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반을 한 지 50여년이 지났다.
글구 하드프리등반을 한지도 35년이 지났다.체력적으로 힘들고 어려운등반이면서 볼트등 인공설치물에 의존하지않고 자유등반을 추구하는 하드프리등반세계의 1세대이며 전국적으로 하드프리암장을 개척의 붐을 일으킨 주역이다.
불암산 화랑암장과 한성대암장(학도암장)이 하드프리등반의 견인역활을 하였고, 1990년 한국최초의 1등 상금을 1백만원을 주는 스포츠클라이밍대회를 열어서 등반세계의 프로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등반은 인류문화의 소통의 수단인 춤과 노래와 언어와 멋을 창조하는 예술의 하나이다.
문화를 배우려하고 창조하는 활동은 동물은 하지 못하며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배우려하지 않고 또 배웠다고해도 스승이 없다는 독고다이의 성향을 가진 인간은 아직 인간이아닌 동물로 간주해도 어긋나지 않는다.
등반은 예술이면서 진검승부다.
등반역사의 한 줄을 기록한 인간은 오직 마운틴클라이밍에 의한 도전과 개척과 창조한 과정의 업적이 있어야 한다.
스포츠클라이밍과 평지 트레킹, 고산 하이킹처럼 두발로 올라가거나 셀파의 도움이 있으면 마운틴클라이머 즉 산악인이라 할 수 없다.
산악인은 진검승부를 해야 한다.
인간이 마운틴클라이밍을 통하여 최초로 오르려는 도전대상지만이 개척이고 창조이고 진검승부다.
나는 1989년 소승폭포빙벽등반을 진검승부한 한 최초의 산악인중의 한 명이다.
많은 산악인들이 등반을 통한 예술활동을 하고 있지만 진검승부의 대상지를 찾아서 도전하지 못하면서 목소리만 크게 내고 과시하는 찌질이들도 많다.
최근 나는 손가락수술로 인하여 2년간의 하드프리등반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성대암장(학도암장)을 찾은 성향이 다른 클라이머들이 5.13a개척길에서 수없이 떨어지고 난 후 나한테 강력히 등반을 보여줄것을 강요받았다.
마음속으로 예의없고 건방다는생각과 2년공백기를 깨고 등반을 보여 줄 수 있는지 생각이 감정으로 교차되었었다.
하지만 나는 승부를 걸때 걸지 못하는 사람은 산악인이리 말 할 수 없다는 소신으로 인생을 살면서 항상 산이 아닌 학업, 사업에서도 진검승부하지 않았는가!
기본등반동작으로 몸이 배어있는 내가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진검승부를 결정한 마음은 말 할 수 없는 여유로움과 평온함으로 차분하였다.
"아직 살아있네"소리와 함께 5.13a개척길을 자유등반에 성공했다.
손가락끝의 통증이 머리끝끼지 전달되어왔지만 진검승부를 선택한것은 "내 인생의 등반철학" 이 예술로 승화하는 순간이었다.
성향이다른 사람들을 상대하기도 보여주기도 그만 마침표를 찍어야겠다.
이제 심신을 위하여 '진검승부 등반' '하드프리등반' 은 은퇴해야겠다.
카페 게시글
인산님 게시판
한성대암장(학도암장) 개척길5.13a등반후 은퇴
함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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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 10:36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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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생님의 30여년의 족적이 많은 후배 산악인들에겐 귀감이 될듯합니다.
흉내낼수도없고 따라 하기조차 버거운여정이지만 2년공백기를
가진 클아이머에게 13a 등반을 요청한이들에겐 영원히 이룰수없는 경지인지도 모릅니다.
진검승부를 펼쳐야 진정한 산악인이다~!! 멋진 문구가 많은이들에게 도전의식과
진정한 클라이머정신을 불어넣게될것 같습니다
한편의 바이오 그라피를 읽은듯 삶의흔적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은퇴선언에 제자로서 아쉽기도하고
선생님 처럼 진검승부를 펼쳐볼수있을까 라는 의구심도 들고..
모든이가 산을찾는 그리고 바위에 오르는 이유가 같을수는 없을겁니다
하지만 저도 선생님처럼 혼이실린 발질을 그리고 춤사위를 펼쳐보고싶습니다
귀한글 잘읽고 새겨듣겠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그리고 감사합니다
제자--- 배종설 입니다---
감사^^
등반기본이 익숙해질때까지 당분간 시간나는대로 오도록하고 미리 연락줘^^
글구 댄스추듯이 발놀림이 밀고 당기고 현란하게 연습해. 지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