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 오신다
세례란 죄 씻음을 의미한다. 물 세례 자체가 우리에게 하나님을 모르는 지식을
넣어줌으로써 죄를 씻음이 아니고, 물 세례의 의식은 하나님을 모르는
우리의 죄를 씻어주신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비유법의 세례" 인 것이다.
물이란 우리의 육신을 씻어주는 역할은 하지만 우리의 영에게는 아무 말을
해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례를 주실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했다.
성부의 창조자리는 일위 여호와 하나님의 자리이고(물세례),
성자의 창조자리는 이위 예수님의 자리이고(물세례)
성령의 창조의 자리는 삼위 재림 예수님(오늘의 새이름)의 자리이다(성령세례).
일위, 이위, 삼위가 모두 한분 인격체로써,
다만 한 분 하나님이 창조의 자리 셋을 갖는다는 뜻이며,
이 같은 하나님의 창조자리 셋을 모두 지식으로 알아야 하는 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모르는 우리의 죄를 씻는 진정한 세례(성령세례)가 된다.
일위 여호와 하나님은 구약의 마지막 주자 세례요한을 통해서 물세례를
주게 하셨고, 이위 예수님도 제자들을 통해 물세례를 주게 하셨다.
즉 모두 공허한 “율법적 세례” 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에 오실 삼위 재림주(새이름)는 한분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창조의 자리 셋이 각각 무엇을 뜻하는지,
지식으로 명백히 알려주시는 진정한 구원의 "성령세례" 가 된다.
일위 여호와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인데 아브라함에게 그 예표를 삼았다.
즉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예표했다.
아브람의 고향은 우상숭배의 도시 갈대아 우르이고 그 부친은 우상을 만드는
데라였다. 이는 곧 일위 여호와가 그와 같음을 뜻한다.
따라서 일위 여호와가 세상을 창조하신 면에서는 "빛의 하나님" 이
되시지만, 반면 그분에겐 동시에 우상(흑암)도 함께하는
"흑암의 하나님" 이 되심을 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빛의 하나님도 알아야 하고 동시에 흑암의 하나님이
되심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빛과 흑암이 함께한 "일원론의 하나님" 이
되셨던 것이다. 빛과 흑암이 함께한 일원론의 하나님이 자신 안에 있는
흑암부분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빛만의 하나님으로 존재하시기 위해
창조 6일이 걸렸던 것이기도 하다.
창조를 한다는 것은 빛으로의 창조요, 빛으로의 창조를 하실적 마다
자신 안에 있는 흑암부분과는 그만큼 결별하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란 항상 승리의 창조요, 승리를 위해 반드시 자신의 생명의 피를
쏟아내야만 했으며, 이천년전 예수께서 몸소 십자가의 피를 흘려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본이 되시고 창조의 원리를 깨닫도록 하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증거하다가 순교를 당한자들이
택함 받아서 오늘날 왕과 제사장반열로써 첫 열매, 혹은 첫째 부활자가
된다고 알려주고 있다(계20:4).
이같은 첫 열매, 첫째부활자들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진정한 "사람십일조" 인 것이다.
일위 하나님과 이위 예수님 때까지는 세례도 물세례라고 하는 의식을
치렀듯이 십일조도 그동안 의식의 십일조로서 물질적 소득의
십의 하나를 바쳤다.
그러나 이제 삼위 재림 때는 십일조의 본질이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신령한 사람십일조(십사만 사천인)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신령한
사람십일조 십사만 사천인은 재림 예수님(새이름)으로부터 창세부터
감추어진 비밀을 드러낸 진리의 새말씀으로 성령세례를 받을 자들이 된다.
그렇다면 이같은 신령한 사람십일조를 받는 자가 누구인가?
그는 멜기세덱이었다. 즉 오늘에 오실 새 이름의 삼위 재림 예수님이
멜기세덱이요, 사람십일조를 받으시는 분이다.
멜기세덱은 창14:18 에서 최초로 나오는데 갑자기
나타나신(자기 곳에서 돋아나신) 분이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적군으로부터 구해오게 될 때에 전리품 중에
십의 하나를 갑자기 나타난 멜기세덱에게 바치고 멜기세덱은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서 그에게 축복을 해주었던 것이다(창14:20).
(구약은 오늘날 실상에 대한 모형임을 잊지 마시길)
[창세기 14:18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시편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재림주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라고 알려주고 있다. 살렘 왕이란 평화의 왕이요,
떡과 포도주를 갖고 나오신 멜기세덱은 유월절 어린양의 최종 주인공임을
뜻한다(재림주).
즉 멜기세덱은 오늘에 오실 삼위 새이름(성령)을 뜻한다.
결코 초림 예수님을 뜻하지 않는다. 이위 초림 예수님은 말씀을 창세부터
풀어주신 일이 없고 오로지 비유로만 말씀해 주셨으며, 천국의 주인이심에도
천국비유만 잔득 베풀고 떠나가시며 다시 오시리라 했던 것이다.
