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대 국회 때 국회의장에게 "국회의원 이름패를 즉시 한글로 바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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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살리고 빛내기52] 국회의원 이름패를 한글로 만들어 준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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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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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이 태어나고 500년이 넘었어도 한글은 그 임자 나라에서 찬밥신세였다. 1948년 대한민국을 세울 때에 공문서만이라도 한글로 쓰자고 한글전용법을 만들었는데 공무원들은 지키지 않았고, 호적에도 이름을 한자로 쓰라고 했으며 제 집 이름패도 한자로 썼다. 그래서 1967년 국어운동학생회는 공무원들이 공문서는 한글로 써야 한다는 한글전용법을 지키라면서 제 집 이름패도 한글로 쓰자고 외쳤다. 그러나 듣지 않았다. 그래서 13대 국회 때에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회장 안호상)에서 공문서는 한글로 써야한다는 한글전용법에 “부득이한 경우 얼마동안 한자를 병기한다.”는 단서조항을 빼고 법을 어기면 처벌한다는 조항을 넣는 법 개정 청원을 이철용 의원 소개로 국회에 내고 14대 국회 때엔 의원 이름패를 한글로 바꾸자는 운동을 했다. |
13대 국회 때에 소설가 출신 이철용 의원은 스스로의 이름패를 한글로 쓰겠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제헌국회 때부터 국회의원 이름패는 한자로 모두 썼다. 그런데 의원 스스로 제 이름패를 한글로 쓰려고 나선 의원을 보지 못했는데 이 의원이 처음으로 그런 주장을 해서 이철용 의원을 찾아가 고마운 인사를 하고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이름으로 한글전용법에 한자를 병기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빼고 처벌 조항을 넣어달라는 청원서를 그의 소개로 냈다. 그 일이 내가 처음 한글 국회를 만들려고 나선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14대 국회의원에 재선되면 국회의원 이름패를 한글로 바꾸게 하는 활동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중학교 국어 선생을 하는 국어운동대학생회 김두루한 후배와 함께 14대 국회의원에 입후보한 이철용 의원 유세장까지 가서 응원도 한 일이 있으나 안타깝게 그는 떨어졌다.
그런데 14대 국회의원으로 한글전용을 주장하는 원광호님이 원주에서 국민당(대표 정주영) 공천을 받고 나와서 당선되었다. 하늘이 나보고 한글국회 만들기 운동을 하라고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했다. 원광호 의원은 내가 1991년에 이오덕 선생과 함께 우리말살리기모임을 만들 때에 한글문화원(원장 공병우) 강당에서 발기인 대회를 하는 날에 왔기에 처음 만났다. 그때 공병우 박사가 “오늘 원주에서 원광호라는 이가 왔는데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이 뜨거웠다. 이 선생과 손을 잡으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라면서 눈여겨보라고 귀띔을 하셨다. 그래서 행사 때엔 명함만 주고받고 긴 이야기를 못했기에 전화를 걸어 함께 한글운동을 열심히 하자고 약속했으나 그가 국회의원이 당선되리라고는 예상을 못했다.
그런데 국민당 총재인 현대 정주영 회장이 강원도 사람이라 강원도에서 국민당 바람이 불어 국민당 공천을 받은 원광호 후보가 새벽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개표 방송을 보느라고 밤을 샜다. 당선이 확정된 아침에 바로 그에게 축하인사를 했다. 그리고 앞으로 한글 국회를 만드는 일을 함께 열심히 하자고 약속하고 한글학회 허웅 회장에게 “앞으로 저와 함께 한글국회를 만들기로 약속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한글단체에서 도와주자고 말씀드렸다. 나는 13대 이철용 의원을 만났을 때 계획을 세웠던 일을 하나하나 그와 실천하기로 하고 개원 전에 원광호 의원이 스스로 제 이름패를 한글로 달겠다고 건의했으나 국회 사무처는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개원 뒤 원광호 의원 스스로 한자이름패를 떼고 그 자리에 한글이름패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국회 사무처에서 또 떼어서 다시 한글이름패로 바꾸어 놓았더니 국회 의사국장이 와서 원 의원에게 항의해서 여러 의원이 보는 본회의장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때 이해찬 의원이 나서서 “사무국장이 감히 국회의원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고 원 의원 편을 들어주어서 그 모습에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그래서 한글문화단체는 사무처가 한글이름패를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을 항의하는 성명서와 함께 국회의원 이름패와 국회 휘장과 의원 보람에 쓰인 한자 國(국)자를 한글로 바꾸라는 청원을 원광호 의원 소개로 냈다.
