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1
제가 고등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때의 기억입니다. 한국신학대학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좋은 모임이 있는데 가보지 않겠느냐고 교회 선생님이 말씀하시더군요. 그 모임의 이름은 '생각하는 하루'였습니다. 그때가 74년 혹은 75년쯤 되었으니, 당시 한국신학대학의 임원이셨던 선배 목사님들께서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설레이는 마음으로 수유리에 있는 한신대를 찾아갔었습니다. 그때 고등학생들에게 강의를 해주신 분이 김정준 목사님, 안병무 교수님, 그리고 문동환 교수님이셨습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김정준 목사님은 아주 열정적으로 말씀을 해주셨고, 안병무 교수님은 무슨 내용인지는 잘 이해가 안되는데 뒤에 앉은 신학생 선배들이 재미있게 웃으며 반응하던 기억이 납니다.
문동환 목사님은 웅변조로 아주 쉽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희들도 재미있게 웃으면서 많은 말씀을 들었지만, 기억나는 내용은 '일용할 양식'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자본주의로 물질이 넘쳐나지만 사실 필요한 것은 일용할 양식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으로 기억됩니다. 저는 그 이후부터 '일용할 양식'에 대한 중요성을 제 마음 속에 담고 살았습니다. 제가 농촌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주제라고 보는 '일용할 양식'도 돌이켜 보면 이때 들은 문동환 목사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한신대 학생회에서 주관한 '생각하는 하루'라는 프로그램은 저에게 잊을 수 없는 하루가 되었습니다. '생각하는 하루'가 '생각하는 일생'으로 연결된 셈입니다.
기억 2
신학생이 된 이후 매년 여름이면 기청 대회에 참석했습니다. 70년대 중반 이후 전국의 기장 청년들이 모여서 우리 현실의 아픔을 바라보며 함께 기도하고 길거리에서 정의와 평화를 고백했던 열정을 기억합니다. 노동 현장을 비롯해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부르짖음을 들으며 안일했던 삶에서 깨어나 기독청년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려고 결단하던 모습이 새롭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기장의 기독청년들, 그 중에서도 항상 젊은이의 틈에 끼어서 우리들을 격려하시던 영원한 기장의 젊은이, 충남 서천의 양주석 장로님의 웃음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70년대 말, 80년대 초 암울하던 시절도 이제는 4반세기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그때를 돌이켜 보면 매년 여름만 되면 저의 마음이 뜨거워졌던 것은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시대의 아픔을 같이 고민했던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지금도 어느 한 순간 그때의 열정이 떠오를 때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됩니다. 그때 모였던 청년들의 순수함과 뜨거운 믿음이 오늘 저의 삶을 지켜주는 하나의 기둥이 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저의 꿈
내년 초인 2006년 1월, 농촌교회의 중·고등학생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입니다. 이 학생들은 적어도 자신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편에 속하는 청소년들로, 목회자들의 추천을 받아서 오게 되었습니다. 서로 설레이는 마음으로 모여서 기쁘게 찬양을 하고 간절하게 기도를 합니다.
반갑고 정겨운 마음 속에서 지역별로, 교회별로 각자의 소개가 끝나고 우리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분들의 말씀이 시작됩니다.
농촌에서 평생토록 농민들과 아픔과 소망을 함께 하신 목사님, 인류의 희망이 우리 사회를 유기체적 공동체로 만들어 가는데 있음을 온몸으로 말씀하시는 장로님, 새로운 시대에 농촌과 농업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하나하나 알기 쉽게 설명하시는 교수님, 농촌청소년들의 마음과 형편을 잘 알고 이들에게 구체적인 진로를 제시하시는 선생님, 이외에도 우리사회에서 존경받는 분들의 이야기가 계속될 때 청소년들의 마음에 새로운 깨달음이 일어나고, 가슴이 뜁니다.
시대를 앞서가는 분들의 이야기가 끝나면 청소년들이 서로의 마음을 나눕니다. 서로의 꿈을 나누고, 믿음을 나눕니다. 이러한 믿음과 꿈을 찬양으로 표현하고 서로의 손을 잡고 기도로서 격려합니다. 우리 학생들의 얼굴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소망이 넘칩니다.
저는 농촌교회 청소년들이 매년 겨울이면 서로 모여서 이처럼 귀한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동시에 그동안 농촌교회 중·고등학생들에게 이렇다할 꿈과 소망을 보여주지 못하고 이들이 세상의 흐름에 따라서 살도록 방치한 책임을 통감합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농촌교회 목회자들과 교우들이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모으고, 믿음에 믿음을 더해서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을 함께 만들어 가면 좋겠다는 염원을 가져봅니다. 기드온 사사가 삼 백 명의 용사로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을 지킨 것처럼, 이 시대 농촌을 지키고, 생명 세상을 지킬 삼 백 명의 일꾼을 길러내는 일을 해나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농촌교회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성장하여 향후 30년, 혹은 50년 동안 30명의 농촌교회 목사, 30명의 해외 농촌선교사, 30명의 식량작물 전문가, 30명의 축산 전문가, 30명의 과수원예 전문가, 30명의 농업정책전문가 혹은 농학박사, 30명의 여성농민운동가, 30명의 농촌학교 교사, 30명의 농촌의료인, 30명의 농촌문화운동가 등 농촌을 지키고 생명의 가치관을 우리 사회의 중심에 세워나갈 지도자로 커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요? 그리고 이들이 모두 신실하고 진실한 신앙인으로서, 전국 각 농촌지역과 농촌교회에서, 그리고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주님의 향기를 머금을 수 있는 믿음의 일꾼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농촌 청소년들에게 우리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그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그들과 함께 어깨를 같이하며, 우리의 꿈을 나누고 주님의 사명을 함께 감당하자고 말하는 장이 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신나고 가슴 뛰는 일일까요?
그리고 이를 위해 총회적으로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서로 힘을 모아 기도하고 협력한다면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도 힘이 나겠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도 얼마나 아름다운 일일까요?
저는 이러한 꿈을 농촌교회 목회자 여러분과 함께 꾸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꿈과 꿈이 서로 엮어지고, 그 꿈을 우리 농촌교회 청소년들과 함께 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함께 꿈을 나눔으로써 농촌교회 교육의 장이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오는 2월 14일과 15일, 이틀 동안 기독교농촌개발원에서 열리는 '제3차 농촌목회사랑방'은 이러한 꿈을 함께 나누기 위한 것입니다. 농촌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교육에 깊은 관심을 갖는 목회자들의 참여를 두 손 모아 기다립니다.
기독교농촌개발원에서 이태영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