)
예를 들면, "돈인당(敦仁堂)"ㆍ"백옥재(白玉齋)"등과 같은 것이다. 서(署)에 재당관(齋堂款)이 있는 자기(瓷器)는, 모두 사대부들이 요(窯)를 정한 가족(家族) 전용(專用)의 자기로서, 또한 궤증(饋贈)을 위하여 만든 것도 있고, 상사(賞賜)의 용(用)으로 만든 것도 있으며, 많은 것들이 경덕진(景德鎭)에서 구운 것으로, 관고기(官古器)나 가(假) 관고기(官古器)가 적지 않았으니, 질량(質量)은 대다수 비교적 높았다. 재당관(齋堂款)은 명대(明代) 천계(天啓) 시에 흥성하기 시작하여, 청대(淸代)에 더욱 유행하였으며, 재당(齋堂) 명칭(名稱) 역시 풍부하고 다채하였다.
4. 찬송관(贊頌款)
여기서 말하는 찬송관(贊頌款)은 전문적으로 도자기 자체의 질량(質量)이 정미(精美)함을 찬송(贊頌)하거나, 공예(工藝)가 고초(高超)한 것을 찬송하는 관지(款識)로서, 예를 들면 "옥출곤산(玉出昆山)"ㆍ"장춘가기(長春佳器)"ㆍ"천록가기(天祿佳器)"ㆍ"옥석진보(玉石珍寶)"등등과 같은 것으로, 다소는 광고(廣告)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과 같은 관지(款識)는 당대(唐代) 장사요(長沙窯)ㆍ월요(越窯)에 있기 시작하였으며, 송대(宋代) 자주요(磁州窯) 등에도 역시 있었고, 명대(明代) 중만기 대대적으로 성행하기 시작하였으며, 청대 역시 성(盛)하였다.
5. 길상관(吉祥款)
도자기 상의 길상어(吉祥語)는, 예를 들면 복(福)ㆍ수(壽)ㆍ영보장춘(永保長春)ㆍ만복유동(萬福攸同), 등등과 같은 것이다. 전면 일장에서 우리는 문식(紋飾)을 이야기할 때 이미 이야기하였듯이, 도자기의 길상어는 진한(秦漢) 와당(瓦當) 상에 이미 대량으로 출현하였으니, 예를 들면 "천추만세(千秋萬歲)"ㆍ"대길상(大吉祥)"등과 같은 것이다. 명대에는 홍무조(洪武朝)부터 비상하게 흥성하기 시작하였으며, 명대 후기ㆍ청대 후기는 더욱이 길상관(吉祥款)이 사용된 두 전성기라 할 수 있다.
6. 인명관(人名款)
도자기 상의 인명관(人名款)은, 제조 공장(工匠)의 성명, 혹은 원물주(原物主)(訂燒者)의 성명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예를 들면 당대의"정대강작병대호(丁大剛作甁大好)", 송대의 "장가조(張家造)", 원대의 "임길룡제(林吉龍製)", 청대의 "진수귀조(陳守貴造)"ㆍ"약심진장(若深珍藏)"ㆍ"구사당(九思堂)"("구사당(九思堂)"은 제1대 순친왕(醇親王) 애신각라(愛新覺羅)ㆍ혁환(奕環) 자(字) 박암(朴庵)이 살던 곳으로, "구사당(九思堂)"의 명관(銘款)이 있는 자기는 순왕부(醇王府)가 정제(訂製)한 것이다.)과 같은 것이다.
7. 공양관(供養款)
종교의 신도들이 정소(訂燒)한 신령(神靈)을 공봉(供奉)하는데 쓰이는 자기 및 조선(祖先) 공봉(供奉)에 쓰이는 자기ㆍ기타 제사활동에 전용되는 자기(瓷器) 상의 관지(款識)로서, 그 내용은 대다수 공양(供養)(供奉)하는 사람의 성명(姓名)ㆍ제헌(祭獻)의 신(神)ㆍ불명(佛名)ㆍ기물명(器物名)ㆍ지명(地名)ㆍ시간(時間)ㆍ도사(禱詞), 등등으로 되어있다. 이런 종류의 기물은 크게 많지 않으며, 따라서 공양관(供養款) 또한 아주 많지 않고, 또한 일반적으로 공양관은 모두 절대(絶對) 기년(紀年)이 있으며, 일부 공양관의 기물은 자체가 연대가 명확하다. 고증을 거쳐 잘못이 없는 공양관(供養款)이 있는 자기는, 절대 기년이 있는 까닭에, 그 과학적 가치가 높으며, 따라서 연구(硏究)ㆍ단대(斷代)의 표형기(標型器)로 삼을 수 있다.
8. 화압관(花押款)
도자기 상에 각획(刻劃) 묘회(描繪)한 십분 특수한 부호(符號)는(일반적으로 기저(器底)에 있음), 그 모양이 고인이 "화압(花押)"이라는 것과 같다. 이들 부호의 이의는 누구도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려우며, 아마도 원(原) 회제자(繪製者)의 심중(心中) 또한 무수(無數)할 것이므로, 단지 특별한 표지(標志)의 기호(記號)를 만든 것일 따름이다. 화압관(花押款)은 명대 천계(天啓) 연간에 흥기(興起)하였으며, 청대 강희(康熙)ㆍ건륭(乾隆) 시에 신속히 발전하였고, 이후 적어지게 되었다. 전적으로 민요(民窯) 기물 상에 사용되던 것이다.
9. 도기관(圖記款)
기물(器物) 위에(많은 것이 기저(器底)에 있다) 일련의 동물(動物)ㆍ길상물(吉祥物), 혹은 도안화된 사물을 묘화(描畵)하는 것도 일종의 표기(標記)였으니, 이를 도기관(圖記款)이라 부른다. 이와 같은 종류의 관(款)은 원대에 출현하였으며, 만명 천계(天啓)에서 청초 강희(康熙) 시기까지 성행하였고, 이후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내용은 방승(方勝)ㆍ토(兎)ㆍ은정(銀錠)ㆍ필(筆)ㆍ해라(海螺) 등이 있었다.
10. 기타(其他)
전술한 9종 이외에, 도자(陶瓷) 관지(款識)에는 또한 일련의 수량이 작은 나타난 것이 있었으니, 또한 하나의 계열을 구성하지 못하는 관지로서, 예를 들면 당송의 "관(官)"ㆍ"신관(新官)"이라는 관(款)이나, 명대의 "천(天)"자(字) 관(款), 및 아(雅)ㆍ차(茶)ㆍ편옥(片玉)ㆍ완옥(玩玉)ㆍ우(偶) 등등과 같은 것들로, 이런 것들이 모두 "기타(其他)"에 귀입(歸入)되어야 할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