[성명서] 국회의원 이름패를 즉시 한글로 바꾸라!
지난 8월 9일자 한겨레신문 5쪽에 “왜 한글 명패는 안 되나” 제목으로 원광호 의원이 국회사무처 의사국장에게 항의하는 사진 보도가 있었다. 한글을 사랑하는 우리는 국회 의사국장의 몰상식한 행위에 놀라움과 분노를 느낀다. 과거 일제 때 공무원이나 일제 앞잡이와 얼빠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행위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 그 나라의 국회의원이 자기 이름을 제나라 글자로 쓰겠다고 하는 데 그 나라 공무원이 나서서 못 쓰게 하는 일이 있는가? 아무리 미개한 나라에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세계 으뜸 글자인 한글이 있기에 우리도 문화 민족이라고 자부하며 한글을 사랑하고 즐겨 쓰는 우리들은 저런 얼빠진 공무원에게 나라 중책을 맡긴 것을 참으로 부끄럽게 생각한다.
만약 그 국회의원이 자기 이름을 일본 글자나 중국 글자나 미국글자 등 다른 나라 글자로 썼다면 몰라도 제나라 글자로 자기 이름을 쓰겠다는 데 남의 나라 공무원도 아닌 제나라 공무원이 왜 못 쓰게 하는가? 우리는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을 때 일본 공무원들이 우리 글자인 한글을 못 쓰게 한 것을 떠올리면서 아직도 우리 사회에 그 찌꺼기가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도 어쩌지 못하는 힘없는 백성임을 서글퍼한다.
공무원들이여! 온 국민이 보는 공문서 글자는 한글로 써야 한다는 법(법률 제6호)은 있어도 국회의원 명패를 한자로 써야 한다는 법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지금 당장 국회 공무원들은 자신의 잘못을 빨리 뉘우치고 더 이상 배달겨레의 자존심이요 보배인 한글을 멸시하는 일을 하지 말고 우리말과 한글을 살리고 사랑하는 데 앞장서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국회의장은 얼빠진 국회 의사국장을 당장 문책하고 모든 국회의원들의 이름패를 한글로 바꿔줄 것을, 한글을 사랑하는 온 겨레의 이름으로 강력하게 요구한다.
만약 우리들의 충정어린 요구를 받아주지 않으면 한글을 욕되게 한 정치인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길이길이 후손들로부터 미움을 받을 것이다.
끝으로 한글을 살리고 빛내기 위해 애쓰는 원광호 의원에게 한없는 찬사와 고마움을 보내면서 한글을 사랑하는 온 국민은 함께 얼어나 우리의 요구가 이루어질 때까지 강력하게 싸울 것을 다짐한다.
1992년 8월 14일, 광복절을 하루 앞둔 날
한글문화단체 모두모임 회장 안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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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사무처의 답변]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귀중.
먼저 바쁘신 가운데서도 관심을 가져 주신데 감사드립니다. 보내주신 서신에 답하여 국회의원 이름패의 한글쓰기와 관련된 본건의 진행상황과 사무처의 입장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헌국회 이래 국회의원 이름패를 한문으로 써온 것이 선례이며 국회는 선례를 중요한 운영지침으로 삼고 있는 점과 국회는 회의체인 관계로 국회의원 전체에 관련되는 사항에 대해서 어떤 개선이 필요한 경우 반드시 먼저 국회의 논의가 있어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지금 현재로서는 국회의원 이름패를 한글로 쓰기가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지난 7월 23일에 원광호의원의 소개를 받아 귀 모임에서 본건과 관련하여 “국회의모든 이름표(명패) 한글로 바꿔 쓰기에 관한 청원”을 제출하심에 따라 14대 국회에 들어서면서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오는 9월 14일에 개회되는 정기국회에서 동 청원에 대한 심사를 통하여 이 문제에 대한 국회의 방침이 결정될 것이며 사무처는 이 방침에 따르게 될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1992. 9.
