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주요 갈등 레파토리 중 하나인 고부 갈등.
시어머니 vs 며느리의 대립 구도와
그 사이에 껴서 이도저도 못하는 아들(&남편)이 합주하는 이 비극적 심포니에서
이 모든 갈등을 지휘하는 중심축은 누구일까?
바로, "특정 유형"의 시어머니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엄마가 장성한 아들의 결혼 생활에까지 개입하려는 시어머니가 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아들은 그러한 어머니의 개입에 전전긍긍하며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못하는 걸까?
인에이블러 (Enabler)
배려와 도움이라는 것은,
그 수혜자가 기꺼이 바라고 고마워해야지만 빛을 발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변에서 원하지 않는데도 계속 뭔가를 해 주려고 하는 사람들.
난 집에서 밥을 안 해먹는데,
반찬을 만들어 왔으니 사양치 말고 받으라며 매번 반찬을 내미는 직장 동료.
항상 내 주위를 맴돌며,
필요한 거 없냐, 도와줄 거 없냐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직장 선배 등등.
물론 이러한 배려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접근이 내 영역을 침범하려는 시도처럼 느껴지면서
매우 신경 쓰이고 불편감을 유발시키는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즉, 누군가에게는 인에이블러의 친절이 오히려 과도한 개입이나 위협처럼 느껴지는 것.
마마보이나 파파걸은 인에이블러 부모의 개입으로 만들어집니다.
설혹, 마마보이나 파파걸까지는 아니라 해도,
이들이 장성하여 결혼하게 되면, 여전히 인에이블러 부모의 슬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죠.
인에이블러 엄마가 아들을 애지중지 키웠다고 가정해 봅시다.
누가 봐도 지극정성으로 케어했기 때문에,
아들은 그러한 엄마의 품이 갑갑함과 동시에
그래도 내가 한없이 사랑을 받은 존재임은 틀림없다는 생각이 각인됐겠죠.
인에이블러들의 무의식은
한없는 보살핌으로 완성시킨 최측근과의 유대감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평가합니다.
따라서, 장성한 아들이 내 슬하를 떠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려 할 때,
인에이블러 엄마는 심각한 정체성 위협을 느끼게 돼요.
내 자기가치감을 지탱하고 있던 중요한 관계가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으로 훼손되고 망가진다고 느끼는 거죠.
내가 어떻게 키운 아들인데, 너에게 주긴 아까워!
며느리를 향한 시어머니의 질투.
원래 질투란 나에게 향하던 관심이 다른 사람에게 나눠질 때 비롯되는 공격적 감정입니다.
어떡해서든지 다른 사람에게 나눠질 관심을 나에게 붙잡아두고 싶은 것.
이러한 공격적 감정이 며느리를 향하게 될 때,
바야흐로 한국 시월드의 매서운 시집살이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지극정성으로 아들을 키운 "인에이블러" 엄마
시어머니의 이해 못할 질투심에 경악함을 느끼는 며느리
어머니의 왜곡된 사랑을 배신할 수 없어 이도저도 못하는 아들
그렇다면, 인에이블러들이 관계에 집착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심리적 기제란 무엇일까?
① 관계의존적 자존감
→ 최측근과의 유대감이 어떠한가가 내 가치의 가장 중요한 평가 잣대가 됨
※ 관계에서 내가 중요한 역할(공헌)을 한다고 믿을 수록 자존감이 상승
보살핌의 본질이 인류애보다는 "자기애" 쪽에 더 가까움
② 구원자 정체성
→ 나 없인 아무 것도 안 돼, 결국 내가 다 해결해야 해 식의 신념
※ 어린 시절부터 가족 문제에서 해결사 역할을 맡아 왔거나,
감정적 돌봄을 담당해 온 경험이 반복되면,
"나는 돌보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굳어질 수 있음
③ 자기 회피
→ 관계에 몰입하면, 자기 자신의 문제를 마주하지 않아도 됨
※ 커리어가 끊겨 자아실현에서 멀어진 엄마가
자녀나 남편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자신의 현실에서 도피함
④ 왜곡된 사랑관
→ 보살핌과 개입, 자기희생이 곧 사랑이라고 믿음
※ "사랑은 곧 희생이야"
"내 자식이 상처받지 않도록 내가 모든 걸 다 해 줄거야".
이러한 신념으로 인해, 상대의 성장을 가로막는 행동을 하면서도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함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