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회 忠烈公 朴堤上 春享大祭(2016.3)
寧海朴氏 始祖이며 忠烈公(충렬공) 諡號(시호)를 받으신 萬古의 충신
朴堤上 始祖님은 新羅 시조 혁거세(赫居世)의 후손으로
제5대 파사이사금의 5대 손이며 할아버지는 아도갈문왕(阿道葛文王),
아버지는 파진찬(波珍飡) 물품(勿品)이시고 가족으로
부인은 금교김씨 國大夫人이고, 아들은 박문량(朴文良)백결선생이며
딸로는 박아기(朴阿奇), 박아영(朴阿榮),박아경(朴阿慶)이다.
오늘은 제37차 春享大祭(춘향대제)가 열리는 날이라
安東에서는 차를 대절하여 蔚州郡 두동면 만화리 치산서원으로 향했다.
기록에 의하면 태어나시기는 陽山의 孝忠洞에서
또 자라서 성장하시기는 鵄山書院 근처 옻나무밭골이란다.
신라 訥祗王때 대아찬 벼슬을 증 받으신 충렬공 朴堤上님은
우리 영해박씨의 자랑이고 긍지라고 생각하면서...
우리 일행을 실은 차가 두동면 치산서원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경
10만평이나 되어보이는 거대한 치산서원의 규모에 놀라면서
처음으로 우리 일행을 맞이한 것은
치산서원(鵄山書院)의 입구 홍교(虹橋) 건너편에 세워진
충렬공님과 國大夫人을 기리는 표석
신라 만고충신 충렬공 박제상 충렬묘,국대부인 신모사 지
新羅 萬古忠臣 忠烈公 朴堤上 忠烈廟, 國大夫人 神母祠 址
치산서원(鵄山書院 )
박제상유적지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호 (1997.10.9 지정)
홍살문이 보인다.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지붕이 없이
윗부분에 화살 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우고
중간에는 태극 문양을 그려 놓았다
거대한 홍살문[紅─門] 뒤에는 삼강문(三鋼門)이 보인다.
삼강문(三鋼門)
삼강문 앞에는 대제에 참가하려는 중,고등학생들의 표정이 정겹다 .
三綱門은 世宗때 발간된 三綱行實圖에 박제상의 충절을
소개한데서 유래한것 같다.
삼강문은 충의(忠義). 효도(孝道). 정렬(貞烈)을 상징한다
즉 박제상님과 그 가족의 君臣, 父子, 夫婦의 三綱에 모범이 될 만한
忠臣, 孝子, 烈女를 기리는 정신을 본받기위한 상징의 표상이다.
여긴 삼강문을 지나 첫번째 보이는 관설당(觀雪堂)의 앞 모습
관설당(觀雪堂) 좌우에는
東齋(경의재)와 西齋(영휘재)가 마주보고 있다 .
중앙에 관설당이 자리잡고있다.
觀雪堂은 始祖 朴提上님의 호를 따서 현판을 달았다.
관설당(觀雪堂)은 儒林이 學文을 연마하던 곳 .
금일 각 헌관과 집사의 분정표가 보인다.
망해문(望바랄망 海바다해 門문문) 이다
관설당(觀雪堂) 뒤쪽 중앙에 위치한
국대부인(國大夫人)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는 곳이다 .
금교김씨 국대부인(國大夫人)께서 일본에 사신으로 가신 남편을
茫茫大海를 바라보며 기다리다가 순국하신
부인의 정절심은 삼강도에 올리고도 남음이 있다 .
망해문 계단을 올라 뜰에 들어서면 신모사(神母 祠)라는 현판이 보이고
國大夫人의 위패와 영정이 보인다.
여기는 국대부인께 대제를 올리는 곳이다.
치술령에는 神母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국대부인의 충절을 기리기위해
세운 절의 이름을 옮겨온 것이 아닌가?
1700년전 신라때 세딸과 함께 오직 낭군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다가
장렬히 죽음에 다다른 국대부인의 정신은
천세만세 歷史에 기록될 한 부인의 崇高한 정절심이다.
여기는 생각사, 효도효, 사효문(思孝門)이다.
國大夫人 祠堂 오른쪽 옆에 위치한
박제상님의 두딸 아기와 아경의 位牌와 影幀을 모신 곳으로 .
사효문(思孝門)을 열고 뜰에 들어서면
안체에는 쌍정려(雙旌閭)가 있다
쌍정려(雙旌閭)에는 일본에 사신으로가서
訥祗王의 동생 미사흔을 구출하고 장렬히 殉國하신
朴堤上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한없이 가다리다가
어머니와 함께 죽었다는 두딸 아기와 아경의 효성을 기리는 곳이다.
