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거리며 작열하는 폭염이 대지를 뜨겁게 달구고 있던 지난 8월 8일 변함없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느닷없이 전화 벨이 울렸다. 전화는 119상황실에 접수된 조난사고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였다. 요구자는 홀로 당일 아침 9시경 진부령을 출발하여 마산봉을 넘어 신선봉으로 갈 계획이었는데 이동 중에 길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출발한 5시간 정도 지났다면 신선봉 부근에서 조난을 당한 것으로 일단 생각되었다.
조난자에게 전화를 걸어 상태를 확인했다. 조난자는 길을 잃었다는 불안감과 초조함 속에 지쳐서 움직이지 못하겠고, 식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먼저 헬기구조가 용이하도록 가장 높은 봉으로 이동토록 하고, 체력이 떨어질 것에 대비해 많이 움직이지 않도록 전화로 지시하면서 휴대전화 밧데리 소모가 심하므로 30분 간격으로 통화하는 것으로 일단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119상황실에 전화를 해서 신선봉 접근이 쉬운 미시령휴게소에서 119구조대원과 만나기하고 바로 출발하면서 강성일 회원에게 식수을 준비하고 도로변에 대기하라고 연락했다.
다시한번 위치 확인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조난자에게 전화해서 현재 주변상황을 물었다. 주변은 더 큰산이 안보이고 현재 위치의 산정과 같은 높이의 산들이 있고, 돌무더기 많다는 것이었다. 듣는 순간 신선봉이 맞구나했지만 다시 주변에 헬기장이 보이냐고 물었더니 헬기장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고, 바다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거긴 신선봉이 아니었다.
조난자는 마산봉 주변에서 5시간 이상 산을 헤맸을 것으로 판단되어 신선봉이 아닌 마산봉 주변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미시령휴게소에서 출발하면 신선봉에서 거쳐 마산봉까지 거리가 너무 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미시령휴게소에 도착해 나중에 도착한 구조팀과 합류했다. 지형을 모른다는 구조대에게 조난의 위치가 마산봉 부근이기 때문에 여기서 출발하지 않고 대간령에서 마산봉으로 오르기로 하고 대간령에 가장 빨리 접근할 수 있는 도원리로 가기로로 결정하고 앞장섰다.
도원리 계곡에는 피서인파가 골짜기를 메우고 있었다. 유원지 끝부분에는 더이상 차량을 진입 못하도록 잠궈놓은 바리케이트를 풀고 차량을 임도로 몰아 다시 임도 바리케이트 앞에 차를 세우고 걷기로 했다. 마침 나중에 간식을 가지고 도착한 마동진씨가 영림서에서 열쇠를 인수해와서 마지막 바리케이트를 열고 차량으로 이동해 대간령 가장 근접한 임도에 차를 세웠다.
차량에서 하차한 구조대원과 일행은 차량에서 내리자 마자 서둘러 산을 올랐다. 모처럼 오르는 산은 가파른 탓도 있었지만 더운 날씨에 헉헉거리며 숨을 몰아 쉬었다. 이길은 동서교역이 이루어지던 옛길이지만 평소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곳이어서 길 곳곳이 위험한 곳이 많다. 마음이 급해 힘들었지만 쉴 수가 없었다. 4시30분경 출발했기 때문에 자칫 늦으면 야간산행이 불가피하다.
마음이 더 급했다. 설상가상으로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몰아 쉬며 대간령이 다가갈쯤에 흐린 날씨는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대간령에 도착하자 비는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난 번까지 이곳을 지나면서 보았던 이정표는 온데 간데 없고 설악산국립공원에서 세운 경고판이 이정표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공원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산길에 사람들을 안전하게 안내할 수 있는 이정표를 없애버린 공원측의 행동에 야박스럽고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다. 나쁜 사람들...
