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빌리그레함 목사가 한국에 와서 설교를 할 때에 한국의 큰 교회를
목회하던 J목사가 통역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가 아마 복음화대회였을 겁니다.
빌리그레함은 끊임없이 그리스도라고 하는데 J목사는 끝까지 예수라고 통역했습니다.
지금도 유튜브에 동영상으로 남아 있으니 여러분들이 확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미국의 복음주의 목사들의 설교를 번역해서 자막에 올리는 동영상도
적지 않는데 설교자는 그리스도라고 하는데 번역은 예수라고 해 놓은 걸 봅니다.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시라고 지적하면 예수가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가 예수 아니냐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고 대거리를 합니다.
근데 그 차이는 미국의 목사들은 적어도 하나님을 알아가라고
성도들에게 강조하는데 반해 한국의 대부분의 목사들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으라고만 말하는데 있습니다. 큰 차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과 그리스도의 임재를 믿고 성령 안에서 진리를 알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과 차이는 그 중간에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의 구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물세례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성령세례의 간극이 생기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내주하심을 모르므로 십자가의 도(고전1:18)가 이루어지지 않아 고린도교회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 자신의 소견대로 행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의 피를 믿고 죄 사함을 받고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시고 복을 주시고 결국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외치게 됩니다.
모세를 따라 홍해를 건너고 만나를 먹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보호를 받고
반석에서 신령한 물을 마신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와 간음과 또 원망과 불평으로
애굽에서 나온 자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다 광야에서 죽고 맙니다(고전10:1-5)
그들은 여러 가지 표적은 보았으나 말씀을 듣고 믿어 배어들지 않아 여전히 애굽을
향해 뒤돌아보며 마지못해 가나안으로 끌려가는 애급의 종의 근성을 가진 자들입니다.
고전10장에서는 우상숭배라는 충격적인 말씀이 나오는데 말세의 성도들에게
본보기가 되어 깨우치기 위해 바울이 이를 기록했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고전10:12)
물질에 대한 기복주의는 분명히 우상숭배인데 교회가 이를 잘못되었다고만
할 뿐 그게 기독교적인 우상숭배라고 경고하는 말은 거의 없습니다.
고전10장에는 우상 숭배적인 신앙이 무엇인가 말씀하고 있는데
바로 축제적인 신앙입니다(고전10:7-8)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먹고 마시며 뛰놀면서 이것이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출32:1-6)
예수를 믿는다는 말하는 건 자신이 십자가 앞에 서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주로 믿으려면 반드시 자신이 십자가의 죽음과
다시 사심을 수용하고 오직 주님만 섬기는 곳으로 따르는 회심이 일어나야 합니다.
중생의 체험을 하고 거룩하게 된 자로서 진리를 따라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성향이 생겨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에게서 멀어지는 체질로 변화되어갑니다.
예수만 믿고 여러 가지 표적을 보기도 하고 물질적인 복을 체험한 사람이 과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과 하나가 되어 아버지 앞에 나아갈까요?
이스라엘은 간음하다가도 2만 3,000명이나 죽었습니다(민25:1-9)
지금도 교회의 각종 행사적인 의식적인 신앙이 매우 위험합니다.
세상의 쾌락과는 구분이 되겠지만 교회의 행사나 업무에는 열렬하지만
생활이 안 되는 것은 주의 이름으로 자신들이 즐기는 도덕적 향락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행사적인 신앙으로 끝내는 것이 바로 숭배적인 신앙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신전처럼 꾸밉니다. 그리고 성전이라고 우깁니다.
1계명 다른 신과 2 계명 형상화 하지 말라는 계명을 깊이 생각해 보세요.
또 더러는 오랫동안 사람의 말로 하나님을 가상적 절대자로 만들어 놓고
예수를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고 믿고 바라도록 하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나 동의가 필요 없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될 줄로 믿습니다 하고 졸라대는 겁니다.
이건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와 하나가 된 계명을
지키므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안에 이루어지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아닙니다.
일부교회에서는 은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그 은사는 나타나는 능력보다
그 은사가 하나님을 위해서이냐 사람을 위해서이냐 그 목적이 무엇인가가 중요합니다.
자신의 무지를 깨우치기 위해 주님이 주신 은사를 우쭐대며 자랑해선 안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에 합한 세례의 의미를
깨닫고 거듭난 자로서 그리스도의 한 잔의 피와 그 떡을 기념하는(고전10:16)
신령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성령을 섬기느냐 귀신을 섬기느냐
하는 영 분별력이 말세를 만난 우리들에게는 꼭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실패를 본보기로 보인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해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고 권하고 있는 겁니다(고전10:14)
하나님만큼 높아져서 마음을 빼앗기면 그게 바로 우상숭배가
되는 동시에 하나님과 겸하여 섬기게 되는 간음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겁니다.
여성이 더럽다고 욕을 먹는 것은 오랫동안 목욕을 하지 않는 탓이 아니라
미스터 김도 오케이 미스터 이도 오케이하면 그건 더러운 여인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그 안에 계심을 믿지 못하는(고후13:5) 고린도교회에게
기독교우상을 피하라고 한 말씀이 과연 이 시대 한국교회에는 해당이 되지 않을까요?
은사로 신사도운동이니 물질 축복으로 기복이니 하는 걸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고난 받으신 주 예수와 고난 받으실 후의 영광을 얻으신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회심과 세례를 통해 죄 사함과 거듭남과 의와 거룩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자로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아버지 하나님을 앙망할 수
있는 믿음의 비밀을 가지고 진리로 거룩하게 되어 그 영광을 바라보느냐 묻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거듭나서 새로 지음을 받은 자(new creation)입니다(갈6:15)
바벨론은 땅에 난 포도주를 먹여 음행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받아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게 하지만(계14:8,10)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로부터 임하는 잔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약속의 잔으로 마시고 그리스도의 몸을 생명의 떡으로 말씀으로
기억하고 기념하여 일용할 양식으로 먹는 우리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겸하여 사랑하므로 그런 것을 감히 축복운운 하는 말을 하면 안 되는 겁니다.
진정한 복이라면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의 잔으로 그 피를 마시고
그리스도와 한 생명이 되어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는 떡을 떼는 성찬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성찬을 베풀면서 너희를 축복한다 하지 않으시고 축사하십니다.
이는 그의 생명과 그의 몸에 참예하는 복을 받은 것을 축하하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와 하나 된 복을 지켜 항상 주님의 축하를 받으십시다.
첫댓글 아멘!!
아멘 입니다.
매일 주님의 축하를 받길 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주의 떡과 잔을 말씀으로 기념하시는 모든 분들께 축하를 드립니다.
좋은 신앙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