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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믿음, 큰 사명, 큰 축복(히브리서 11:1~12)
“하나님! 왜 나에게는 복을 주시지 않습니까? 내가 언제적 교인인데 왜 나를 이렇게 섭섭하게 하십니까?”라고 하나님께 항의한다면 나는 묻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그동안 주의 일은 얼마나 했습니까? 일꾼은 일해야 품삯을 받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일은 아무에게나 맡깁니까? 그 일을 감당할 만한 실력, 능력, 책임감이 있어야 맡길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 일을 감당할 만한 실력, 능력, 책임감이 뭡니까? 내 믿음입니다. 내 믿음에 따라 주님의 일거리, 사명이 주어지고 그 사명을 감당해야 품삯, 복이 따르는 것입니다. 결국, 내 믿음에 따라 사명이 주어지고 그 사명을 감당해야 품삯, 곧 복을 받는 것입니다. 기왕이면 큰 믿음을 갖고 섬기다가 큰 사명 받아 잘 감당하다가 복을 받아도 큰 복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교회 안에서 제일 많이 듣는 단어 중의 하나가 믿음입니다. “저 집사님 믿음이 참 신실해. 우리 권사님은 다른 교회 권사 10명하고 안 바꿔.” 반면에 “언제적 집사, 권사인데 너무 믿음이 없어.”라고 합니다. 여러분! 믿음은 하늘나라 가는 첫걸음이요, 신앙생활의 기본입니다.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믿고, 예수님을 내 구주로, 성령님을 내 삶의 인도자로 믿으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믿음은, 금보다 더 귀한, 내 통장에 예금보다 더 귀한 재물입니다. 믿기를 바랍니다.
영국 속담(俗談)에 “하루를 행복하게 살려면 이발을 하고, 일주일을 행복하게 살려면 결혼을 해라. 한 달을 행복하게 살려면 말(horse)을 사고, 일 년을 행복하게 살려면 새집을 지으라. 그러나 평생을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정직한 사람이 돼라.”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정직한 사람이 되려고 하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첫째. 믿음이란?
1. 예수님을 환영하여 내 구주로 영접하는 것
요한복음 1:11~12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친정어머니가 찾아오셨을 때, 딸이 대문을 활짝 열고 친정어머니를 환영하여 집안으로 모셔 들인 것처럼,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환영하여 영접한 것처럼, 갈릴리 해변에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라고 할 때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따른 것처럼, 예수님을 환영하여 내 구주로 영접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주님! 나는 주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이렇게 못난 사람, 실수 허물투성이인 사람, 이렇게 의지가 약하고 외로운 사람은 한순간도 주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주님이 내게 오심을 환영합니다.”하면서 주님을 내 인생의 구세주, 내 인생의 주인으로 환영하여 영접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2.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을 주님께 맡기는 것
디모데후서 1: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아무리 근심, 걱정, 고민해도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내가 환영하여 구주로 영접해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내가 걱정하고 근심하며 고민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방향으로, 훨씬 더 나은 방향으로 해결해 주실 줄 믿고, 내 근심, 걱정, 고민, 내 자녀들의 장래, 내 남은 운명, 불가능한 일을 주님께 완전히 맡겨버리는 것, 위탁해 버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자식 취직을 부탁하려고 해도 상대방이 누군지 알아야 부탁할 텐데, 하물며 내 근심, 걱정, 고민, 내 자녀들의 장래, 내 남은 운명, 불가능한 일을 주님께 맡기려면 주님이 누군 줄 잘 알아야 맡길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면서도 인간이시고 인간이면서도 하나님이신 주님을 얼마나 잘 아십니까?
한번은 민족 대표 33인이기도 한 길선주(吉善宙, 1869~1935) 목사님이 기차 여행할 때입니다. 마주 앉은 청년들을 가까이 가서 쳐다봤더니 청년들이 먼저 말을 건넸습니다. “선생님! 어디에서 오십니까?” “저, 평양이오.” “그럼 혹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예, 나도 믿지요.” “그럼, 평양의 유명한 목회자요 부흥사인 길선주 목사님을 아십니까?” “예, 내가 잘 알지요.” 이 청년이 길선주 목사님을 바로 알고 있습니까? 아니면 소문만 듣고 이름 석 자만 알고 있는 것입니까? 이렇게 알아도 길선주 목사님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까?
묻습니다. 내가 주님을 안다고 하면서 강단에서 목사님 설교로 주님께 대한 소개만 받았지 만나보지를 못해서 길선주 목사님에게 길선주 목사님을 잘 아느냐고 묻고 있는 격으로 주님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하기에 그리스도인은 소문만 듣고 소개만 받았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번 집회는 주님을 만날 절호의 기회입니다. 주님을 만나 보면 주님은 내 근심, 걱정, 고민, 내 자녀들의 장래, 내 남은 운명, 불가능한 일을 맡아서 충분히 해결해 줄 분이십니다.
시험, 걱정, 괴로움 없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농사지어 곡식 천석(千石)을 거둬들이는 천석꾼에게는 천 가지 걱정이 있고 만석(萬石)꾼에게는 만 가지 걱정이 있는 법입니다. 부질없이 낙심 말고 주님께 아룁시다. 주님은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좋고 훨씬 더 나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이렇게 내 모든 것을 주님께 온전히 맡겨 의탁하고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에 옮기는 것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누가복음 5:1~11 “...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그리스도인으로 성경을 많이 읽은 것은 참 잘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었어도 그 말씀을 실천하지 않으면 그것은 성경 지식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남보다 오래전부터 믿은 것은 참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 믿었어도 그동안 말씀을 실천하지 않으면 그것은 신앙 연륜이고 경험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으며, 깨닫고, 믿으며, 가르치는 대로 실천에 옮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시골에서 6개월 정도 교회를 잘 나오던 청년이 하루는 담임 목사님을 찾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제 이 교회 그만 나오겠습니다.” 청년이 찾아와 이렇게 나올 때 우리들은 “왜 그러세요? 지난번 일로 섭섭해서 그러지요. 그래도 이해하고 참고 잘 나오세요.”라고 얼마나 권면하고 붙들겠습니까? 그런데 미국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그렇게 하세요. 그런데 부탁이 하나 있소. 집으로 가는 길에 산 밑에 살고 계신 할머니에게 오늘 내가 심방 가기로 약속했는데 못 가게 됐으니 이 돈으로 사과 한 상자 사서 전해 드릴 수 있겠어요?” 그러자 청년은 목사님과 그렇게 하기로 약속하고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청년은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고 할머니 집을 찾아갔습니다. 대문 앞에 놔둔 사과 상자를 할머니가 모르실 것 같아 다시 대문을 노크(knock)하니 할머니가 나왔습니다.
