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 그리스도교 시대: 성령의 시대와 씨알예수회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나는 너를 좋아한다."(시편 2:7)
제3 그리스도교 시대: 성령의 시대와 '씨알예수회'
중세 시대 플로라의 요아킴(이탈리아의 신비주의 사상가:1130~1202) 수도원장은 역사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시대로 나누어서 오늘날을 그리스도교 제3의 시대로서 성령의 시대라고 주장했다. 이 시대는 노예제도가 토대가 된 율법의 시대도 아니고 성직자가 지배하던 교회의 시대도 아닌, 온 인류를 포섭하는 수도원 제도가 도래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내적 측면은 자유 곧 자율이어서 사람들은 국가의 권위에도, 교회의 권위에도 더 이상 종속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서 사람들의 태도 역시 노동 대신에 관상(觀想)으로 바뀌고 되고, 율법에 대한 복종 대신에 사랑으로 바뀌게 된다고 하였다.
요아킴은 교회의 진리보다 높은 진리를 성령의 진리라고 하였다. 이 제3 시대의 질서는 권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율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적인 영이 모든 개인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산다. 이로써 계층 구조 체제도, 성례전도 장래에 있어서는 끝장이 나고 만다. 모든 것은 성령을 통해서 신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기 때문이며, 귄위에 의한 매개는 쓸모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계층 구조 체제와 평신도의 신분이 수도원 체제로 변형되었을 적에 역사의 최후의 시기가 달성되게 된다고 한다. 이때는 완전성, 관상(관조), 자유 그리고 영이 지배하는 때이다. 이것은 역사의 내부에서 일어난다.
요아킴은 '영원한 복음'을 말했다. 요엘의 예언에서처럼 모든 개인에게 내재한 신적 영의 현존을 생각한다. 영원한 복음이란 단순한 진리의 직관을 말한다. 이 직관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며, 어떠한 매개적인 권위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자유란 개인에게 있어서의 신적 영의 권위를 의미한다. 이 자유는 이성도 아니고, 신적 영의 현존으로 가득 채워진 신율이다.
요아킴의 역사철학은 진보주의적인 역사철학이다. 곧 역사의 목표는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러한 사상은 극히 혁명적인 것이다. 프란치스코회의 급진적인 방향은 이 사상을 자신들의 것으로 했으며, 이 사상을 자신들의 수도회에 적용하고 여기에서부터 교회를 비판했다. 많은 종파 운동이나 미국에서 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던 종교개혁의 종파(청교도)들은 직간적접으로 플로라의 요아킴의 사상에 의존하고 있다.
이와 같은 때에 '씨알예수회'는 개신교에 이어서 제2의 종교개혁을 주창한다. 곧 제3 그리스도교 시대를 선언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교가 초대교회의 성령운동과 오직 말씀에 근거한 새로운 재속재가 수도원운동을 하고자 한다.
"그런 다음에, 내가 모든 사람에게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딸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종들에게까지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요엘 2:28-29, 사도행전 2:17-18)
씨알예수회와 예수살기
"너희가 기도할 때, 이루어질 것을 믿으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마 21:22)
씨알예수회 운동은 각자(覺者) 민중인 씨알이 성령의 임재로 하나님을 체험하고 스스로 탐진치(貪嗔痴)와 같은 육체적, 세상적 욕망을 끊고(斷), 예수를 본받아 사는 ‘예수 따름’을 행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예수 따름은 예수를 본받는 것이며, 예수와 같이 성령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다. 더불어 예수와 같이 병든 자를 살리고, 산을 옮기는 믿음을 얻고자 하는 운동이다. 그것은 우리 안에 내재한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을 오직 '믿음' 안에서 은총으로 체험하는 것이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는 운동이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 14:16)
씨알예수회와 신비주의
타계한 독일의 여성신학자 도로테 죌레는 자신의 마지막 신학 작업을 "신비주의와 저항"이라는 개념으로 압축하여 말하였다. 그는 신비주의의 '민주화'를 추구하였다. 신비주의는 개인의 하나님 체험을 근거로 한다. 그녀는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만이 기독교의 미래가 아닌 하나님의 미래를 말할 수 있다고 하였다. 민중신학자 문동환 박사는 그의 신학을 ‘떠돌이 신학’으로 재정립하면서, 覺(깨달음)과 斷(끊음)을 이야기했다. 현대 산업사회의 악마성을 깨닫는 것(覺)과 떠돌이인 민중이 기존 산업화 사회를 거부하는(斷) 탈출공동체를 세워야 한다고 했다.
워싱턴에 있는 세이비어교회는 세상문화에 중독되어 있는 도시인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데 AA(익명의 알콜중독자들)에서 진행하는 12단계 프로그램의 탁월성을 인정한 바 있다. AA에 참가하는 알콜중독자들처럼, 그들도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께 의지하여 ‘치유와 회복’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영성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체험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부조리한 현실을 깨닫고(覺), 사업사회가 부추기는 모든 욕망과 우상에 맞서(斷) 새로운 하나님의 현실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도로테 죌레가 신비주의라고 말한 하나님 체험을 문동환 박사가 말한 각(覺)으로, 비인간화된 세상에 대한 저항을 단(斷)이라고 재해석해 보았다.
해방 이후 지리산 근처에서 시작한 이현필의 동광원 운동은 씨알들의 수도공동체 운동이다. 동광원의 평신도 수도사들은 전국 여기 저기에 흩어져서 많게는 50여명 적게는 2-3명이 모여 농사를 지어 먹으며, 산업사회의 우상과 욕망을 끊고 수도원적인 하나님의 현실을 산다. 그들은 스스로의 노동으로 얻은 제철 채소와 곡식으로 연명한다. 먹을 것만 있으면 걱정이 없다며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공동수도 생활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다석 유영모는 사막의 교부들과 같은 끊음(斷)의 영성을 갖고, 자신의 집을 수도처로 삼아 독수도하였다. 스스로 과수원을 경영하면서, 자기 방을 수도원 암자같이 만들었다. 관을 짜는 칠성판을 안방에 웃목에 깔아놓고, 그 위에서 무릎 꿇고 앉아서 묵상을 하고 동서양 사상을 공부하고 잠을 잤다. 오십 이후에는 부부의 관계도 끊고, 하루에 저녁 한끼만 먹고 지냈다.
함석헌의 영성은 유영모에게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역사의식이 강하여 사회적 제자도라 할만하였다.
"나는 신비주의의 개념과 저항의 개념, 이 두 개념들을 보편화하고 싶으며, 이 개념들로부터 엘리트적인 경향성을 떼어 내고 싶다. 칼 라너(Karl Rahner)가 말한 신비주의적 신학은 우리에게 주어진 필수불가결한 요청이다. 위대한 신비주의자들이 거듭 말해 왔듯이, 우리는 모두 신비주의자들이다. 그리고 이것을 이해하고 전달하는 일은 내게 점점 더 중요한 일이 되었다." (* 도로테 죌레, "나는 어떻게 변하였는가?" 중에서)
* 씨알예수회는 성서공회에서 번역 출간한 <표준새번역> 성경을 사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