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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하나님이여 일어나시옵소서
본문성경:사30:18-19
서 론 오늘 본문의 말씀 속에서 성도님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하는 중심의 말씀은 18절입니다. 18절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말씀 하시되 기다리시는 하나님과 일어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말씀을 하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일어나시는 이유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기 때문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이 일어나신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누워 계시다가 벌떡 일어난다는 뜻입니까 ? 아니면 의자에 앉아 계시다가 일어나신다는 뜻입니까 ?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신데 결코 주무시거나 앉아 계시다가 일어난다는 말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일어나신다는 말은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합니까?
다시 본문을 유심히 보십시오. 너희를 불쌍히 여기려 하심이라는 말이 중요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눅 15:11절 이하의 탕자의 비유의 말씀을 보면 둘째 아들이 탕자인데 이 아들이 자기 분깃의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을 하다가 거지가 되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 탕자의 아버지가 먼 거리에서 오는 자기의 작은 아들을 알아보고 그 아들을 측은히 여겨, 다시말해 불쌍히 여겨 달려가 ①목을 안고 ②입을 맞추고 ③좋은 옷을 입히고 ④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⑤발에 신을 신기고 그리고 ⑥살찐 송아지를 잡아 그 아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는 그 아버지의 행위가 하나님이 일어나신다는 말에 적당한 해석이 될 것 같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된 우리들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배은망덕하게 살고 내 마음대로 살고 내 고집대로 살고 내 뜻대로 살고 내 욕심대로 살고 내 혈기대로 살은 무가치한 존재들인데, 결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다시 사랑하시며,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를 축복하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하나님이 일어나신다는 뜻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 우리들의 삶과 우리 교회도 하나님이 잠잠히 계시면 안되고 하나님이 일어나셔야만 됩니다. 이것을 정말로 절감해야 됩니다. 하나님이여 일어나시옵소서 ! 하나님이여 잠잠히 계시지 마시고 일어 나시옵소서! 시22:1에 다윗의 부르짓음 나의 하나님---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 신음하는 소리를 ---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고 일어나시기만 하신다면 반드시 형통한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병든 자에게 일어나 찾아오신다면 한순간에 치료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일어나 찾아오시어 우리 가운데 운행하시고 행하신다면 교회의 영광이 나타나고 큰 부흥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도시와 이 민족 위에 일어나 역사 하신다면 이 도시와 민족위에 대 부흥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1. 하나님을 일어나게 합시다. 하나님을 일어나게만 하신다면 위대한 역사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잠잠히 계시게 하지 않고 우리들의 삶과 우리들의 역사속에 개입하게 할것인가? 이 문제를 가지고 우리들은 고민해야 됩니다.
이미 성경은 우리들에게 답을 다 주었습니다. 본문에 하나님이 긍휼히 여긴다는 말씀처럼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나를 보실 때에 불쌍히만 보신다면, 하나님이 나를 측은히 보시고 하나님의 동정심만 발동하신다면 분명코 하나님이 일어나시어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 나인성 과부가 독자를 잃고 슬피 우는 것을 불쌍히 여기사 울지말라 하시 고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므로 죽은 자가 일어났습니다. ∙ 베데스다 못가의 38년된 병자를 불쌍히 보시고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말씀하셨습니다. ∙ 빈 들판의 먹지 못한 무리를 불쌍히 보시고 5병2어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 큰 무리가 목자없는 양같음을 불쌍히 보시고 가르치시고 병인을 고쳐주셨고 ∙ 일만 달란트의 빚을진 자가 빚을 갚지 못함을 불쌍히 보시고 탕감해 주셨습니다. ∙ 소경 바디매오도, 귀신들린 딸을 둔 가나안 여인도, 아들이 간질하는 아버지 도 한결같이 예수 앞에 나와서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구하므로 응답 받았습니다. 성경에는 너무나 많은 곳에 주님이 불쌍히 본 사람은 그냥 지나쳐 가지 아니하시고 걸음을 멈추시고 그들의 소원에 모두 응답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과 나를 하나님이 보실 때에 불쌍히 보실까요? 과연 여러분들을 보시고 긍휼히 여기실까요? 옛날과 같이 지금도 주님께서 나를 불쌍히만 보신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을 자를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1) 하나님이 일어나기 까지 하나님을 기다리는 백성입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보다 생각하고 결정하고 일어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어나실 때 까지 인내로 하나님만 기다리는 성도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 하나님은 얼마나 기다렸습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보내기까지 기다렸습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은 참고 기다렸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기다리십니다. 주님이 재림하시고 당신의 왕국을 세울 때 까지 지금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은 사망권세를 뚫고 부활로 일어나셨고, 다시금 재림으로 일어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온전히 그 하나님을 기다리지 못합니까?