사람이 그리웠던 할머니는, 청년을 보자마자 하나님이 보낸 천사가 찾아 왔다고 반가워하시더니, 청년 손을 붙잡고 방으로 들어와 사과를 깎아 놓고, 먼저 할머니가 청년의 장래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미혼인 이 청년, 3대 4대째 예수님 잘 믿는 가정에서 믿음 좋은 처녀를 만나 행복한 새 가정을 이루게 해 주시고, 좋은 직장 주셔서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시며, 신앙생활도 최고로 잘해서 우리 교회에 큰 기둥 같은 보배로운 일꾼이 되게 해주시옵소서.”라고 우주적인 축복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그러더니 “심방 오신다는 목사님은 못 오시고 내가 지금 아파서 며칠째 누워있는데 이 늙은이를 위해 기도해 달라.”라고 청년에게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예수님 그만 믿겠다고 목사님하고 작별인사하고 가는 마당에 무슨 염치로 주님을 찾고 기도가 나오겠습니까? 청년의 기도가 시작되지 않으니 할머니가 주여! 주여!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이 “주여!” 한마디 해놓고 식은땀을 줄줄 흘리더니 청년 마음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집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다시 목사님을 찾아 왔습니다. “목사님!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묻습니다. 믿음을 완전히 상실한 그 청년이 어떻게 이렇게 회복하게 됐습니까? 물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할머니를 만났고, 할머니 기도에 감동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과 한 상자 사다 드리라는 목사님 말씀을 실천에 옮기다가 결국, 쏟아버린 믿음을 회복했습니다. 물론 할머니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할머니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목사님의 부탁을 받고, 함께 심방하다가, 예배 시간에 맞춰 교회 차량을 운행하다가, 노방전도를 실천에 옮기다가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겨나고 말씀을 실천할 때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둘째. 믿음의 구분
1. 본질적인 면에서 믿음의 구분
(1) 선물의 믿음
선물의 믿음이란, 누구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예수님을 환영하여 내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구원을 선물로 받는 믿음입니다.
에베소서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리스도인이 받은 구원(救援)에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1. 과거에 이미 이루어진 구원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내 구주로 영접한 순간 죄(罪)를 용서받는 구원입니다. 여기서 죄는 우리 조상 적부터 지은 죄, 내가 과거에 지은 죄, 내가 현재 짓고 있는 죄, 내가 미래에 지을 실수까지 다 용서받았습니다. 죄사함은 이미 과거에 이루어진 구원입니다. 이 믿음에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2.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구원입니다. 예수님을 내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과거의 죄는 용서받았지만, 오늘을 살아가면서 사건, 사고, 시험, 손해, 실패, 이별, 불행 등 만날 것은 다 만납니다. 당할 것은 다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것에서, 죄에서 구원받은 나를 건져주시고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이것이 현재 이루어져 가고 있는 구원입니다. 그러하기에 구원받은 성도는 어떤 일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낙심하거나 자살(自殺)하려는 생각은 금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에서도 건져주시고 일으켜 세워주시기 때문입니다.
3. 미래에 이루어질 구원입니다. 이렇게 살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 영원한 천국,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구원입니다. 이 구원만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옛날에는 권세 가진 사람들이 떵떵거리고 살았고, 지금 자본주의 시대에는 돈 많은 사람이 떵떵거리고 삽니다마는 머지않아 주 예수님 다시 오시면 믿음 가진 사람만이 구원받습니다. 대한민국 초기에 자유당 시절에는 자유당에 붙어있는 자들이 출세했고, 공화당 18년 반 동안에는 공화당에 붙어있는 자들이 출세했지만, 머지않아 주 예수님 다시 오시면 주 예수님 믿는 자만이 구원받습니다. 그러므로 시대 말의 최고의 유산은,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선물의 믿음입니다. 구원받은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할렐루야!
(2) 은사의 믿음
구원받은 성도가 사모하여 부르짖고 체험하여 역사가 일어나는 믿음입니다.
로마서 12: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고린도전서 7: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어느 찬양 대원이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중학생 때 정조를 잃었고, 고등학생 때 임신을 경험했으며, 대학생 때 낙태 수술을 몇 번 했습니다. 찬양대는 습관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부흥회 통성기도 시간에 강사님이 안수 기도를 하려고, 기왕이면 찬양 대원부터 하려고 갔더니 모든 대원이 두 손을 들고 사모하면서 부르짖고 있는데 글쎄 이 찬양 대원은 핸드백을 열더니 립스틱(lipstick)을 꺼내서 바르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강사님이 안수기도하신다고 머리에 손을 얹었으니 이 찬양 대원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 순간 강사님 입에서 책망이 튀어 나왔습니다. “빛도 없는 것, 생명도 없는 것, 향기도 없는 것, 예수도 없는 것, 회개하라.”라고 하자 그 책망의 말씀이 비수처럼 꽂혀 아악! 하면서 가슴을 치며 꼬꾸라져 회개하자 랄랄랄라 방언이 터졌습니다. 유창한 방언이 터졌습니다. 그다음 집회 시간부터 태도가 달라져 얼마나 참여를 잘하는지 그 집회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방언, 이것이 은사입니다.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믿음을 세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하나님을 통해서 주시는 근본의 믿음이 있습니다. 근본의 믿음이란 세상 모든 사람이 세상 살아가는 데 필요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받는 구원의 믿음이 있습니다. 구원의 믿음이란 예수님을 내 구주로 영접한 자가 구원받아 천국 가게 하는 믿음입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받는 능력의 믿음이 있습니다. 능력의 믿음이란 사모하는 자에게 은사를 체험하게 하여 사명 감당하고 승리하며 살아가게 하는 믿음입니다.
지혜, 지식, 영 분별, 방언, 예언, 통역, 믿음, 신유, 능력의 은사(고전 12:8~10)로 무장하여, 나를 이기고, 악한 환경과 세상을 이기며, 마귀와 사탄을 이기고, 질병과 이단을 이기고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2. 내용적인 면에서 믿음의 구분
(1) 산 믿음과 죽은 믿음
여러분! 송사리하고 고래하고 싸우면 누가 이깁니까? 그렇다면 살아있는 송사리와 죽은 고래하고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생각해보십시오. 이 건물만 한 고래라도 일단 죽으면, 칼로 토막을 내도 아프다는 아무런 감각이 없습니다. 죄를 지어도 아무런 감각이 없습니다. 주보에 대표기도, 안내위원이던데 감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한 마디가 없습니다. 이것이 죽은 믿음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건물만 한 고래라 할지라도 일단 죽으면,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떠밀려 다닙니다. 가고 싶은 데로 가질 못합니다. 그래서 어디까지 떠밀려 갑니까? 용하다는 점쟁이 집까지, 타락하는 자리까지 떠밀려 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죽은 믿음입니다.
