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도에 대하여..
"상재(上材)가 도를 접하면 부지런히 수행한다.
중재(中材)가 도를 접하면 있는 듯 없는 듯 한다.
하재(下材)가 도를 접하면 크게 웃어 버린다.
凡材가 웃지 않으면 이미 道라 하기에 흡족하지 않다."
道 라 하는 것은 보통사람이 아니라야 알아 차릴 수가 있다.
하재(下材)는 물(物)에 미혹되고 욕망에 이끌려
만물의 겉을 꿰뚫어 본질의 도의를 파악하기도 어렵다.
(하재는 욕심이 항상 이끌어 욕심과 명예에 끌려다니며,
감각적인 겉에 의존하며 제어하지도 못한다.)
하재는 따라서 허무대도에 대하여는 더욱 이해하고 받아 들이기 어려우니
크게 웃는 것이 자연 스럽고 기괴한 일이 아니다.
이는 또 도 그자체의 심오함을 다르게 설명해주는 것이다.
하재까지 도를 알아 차릴 수가 있다면 '非常道' 라 부를 바가 없는 것이다.
중재(中材)는 물욕에 미혹되지는 않았으나 허무지도에 대하여 인식하는 방법과
사유하는 방식이 결핍되고 또 황홀묘명에 대하여 있는듯 없는 듯 하면서
또 실하기도 허하기도 하는 도에 대하여 반신반의 하면서,
하는듯 마는듯 하는데 이것도 자연스런 반응이다.
중재는 눈으로 모든것을 파악하려하고 인식하는것을 우선으로 하며
참 진의의 맥을 알아채는것이 어둡고 힘들다.
오로지 상재(上材)만이 입도 하면 터럭만큼 태만하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하여 찾는다.
명사(名師)를 두루 찾아 다니며 도법을 구한다. 경전을 깊이 탐구하여 도리를 밝혀 낸다.
묘명(杳冥; 아득하게 어두움)하게 깊이 생각하여 도의 본원(本原)을 깨닫는다.
오직 道만을 따르게 되며 궁구하게 된다.
상재는 인연이 삼생에 걸쳐 있어서 맥을 짚어서 도를 깨달아 간다.
따라서 사람은 도에 관하여 듣기는 쉬우나 도를 깨닫기는 어렵다.
悟道하는 기초는 청정(淸靜)에
겸양하여 자기를 낮추고 평안함을 구하네.
유약하여 물같이 하면서도 안으로 굳고 강함을 품네.
욕심을 제거하고 잡념을 잊고서 청정을 구하니
청정한 중에 바야흐로 천성(天性)이 나타나리.
悟道의 전제(前提)는 수련에 있다.
천리에 순응하고 자연에 합치하여
생을 거슬러 참됨을 찾으며 질박(質朴)함에 돌아가 근원을 찾네.
영아(嬰兒)로 돌아가 선천으로 들어가리.
생사를 벗어나서 우주공간에 영원히 거하도다.
悟道의 진체(眞諦; 참된 도리)는 현묘함에 있다.
항상 욕심을 가지고 그 구멍을 지켜보라.
구멍 중의 구멍은 정미하고도 현통하네.
항상 욕심을 없이하여 그 묘를 지켜 보라.
묘함 중에 묘함에서 바야흐로 진도(眞道)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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