초림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오늘의 재림 예수님, 즉 새 이름으로 오실 때
마침내 성경을 증거해 주시되 창세부터 그 비밀을 드러내신다고 했던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로고스 지식” 으로 알게 하시는 성령세례다.
성령세례를 주심으로 말미암아 택함받은 자들 십사만사천인이 탄생케
하시며 그들로 시온산에서 새 노래(진리의 새말씀)를 부르게 하신다(계14:1~).
따라서 오늘의 새 이름이신 재림주만이 십사만 사천인을 사람십일조로
받으시는 최종 오메가 하나님이 되신다.
그러나 바울은 이천년전 초림 예수님을 칭하여 멜기세덱의 반차로 오신
분이라고 뱀의 혓바닥을 놀려 가르쳤다. 즉 말씀을 비유로 주신
초림 예수님 때 이미 구원을 다 받아버린 완결편으로 규정했다.
이는 초기그리스도인 시대부터 자신들은 말씀을 다 깨달은 선이요,
불신자들은 지옥으로 떨어질 악으로 규정하는, 탐욕의 선악 분별심의
선악과를 따 먹고 있었다는 증거가 되고 있다.
바울은 서신서에서 초림 예수님을 십일조를 받는 멜기세덱으로 일컬어
[히 7:3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라고 했는데, 참으로 잘못된 가르침이다.
왜냐면 초림 예수님은 명백히 최초 6천년전 신자였던 아담으로부터
자자손손 족보따라 오신 분이며 그분의 출신지역과 지파와 자라나실 곳과
이름 등, 소상히 드러낸 족보따라 오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족보도 없고 운운했다는 자체가 삼류 코메디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림 예수님은 물질십일조이든 신령한 사람십일조이든 어떠한
십일조도 받으신 분도 아니다. 즉 초림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 오신 분이 절대로 아니고,
재림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 족보도 없고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이
갑자기 제 자리에서 스스로 돋아나서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분이다.
재림 예수님(새이름)이야말로 마지막 영생의 하이라이트를 이루시고
마지막 휘날레를 장식하기 위하여 그분 자신의 이름과 신분 등을 일절
감추어 오시는 천기로 알려주고 있는 게 성경인 것이다
(계2:17; 계19:12; 사49:2).
즉 새 이름의 재림 예수님은 전혀 족보따라 오실 수 없는 분이다.
심지어 이름까지도 알려줄 수 없기 때문에
[사62:2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라]
라고 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이름이 있으나 마지막 때 말씀을 받으신 오늘의
재림주는 자기의 이름을 숨기고 있다는 뜻에서
이름까지도 알려줄 수 없이 다만 “새 이름” 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름을 감춘다는 것은 자신이 재림주라는 그 신분을 감춘다는 뜻이다.
만일 그분의 족보와 이름과 신분이 드러나게 오신다면 악인들이
우글거리는 이 세상에서 첫열매(천국통치체)를 거두워 지상천국을 이루시는
일을 망쳐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어디로부터 왔다고 알려줌이 전혀 없이 갑작히 나타나서
아브람으로부터 십일조를 받으신 멜기세덱은 오늘에 오실 재림주의
새이름(성령) 을 예표하고 있다. 이렇게 갑자기 나타난 멜기세덱이야 말로
스가랴에 예언된 “순(나뭇가지, 혹은 싹) 이와 같은 모양으로 아래와 같다.
[슥6:12,13 고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 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位)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位)에 있으리니…]
라고 알려준다.
(여기서 “순” 은 그 이름의 뜻이 나뭇가지, 혹은 싹을 뜻한다. 오해의 소지가
있으므로 밝히는데 저의 이름은 끝 자가 공교롭게도 순이지만 맑을순(淳)자를 씀)
이렇게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라고 했다.
그가 어디서부터 근거하여 출발한다거나 시작한다거나 유입해 오는 게 아니고
자기 곳에서 (스스로) 돋아난다고 했으니,
이는 그가 마지막 때에 누군가의 성경해석을 모방하지 않고 성경을 파격적으로
독보적으로 증거하고 풀어내심을 뜻하며 족보따라 오시는 분도 아님을 뜻한다.
성경문자를 낱낱이 풀어내심으로 말미암아 수수천년 믿어온 형이하학의
문자성경을 폐하고 형이상학의 진리의 새 말씀을 세우시는 것이요,
무지한 종의 율법신앙을 자유인의 빛 밝은 논리신앙으로 신기원을
열게 되는 대혁명가적인 점이,
곧 옛 것과 단절하고 족보 없이 자기 곳에서 돋아난 것이 된다.
이분이 재림주이며,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오시는 오늘의 새 이름이다.
그러므로 초림주는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으나, 재림주는
어느 사람의 몸에서 태어나셨는지 조차 알려주고 있지 않고
완전히 감추어진 천기로 오신다.
새 이름이신 재림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오시는 이유에서다.
첫댓글 마라나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