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연해도시 지식인 이지(1527∼1602) 가족
Ⅲ. 농촌 주민 영춘현 도원유씨 가족
Ⅳ. 산지 주민 남정현 규양장씨 가족
Ⅴ. 맺음말
머리말
현대사회 시스템은 신뢰할 수 있는가? 이 시스템은 이미 환경 문제나 경제 위기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인간이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지고 파괴적으로 바뀌어 작은 충격도 쉽게 인류 사회 전체에게 영향을 미칠 정도가 되었다. 최근에는 자본주의와 산업화, 그리고 지구화와 디지털화가 상호 강화 작용을 하면서 그 정도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인류가 수백만 년에 걸쳐 이뤄온 문화와 문명을 단 수십년만에 극변시키는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디스토피아의 위기’에 대하여 성찰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행동하고 있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역사학에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좀 더 좁혀 최근 우리가 흔히 듣는 ‘위기의 가족’, ‘한집 건너 이혼’, ‘비혼’, ‘혼밥’, ‘1인 가구 급증’을 보자. 이 역시 현대사회 시스템이 작동한 결과라는 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21세기는 인류의 역사에서 획기의 시대지만 가족의 역사에서도 그렇다. 가족의 등장이 생물학적 진화 과정에서 출발했다면, 가족의 조직화는 사회경제적 필요에서 이뤄졌고, 다시 가족주의와 가족제도는 정치적 필요에서 만들어졌다. 근대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고도화가 핵가족 사회로, 그리고 21세기에는 가족 없는 사회로 인류를 내몰고 있다. 게다가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수백만 년의 생물학적 진화를 거쳐 만들어진 ‘인류’가 종말을 맞이할 것이란 전망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인류의 종말이 먼저 가족의 종말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면 그 종말을 저지하는 길도 가족에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인류가 가족을 기초로 종을 보존하고 위험을 극복하며 최고의 종이 되었다면 인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도 가족의 역사 속에서 짚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 역사학은 오늘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과거의 사례를 통해 반성하고 통찰하고 길을 찾는 인간학이자 미래학이기도하니 말이다.
가족이 생육이란 생물학적 과정을 기초로 구성원의 생존과 번영을 추구하도록 창안된 시스템이자 조직이지만 그 구체적 내용은 대내외적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고 수정하면서 변화해왔다. 인류가 등장한 후 수많은 도전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가족이 창안되었으므로 인류의 미래 역시 가족과 함께 전개될 것이고, 미래의 인류 역시 그 생존 전략의 단서를 가족의 역사 속에서 상당부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역사도 가족에서 시작되었다. 가족을 모방하여 ‘國家’를 만들었고, 가족 운영 방식과 이념을 확대하여 ‘家國一體’ 시스템을 만들었다. 성공한 가족이 중국을 지배했고 가족의 성공이 곧 개인의 성공이었다. 중국사에서 가족의 성공, 성공한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자손이 지속되고 제사가 지속되는 것이다. 전자가 개인의 현세 모습이라면 후자는 내세의 모습이다. 중국인들이 바라는 福・祿・壽니 五福이니 七福이니 하는 것도 모두 가족을 전제로 한 것이고 유교 이념의 핵심인 孝悌나 仁・義・禮・智・信이란 덕목 역시 모두 이를 반영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명대 중국 복건 가족의 사례를 중심으로 당시 사람들이 직면한 문제와 그 해결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복건은 산, 강, 바다가 어우러진 지구의 축소판으로 지리적 다양성과 분절성이 지역별로 다양한 문화를 만들었고, 평지, 산지, 해양 등 지리적 다양성이 다양한 경제체제를 만들었다. 다양한 시기에 걸쳐 다양한 족군이 이동하고 정착하기를 거듭한 결과 복주어, 민남어, 객가어 등 다양한 방언권이 형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 작은 방언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졌다. 다양한 경제, 언어, 문화를 유지하고 변형시키는 주체는 복건의 주민이다. 이들은 族群과 족군, 宗族과 종족, 개인과 개인, 지역과 지역 그리고 개인과 집단, 국가와 지역, 중국과 외국이란 다양한 형태의 긴장과 협력 과정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 중심에 개인이 있다면 그 개인을 사회화시키고 사회와 문명을 지속시킨 기초 단위는 가족이었다. 그러므로 복건사회의 존재형태 및 역사적 변화 속에서 발생한 수많은 문제에 대한 가족의 대응을 이해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류가 현재 처한 다양한 문제점을 돌아볼 수 있는 작은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문제의식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명대 복건의 연해도시 가족, 농촌 가족, 산지 가족의 사례를 중심으로 이들 가족이 형성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겪은 다양한 사회 문제와 대응과정을 검토하고 이를 통하여 21세기 위기 대응을 위한 몇 가지 교훈을 얻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