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Enabler 다 -민영진 목사님
영어 낱말 중에 “인에이블(Enable)”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개를 격려하여 그가 가지고 있는 잠재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한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인에이블러(enabler)’는 그렇게 격려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이런 뜻에서 리더는 바로 인에이블러여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교회지도자는 교회의 구성원을 자기 뜻대로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잘 발휘하여 함께 세운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도록 격려하는 사람이다.
최근에 북한의 핵시설과 관련하여 ‘불능화(disablement)’ 라는 말이 쓰이고 있는데, 이것은 능력은 있지만 그 능력을 못 쓰게 만든다는 것을 뜻하는 표현이라고 한다.
흔히 유능하다고 하는 리더 중에는 동료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거나 그들의 점재능력을 발견하지 못할 경우에는 그들을 본의 아니게 불능화하는 잘못을 범할 수도 있다.
리더가 만능(萬能)일 수는 없다. 오히려 여러 면에서 그의 지도력에 따라 움직이는 다른 동료들이나 공동체 구성원에 비해, 리더는 구체적인 기술과 업무 능력이 부족하거나 심지어 다양한 전문적인 방면에는 무능할 수도 있다. 유능한 지도자에게 무능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무능한(?) 지도자에게 유능한 인재(人材)가 모여드는 것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새 시대를 위한 교회지도력’을 생각하다가 성서의 몇 구절이 생각났고, 그것을 패러디하여 묘사해 본다면 더욱더 실감이 날 것 같기에 감히 여기에서 시도해 본다.
목소리가 높고 떠드는 지도자 주변에서는 인재가 붙어 있지 못한다.
교회지도력에 적용해 볼 때도 마찬가지다.
목소리를 높여 공동체 구성원을 지배하려드는 지도자는 허장성세(虛張聲勢)일 수 있다.
높은 목소리는 자기 자랑이 아니면 남을 규탄하는데 쓰인다.
속빈 설교가 고성을 빌릴 수도 있다.
리더는 소리치거나
목소리 높이지 않으며,
바깥 거리에 그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는 사람이다
(사 42:2 패러디)
이런 사람은 집 안에서나 집 밖에서나 너무 조용한 사람이다. 소리가 없으니 그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알 수가 없다.
동료 중에 무능한 사람이 있다면 큰소리로 나무라거나 질책을 해서라도 깨우쳐야 하는데, 직무유기라고 할 만큼, 그는 그렇게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런 동료들을 다칠 세라 감싼다. 우연이 아니다.
리더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껴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다.
(사42:3 패러디)
다른 이들을 탓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묵묵히 담당한다.
매사를 공평무사(公平無私)하게 처리하려고 고심하고, 일이 잘 안 될 때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유능한 이들과 무능한 이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있는 공동체를 이루어내도록 이끈다.
공의를 실천하는 일이
아무리 어려워도
리더는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낙담하지 않는다.
끝내 세상에 공의를 세우고야 만다.
(사 42:4패러디)
리더의 외모에는 아무런 권위가 없다.
오히려 그 외양은 초라하다. 거드름을 피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안에 실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겉으로는 그런 것을 감추려고 한다.
리더는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
(사53:2 패러디)
리더는 밭에 씨를 뿌리고 그것이 자라는 것을 보는 농부와 같다.
리더는 씨를 뿌려 놓고
밤이 되면 자고
아침이 되면 일어나는 사람이다.
밤낮 자고 일어나는 사이에
뿌린 씨에서는 싹이 나고 자란다.
그러나 리더는 어떻게 일이 그렇게 성사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막 4:26-27 패러디)
리더는 행운이 따르는 사람이다.
리더가 아무리 집을 잘 세우려 해도
주님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을 세우는 사람의 수고가 헛되며,
리더가 아무리 성을 지키려 해도
주님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된 일이다.
리더가 아무리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잠자리에 든다 해도
하나님께서 해주시지 않으시면
사람들이 애써 하는 모든 수고는
다 헛된 일이다.
진실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리더에게는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
(시127:1-2 패러디)
교회공동체 안의 리더가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은 그대로 우리 교회가 사회를 향해서 가지는 지도력으로 이어진다.
과시하거나 정복하거나 위협하는 지도력이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소리 없이, 시위도 없이, 광고도 없이, 숨어서 섬기는 공동체로 머물러야 한다.
지금 한국의 교회가 개신교와 가톨릭이 함께 사회적으로 공헌하는 일이 객관적으로 볼 때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사회가 교회에 주는 신뢰는 과거 교회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던 초창기에 비해, 인구의 1/4이 교인인 현재가 그 비율만큼 신뢰도가 높아지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말세의 윤리가 사회에서 교회의 지도력을 생각하는 우리에게 어떤 통찰을 줄 것이다.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교회의 때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교회는
있을 때는 없는 것처럼 하고,
울 때는 울지 않는 것처럼 하고,
기쁠 때는 기쁘지 않은 것처럼 하고,
가졌을 때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하고,
세상을 이용할 때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처럼 하도록 하십시오.
(고전 7:29-31 패러디)
교회는 사회로 하여금 그 사회가 지닌 잠재력을 발휘하여
그 사회가 맡은 바 구실을 잘 해 나갈 수 있도록 격려하는 인에이블러로 남아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