그런데 살아 있는 송사리 좀 보십시오. 흙탕물에서 놀지 않습니다. 물결치는 대로 떠밀려가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송사리는 몸부림치면서 깨끗한 물줄기를 찾아 나옵니다. 주일예배 시간이나 집회 시간에 세상 유행에 떠밀려가지 않고, 은혜의 물줄기를 찾아 은혜 자리에 참석한 것은, 믿음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는 믿음 가진 것을 축하드립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산 믿음이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야고보서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2) 큰 믿음과 작은 믿음
마태복음 14:31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살다 보면 TV, 신문, 안 믿는 남편, 친구들한테서, 어떤 교회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더라. 어떤 목사님, 어떤 장로님이 이랬다더라 하고 내 귀에 별별 소리가 다 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때 “그랬어. 그런 일이 있었어. 그 권사님, 그 장로님, 그 목사님이 그런 사람인 줄 몰랐어. 그럼 나 그 교회 못 나가.”라고 의심하고 낙심하면서 교회를 나가니 못 나가니, 사명을 감당하니 못 하니 한다면 이것이 곧 작은 믿음입니다. 이런 사람한테 무슨 일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살다 보면 내 눈으로 험한 꼴을 볼 때가 있습니다. “저런 꼴은 안 봤어야 하는데...” 그런데 봐서는 안 될 험한 꼴을 눈으로 다 보았는데도, 의심하지 않고 낙심하지도 않으면서, 내 자리를 지키고 내 교회, 내 목자를 지키는 것이 큰 믿음입니다. 이 큰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사명을 받아도 큰 사명을 받고, 큰 사명을 잘 감당해야 복을 받아도 큰 복을 받습니다.
마태복음 15:28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내 인생의 환난 날, 풍랑을 만난 날에도, 예수님 부인하지 않고 내 자리를 굳게 지키는 것이 질적으로 큰 믿음입니다. 큰 아들이 죽었다고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 하나님은 안 계신다.”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부인하는 권사님이 있습니다. 장사하다가 손해 좀 봤다고 교회를 떠난 집사님이 있습니다. 이것이 곧 작은 믿음입니다.
물론 양적으로는 금식 열흘 한 것보다는 30일, 40일 한 것, 전도를 한 명 한 것보다는 열 명, 스무 명 한 것, 십일조 10만 원 한 것보다는 100만 원, 천만 원 한 것이 양적으로 큰 믿음입니다. 그러나 질적으로 큰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내 귀에 별별 소리가 다 들리고, 내 눈으로 험한 꼴을 다 봤는데도,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의심하지 않고, 나 자신이 낙심하지도 않으면서, 내 믿음을 지키고, 내 자리, 내 교회, 내 목자를 굳게 지키고 내 사명을 한결같이 감당하는 것이 곧 큰 믿음입니다. 대장부 믿음입니다.
여러분! 기왕에 예수님 믿으면서 옳게 믿읍시다. 바르게 믿읍시다. 크게 믿읍시다. 상 받게 믿읍시다. 복 받게 믿읍시다. 믿는 자는 그 믿음대로 표적(表迹)과 기사(奇事)가 따릅니다.
(3) 자라나는 믿음,
데살로니가후서 1: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자라나는 믿음은 의무를 마땅하게 감당함으로 성장하는 믿음입니다.
(4) 구원받을만한 믿음
사도행전 14:8~10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구원받을만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 성공하는 믿음입니다(행 17:10~12).
(5) 거짓 없는 믿음
디모데후서 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거짓 없는 믿음은 진실하고 정직한 믿음입니다.
(6) 보배로운 믿음
베드로후서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보배로운 믿음은 사나 죽으나 주의 것(롬 14:8)이요,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고전 10:31)을 위한 믿음입니다.
(7) 온전한 믿음
히브리서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온전한 믿음은 도저히 용서 못 할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8) 파선한 믿음
디모데전서 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파선한 믿음은 신앙 양심을 버리고 타락한 믿음입니다.
셋째. 선진(先進)들의 믿음의 특색
1. 아벨의 감사 잘하는 믿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데, 형 가인은 쉽게 말하면 농사지어 알곡은 제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북지, 북데기 털어 하나님께 제물로 바쳤습니다. 하나님은 노 코멘트(no comment), 한마디 말씀도 없었습니다.
여러분! 내가 바친 헌금을 하나님이 어떻게 받으셨는지 나 자신이 알 수 있습니까?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때 하나님께 바치기는 바쳤는데 나 스스로 좀 약소하고 낯이 부끄럽다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바치고 나서 내 마음이 그렇게 기쁘고 즐거울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도 내가 바친 헌금을 기쁘게 받으셨다는 증거입니다. 내 양심은 하나님이 주신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동생 아벨은 ‘천지 창조’ 영화에 보면 아내와 함께 하나님께 바칠 제물로 깨끗한 양을 골라 양의 첫 새끼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자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을 받았습니다.
히브리서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이 일로 아벨은 형 가인의 시기를 받아 들판에서 죽었지만, 하나님은 아벨 대신에 셋이란 아들을 주셨고, 셋의 후손 가운데 다윗 왕이 태어났으며,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습니다.
여러분! 감사 생활 지성스럽게 잘하면 끝이 쭉쭉 펴져 나갑니다. 출산하고, 백일, 돌, 생일, 결혼, 환갑, 칠순, 팔순, 입학, 졸업, 취직, 승진, 퇴직, 입대, 제대, 여행, 건축, 새집 구매, 이사, 장례, 추도, 대심방, 세례, 부활절, 성탄절,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부흥회 때 지성스럽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제물 위에 응답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출애굽기 20: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바칠 제물로는 소, 양이나 염소, 비둘기 새끼, 곡식 빻은 가루를 드렸습니다. 감사헌금은 액수가 기준이 아닙니다. 자기 형편대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둘기 새끼를 바쳐야 할 형편인데 정성껏 소를 준비해서 제물로 드리면 하나님은 그 제물로 소를 받으시고 “너는 비둘기를 바칠 형편밖에 안 되는데 소를 제물로 준비해서 바쳤으니 앞으로 소를 바치고 살 수 있도록 네 삶을 보장해주마.” 이것이 감사헌금입니다. 아벨은 감사 잘하는 것이 그 믿음의 특색이었습니다.
2. 에녹의 자신을 정복하는 믿음
에녹은 365세를 사는 동안에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창세기 5:21~22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同行)했다는 말은 에녹은 하나님 안에, 하나님 안에 에녹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철저한 자기 정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힘든 것 중 한 가지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일입니다. 자신의 감정과 싸워서 이기는 것입니다.
머릿속에 교만을 정복하고 겸손(謙遜)해야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귀속에 의심(疑心)을 정복하고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혀 밑에 거짓을 정복하고 진실(眞實)해야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뼛속에 게으름을 정복하고 부지런해야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살 속에 음욕(淫慾)을 정복하고 정결(淨潔)해야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핏속에 혈기(血氣)를 정복하고 온유(溫柔)해야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허파 속에 위선(僞善)을 정복하고 안과 밖, 겉과 속이 일치(一致)해야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쓸개 속에 고집(固執)을 정복하고 관용(寬容)할 줄 알아야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오장육부(五臟六腑) 속에 탐심(貪心)을 제거하고 분수(分數)를 알아야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여러분! 할 말은 많아도 참는 것이 성도고, 성질은 있어도 부리지 않는 것이 성도며, 혈기는 있어도 내지 않는 것이 성도입니다. 에녹은 자신을 정복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그 믿음의 특색이었습니다.
3. 노아의 인내하는 믿음
노아는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 한 마디에 100년 이상을 참고 견디면서 방주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준행했습니다. 그런데 방주를 다 짓고 난 후 노아의 여덟 식구가 방주에 들어가자마자 비가 쏟아진 것 아닙니다. 홍수가 날 것을 믿고 방주 안에서 무려 7일을 기다렸습니다. 그리하여 40일 홍수로 당시 숨 쉬는 인간과 동물이 다 죽고 다 망했는데도 방주에 들어간 노아의 여덟 식구는 구원받았습니다.
