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균용 목사와 나은혜 사모가 2011년 9월 손자의 돌 때 찍은 가족 사진/사진 제공: 나은혜 사모. |
프롤로그
언제였을까? 참 많은 세월이 흘렀다. 한국에 있을 때 교회 문턱에도 가보지 않았던 기자가 이민온 지 몇년 후의 일이다. 알고
지내던 분으로부터 “딱 한번 함께 가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해서 따라 나섰던 그 교회의 담임이 현재 타코마연합장로교회에서 목회
중인 나균용 목사였다. 비교하기가 옹색하지만, 마치 사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나 바울이 된 것처럼, 딱 한번이 나를 개신교인으로
남게 만든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기자는 부친이 종로성당에서 영세를 받은 가톨릭 신자이셨기 때문에 성당을 나갈
생각이었다. 첫발을 내딛은 교회, 이제는 기억 속에 자리하고만 있을 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천문교회 담임이었던 나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당시 나 목사 부부는 어린 세 아이들과 함께 오래된 2층집에 살고 있었다.그때, 그 시절, 이민 초년병인 기자의 삶도
녹록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목사 가정의 어려운 삶을 지켜보면서 뒤돌아 눈물도 흘린 적도 있었다.
그가 1986년 목회하던 교회와 통합하는 형태로 현재 목회 중인 교회의 담임으로 부임한 것이 1986년 10월이었다. 기자는
그 해 말까지 그 교회에 출석한 후 다른 교회로 옮겼다.그리고 … 나 목사 부부와 기자는 25년만인 지난 12일 오후 1시,
본보 사무실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나 목사의 부인 나은혜 사모가 올 해 5월과 8월 사이에 무려 3권의 책을 발간한 것에
대한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다.
2012년 2월5일의 의미
“그동안에 참 많은 글을 써 놓았기 때문에 책을 출간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
나은혜 사모는 지난 5월15일 단편소설집 ‘황금 종이 울리는 길(에이레네기획)’과 간증 수필집 ‘행복한 삶의
고백(엠북스)’ 등 2권을 동시에 출판했고, 3개월 뒤인 8월2일에는 신앙 칼럼집 ‘새벽 단상(엠북스)’을 출판했다. 물론
열거한 3권의 책 이전에 그는 ‘나은혜 성극 각본집 1권’과 두번 째 각본집인 ‘행복을 주는 천사’, 간증 수필집 ‘저 높은
곳을 향하여’와 각본집 3권 째인 ‘용서의 권세’ 등 4권의 책을 출판하는 등 왕성한 필력을 과시(?)한 바 있다.
“교회에서 한글학교 어린이들을 가르쳤어요. 그런데 좀더 효과적인 한글 교육법이 없을까 생각하던 중에 짧은 단막극
‘양치기 소년’ 같은 연극을 무대에 올렸더니 아이들이 재미도 있어하고, 또 쉽게 한글을 이해하게 되는 것을 보고 단막극을 쓰기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죠.”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고, 청소년 시절에는 잡지사에 보낸 글이 게재되는 등 ‘글쓰기에 취미가 있었던 것
같다’는 나 사모는 계간지 말씀과 문학 2003년 봄호에 희곡 ‘사랑’이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세계한인문학 2004년 창간호에
지난 8월에 출간한 소설 제호로 사용한 ‘엄마의 결혼’으로 신인상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그녀의 글쓰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2005년 월간 순수문학 2월호에 시(詩)가 당선되고, 이듬 해인 2006년에는 월간 창조문예 2월호에 소설 ‘좁은 문’이
당선되는 등 글쓰기에 대한 불꽃이 활활 타오르게 되었다고나 할까? 한마디로 파죽지세였다.
“이미 발간되었던 4권의 책들은 출판사에서 비용을 전액 부담을 해줘서 이루어졌었죠. 그런데 이번에 책을 발간하기까지는 조금 망설였어요. 출판사에 부담을 주는 것도 그렇고 … “
나 사모가 올 해 안에 책을 꼭 발행하고 싶은 배경에는 지난 2월 5일이 나 목사와 결혼 40주년을 맞이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는 “생각 끝에 아들(종선)에게 출판하고 싶다고 했더니, 두 딸(은성 ․신희)까지 힘을 합쳐 도와줘서 3권의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며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이번에 발간한 책들은 우리 부부 결혼 40주년 기념의 증표”라고 했다.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남편 나균용 목사
40
년 간의 동행. 특히 목회자의 아내이니 남편의 단점이 있다고 해도 터놓고 흉을 봤다가는 말많은 한인사회, 무슨 소문의 벽에
둘러쌓일지도 모르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는 40년 간 곁에서 지켜본 남편은 어떤 분이냐고, 좀 진부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 목사님이요?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분이죠. 아내 비위 맞추는 것도 없는 분이에요. 그런데 ‘행복한 삶의 고백’에 담긴 간증에도 있지만, 남편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가장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자녀들에 대한 철저한 교육열이 높았던 아내 나은혜 사모
기자는 나 목사에게 10년 단위로 묶어서 아내와의 40년을 말해달라고 했다.
