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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한국고구마산업중앙연합회 제2회‘고구마의 날’
- ‘조엄기념관 개관’& 제2회 ‘고구마의 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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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시 : 2014년 11월 6일 ◦ 장 소 : 원주시 지정면 간현리 137-2 조엄기념관 ◦ 참석인원 : 약 300명 (고구마연합회원, 공무원, 풍양조씨 문중, 지역주민) ◦ 행사내용 - 제 2회 ‘고구마의 날’ 기념식 - ‘조엄기념관’ 개관식 - 고구마 품종전시, 고구마 시식코너등 운영 |
주최 사)한국고구마산업중앙연합회
주관 사)한국고구마산업중앙연합회, 원주시
후원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주)크리쉐프
원주시조엄고구마작목반연합회
Ⅰ. | 의 미 |
고구마 재배역사에 대한 국민관심 고취
고구마재배 251주년을 기념하며 고구마의 전래, 재배역사와 전래자인
영호 조엄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조엄기념관’의 개관을 축하하고 고구마 전래 역사에 대한 국민 관심 고취 ‘2014년’은 고구마 재배 250주년, 고구마 전래 251주년이 되는 해로 이에 대한 국민적 관심 고취
Ⅱ. | 조엄 과 고구마 |
조엄(1719년~1777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풍양, 자는 명서(明瑞), 호는 영호(永湖), 시호는 문익이며, 이조판서 조상경의 아들이다. 원주시 지정면 간현리에서 태어나 1738년(영조 14년)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면서 관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1752년 정시(庭試) 을과(乙科)에 급제하면서 사서(司書)·동래부사(東萊府使)·경상도관찰사·대사헌·이조판서·제학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한국 최초로 고구마를 재배하였다. 고종 때에 대왕대비였던 신정왕후 조씨의 증조부이기도 하다.
문장이 뛰어나 '해차록'과 해사일기 등 저서를 남겼으며 지방에 암행어사로도 나가는 한편 1760년(영조 36년) 창원·진주·밀양에 3개 지방에 조창의 증설을 건의함으로써 이제까지의 세곡 수송의 민폐를 덜고 공물 수납의 공정으로 국고를 충실히 하고 경제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하자 홍국영(洪國榮)이 조엄에게 벽파(僻派)인 홍인한(洪麟漢), 정후겸(鄭厚謙) 등과 결탁했다고 무고를 하면서 파직된다. 이들은 정조가 세손 시 대리청정을 반대했던 인물이다. 이때 평안도관찰사 재임 시절 받았던 부정혐의(토호세력들의 모함)이 다시 불거지게 되면서 평안도 위원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유배지에서 사약을 기다리던 중 아들 조진관의 상소로 죽음을 면하고 김해로 다시 유배되지만, 이듬해인 1777년에 병사한다. 향년 59세였다.
이후 아들 조진관이 일품계에 오르자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으로 추증되었고, 1814년에는 문익(文翼)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조엄과 고구마
조엄이 1763년 11차 통신사행의 정사로 임명되어 일본에 가던 중 쓰시마의 사스나포에서 처음 고구마를 보았다.
그의 사행일기인 '해사일기'에 고구마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쓰시마에는 먹을 수 있는 풀뿌리가 있는데…모양은 마 같은 것, 순무 뿌리 같은 것, 오이 같은 것, 토란 같은 것도 있어 형태가 일정치 않다. 잎은 마 잎 비슷한데 좀 더 크고 두꺼우며 약간 붉은빛이 돈다. 줄기 역시 마 줄기보다 크다. 맛은 마와 비슷하지만 좀 더 단단하다. 실로 찰기가 있어 반쯤 구운 밤맛 비슷하다. 날로도 먹고 구워서도 먹고 삶아서도 먹을 수 있다. 곡식과 섞어서 죽을 쑤어도 된다. 꿀로 반죽해 약과를 만들어도 좋다. 떡을 만들든 밥에 섞든 안 되는 것이 없으니 기근 때 버틸 수 있는 좋은 재료이다."
이때 고구마는 ‘감저’라는 이름으로 중국 서적을 통해 이미 조선에 알려져 있었고 이광려가 여러번 연경으로 가는 사신단을 통해 이 감저의 종자를 구하려 하였으나 실패한 후였다.