창세기 7:9~13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달 열이렛날이라.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곧 그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인내라는 헬라어에 두 단어가 있습니다. 먼저는 휘포모네(ὑπομονή)입니다. 비인격적인 상황에서 잘 참는 것이 휘포모네입니다. 날씨가 좀 추워도 더워도 잘 참고, 배가 고프고 시간이 지루해도, 아파도 잘 참는 것이 휘포모네입니다. 다음으로 마크로뒤메오(μακροθυμέω)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잘 참는 것이 마크로뒤메오입니다. 특별히 그 못된 인간 앞에서 잘 참고 견디면서 자기 페이스(pace)를 지키고 흔들림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휘포모네도 귀하지만 마크로뒤메오가 필요합니다.
서울 관악구에 소재한 예배당을 건축할 때입니다. 예배당 2층이 올라가는데 교회 뒷집에 사는 시청 직원이 술에 만취가 되어 담임 목사님을 찾아 왔습니다. 대뜸 “우리 집 앞에 이렇게 예배당을 높이 지으면 우리 집을 어떻게 팔아먹으란 말이오.”라고 대들더니 담임 목사님 멱살을 잡고 흔들어 댔습니다. 이 꼴을 작업하는 인부들, 교인들, 사모님이 보고 있었습니다. 유도 유단자였던 목사님이 나중에 그러셨어요. 술에 만취했고 왜소해서 한주먹감도 안되더라고. 그런데도 목사님은 멱살이 잡힌 대로 끌려다녔습니다. 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순간입니까?
얼마 후 예배당을 다 짓고 헌당식을 마친 어느 주일입니다. 새가족이 등록했는데 글쎄 목사님의 멱살 잡고 흔들어 대던 그 시청 직원이 등록했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나중에 세례를 베푸는데, 목사님 멱살 잡아끌다가 교인이 된 시청 직원 머리 위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데 얼마나 마음이 흐뭇한지 그 수모를 참고 참았던 목사로서 보람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이왕 참는 김에 조금만 더 참읍시다. 노아는 인내하는 것이 그 믿음의 특색이었습니다.
4. 아브라함의 순종하는 믿음
창세기 12: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창세기 21:10~14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창세기 22:2~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라고 하면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과학은 알고 나서야 가는 것이고 믿음은 알지 못하는 곳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라고 하면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았습니다.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바치라.”라고 하면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쳤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아닙니다. 못합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도해보겠습니다.”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철저한 순종이요, 아멘입니다.
아들 셋을 키운 어머니가 있습니다. 아들들이 장성하자 어머니를 챙기는데 툭하면 용돈 잘 보내준 아들도 고맙고, 철 따라 옷 잘 사주고 식품을 택배로 잘 보내준 아들도 더없이 고맙지만 그래도 어머니 말끝마다 “예! 어머니, 알았습니다. 하겠습니다.”라고 순종하는 아들이 어머니 마음을 제일 기쁘게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순종하는 믿음이 하나님을 제일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하는 것이 그 믿음의 특색이었습니다.
5. 사라의 기적을 체험하는 믿음
창세기 18:1~14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아브라함의 장막에 하나님이 나타나시니 아브라함이 달려 나와 영접하고 부인 사라는 기름진 송아지를 잡아 급히 요리하여 대접했습니다. 내 집에 아무리 귀한 손님이 오셨기로 송아지를 잡을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정육점에 가서 소고기 몇 근 사 오기가 쉽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사라는 기적을 체험할 믿음을 이미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내년 이맘때에 아들을 낳으리라.”
이 말을 들은 사라가 “내 나이 90이 되어 경수도 끊어졌는데 어떻게 아들을 낳겠습니까?”라고 하하하 웃으니 “사라야. 왜 웃느냐? 하나님께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 그런데 사라의 배가 불러오더니 결국,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이 이삭입니다. 기적의 믿음을 갖고 있으면 기적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서울 성동구 왕십리 어느 교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젊은 부인이 집회 시간마다 앞자리에 앉아 울며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아보고 싶어 하나님을 사모하는 부인 아닙니까? 1년 후 그 강사님이 제2한강교회에서 밤 집회를 마쳤는데 그 젊은 부인이 강사 방을 노크했습니다. “강사님! 땀에 젖은 강사님의 러닝셔츠(running shirts) 구하러 왔습니다.” “어디다 쓰려고 그러십니까?”
“저는 결혼한 지 7년 됐습니다. 남편이 독자인데 자식이 없습니다. 내 남편은 고려대학교 대학원을 나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 성모병원에 가보았으나 둘 다 자녀를 낳을 수 없다고 최종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집회에 참석하면서 은혜를 받다 보니 능력 있는 목사님 러닝셔츠라도 깨끗하게 빨아 내 남편에게 입히면 강사님의 능력이 내 남편에게 임하여 아들을 낳을 것 같아 왔으니 허락해주시기 바랍니다.”
얼마 후 어느 교회 집회 중인데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출산하려고 하는데 강사님 기도 받고 싶다고 해서 러닝셔츠 준 죄로 집회하는 교회 여전도회장과 함께 산부인과를 찾아갔더니 출산 직전이라 의사들이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하나님! 기왕이면 순산케 해 주시고 아들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돌아왔습니다. 교회에 돌아오니 아들을 낳았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아들 백일잔치에 초대받고 갔더니 “네가 기도해서 낳은 예수 새끼라매”라고 하면서 남편 동료 친척들이 기뻐 어찌할 줄을 몰라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기적은 있습니다. 지금도 기적은 일어납니다. 이 집회가 그런 집회요, 그런 기적의 주인공이 됩시다. 사라는 기적을 체험하는 것이 그 믿음의 특색이었습니다.
넷째. 믿음의 결과
1. 구원을 받습니다.
사도행전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에베소서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베드로전서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2.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고린도후서 6:17~18 “...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3. 죄인이 의롭다, 의인이다 라고 인정을 받습니다.
로마서 4:9 “...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로마서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4. 기도 응답을 받습니다.
마태복음 21: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마가복음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5. 표적이 뒤따릅니다.
마가복음 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6. 성경에 약속한 복을 받습니다.
창세기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누가복음 1:45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요한복음 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여러분! 뭐니 뭐니 해도 돈, 돈 해도 믿음이 제일이요, 믿음이 최고입니다. 상인은 상식으로 살고, 학자는 학식으로 살고, 지식인은 지식으로 살고, 서양 사람 양식으로 살고, 일본 사람 일식으로 살고, 한국 사람 한식으로 살고, 어른들은 음식으로 살고, 아이들은 간식으로 살지만, 성도들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물질세계에서는 물질이 최고라지만 믿음의 세계에서는 믿음이 제일입니다. 믿음이 최고입니다. 그렇습니다. 큰 믿음 얻기 위해 기도하고 큰 믿음으로 사명을 감당합시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말입니다.
