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일화이다.
건원(建元) 2년 당시 감찰(監察)을 맡아보던 대사공(大司空: 御史大夫) 송홍(宋弘)은 온후한 성품에 심성이 착했으며 성격은 강직한 인물이었다. 송홍은 신분이 미천한 사람이었는데 탁월한 식견과 위엄 있는 풍채로 광무제의 신임을 얻어 마침내 '대사공(大司空)'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어느 날 광무제는 홀로 미망인이 된 누나인 호양공주(湖陽公主)가 안타까워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 그 의중을 떠보았는데, 호양공주는 당당한 풍채와 덕성을 지닌 송홍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을 알았다. 며칠 후 광무제는 과부인 호양공주를 병풍 뒤에 숨겨 놓고 송홍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 이런 질문을 했다.
"대사공 송홍! 흔히들 고귀해지면 미천할 때의 친구를 배신하고 부유해지면 가난할 때의 아내를 버린다고 하던데 이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닌가?"
그러자 송홍은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 황공하오나 신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빈천지교 불가망[貧賤之交 不可忘]'이므로 가난하고 천할 때의 친구는 잊지 말아야 하며
'조강지처 불하당[糟糠之妻 不下堂]'이니 술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을 만큼 구차할 때 함께 고생하던 아내는 버리지 말아야 한다.‘ 라고 들었사온데 이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을 들은 광무제와 호양공주는 크게 실망하였으나 그 인물 됨됨이에 광무제는 송홍을 더 크게 등용하였으며 호양공주는 그 후에도 송홍을 진심으로 흠모하고 존경했다고 한다.
물론 송홍(宋弘)이 못생긴 조강지처를 버리고 어여쁜 호양공주를 아내로 맞았다면 잠시는 호의호식 할 수 있었겠지만 많은 식자들로 부터 지탄을 면치 못했을 것이며 그로인해 그의 명성에 먹칠을 했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지만 송홍은 아내가 비록 못생기고 보잘 것 없는 조강지처(糟糠之妻)이지만 부부의 도리를 다 하고 있으니 광무제도 그 조강지처를 억지로 내쫓고 누나의 희망을 채워 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 일화가 있은 뒤부터 조강지처와 빈천지교라는 말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송홍의 사람됨을 귀감으로 삼게 되었다. 잠시 동안의 호의는 뜬 구름이고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덕의 향기는 영원한 것이다.
[출처] 중국의(후한서) '송홍전(宋弘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