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바꿀 수 있나
우리가 사주운명학을 공부함은 단순히 인간의 운명감정만을 보기 위함이 아니요 음과 양의 지배와 작용에 의해서 ‘끊임없이 운행하고 순환하는 우주와 자연계의 변화 법칙과 삼라만상의 변화 이치를 깨달음으로써 대자연의 진리를 거역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고, 마음을 수양하여 선과 악 그리고 정(正)과 사(邪)를 올바로 판단하여 진리에 순응케 함으로서 스스로의 자기를 발견하고 개개인의 타고난 분수를 알아서 자신들의 운명에 알맞는 방향을 설정하여 각자의 현실생활에 알맞게 응용함으로써 올바른 정신문명을 꽃피우고자 함에 그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수학자는 동양사상과 철학의 근본 뿌리인 음양오행의 이치를 공부하고 깨닫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며, ‘사주팔자는 바꿀 수 없지만 운(運)은 선택과 노력에 의해서 결정되어지는 것’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명(命)과 운(運)
과연 잘살고 못 사는 것이 사주팔자 탓일까? 아니면 마음먹기에 달렸을까?
사주운명학은 명(命)과 운(運)으로 분리한다.
‘운(運)이 나쁘다’라 말할 수는 있지만, 결코 ‘명(命)이 나쁘다’라 말할 수는 없다.
명(命)은 생(生)이요, 하늘로부터 인한 것이니 천명(天命)이며, 우리에겐 숙명(宿命)이요, 지나가버린 과거의 시간이다.
‘사주팔자(四柱八字)’는 태어난 생년월일시를 ‘육십갑자(六十甲子)’로 환산하여 기록한 것으로 이는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시간이요, 더욱이 생(生)과 사(死)는 인간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하늘의 뜻이기에 천명(天命)이요, 숙명(宿命)이니, 이를 우리는 명(命)이라 하며, 때문에 사주팔자(四柱八字)는 바꿀 수 없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운(運)은 명(命)과 전혀 다르다.
운(運)은 현재요 미래며 시간이다.
명(命)인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운(運)은 바꿀 수 있다.
운(運)은 현재요 미래며 시간이기 때문이다.
운(運)은 바로 지금 우리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현재와 미래는 선택에 의해 좌우된다.
운(運)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잘살고 못사는 게 타고난 팔자’가 아니라,
우리의 선택과 노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택은 필연의 씨앗이다’라 하는 것이다.
운(運)이 지나가면 명(命)이 된다.
현재와 미래가 지나가면 과거가 되기 때문이다.
운(運)이라는 시간에서의 나의 선택과 노력이 새롭게 명(命)이 되는 것이다.
운(運)이 ‘숙명(宿命)’이 되는 것이다.
현재와 미래의 시간인 운(運)이 인간의 선택과 노력에 의해 ‘숙명(宿命)’으로 변한 것이다.
이 ‘명(命)’을 우리는 ‘운명(運命)’이라 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운명(運命)이란 결국 우리의 선택과 노력의 결과인 것이다.
과거 우리는 참으로 배고픈 세월을 산 기억이 있다.
쌀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고 보리밥으로도 하루 세끼 끼니를 때우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던 그 시절!
때마침 박정희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을 주창하고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자'며 모두에게 팔을 걷어붙이게 했다.
그때 전국민에게 애창곡으로 불리워진 '팔도강산'이라는 노랫말 "잘 살고 못사는 게 팔자만은 아니더라. 잘살고 못사는 게 마음먹기 달렸더라"는 구절은 우리 모두에게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기적의 노랫말이었다.
‘운명은 팔자 탓이 아니요 마음먹기 달렸다’며 모두가 열심히 일한 덕분에 가난은 서서히 물러가고 이제 모두 하루 세끼 쌀밥을 먹게 되었으며 오히려 쌀이 넘쳐나 그 처리에 힘들어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면 된다'는 믿음과 소망이 세월이 지나자 국민 소득 2만불에 가까운 결실로 나타났으며 이를 우리는 민족의 저력이라 치부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요즘 태진아씨가 부르는 노래 동반자의 가사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잘살고 못사는 건 타고 난 팔자지만...."
다른 노래도 아니고 동반자란 가족 노랫말이 이런 엉터리 가사로 쓰여 있다. 그런 노래가 방송 전파를 타고 버젓이 들려온다. 참으로 한심하고 답답한 노릇이다. 잘살고 못 사는 것이 타고난 팔자라니...
기신(忌神)을 희신(喜神)으로 쓰라
잘살고 못사는 것은 타고난 팔자 탓이 아니요 마음먹기 달렸다. 부자도 흥청망청 살다 보면 순식간에 가난에 휩싸이게 되고 가난한 사람도 열심히 일하다보면 언젠간 가난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희신도 기신되고 기신도 희신되는 것이다.
삶의 형편이 넉넉하고 부요하여 아무런 부족한 것이 없고 늘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운명 상담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들은 늘 행운과 기쁨이 자신들과 함께 한다 믿기에 상담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남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고 애를 써도 형편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설상가상 계속 나쁜 일만 겹친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불행이 못난 사주팔자 탓이라며 운명을 저주하기도 한다.
금년의 당신 운이 희신이라 자만하지 말고 기신이라 낙망하지 마라. 자만은 자칫 패망을 부르고 낙망은 패배자와 낙오자의 습성이다. 운명은 선택이요 선택은 필연의 씨앗이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운명상담자는 피상담자에게 나쁜 운이 닥쳤을 때 그 액운을 빙자하여 돈 벌 목적으로 부적 따위를 사도록 권하지 말고 처방을 가르치라. 기신(忌神)이 나타나면 반드시 희신(喜神)은 숨어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통변(通辯)의 이치 아니던가? 그 희신을 찾아 실행에 옮기면 된다.
비겁(比劫)이 기신이면 재성(財星)이 희신 되고, 재성(財星)이 기신이면 비겁(比劫)이 희신 된다. 이것이 비겁쟁재(比劫爭財)의 법칙이다. 관성(官星)이 기신이면 인성(印星)을 쓰면 되고 인성(印星)이 기신이면 관성(官星)을 쓰면 된다. 이것이 관인상생(官印相生)의 법칙인 것이다. 모든 십상(十象)의 희신과 기신이 이러한 법칙으로 운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영원한 희신도 영원한 기신도 존재하지 않는다. 운이 좋다고 좋은 것이 아니요 운이 나쁘다고 나쁜 것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운을 바꾸는 방법은 바로 기신을 희신으로 쓰는데 있다. 운이 좋고 나쁨은 사주팔자 탓이 아니요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다.
첫댓글 좋으신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