마태복음 15:28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하나님! 왜 나에게는 복을 주시지 않습니까? 내가 언제적 교인인데 왜 나를 이렇게 섭섭하게 하십니까?”라고 하나님께 항의한다면 나는 묻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그동안 주의 일은 얼마나 했습니까? 일꾼은 일해야 품삯을 받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일은 아무에게나 맡깁니까? 그 일을 감당할 만한 실력, 능력, 책임감이 있어야 맡길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 일을 감당할 만한 실력, 능력, 책임감이 뭡니까? 내 믿음입니다. 내 믿음에 따라 주님의 일거리, 사명이 주어지고 그 사명을 감당해야 품삯, 복이 따르는 것입니다. 결국, 내 믿음에 따라 사명이 주어지고 그 사명을 감당해야 품삯, 곧 복을 받는 것입니다. 기왕이면 큰 믿음을 갖고 섬기다가 큰 사명 받아 잘 감당하다가 복을 받아도 큰 복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교회 안에서 제일 많이 듣는 단어 중의 하나가 믿음입니다. “저 집사님 믿음이 참 신실해. 우리 권사님은 다른 교회 권사 10명하고 안 바꿔.” 반면에 “언제적 집사, 권사인데 너무 믿음이 없어.”라고 합니다. 여러분! 믿음은 하늘나라 가는 첫걸음이요, 신앙생활의 기본입니다.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믿고, 예수님을 내 구주로, 성령님을 내 삶의 인도자로 믿으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믿음은, 금보다 더 귀한, 내 통장에 예금보다 더 귀한 재물입니다. 믿기를 바랍니다.
영국 속담(俗談)에 “하루를 행복하게 살려면 이발을 하고, 일주일을 행복하게 살려면 결혼을 해라. 한 달을 행복하게 살려면 말(horse)을 사고, 일 년을 행복하게 살려면 새집을 지으라. 그러나 평생을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정직한 사람이 돼라.”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정직한 사람이 되려고 하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첫째. 믿음이란?
1. 예수님을 환영하여 내 구주로 영접하는 것
요한복음 1:11~12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친정어머니가 찾아오셨을 때, 딸이 대문을 활짝 열고 친정어머니를 환영하여 집안으로 모셔 들인 것처럼,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환영하여 영접한 것처럼, 갈릴리 해변에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라고 할 때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따른 것처럼, 예수님을 환영하여 내 구주로 영접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주님! 나는 주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이렇게 못난 사람, 실수 허물투성이인 사람, 이렇게 의지가 약하고 외로운 사람은 한순간도 주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주님이 내게 오심을 환영합니다.”하면서 주님을 내 인생의 구세주, 내 인생의 주인으로 환영하여 영접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2.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을 주님께 맡기는 것
디모데후서 1: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아무리 근심, 걱정, 고민해도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내가 환영하여 구주로 영접해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내가 걱정하고 근심하며 고민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방향으로, 훨씬 더 나은 방향으로 해결해 주실 줄 믿고, 내 근심, 걱정, 고민, 내 자녀들의 장래, 내 남은 운명, 불가능한 일을 주님께 완전히 맡겨버리는 것, 위탁해 버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자식 취직을 부탁하려고 해도 상대방이 누군지 알아야 부탁할 텐데, 하물며 내 근심, 걱정, 고민, 내 자녀들의 장래, 내 남은 운명, 불가능한 일을 주님께 맡기려면 주님이 누군 줄 잘 알아야 맡길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면서도 인간이시고 인간이면서도 하나님이신 주님을 얼마나 잘 아십니까?
한번은 민족 대표 33인이기도 한 길선주(吉善宙, 1869~1935) 목사님이 기차 여행할 때입니다. 마주 앉은 청년들을 가까이 가서 쳐다봤더니 청년들이 먼저 말을 건넸습니다. “선생님! 어디에서 오십니까?” “저, 평양이오.” “그럼 혹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예, 나도 믿지요.” “그럼, 평양의 유명한 목회자요 부흥사인 길선주 목사님을 아십니까?” “예, 내가 잘 알지요.” 이 청년이 길선주 목사님을 바로 알고 있습니까? 아니면 소문만 듣고 이름 석 자만 알고 있는 것입니까? 이렇게 알아도 길선주 목사님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까?
묻습니다. 내가 주님을 안다고 하면서 강단에서 목사님 설교로 주님께 대한 소개만 받았지 만나보지를 못해서 길선주 목사님에게 길선주 목사님을 잘 아느냐고 묻고 있는 격으로 주님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하기에 그리스도인은 소문만 듣고 소개만 받았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번 집회는 주님을 만날 절호의 기회입니다. 주님을 만나 보면 주님은 내 근심, 걱정, 고민, 내 자녀들의 장래, 내 남은 운명, 불가능한 일을 맡아서 충분히 해결해 줄 분이십니다.
시험, 걱정, 괴로움 없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농사지어 곡식 천석(千石)을 거둬들이는 천석꾼에게는 천 가지 걱정이 있고 만석(萬石)꾼에게는 만 가지 걱정이 있는 법입니다. 부질없이 낙심 말고 주님께 아룁시다. 주님은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좋고 훨씬 더 나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이렇게 내 모든 것을 주님께 온전히 맡겨 의탁하고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에 옮기는 것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누가복음 5:1~11 “...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그리스도인으로 성경을 많이 읽은 것은 참 잘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었어도 그 말씀을 실천하지 않으면 그것은 성경 지식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남보다 오래전부터 믿은 것은 참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 믿었어도 그동안 말씀을 실천하지 않으면 그것은 신앙 연륜이고 경험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으며, 깨닫고, 믿으며, 가르치는 대로 실천에 옮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시골에서 6개월 정도 교회를 잘 나오던 청년이 하루는 담임 목사님을 찾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제 이 교회 그만 나오겠습니다.” 청년이 찾아와 이렇게 나올 때 우리들은 “왜 그러세요? 지난번 일로 섭섭해서 그러지요. 그래도 이해하고 참고 잘 나오세요.”라고 얼마나 권면하고 붙들겠습니까? 그런데 미국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그렇게 하세요. 그런데 부탁이 하나 있소. 집으로 가는 길에 산 밑에 살고 계신 할머니에게 오늘 내가 심방 가기로 약속했는데 못 가게 됐으니 이 돈으로 사과 한 상자 사서 전해 드릴 수 있겠어요?” 그러자 청년은 목사님과 그렇게 하기로 약속하고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청년은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고 할머니 집을 찾아갔습니다. 대문 앞에 놔둔 사과 상자를 할머니가 모르실 것 같아 다시 대문을 노크(knock)하니 할머니가 나왔습니다.