국회 사무총장 이 광노
그러나 국회가 국회의원 이름패를 한글로 바꿀 기미가 보이지 않아 한글단체에서 국회의원 299명 이름패를 모두 한글로 만들어서 한글날에 국회의장에게 전달하고 한글로 바꾸게 하기로 했다. 그때 허웅 회장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 내게 물어서 “꿈에 세종대왕이 그렇게 하라고 시키셨다.”라고 말하면서 이번에 안 되더라도 다음에 이 일이 씨앗이 되어 될 수 있다고 말하니 찬성해서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에 안건으로 냈다. 그런데 예상대로 여러분들이 그게 되겠느냐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내가 “언제나 한자단체 공격에 방어만 했는데 우리가 먼저 공격을 합시다. 원광호 의원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입니다.”고 말했더니 허웅 한글학회 회장이 “막내 젊은이 말대로 해봅시다.”라고 말했고, 안호상 회장도 “그럼 해봅시다.”라고 찬성했다.
그래서 국민 모금으로 만들자고 말하고 나부터 10만 원을 내겠다고 하니 모두 얼마씩 내기로 하고 국민 모금으로 600만 원을 만들었다. 그렇게 한글날 전에 299명 국회의원 이름패를 한글로 만들어 국회의장에게 전달하겠으니 받으라고 국회에 연락하고 내 차로 안호상 회장과 문제안 사무총장을 모시고 국회 정문으로 들어가려니 경찰이 어디 가는 누구냐고 해서 “한글단체 안호상 회장인데 국회의장을 만나러 왔다.”고 하니 차 뒤 짐칸을 열라고 하고 지뢰탐지기 같은 거울로 차 밑바닥까지 확인했다. 그리고 국회 정문 주위에 경찰기동대들이 쫙 깔려있었다. 안호상 박사는 초대 문교부장관으로서 대한민국 개국공신이며 박준규 의장은 서울대 다닐 때에 안호상 교수에게 배웠다는데 박 의장은 만나주지도 않고 삼엄한 감시를 하고 있었다.
▲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에 내가 10만원을 낸 표(왼쪽)이고, 국회 앞마당에서 내가 사회를 보는 가운데 안호상 회장이 원광호 의원에게 한글 이름패를 전달하는 찍그림(오른쪽). © 리대로
그래도 사무총장이라도 나와서 우리가 만든 국회의원 한글이름패를 받을 줄 알았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미리 국회 사무총장에게 한글단체 대표 10여 명만 갈 터이니 국회의장이 못 받으면 사무총장이 받으라고 했는데 아무도 나타나지도 않으니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자라에서 내가 횐 종이에 “한글전용법을 지킵시다. 한글 이름패”라고 급하게 써 들고 원광호 의원에게 주는 전달식을 했다. 그리고 그 이름패를 다시 원광호 의원실로 가지고 가는데 국회 경비 경찰이 따라오면서 내게 “명패를 가지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감시 했는데 어떻게 가지고 왔느냐”고 물어서 하늘에서 세종대왕님이 갔다 주셨다고 했다. 우리가 이틀 전에 원광호 의원실에 미리 갔다가 놓았기에 전달식이라도 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 이름패를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했을 것이고 몸싸움하다가 경찰에 끌려갈 번했다.
이때 미리 국회 출입 기자들에게 이 일을 한다고 보도 자료도 보냈는데 기자들이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고 경찰들만 쫙 갈려있었다. 누군가가 시민들이 299명 이름패를 들고 시위를 할 것처럼 거짓 정보를 주워서 경찰이 그걸 막으려고 한 것 같았다. 아무튼 국민이 국회에 제 나라 글자를 쓰자고 하는데 그걸 막는 나라가 대한민국 국회라는 것이 기가 막혔다. 그렇다고 내가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게 한글 국회 만들기 시작이었다. 14대 국회에서 17대 국회까지 나는 국회에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한글날 국경일 만들기, 국회 휘장과 이름패를 한글로 바꾸게 하고 법률 문장을 쉬운 말로 쓰게 하는 일들을 해냈다. 나는 죽는 날까지 한글나라 만드는 이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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