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게는 바다로 간다
/정희영
어린 날 꽃게가 되고 싶다던 딸아이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카페 아르바이트생이 되었다. 온몸이 근육투성이 초록색 헐크가 꿈인 적도 있었지만, 이것 역시 오리무중이 되었다. 옆으로 걷는 걸음이 재미있는 꽃게. 세상 어떤 악당이 와도 물리칠 듯 힘이 센 헐크가 부러워 꿈이 된 아이. 과학 기술이 무한히 발전하면 깊은 바다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용궁에 가 보고 싶다거나 물고기가 되어 마음껏 헤엄쳐 다니고 싶다는 대학생이 되었다. 제 딴에는 열심히 종종걸음 걷겠지만 내 눈에는 언제 가닿겠나 싶도록 그의 바다는 멀게만 보인다.
다소 엉뚱한 딸이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 이력서를 넣었다고 했을 때 드디어 생애 최초로 경제활동을 하는구나 싶어 기특했다. 스물두 살이 되도록 작은 아르바이트도 해보지 않고 집과 학교만 다녀서 내심 세상 물정은 알아야 할 텐데 걱정하던 터였다. 그런데 간사한 것이 사람 마음이 라더니 내가 그 모양이다. 세상 풍파도 겪어보고 사람 사이에 부대끼면서 속이 단단해지길 바라다가 막상 아르바이트하겠다고 나서는 걸 보니 걱정이 앞섰다. 나가서 고생하다 마음이라도 다쳐 세상에 발 딛기 두려워지는 건 아닐까 싶었다.
이렇게 노심초사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딸은 유난히 손이 느리다. 밥상 앞을 오가는 숟가락 젓가락질 속도가 슬로비디오를 보는 듯하다. 당연히 식사를 마치고 밥숟가락 놓는 건 꼴찌다. 고등학교 때는 급식 시간이 모자라 늘 식사를 남겼다고 한다. 설거지할 때도 20분이면 끝날 양인데 40분은 족히 걸린다. 한번은 칼질을 가르쳐야겠다 싶어서 새송이버섯을 썰게 했는데 하나에 몇 분이나 걸렸다. 결국에는 속이 울화통에 실린 채 터져 나와 딸은 서럽게 울었다.
그런 인물이 세상에 나가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에 4시간씩 일하기로 했다. 음료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외워야 할 제조법도 넘쳐흘렀다. 머릿 속에 담기지 못하고 줄줄 흘러내린 제조법처럼 실수도 잦았다. 시럽을 넣은 쪽과 아닌 쪽을 찾지 못해 당황했던 일, 재료의 계량을 잘못하거나 엎 지른 일, 한 잔만드는데 정해진 시간을 초과하는 것까지. 내가 사장이라도 속 터질 노릇이었겠으나 딸아이도 눈치와 한숨 소리에 날마다 주눅이 들었다. 며칠하고 그만둘 줄 알았는데 약속한 최소근무 기간인 6개월은 채워야 하고 중간에 그만둘 만큼 패기롭지도 못하다며 꾸역꾸역 다녔다. 수습 기간이라 그런지, 손이 더뎌 그런지 근무 시간을 초과하는 날이 잦았다. 30분은 기본이고 1시간 가까이 늦을 때도 있었다. 근로계약서는 언제 작성하는지, 근무시간 초과에 대한 임금 지급은 어떻게 되는지, 수습 기간은 언제까지인지 알아보라는 나의 말에 "알아서 해주겠죠" 하고 말았다. '저렇게 물러 터져서야 원.'
아무것도 모른 채 5주째 근무를 마치고 업주로부터 계속 일할 거냐는 문자를 받았다. 자신이 일을 못해 해고하고 싶은 건 아닌지 찜찜하다고 하면서 계속 다닐 거라고 답했다. 곧 그동안 시급이 입금되었다. 정 확히 2022년 시간당 최저임금 9,160원의 50%인 4,580원으로 계산된 임금이었다. 본인이 실수한 것이 있고 더딘 일솜씨에 불편을 준 것도 있으니, 10% 정도는 차감하더라도 수습 기간의 통상 임금 90%는 받아야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표정 중 가장 결의에 찬 표정이었다. 그야 말로 꽃게가 양쪽집게발을 높이 쳐들고 돌진하듯 투사로 변신했다. 헐크가 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