사람이 그리웠던 할머니는, 청년을 보자마자 하나님이 보낸 천사가 찾아 왔다고 반가워하시더니, 청년 손을 붙잡고 방으로 들어와 사과를 깎아 놓고, 먼저 할머니가 청년의 장래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미혼인 이 청년, 3대 4대째 예수님 잘 믿는 가정에서 믿음 좋은 처녀를 만나 행복한 새 가정을 이루게 해 주시고, 좋은 직장 주셔서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시며, 신앙생활도 최고로 잘해서 우리 교회에 큰 기둥 같은 보배로운 일꾼이 되게 해주시옵소서.”라고 우주적인 축복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그러더니 “심방 오신다는 목사님은 못 오시고 내가 지금 아파서 며칠째 누워있는데 이 늙은이를 위해 기도해 달라.”라고 청년에게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예수님 그만 믿겠다고 목사님하고 작별인사하고 가는 마당에 무슨 염치로 주님을 찾고 기도가 나오겠습니까? 청년의 기도가 시작되지 않으니 할머니가 주여! 주여!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이 “주여!” 한마디 해놓고 식은땀을 줄줄 흘리더니 청년 마음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집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다시 목사님을 찾아 왔습니다. “목사님!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묻습니다. 믿음을 완전히 상실한 그 청년이 어떻게 이렇게 회복하게 됐습니까? 물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할머니를 만났고, 할머니 기도에 감동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과 한 상자 사다 드리라는 목사님 말씀을 실천에 옮기다가 결국, 쏟아버린 믿음을 회복했습니다. 물론 할머니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할머니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목사님의 부탁을 받고, 함께 심방하다가, 예배 시간에 맞춰 교회 차량을 운행하다가, 노방전도를 실천에 옮기다가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겨나고 말씀을 실천할 때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둘째. 믿음의 구분
1. 본질적인 면에서 믿음의 구분
(1) 선물의 믿음
선물의 믿음이란, 누구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예수님을 환영하여 내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구원을 선물로 받는 믿음입니다.
에베소서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리스도인이 받은 구원(救援)에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1. 과거에 이미 이루어진 구원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내 구주로 영접한 순간 죄(罪)를 용서받는 구원입니다. 여기서 죄는 우리 조상 적부터 지은 죄, 내가 과거에 지은 죄, 내가 현재 짓고 있는 죄, 내가 미래에 지을 실수까지 다 용서받았습니다. 죄사함은 이미 과거에 이루어진 구원입니다. 이 믿음에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2.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구원입니다. 예수님을 내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과거의 죄는 용서받았지만, 오늘을 살아가면서 사건, 사고, 시험, 손해, 실패, 이별, 불행 등 만날 것은 다 만납니다. 당할 것은 다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것에서, 죄에서 구원받은 나를 건져주시고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이것이 현재 이루어져 가고 있는 구원입니다. 그러하기에 구원받은 성도는 어떤 일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낙심하거나 자살(自殺)하려는 생각은 금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에서도 건져주시고 일으켜 세워주시기 때문입니다.
3. 미래에 이루어질 구원입니다. 이렇게 살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 영원한 천국,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구원입니다. 이 구원만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옛날에는 권세 가진 사람들이 떵떵거리고 살았고, 지금 자본주의 시대에는 돈 많은 사람이 떵떵거리고 삽니다마는 머지않아 주 예수님 다시 오시면 믿음 가진 사람만이 구원받습니다. 대한민국 초기에 자유당 시절에는 자유당에 붙어있는 자들이 출세했고, 공화당 18년 반 동안에는 공화당에 붙어있는 자들이 출세했지만, 머지않아 주 예수님 다시 오시면 주 예수님 믿는 자만이 구원받습니다. 그러므로 시대 말의 최고의 유산은,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선물의 믿음입니다. 구원받은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할렐루야!
(2) 은사의 믿음
구원받은 성도가 사모하여 부르짖고 체험하여 역사가 일어나는 믿음입니다.
로마서 12: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고린도전서 7: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어느 찬양 대원이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중학생 때 정조를 잃었고, 고등학생 때 임신을 경험했으며, 대학생 때 낙태 수술을 몇 번 했습니다. 찬양대는 습관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부흥회 통성기도 시간에 강사님이 안수 기도를 하려고, 기왕이면 찬양 대원부터 하려고 갔더니 모든 대원이 두 손을 들고 사모하면서 부르짖고 있는데 글쎄 이 찬양 대원은 핸드백을 열더니 립스틱(lipstick)을 꺼내서 바르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강사님이 안수기도하신다고 머리에 손을 얹었으니 이 찬양 대원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 순간 강사님 입에서 책망이 튀어 나왔습니다. “빛도 없는 것, 생명도 없는 것, 향기도 없는 것, 예수도 없는 것, 회개하라.”라고 하자 그 책망의 말씀이 비수처럼 꽂혀 아악! 하면서 가슴을 치며 꼬꾸라져 회개하자 랄랄랄라 방언이 터졌습니다. 유창한 방언이 터졌습니다. 그다음 집회 시간부터 태도가 달라져 얼마나 참여를 잘하는지 그 집회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방언, 이것이 은사입니다.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믿음을 세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하나님을 통해서 주시는 근본의 믿음이 있습니다. 근본의 믿음이란 세상 모든 사람이 세상 살아가는 데 필요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받는 구원의 믿음이 있습니다. 구원의 믿음이란 예수님을 내 구주로 영접한 자가 구원받아 천국 가게 하는 믿음입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받는 능력의 믿음이 있습니다. 능력의 믿음이란 사모하는 자에게 은사를 체험하게 하여 사명 감당하고 승리하며 살아가게 하는 믿음입니다.
지혜, 지식, 영 분별, 방언, 예언, 통역, 믿음, 신유, 능력의 은사(고전 12:8~10)로 무장하여, 나를 이기고, 악한 환경과 세상을 이기며, 마귀와 사탄을 이기고, 질병과 이단을 이기고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2. 내용적인 면에서 믿음의 구분
(1) 산 믿음과 죽은 믿음
여러분! 송사리하고 고래하고 싸우면 누가 이깁니까? 그렇다면 살아있는 송사리와 죽은 고래하고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생각해보십시오. 이 건물만 한 고래라도 일단 죽으면, 칼로 토막을 내도 아프다는 아무런 감각이 없습니다. 죄를 지어도 아무런 감각이 없습니다. 주보에 대표기도, 안내위원이던데 감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한 마디가 없습니다. 이것이 죽은 믿음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건물만 한 고래라 할지라도 일단 죽으면,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떠밀려 다닙니다. 가고 싶은 데로 가질 못합니다. 그래서 어디까지 떠밀려 갑니까? 용하다는 점쟁이 집까지, 타락하는 자리까지 떠밀려 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죽은 믿음입니다.
그런데 살아 있는 송사리 좀 보십시오. 흙탕물에서 놀지 않습니다. 물결치는 대로 떠밀려가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송사리는 몸부림치면서 깨끗한 물줄기를 찾아 나옵니다. 주일예배 시간이나 집회 시간에 세상 유행에 떠밀려가지 않고, 은혜의 물줄기를 찾아 은혜 자리에 참석한 것은, 믿음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는 믿음 가진 것을 축하드립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산 믿음이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야고보서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2) 큰 믿음과 작은 믿음
마태복음 14:31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살다 보면 TV, 신문, 안 믿는 남편, 친구들한테서, 어떤 교회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더라. 어떤 목사님, 어떤 장로님이 이랬다더라 하고 내 귀에 별별 소리가 다 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때 “그랬어. 그런 일이 있었어. 그 권사님, 그 장로님, 그 목사님이 그런 사람인 줄 몰랐어. 그럼 나 그 교회 못 나가.”라고 의심하고 낙심하면서 교회를 나가니 못 나가니, 사명을 감당하니 못 하니 한다면 이것이 곧 작은 믿음입니다. 이런 사람한테 무슨 일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살다 보면 내 눈으로 험한 꼴을 볼 때가 있습니다. “저런 꼴은 안 봤어야 하는데...” 그런데 봐서는 안 될 험한 꼴을 눈으로 다 보았는데도, 의심하지 않고 낙심하지도 않으면서, 내 자리를 지키고 내 교회, 내 목자를 지키는 것이 큰 믿음입니다. 이 큰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사명을 받아도 큰 사명을 받고, 큰 사명을 잘 감당해야 복을 받아도 큰 복을 받습니다.