여기는 성인문(成仁門)
성인문 계단을 올라 뜰에 들어서면 충렬묘(忠烈廟)가 있다.
관설당 뒷편 맨 왼쪽에 위치한다.
이곳은 영해박씨 시조 충렬공 박제상 시조님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곳이다.
奈勿王의 큰아들 訥祗王은 즉위 후 두 동생을
高句麗와 왜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君臣을 불러 동생을 구출해줄것을 근심하였는데
수주촌간(水酒村干) 벌보말(伐寶靺), 일리촌간(一利村干) 구리내(仇里矩),
이이촌간(利伊村干) 파로(波老) 등 세 사람이 모두 박제상이
그러한 역할을 맡을 역량이 있는 적절한 인물이라고 천거하였다.
당시 박제상은 양산(梁山) 지방의 토호 세력으로서
삽량주간(賂良州干)이라는 직책에 있었다.
시조 박제상은 418년(눌지왕 2) 왕명을 받들어
먼저 고구려에 가서 長壽王을 언변으로
회유해 복호를 구출하고 무사히 귀국시키고
또 왜에 인질로 가 있는 미사흔을 구출하였다.
春享大祭의 식전 鎭魂祭로 충렬공 박제상님을 기리는 시를 읊다
이어서 鎭魂舞 공연 1
진혼무 학춤 공연 2
진혼무 학춤 공연 3
진혼무 학춤 공연 4
박성수 會長님과 參奉 박병준님 모습도 보이고
각 獻官과 執事님들의 相見禮 모습이다 .
제례에 앞서 각 獻官과 집사, 참가자들은 홍살문을 돌아서
忠烈廟, 神母祠, 쌍정려 세곳의 대제가 올려진다.
忠烈廟의 삼 獻官님 모습이다
박제상님의 신을 모신 忠烈廟에서의 三獻官
아기, 아경의 魂魄을 모신 쌍정려의 헌관들
인근 두동초등학교 학생들도 대거 참가하였다 .
忠烈廟에서 初獻官 신장렬 울주군수
울주군수가 寧海朴氏 시조 朴堤上님전에 헌주하고 있는 모습
조충제 울주군 의장의 아헌례
조충제 울주군 의장의 아헌례
朴堤上 유적 保存會 김영달 회장님 終獻禮
안동문중의 박중근 박노영님의 모습이 보인다.
담장 너머 보이는 神母祠의 윤복희님의 집례 모습
초헌 박구선 군수부인, 아헌은 이금옥 두동면장부인,
이순득님은 종헌
제례를 마치고난 삼헌관 기념사진 찰칵..
국대부인의 魂魄을 모신 신모사에서
헌관 및 집사자 사신 재배
시조님 사당인 충렬묘에서
영해박씨 참가자들 재배 올리다 .
신모사에서 헌관과 집사자 기념사진
신모사에서 영해박씨 참가자들 별도로 참배하다
가운데가 박성수 회장님
쌍정려에서도 참배하다 .
식후 공연 모습
식후에도 진혼무 공연 ...
영박 참가자들의 담소- 제례일정 조정에 협의
대종회 박성수 회장님의 인사 말씀 모습
파란색옷을 입은 헌관 옆이 박성수 회장님
충렬묘, 신모사, 쌍정려 등 3처에
각각 참가하신 헌관과 집례자 기념사진
안동 삼산 박노영님과 울산에 사시는
사촌 동생과 기념사진
운곡의 모습
안동의 박옥분, 길안 박옥녀, 안동 박노영과 사촌동생 기념사진
신라로부터 1600년 장구한 세월이 흐른 지금 충렬공 박제상님의
충의의 정신을 가슴으로 체감하고
우리 일행은 시조 박제상 충렬공님의 혼이 깃든
치산서원을 뒤로하고 고향 안동으로 귀향길에 올랐다.
유구한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영해박씨 시조님이신
충렬공 박제상님의 만고 충신의 고귀한 정신은
세세천년 억만년이 지나도 길이 길이 남아 후세에 귀감이 되리라
님이 계셨기에 우리 영해박씨 후손들은
그 어느 문중보다도 자긍심을 느낄 수 있다.
해마다 가사일에 바쁜 가운데도 꼭 참가하여 성의를 표하시는
박중열, 박노영, 박중근, 박연화, 박은용, 박상용, 박춘택,
박옥녀, 박옥분님 고맙구요
내년에 다시 만나요.....
2016.4.16일 토요일 치산서원을 다녀오면서
http://cafe.daum.net/qwd5323/IRUr/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