조엄은 곧 종자를 구해 부산으로 보냈고 이듬해인 1764년 부산의 절영도에서 처음 재배가 되었다. 절영도산 ‘조내기 고구마’는 붉은 색을 띠고 밤 맛과 비슷해 오랫동안 인기가 많았는데, 조내기는 바로 “조엄이 가지고 온 고구마를 캐내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지명이라고 한다.
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조엄은 종자를 더 구해 기후가 대마도와 비슷한 제주도로 보내 심게 했는데 이후 널리 퍼져 "조엄의 감저”라는 뜻에서 고구마를 ‘조저’라 불렀다.
고구마의 기원 아시아로의 전래
고구마는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가 원산지로 페루에서는 기원전 8천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15세기말 콜롬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유럽을 거쳐 동남아로 전파되었는데 중국이 명나라 시절 진진룡이라는 선비가 '여송' 지금의 필리핀을 통해 중국에 전파되었다 는 이야기를 비롯해 비슷한 시기에 다양한 기록을 통해 명나라시절 필리핀을 통해 중국에서의 재배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후 1600년대에 이르러 일본에서 재배가 시작되고 이후 조엄선생에 의해 국내에 전파되었다.
고구마의 어원 - 김무림·강릉대학교 교수
'고구마’의 어원에 대해서는 대마도(對馬島) 방언인 ‘코코이모(koukouimo/こうこういも, 孝行藷)’를 차용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코코이모’는 ‘효행(孝行)’의 일본어 발음인 ‘koukou’와 토란 따위와 같은 뿌리식물을 의미하는 ‘imo(芋)’의 합성어로서, ‘고구마’라는 명칭은 이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입니다.
‘코코이모(koukouimo/こうこういも)’에서 ‘고금아(고구마)’가 된 것을 설명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선 조엄의 일기에서도 왜음(倭音)으로 ‘고귀위마(古貴爲麻)’라고 한 것을 보면 수입 당시부터 말음은 ‘마(麻/ma)’에 가까웠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는 고구마가 ‘마[薯]’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우리말의 ‘마[薯]’에 유추하여 말음이 ‘-마’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것은 특히 ‘고구마’를 한자어로 ‘감서(甘薯)’라고도 한다는 것을 참조하면 개연성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감자’와 ‘고구마’의 어원이 한자어 ‘감져(甘藷)’와 일본어 ‘코코이모(koukouimo/こうこういも, 孝行藷)’에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지만,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현대의 어형에 이르렀는가 하는 것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Ⅲ. | 어플리케이션 ‘joum', '조엄’ |
사)한국고구마산업중앙연합회가
‘조엄기념관’ 건립기념으로 제작, 헌정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조엄’ 검색
- 추후 관련 자료를 받아서 수정할 계획입니다.
Ⅲ. | 행사진행표 |
시 간 | 소요시간 (분) | 주 요 내 용 | 비 고 |
10:00~11:00 | 60 | ◦ 등록 ◦ 외부행사 | 진행요원 |
11:00~12:00 | 60 | ◦ 제2회 ‘고구마의 날’ 기념식 (약식진행) - 국민의례 - 기 념 식 - 기념촬영 | 사회자 |
12:00~12:30 | 30 | ◦ 고구마산업중앙연합회 간담회 | 진행자 |
12:30~13:10 | 50 | ◦ 중식 |
‘조엄기념관’개관행사 참석
구분 | 내용 | 장소 | 시간계획 | 진 행 | 비고 |
위 패 봉안식 | 고 유 제 | 문익사 | 13:30∼13:10 | 시장 | 향교 |
문중분향 | “ | 13:10∼14:00 | 문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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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개관식 | 식전행사 | 기념관광장 | 14:00∼14:15 | 원주대금사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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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빈소개 | “ | 14:15∼14:20 | 사회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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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과보고 | “ | 14:20∼14:25 | 경제문화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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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 사 | “ | 14:25∼14:30 | 시 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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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사 | “ | 14:30∼14:45 | 도지사 국회의원2 고구마산업중앙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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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인사 | “ | 14:45∼14:50 | 조순 전부총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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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로패수여 | “ | 14:50∼14:55 | 시 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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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패수여 | “ | 14:55∼15:00 | 문중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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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프커팅 | “ | 14:00∼15:05 | 15인 내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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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람 | 전시실관람 | 기념관 | 15: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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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후원 업체
(주)크리쉐프
원적외선 방식의 군고구마, 디지털 타이머부착 군고구마통 제작
이외에도 커피로스팅기계 눈꽃빙수기계등 제작,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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