“주일 학교에서 아이들 잘 가르치는 선생으로만 생각했다가 결혼해서 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가 아이들이 7살, 6살,
1살이었던 1981년 포틀랜드로 유학을 와서 생활했지요. 한국에서 올 때 초등학교 교과서와 전과까지 가지고 와서 아이들한테 한글
열심히 가르치고, 가정예배 볼 때면 아이들한테 우리말로 기도하고, 잠자기 전에는 성경을 꼭 쓰게 하는 등 내가 볼 때 아이들보다 더
피곤한 생활을 했어요”
나 목사는 그 교육열이 밑거름이 돼 세 자녀들 모두가 2중언어에 능통해서 동시 통역도 잘하고, 교인들도 부러워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20년 째에는 유학을 마치고 타코마에 교회를 개척했던 83년도부터 92년도 그때까지는 참 어려운 고비를 겪었는데, 잘 이겨내줬다”고 했다.
아, 기자는 기억한다. 86년도 어느 날 나 목사 부부가 교인 집에 심방을 간 사이에 집에 놓고 간 막내 딸 신희가
까치발을 딛고 스토브에 기대어 라면을 끓이다가 쏟아붓는 바람에 한쪽 겨드랑이가 데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딸을 병원에 데리고
갔다 온 나 목사 부부의 얼굴에 드러워졌던 그 어두웠던 그늘을 …
나 목사는 “결혼생활 30년이 되니까 아이들도 대학 나오고 직장 잡아서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참 좋았고, 아내가 교회일에도 열심을 낼 수 있었다”고 했다.
“결혼생활 40년 째인 지금은 애들도 돈 잘벌고 교회에서도 딸 둘이 다 와서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등 우리 가정이나
교회가 다 행복합니다. 그래서 저는 교인들에게 젊어서 고생해도 신앙생활을 잘하면 할수록 더 행복해진다고, 아직 젊었을 때에
신앙생활을 잘하고 하늘에 많은 것을 쌓아 놓으라고 말합니다.”
나 목사는 “그리고 앞으로의 남은 삶은 곧 은퇴하겠지만, 자식들한테 의지하는 것보다는 우리 부부가 보람있는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 뭔가를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내가 쓴 책들은 내 삶의 몸부림이자 내가 살았다는 증거
나 사모가 출간한 책들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혀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가 물었다.
“솔
직히 나는 글쓰는 것이 즐거워서 썼을 뿐, 독자들을 의식해서 글을 쓴 것은 아니에요 . 책을 읽은 분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용기를 얻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책 속에 담긴 글 가운데 어떤 자랑을 한 것처럼 비춰질 지 모르겠는데요, 나의 글은 내
삶의 몸부림이고, 내가 살아온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 한가지, 제가 글을 쓸 때마다 이 글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쓴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 목사는 “행복한 삶의 고백은 우리 집의 간증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복을 주시고, 좋은
일을 이루어 주셨다”며 “독자들은 부러운 마음도 들 수 있고, 동시에 행복을 향해서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도 들게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아울러 “지난 번 어느 목사님이 신앙 칼럼 새벽단상을 읽고 은혜를 받았다고 말씀하셨다”며 “내가 새벽 설교나 주일 설교를 할 때 아내가 노트한 것을 정리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그 책(새벽단상)은 설교의 아이디어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짤막한 것을 가지고 거기에 살을 붙이면
좋은 설교가 될 수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목회자나 신학생 ․ 성경 공부하는 사람에게 유익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겉은 노쇠하고 연약하나 속사람은 강건하여 항상 즐거워하며 밝게 남에게 기쁨을 줄 수 있어야 하겠다. 연약하여 떨어지는 붉은
나뭇잎도 그렇게 아름다운 교훈과 사랑을 남기고 떨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절대로 자녀의 짐이 되지 말고 아름답게
살다가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질 수는 없을까? 그렇게 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행복한 삶의 고백 제5부 ‘아름다운 황혼’ 부분
나 사모는 나 목사와의 사이에 2녀 1남을 두었다.
장녀 은성(38): 사위 댄 리우. 장녀 미혜, 장남 피터, 차남 조엘.
아들 종선(37): 며느리 설가림. 장남 야곱, 차남 여호수아, 3남 갈렙.
차녀 신희(32): 사위 조셉 리원. 캔사스 주 엠포리아 시티 거주.
에필로그
나 사모는 그녀의 삶의 대부분을 목회자의 아내로 생활했기 때문에 사회 경험이 부족하다. 자신 스스로 신앙 위주의 작품이 지니는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범주에서 벗어날 생각은 없다.
목회자의 아내는 목회자 못지 않게 힘들고 지칠 때가 많다. 적지 않은 나이에 지칠 줄 모르는 나 사모의 글쓰기를 향한 열정은 높이 평가해도 부족함이 없다. /김정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