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을 미화하면서 ‘게으름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는 말을 쓴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면서 제자들에게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고 당부하시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게으름이야 말로 빠름의 상대어인 게으름이 아니라 이미 만성이 되어버린 자신의 습관을 합리화하는 방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성적 습관을 합리화하는 게으름은 두려움에서 온다. 그래서 ‘두려움은 마음을 죽이는 살인자(Fear is a mind-killer)’일 뿐이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 불살생(不殺生)실천이 있다. 이는 사회에서 만연되고 있는 만성적 인종과 인권차별의 게으름을 극복하게 하는 가르침이다. 불살생은 비폭력(nonviolence)을 의미한다. 그래서인지 불살생하면 살아 있는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가르침과 더불어 육식을 금하는 계율조항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부처님의 불살생은 단순히 폭력이나 살생을 금하는 조항을 넘어 생명의 존엄성과 평등성을 실현하는 실천운동이며, 어떤 경우에도 생명은 제도, 권력, 태생과 같은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차별되어서는 안 되며, 스스로 자신의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음을 역설하는 가르침이다.
이 불살생실천은 부처님으로 하여금 시종일관 인종과 인권차별의 근원인 카스트제도를 거부하게 한 근원이다. 이는 인종차별을 당연시하는 당시 인도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사회적 게으름을 거부하신 것이다. 당시의 카스트제도의 거부는 기존 사회로부터 막강한 압력을 받지만, 부처님은 이 압력의 두려움을 용기로 이겨내신다. 부처님은 이미 보리수 아래에서 자신의 깨달음을 방해하려는 마왕 파순을 통해 폭력은 두려움에서 나온다는 사실과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폭력을 행사하면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를 뿐임을 깨달으시고, 오직 자비심으로 폭력을 잠재워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오직 자비심으로 폭력 잠재워야”
▶생명의 존엄성 평등성 실천운동
부처님의 불살생 정신은 아쇼카 대왕을 시작으로 마하트마 간디 그리고 넬슨 만달라 등으로 이어진다. 아쇼카 대왕은 인도통일 전쟁을 위한 피비린내 나는 전투에서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를 뿐임을 뼈저리게 깨우치고, 부처님의 불살생정신을 바탕으로 무력이 아니라 진리로서 세상을 다스릴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일생을 전 인도에 무력이나 폭력이 아닌 자비로서 민중을 다스리고, 사회적 차별을 철폐하고 평등정신을 실현한다. 이러한 정신을 이은 인도인은 간디이다. 간디는 영국 식민지하에서 인도인들이 받는 인종차별을 목격하고 저항을 결심한다. 그의 저항운동을 ‘사티아그라하’ 즉 비폭력무저항주의라고 부른다. 간디는 “폭력 앞에 또 다른 폭력으로 맞서기보다 차라리 그 폭력을 피하지 않고 맞서 폭력의 행사자로 하여금 스스로 폭력의 무기를 놓게 하라”고 하여 무기력한 인도인의 정신을 일깨우고, 영국이 스스로 폭력을 멈추게 만들었다.
이러한 간디의 정신을 이어 받은 사람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넬슨 만달라이다. 당시 남아공화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종분리정책은 다름 아닌 카스트제도였다. 그곳에서 흑인으로 태어나면 흑인전용 학교, 병원, 직장에만 다녀야 한다. 이 인종차별에 눈을 뜬 만달라는 흑인 인권운동을 시작한다. 이 인권운동 중 백인의 폭력에 무참히 죽어 가는 동지의 죽음 앞에 분노한 그는 폭력단체를 만들어 저항하다 27년간 감옥에 수감된다. 이 오랜 기간 동안의 침묵을 통해 그는 간디의 비폭력무저항이야 말로 폭력을 몰아내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달게 된다. 그리고 그는 “용기란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다”고 정의한다.
출처 : 소운 스님 〈하룻밤에 읽는 불교〉 저자/ 불교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