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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길, 세칭 동방교의 노광공, 그는 누구인가 ?
父:노군청(盧君淸), 母:조군명(趙君命)의 3남1녀중 차남으로 출생.
兄:노관영(盧觀永), 弟:노관평, 姉(누나):이름 미상(未詳)
원적 ---------- 평남 평원군 순안면 포정리 79번지
본적(3개 보유) 1. 경북 안동시 화성동 22번지
2. 부산시 중구 영주동 산 1번지--노두산(盧頭山)으로 개명
3. 경북 대구시 남구 남산동 1번지
1914. 1.13(陰) 평남 평원군 순안면 포정리 79번지 출생
황해도 겸이포소학교 졸업 (겸이포는 일제 강점기 황해도 ‘송림’을 말함)
황해도 의명(義明)중학교 졸업
하전관윤(河田觀允)으로 창씨개명
황해도 송림면(松林面) 면서기 근무
장남 노영도, 차남 노영구 출생--모(母)는 미상(未詳)
황해도 겸이포경찰서 고등계 형사 근무
항일독립투사 李能吉, 張金雨목사 등을 체포 투옥시킨 공로로 형사부장으로 승진,
1947년 월남, 용산 제2고녀(현 수도여고) 교사
친일반역 추적자의 정체추적을 피해 경북 안동으로 피신
경북 안동중앙교회 출석
경북 안동농림학교 교사
1950. 6.25 동란 발발(勃發)
6.25 동란직후 노광공은 경주에서 우연히 심응섭목사를 알게되고,
그의 소개로 경주시 치안책임자로 있는 헌병대장을 알게되어
전시(戰時) 군헌병치안대 헌병보조원 노릇을 함.
군헌병대의 북진(北進)후 경북 예천으로 감
경북 예천군 풍천국민학교 교장으로 승진
경북 안동군 화성국민학교 교장으로 영전
당시 권총으로 양민을 괴롭히고 공갈협박 조사한 비위사건이 문제가
되어 경산중학교로 전임됐다가 대구여중으로 발령
당시 대구여중 손승목교장이 평소 노광공이 장학사등 고위층에 접근,
아부하여 출세한 것을 못 마땅하게 여겨 주의를 환기시킴
1953년 대구 동산병원 간호부장 김정선(金正鐥)과 술수(김간호원이 자기와
키스했다고 소문을 퍼뜨려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어 놓고 사랑고백을
하면서 약봉지를 앞에 놓고 자살까지 하겠다고 연극)를 부려 결혼.
김정선(金正鐥)은 당시 직업이 없이 방황하던 노광공을 부양하며
노광공을 위해 대구 신천동 4 가 902번지에 천막교회를 설립.
김정선(金正鐥)이 감리교 대구지방 감리사 조윤승목사에 요청,
노광공을 서리전도사로 파송.
교회를 삼덕동으로 옮기고 대구 동편에 있다는 뜻에서 동방교회라 함.
동방교란 명칭은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음.
대구 박태선장로의 전도집회에 강단앞에서 북치는 전위대로 참석,
박태선장로의 행태를 보고 “됐다. 됐어. 저렇게 하면 되는거야” 감탄.
이때부터 ‘세계적 대부흥사 노광공목사’ 라는 포스터를 붙이고
경남북일대에서 활동.
1956년 감리교 대구지방회 실행부 춘기지방회에서 박윤성목사에 의해
자격심사발의, 노광공을 만장일치 로 제명.
감리교에서 제명당한 노광공은 계속 부산,대구,김해,마산,진해등
영남지방을 무대로 집회를 갖고 이적,기사,신유,불체험을 강조
하며 죽은 자도 살린다고 선전하며 돌아다님.
1959. 8.13 여신도 간음사건과 재산사취혐의로 구속,
46일만에 보석금 내고 풀려남.
1964. 3월 신도들이 보는 가운데 가짜 장례식 거행,
1964.10월 노광공의 쌍둥이 형제 노두산이라고 주장하며 영국 캠브리지대학
유학중 급거 귀국했다고 하면서 다시 나타남.
1965. 6월 동방교간부 김관수의 변사사건으로 수사망피해 잠적
1967. 7.26 (陰6.19) 서울 영등포구 상도동 518번지(동방교 대기처명 ‘큰집’)
에서 당뇨합병증으로 사망.
좁은길=세칭 동방교 노광공 증언 동영상
여기를
클릭⇨http://tvpot.daum.net/v/bzO1yX5ZK84%24
*본 동영상의 16초-22초 사이에 등장하는,
화면의 왼쪽 아래에서 두팔을 벌리고 있는 노광공의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합장하고 있는듯한 모습의 인물이
세칭 동방교의 사주(四柱)목사중의 한사람인 정재덕 요나단목사이다.
동방교내에서 제2인자의 위치에 있었지만
'악령'으로 지칭되어 낙향한 인물,
본 카페의 글 - 이단의 추억 #22, 주학교회, #24, 고수흉내,
#36, 악령, 그리고 환생- 편등에 상세히 기록된 비운의 인물이다.
*전 동방교 재단총무로 등장하는 '선세은'은 동방교에 입교한 신도는 아니다.