조급하게 생각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이 바꾸어지고 변덕을 부리고 실망을 하고 낙심을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은혜를 받은 지가 언제인데 며칠을 못 이기고 금방 조급증 환자로 바꾸어져 버립니다. 하나님을 기다리십시다.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보실 때 까지 기다립시다. 여러분의 삶에 문제가 있습니까?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립시다. 교회의 문제가 보입니까? 그 문제를 내가 할 수 없다면 하나님이 역사 하실 때 까지 소망의 하나님을 기다립시다. 교회의 진정한 부흥이 이루어 질 때 까지 하나님을 기다립시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때 까지 오직 하나님만 기다립시다. 하나님은 이와같은 성도와 교회를 불쌍히 보시고 일어나시어 역사하시고 응답하시고 축복하시고 열매를 반드시 주십니다.
두 번째 하나님을 기다리는 백성들의 모습을 본문에 더 구체적으로
2) 시온에 거하며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입니다. 시온에 거하며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만이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들로서 하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으므로 하나님을 일어나게 하십니다. 시온에 거하지 아니하고 예루살렘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가 아닙니다. 또한 주님의 긍휼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여 시온에 거하며 예루살렘에 거하는 자가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들입니까? 시온이나 예루살렘은 같은 의미로 그곳은 ∙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가 있는 곳이며 ∙ 율법과 약속이 있고 ∙ 성전과 제사가 있는 곳이며 ∙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와 영광이 있는 곳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땅에 있는 시온과 예루살렘은 어느 곳입니까? 교회는 영적으로 바로 시온이며 영적 예루살렘과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의 피로 세우신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피로산 주님의 교회생활을 기쁨으로 하시고 이곳에 거하는 삶을 기뻐하십시오. 교회 안에서 영적인 생활에 충만한 사람은 결코 다른 곳에 소망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을 떠나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우리들은 영적 예루살렘을 떠나면 안됩니다. 탕자가 아버지께 불쌍히 여김을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실패 후 그가 아버지의 집을 사모 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의 풍요로움과 아버지를 깊이 생각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서 품군으로라도 아버지와 함께 살겠다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므로 아버지가 그를 불쌍히 여기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시온에 온전히 거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2) 통곡하며 부르짖는 백성들입니다. 통곡하며 부르짖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다리는 진정한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기다리며 통곡하고 부르짖는 백성들을 결코 멸시치 않고 불쌍히 여기사 일어나 응답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오늘 우리들은 주님 앞에서 통곡하며 부르짖을 제목이 무엇인가 확실하게 아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주님 앞에 통곡하며 부르짖어 기도할 제목이 없습니까?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왜 나는 성령으로 살지 못하나? 왜 나에게는 능력이 나오지 않나? 왜 나는 영혼을 사랑치 못하며 전도를 못하나? 왜 나는 하나님께 나의 기도에 응답을 받지 못하나? 왜 나는 육신과 세상과 죄를 온전히 이기지 못하나? 왜 나는 끓을 것을 끓지 못하고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나? 왜 우리 교회가 부흥되지 못하나? (비판과 분석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나의 아픔으로 알고 통곡하며 부르짖는 성도가 되어야만 합니다) 이와같은 자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다리며 사는 성도입니다.
한나가 왜 통곡하며 부르짖고 기도했습니까 ? 단순히 자식이 없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자식 욕심이라면 사무엘 낳아서 하나님께 바치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민족의 아픈 현실을 직시하고 민족의 구원과 영광을 바라보고 통곡하며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아픔과 고통을 승화시키고 거룩한 욕망과 거룩한 분노로 바꾸어 애통하며 통곡하며 부르짖어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기적이 없음을, 역사가 없음을, 응답이 없음을, 열매가 없음을, 치료가 없음을, 하나님은 살아 계신데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치 못함을, 분히 여기고, 통분히 여기고, 원통하게 생각하고, 통곡하며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다리시는 하나님께서 언제까지나 기다리기만 하시지 않고 반드시 응답할 때에 일어나시어, 응답하시고 축복하시고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꼭 믿으십시오. 그리고 승리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결 론 하나님이요 더디 하지 마시고 나를 불쌍히 여기사 일어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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