마태복음 15:28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내 인생의 환난 날, 풍랑을 만난 날에도, 예수님 부인하지 않고 내 자리를 굳게 지키는 것이 질적으로 큰 믿음입니다. 큰 아들이 죽었다고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 하나님은 안 계신다.”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부인하는 권사님이 있습니다. 장사하다가 손해 좀 봤다고 교회를 떠난 집사님이 있습니다. 이것이 곧 작은 믿음입니다.
물론 양적으로는 금식 열흘 한 것보다는 30일, 40일 한 것, 전도를 한 명 한 것보다는 열 명, 스무 명 한 것, 십일조 10만 원 한 것보다는 100만 원, 천만 원 한 것이 양적으로 큰 믿음입니다. 그러나 질적으로 큰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내 귀에 별별 소리가 다 들리고, 내 눈으로 험한 꼴을 다 봤는데도,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의심하지 않고, 나 자신이 낙심하지도 않으면서, 내 믿음을 지키고, 내 자리, 내 교회, 내 목자를 굳게 지키고 내 사명을 한결같이 감당하는 것이 곧 큰 믿음입니다. 대장부 믿음입니다.
여러분! 기왕에 예수님 믿으면서 옳게 믿읍시다. 바르게 믿읍시다. 크게 믿읍시다. 상 받게 믿읍시다. 복 받게 믿읍시다. 믿는 자는 그 믿음대로 표적(表迹)과 기사(奇事)가 따릅니다.
(3) 자라나는 믿음,
데살로니가후서 1: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자라나는 믿음은 의무를 마땅하게 감당함으로 성장하는 믿음입니다.
(4) 구원받을만한 믿음
사도행전 14:8~10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구원받을만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 성공하는 믿음입니다(행 17:10~12).
(5) 거짓 없는 믿음
디모데후서 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거짓 없는 믿음은 진실하고 정직한 믿음입니다.
(6) 보배로운 믿음
베드로후서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보배로운 믿음은 사나 죽으나 주의 것(롬 14:8)이요,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고전 10:31)을 위한 믿음입니다.
(7) 온전한 믿음
히브리서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온전한 믿음은 도저히 용서 못 할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8) 파선한 믿음
디모데전서 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파선한 믿음은 신앙 양심을 버리고 타락한 믿음입니다.
셋째. 선진(先進)들의 믿음의 특색
1. 아벨의 감사 잘하는 믿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데, 형 가인은 쉽게 말하면 농사지어 알곡은 제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북지, 북데기 털어 하나님께 제물로 바쳤습니다. 하나님은 노 코멘트(no comment), 한마디 말씀도 없었습니다.
여러분! 내가 바친 헌금을 하나님이 어떻게 받으셨는지 나 자신이 알 수 있습니까?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때 하나님께 바치기는 바쳤는데 나 스스로 좀 약소하고 낯이 부끄럽다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바치고 나서 내 마음이 그렇게 기쁘고 즐거울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도 내가 바친 헌금을 기쁘게 받으셨다는 증거입니다. 내 양심은 하나님이 주신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동생 아벨은 ‘천지 창조’ 영화에 보면 아내와 함께 하나님께 바칠 제물로 깨끗한 양을 골라 양의 첫 새끼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자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을 받았습니다.
히브리서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이 일로 아벨은 형 가인의 시기를 받아 들판에서 죽었지만, 하나님은 아벨 대신에 셋이란 아들을 주셨고, 셋의 후손 가운데 다윗 왕이 태어났으며,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습니다.
여러분! 감사 생활 지성스럽게 잘하면 끝이 쭉쭉 펴져 나갑니다. 출산하고, 백일, 돌, 생일, 결혼, 환갑, 칠순, 팔순, 입학, 졸업, 취직, 승진, 퇴직, 입대, 제대, 여행, 건축, 새집 구매, 이사, 장례, 추도, 대심방, 세례, 부활절, 성탄절,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부흥회 때 지성스럽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제물 위에 응답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출애굽기 20: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바칠 제물로는 소, 양이나 염소, 비둘기 새끼, 곡식 빻은 가루를 드렸습니다. 감사헌금은 액수가 기준이 아닙니다. 자기 형편대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둘기 새끼를 바쳐야 할 형편인데 정성껏 소를 준비해서 제물로 드리면 하나님은 그 제물로 소를 받으시고 “너는 비둘기를 바칠 형편밖에 안 되는데 소를 제물로 준비해서 바쳤으니 앞으로 소를 바치고 살 수 있도록 네 삶을 보장해주마.” 이것이 감사헌금입니다. 아벨은 감사 잘하는 것이 그 믿음의 특색이었습니다.
2. 에녹의 자신을 정복하는 믿음
에녹은 365세를 사는 동안에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창세기 5:21~22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同行)했다는 말은 에녹은 하나님 안에, 하나님 안에 에녹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철저한 자기 정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힘든 것 중 한 가지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일입니다. 자신의 감정과 싸워서 이기는 것입니다.
머릿속에 교만을 정복하고 겸손(謙遜)해야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귀속에 의심(疑心)을 정복하고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혀 밑에 거짓을 정복하고 진실(眞實)해야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뼛속에 게으름을 정복하고 부지런해야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살 속에 음욕(淫慾)을 정복하고 정결(淨潔)해야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핏속에 혈기(血氣)를 정복하고 온유(溫柔)해야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허파 속에 위선(僞善)을 정복하고 안과 밖, 겉과 속이 일치(一致)해야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쓸개 속에 고집(固執)을 정복하고 관용(寬容)할 줄 알아야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오장육부(五臟六腑) 속에 탐심(貪心)을 제거하고 분수(分數)를 알아야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여러분! 할 말은 많아도 참는 것이 성도고, 성질은 있어도 부리지 않는 것이 성도며, 혈기는 있어도 내지 않는 것이 성도입니다. 에녹은 자신을 정복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그 믿음의 특색이었습니다.
3. 노아의 인내하는 믿음
노아는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 한 마디에 100년 이상을 참고 견디면서 방주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준행했습니다. 그런데 방주를 다 짓고 난 후 노아의 여덟 식구가 방주에 들어가자마자 비가 쏟아진 것 아닙니다. 홍수가 날 것을 믿고 방주 안에서 무려 7일을 기다렸습니다. 그리하여 40일 홍수로 당시 숨 쉬는 인간과 동물이 다 죽고 다 망했는데도 방주에 들어간 노아의 여덟 식구는 구원받았습니다.