외부적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어수선한 시기, 2대 교주 노영구의 초기에
외부 바람막이용으로 인재를 영입하는 차원에서 세칭 동방교가 채용한 인물
이라 할 수 있는데 외부인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세칭 동방교의 비밀을 제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동방교 내부의 은밀한 공간에는 접근하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세칭 동방교는 '기독교대한 개혁장로회'로 개칭, 위장하였다가
지금은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개혁)교단'으로 깜쪽같이 위장하여 전국에 산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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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 [이단/사이비종교] 기독교대한 개혁장로회
출처:seejesus.egloos.com/5856572
1969년 10월9일 영등포에서 5명의 ‘동방교’신자가 “독약을 먹어도 믿음이 강하면 죽지 않는다”라는 동방교의 교리를 믿고 농약 ‘푸리돌’을 마시고 집단으로 죽음을 당하는 어리석고 허망한 일을 당하였던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사회의 큰 물의를 일으켰던 사건에도 불구하고 이로부터 18일 후에 버젓이 사이비 종교단체로 ‘동방교’는 ‘기독교대한개혁장노회’라는 간판을 내걸고 나타난 것이다. 그뿐인가? 이들은 곧이어 ‘주간 기독교’ 라는 신문을 발행하였고 또한 ‘월간 청해(靑海)’라는 기독교 월간지를 만들어 기성교회처럼 행세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면 교주 노광공은 누구인가? 1914년 1월 평북 평원군 순안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안식교에서 운영하는 의명중학교를 졸업하고 1944년 일제하에서 ‘하전관윤’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황해도 이포 일본인경찰서 고등계 형사부장으로 재직하면서 민족운동자 이능길, 장금우 목사를 체포하여 투옥시켰던 민족 반역자이기도 하다. 그는 친일파로 활약하다가 해방이되자 재빨리 서울로 와서 용산 제2고(현 수도여고)에서 교사생활을 했다고 한다.
노광공은 공산당원들에게 친일민족 반역자라는 명목으로 처형을 당할뻔하다가 위기를 넘기고 곧 바로 안동으로 내려가 안동농림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안동중앙교회에 출석하였다고 한다. 그 뒤 초등학교 교장을 하면서 CIC(미국수사대)요원으로 가장하고 권총을 차고 다니며 양민들을 조사한다고 공갈 협박으로 괴롭히다가 부락민들의 원성으로 당시 안동경찰서에 입건된 일까지 있었다.
이렇게 혼란스런 생활을 접어두고 1953년부터 박태선의 전도관을 다니면서 박태선이 설교를 하면 북을치며 따라 다녔다고 한다. 그때 같이 있던 M씨에 의하면 노광공이 박태선이 하는 모습을 보고 “됐다. 됐어. 저렇게 하면 되는거야”라고 하면서 탄성을 연발하더라는 것이다. 같이 있던 M씨는 노광공이 탄성을 지르는 것을 보고 뭔가 심상치 않음을 알았다고 한다. 얼마후 느닷없이 전국 사방 곳곳에 부흥집회를 하러 다녔다.
교주 노광공은 대구 신천동 빈촌에 동방교회를 세우고 간호원 출신인 부인이 빈민들을 상대로 무료치료를 해주고 있는 사이 노광공은 자칭 부흥사, 세계적 부흥사로 둔갑하여 선전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최면술과 악령의 술수로서 집회를 하였다고 한다.
노광공은 특유한 언변과 연극적인 제스처, 그리고 군중 심리를 이용한 최면술로 환자를 낫게 해준다고 하면서 소문난 유명 부흥사로 자리를 구축 했다고 한다. 동방교의 중요교리에는 노교주를 ‘성부 하나님’으로서 심판주로, 그리고 그의 장남 노영도를 ‘성자’로, 차남 노영구를 ‘성령’으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경전은 외형상 신구약성경을 내세우고 있으나 실은 교주 노광공을 미화하고 신격화 해놓은 ‘경화록(慶和錄)’을 쓰고 있으며 설교때마다 이를 인용했다고 한다. 구원은 지성금(至誠金)을 바치는 여하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며 ‘성민’이 되기 위해서는 지성금을 바쳐야만 된다. 말세심판의 환란을 피하고 천년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성금을 많이 낸 실적에 따라 천년왕국에서 높고 낮은 자리가 결정된다고 주장 했다고 한다. 교회관으로서는 기성교회를 바벨탑, 니골라당이라고 규정,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고 종말관에 있어서는 말세심판은 백색심판, 연황색심판, 적색심판 등으로 나누는데 동방교에 들어와 있다가 나가는 자는 지옥에 가게 되는데 적색심판을 받고, 동방교를 멀리하는자는 연황색심판을 받고 뒤늦게 동방교를 믿는사람이라도 열심을 다해 자신에게(노광공)충성을 다한 자이면 백색심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간다고 한다.
세상이 멸망할 때 교주의 명령에 순종한 자와 동방교를 위해 순교를 각오한 자는 교주 노광공이 승천했다가 재림할때 휴거하게 되어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다. 25년 여를 넘도록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많은 물의를 일으켰던 악명높던 동방교. 아직도 지하에서 꿈틀거리고 있다고 하니 놀라울 수밖에 없다.
첫댓글 동방교의 교주 노광공의 이름 미상 누나...
남동생 노광공이 일구어놓은 사업(?)이 자랑스러웠을까, 가끔씩 서울의 대기처에 드나들던 그 할머니를 우리는 늘 `고모님`이라 불렀다.
`고모님`이라... 사실은 아바 노영도, 아브넬 노영구의 `고모님`이었는데 우리도 그냥 `고모님`이라 불렀다.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얼빠진 미망의 시절...
안녕하세요~
아마 이름 미상의 누나는 노관주일겁니다.
옛날일을 잘 아시는군요. 이름을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모두 고모님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쯤은 돌아가셨겠네요. 돌아가신 그곳, 하늘나라에서도 창조주(?) 이래의 고모님이 되시려나... 세상사 참 요지경속이네요.
녜~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남들이 잘 모르는 노가계의 깊은 비밀을 알고 계시는군요. 다른 사실도 알고 있는것이 있으면 좀 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노관주라~~ 노관영과 돌림자군요.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