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시간이다
운(運)과 명(命)
인생(人生)이란 생(生)과 사(死)사이의 삶을 의미한다.
그 생과 사 사이의 삶을 운행하고 지탱 하는 것은 시간이다.
그 시간들을 또한 운명(運命)이라 한다.
운명이란 시간과 세월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를 스치고 지나간 시간을 명(命)이라 하고 나를 향해 다가오는 시간을 운(運)이라 한다.
과거의 시간은 명(命)이요 미래의 시간은 운(運)인 것이다.
생과 사 사이를 지탱하고 오고 가는 시간, 시간들! 그 시간, 시간들이 우리의 삶이 되고, 인생이 되고, 우리의 운명이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고 죽는다.
태어남과 죽음에도 반드시 시간이 관여하고 있다.
태어나는 것은 순서가 있지만 죽는 것은 순서가 없을 뿐이다.
모든 인간은 반드시 한 번은 죽는다.
모든 인생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서 시간 속을 흐르다 속절없이 시간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이를 숙명(宿命)이라 한다.
그러기에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숙명(宿命)에는 이미 예정된 인생의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이를 사주팔자(四柱八字)라 한다.
그 설계도는 네 기둥 여덟 글자로 되어 있으니 사주팔자요, 곧 명(命)인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이미 자신의 숙명 속에 기록된 인생의 설계도!
그것이 곧 생일이요 사주팔자이니 하나는 숫자로, 또 하나는 부호로 기록할 수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사주팔자는 바꿀 수가 없다.
태어남과 죽음을 바꿀 수 없듯이 사주팔자는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사주팔자는 곧 숙명이기 때문이다.
그 사주팔자 속의 인생의 설계도가 시간과 만나고 있다.
인생의 설계도인 사주팔자와 시간의 만남! 이것이 곧 명(命)과 운명(運命)의 만남이다.
인생의 설계도인 사주팔자를 명(命)이라 하고, 그 명(命)을 스치고 지나가는 시간들을 운(運)이라 하기 때문이다.
운(運)은 예측하고 바꿀 수가 있다. 운(運)은 나를 향해 다가오는 시간이요 미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에서 교훈을 얻고, 미래에서 기회를 얻는다. 과거는 이미 나의 경험이므로 이 경험 속의 성공과 실패를 우리는 생활 속의 교훈으로 삼는다.
실상 인간에게 어떤 가문의 집안에서 태어났느냐는 별로 중요치 않다.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왔는가가 훨씬 중요한 평가를 받는 것도 인생은 태어남 보다는 삶을 더 강조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옛날에 가문이 매우 좋은 여우와 천한 집안에서 태어난 여우가 길을 가다가 서로 마주쳤다. 가문이 좋은 여우가 천한 집안에서 태어난 여우에게 자기 집안의 가문이 좋음을 은근히 자랑하며 우쭐대었다. 그러자 천한 집안의 여우가 이렇게 말하였다. "너의 집안은 너로 끝나겠지만 우리 집안은 나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천한 집안에서 태어난 여우는 우쭐대며 놀리는 좋은 가문의 여우에게 어떤 가문에서 태어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기에 어쩌면 무엇인가를 이루기보다는 지키기가 훨씬 어렵다는 강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태어남 또한 명(命)의 운(運)이요 죽음 또한 명(命)의 운(運)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명운(命運)을 벗어날 수도, 바꿀 수도 없다.
곧 명운(命運)이 필연(必然)이기 때문이다.
명(命)에는 우연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태어나고 죽는 것이 아무 인과 관계없이 그저 뜻하지 않게 일어난 일이 아니요, 그 모든 일들이 어떤 조건 아래에서 반드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 스스로 태어남을 선택 할 수 없고, 죽는 것을 선택할 수 없는 것 그 자체가 필연인 때문이다.
우리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우리는 태어나고 죽는 것이다. 어떤 거대한 생명과 죽음의 법칙에 의해서....
정암 정병채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