창세기 7:9~13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달 열이렛날이라.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곧 그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인내라는 헬라어에 두 단어가 있습니다. 먼저는 휘포모네(ὑπομονή)입니다. 비인격적인 상황에서 잘 참는 것이 휘포모네입니다. 날씨가 좀 추워도 더워도 잘 참고, 배가 고프고 시간이 지루해도, 아파도 잘 참는 것이 휘포모네입니다. 다음으로 마크로뒤메오(μακροθυμέω)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잘 참는 것이 마크로뒤메오입니다. 특별히 그 못된 인간 앞에서 잘 참고 견디면서 자기 페이스(pace)를 지키고 흔들림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휘포모네도 귀하지만 마크로뒤메오가 필요합니다.
서울 관악구에 소재한 예배당을 건축할 때입니다. 예배당 2층이 올라가는데 교회 뒷집에 사는 시청 직원이 술에 만취가 되어 담임 목사님을 찾아 왔습니다. 대뜸 “우리 집 앞에 이렇게 예배당을 높이 지으면 우리 집을 어떻게 팔아먹으란 말이오.”라고 대들더니 담임 목사님 멱살을 잡고 흔들어 댔습니다. 이 꼴을 작업하는 인부들, 교인들, 사모님이 보고 있었습니다. 유도 유단자였던 목사님이 나중에 그러셨어요. 술에 만취했고 왜소해서 한주먹감도 안되더라고. 그런데도 목사님은 멱살이 잡힌 대로 끌려다녔습니다. 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순간입니까?
얼마 후 예배당을 다 짓고 헌당식을 마친 어느 주일입니다. 새가족이 등록했는데 글쎄 목사님의 멱살 잡고 흔들어 대던 그 시청 직원이 등록했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나중에 세례를 베푸는데, 목사님 멱살 잡아끌다가 교인이 된 시청 직원 머리 위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데 얼마나 마음이 흐뭇한지 그 수모를 참고 참았던 목사로서 보람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이왕 참는 김에 조금만 더 참읍시다. 노아는 인내하는 것이 그 믿음의 특색이었습니다.
4. 아브라함의 순종하는 믿음
창세기 12: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창세기 21:10~14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창세기 22:2~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라고 하면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과학은 알고 나서야 가는 것이고 믿음은 알지 못하는 곳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라고 하면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았습니다.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바치라.”라고 하면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쳤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아닙니다. 못합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도해보겠습니다.”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철저한 순종이요, 아멘입니다.
아들 셋을 키운 어머니가 있습니다. 아들들이 장성하자 어머니를 챙기는데 툭하면 용돈 잘 보내준 아들도 고맙고, 철 따라 옷 잘 사주고 식품을 택배로 잘 보내준 아들도 더없이 고맙지만 그래도 어머니 말끝마다 “예! 어머니, 알았습니다. 하겠습니다.”라고 순종하는 아들이 어머니 마음을 제일 기쁘게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순종하는 믿음이 하나님을 제일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하는 것이 그 믿음의 특색이었습니다.
5. 사라의 기적을 체험하는 믿음
창세기 18:1~14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아브라함의 장막에 하나님이 나타나시니 아브라함이 달려 나와 영접하고 부인 사라는 기름진 송아지를 잡아 급히 요리하여 대접했습니다. 내 집에 아무리 귀한 손님이 오셨기로 송아지를 잡을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정육점에 가서 소고기 몇 근 사 오기가 쉽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사라는 기적을 체험할 믿음을 이미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내년 이맘때에 아들을 낳으리라.”
이 말을 들은 사라가 “내 나이 90이 되어 경수도 끊어졌는데 어떻게 아들을 낳겠습니까?”라고 하하하 웃으니 “사라야. 왜 웃느냐? 하나님께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 그런데 사라의 배가 불러오더니 결국,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이 이삭입니다. 기적의 믿음을 갖고 있으면 기적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서울 성동구 왕십리 어느 교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젊은 부인이 집회 시간마다 앞자리에 앉아 울며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아보고 싶어 하나님을 사모하는 부인 아닙니까? 1년 후 그 강사님이 제2한강교회에서 밤 집회를 마쳤는데 그 젊은 부인이 강사 방을 노크했습니다. “강사님! 땀에 젖은 강사님의 러닝셔츠(running shirts) 구하러 왔습니다.” “어디다 쓰려고 그러십니까?”
“저는 결혼한 지 7년 됐습니다. 남편이 독자인데 자식이 없습니다. 내 남편은 고려대학교 대학원을 나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 성모병원에 가보았으나 둘 다 자녀를 낳을 수 없다고 최종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집회에 참석하면서 은혜를 받다 보니 능력 있는 목사님 러닝셔츠라도 깨끗하게 빨아 내 남편에게 입히면 강사님의 능력이 내 남편에게 임하여 아들을 낳을 것 같아 왔으니 허락해주시기 바랍니다.”
얼마 후 어느 교회 집회 중인데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출산하려고 하는데 강사님 기도 받고 싶다고 해서 러닝셔츠 준 죄로 집회하는 교회 여전도회장과 함께 산부인과를 찾아갔더니 출산 직전이라 의사들이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하나님! 기왕이면 순산케 해 주시고 아들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돌아왔습니다. 교회에 돌아오니 아들을 낳았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아들 백일잔치에 초대받고 갔더니 “네가 기도해서 낳은 예수 새끼라매”라고 하면서 남편 동료 친척들이 기뻐 어찌할 줄을 몰라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기적은 있습니다. 지금도 기적은 일어납니다. 이 집회가 그런 집회요, 그런 기적의 주인공이 됩시다. 사라는 기적을 체험하는 것이 그 믿음의 특색이었습니다.
넷째. 믿음의 결과
1. 구원을 받습니다.
사도행전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에베소서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베드로전서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2.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고린도후서 6:17~18 “...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3. 죄인이 의롭다, 의인이다 라고 인정을 받습니다.
로마서 4:9 “...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로마서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4. 기도 응답을 받습니다.
마태복음 21: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마가복음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5. 표적이 뒤따릅니다.
마가복음 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6. 성경에 약속한 복을 받습니다.
창세기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누가복음 1:45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요한복음 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여러분! 뭐니 뭐니 해도 돈, 돈 해도 믿음이 제일이요, 믿음이 최고입니다. 상인은 상식으로 살고, 학자는 학식으로 살고, 지식인은 지식으로 살고, 서양 사람 양식으로 살고, 일본 사람 일식으로 살고, 한국 사람 한식으로 살고, 어른들은 음식으로 살고, 아이들은 간식으로 살지만, 성도들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물질세계에서는 물질이 최고라지만 믿음의 세계에서는 믿음이 제일입니다. 믿음이 최고입니다. 그렇습니다. 큰 믿음 얻기 위해 기도하고 큰 믿음으로 사명을 감당합시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말입니다.
마태복음 15:28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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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행복은 남에게 나눠 줌으로써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나눔으로써
채워지는 신비로운 것입니다. 베푸는 만큼 행복의 양도 그만큼 많아 집니다.
오늘 하루도 주위 사람들에게 베푸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