비를 맞으면서 대간령에서 빵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잠시 휴식을 가진 다음 이내 마산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요즘처럼 숲이 우거진 산길에선 초심자가 자칫 길을 잃기 쉽기 때문에 초심자일 수록 안전장구와 산행정보를 갖고 안내자의 도움이 받아야 한다. 특히, 국립공원측에서 표지기까지 없애버린 이곳은 산행인들에게 정말 위험이 그대로 노출된 곳이다. 더우기 산길을 잃은 경우는 길을 찾기 위해 앞으로 나가는 것 보다 가급적 길을 잃은 곳으로 판단되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되돌아 나와야 이동선상에서 구조가 쉽다.
산을 오를 수록 비바람은 계속되고 번개까지 산아래에서 번쩍거렸다. 조난위치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산을 오르면서 호각을 불고 함께 산에 대고 목청껏 사람을 찾았지만 응답이 없다. 옷은 이미 다 젖었고, 신발 속까지 질퍽거렸다. 헬기를 요청했지만 기상 때문에 헬기비행이 어렵다고 했다. 시간이 자꾸 흐르자 119대원들은 착잡했던지 그만 하산하려고 망설였다. 분명 마산봉 주변에 조난자가 있다면 그대로 돌아갈 수 없다. 늦더라도 마산봉과 진부령 방향으로 조난자를 찾기로 결정하고 119대원들에게 알아서 판단하라고 했더니 함께 가겠다고 해서 일행은 마산봉으로 계속 이동하면서 조난자를 찾았다.
비구름이 오락거리고 바람이 불어대는 산정은 지상의 가을날씨 정도로 스산했다. 병풍바위 정상으로 연결된 능선에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그 능선방향으로 소리를 질렀지만 서북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때문에 소리가 안타깝게도 멀리 들리지 않는듯 했다. 조난자와 통화했더니 아까 보다 기운을 차린듯하고, 비가 내리고 번개 때문에 무서워 산 아래로 비를 피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일단 계곡까지 이동하고 계곡에 닿으면 물 흐르는 곳을 따라 이동하라고 얘기했다.
너덜지대를 지나 병풍바위로 오르는 안부에 이르는 길목 내리막길에서 오른쪽으로 흐른 물자국에 따라 표지기를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조난자가 이것을 보았다면 분명 이곳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지만 이곳을 그냥 따라가다 보면 또다시 위험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병풍바위 방향으로 다시 올랐다. 다행히도 오후6시30분경 조난자는 우측을 따라 흐르는 물따라 아침에 출발한 흘리마을로 무사히 빠져나갔다는 전달이 왔다.
일행은 마산봉과 대간령 중간에 있고, 날이 어두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신속하게 산을 벗어나야 했다. 병풍바위에 오르면서 헤드렌턴에 불이 밝히고 어둔 야간산행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앞장서서 신속하고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간 익힌 지형과 산행 경험으로 감각에 의존해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비가 내린 산길을 미끄러워 자칫 낙상과 전도의 위험도 있었지만 조심스럽고 신속하게 이동해 크게 다치지 않고 8시30분경 목적지인 흘리마을로 무사히 하산할 수 있었다.
10시경 넘어서 집에 도착하자 당일 9시뉴스에 조난자의 구조와 자진 하산기사가 났다고 했다. 이튿날 조난자인 최인섭씨는 사무실로 고맙다는 인사차 찾아왔다. 최인섭씨는 전날 진부령에 도착해 민박을 한다음 이튿날 아침 마산봉에 올랐다. 마산봉 정상에서 신선봉을 이동하려면 물굽이골로 내려서야 하는데 길을 잘못들어 이 마산봉을 넘어서 좌측으로 내려서는 바람에 길을 잃게 된 것이었다. 최인섭씨가 마산봉에서 동편에 있는 소대막사 널찍한 철거부지를 통과해 헬기장에서 동편 계곡으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른쪽 계곡을 따라 병풍바위로 능선을 두개를 넘은 곳에서 조난신고를 했고, 이곳에서 계곡으로 내려가 무사히 출발지로 되돌아 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여튼 조난신고 덕분에 조심스럽게 야간산행이라도 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 산행에는 충분한 사전준비와 산행정보, 장비를 갖추고 안전산행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며 오후내내 동행했던 구조대원과 마동진 회원께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