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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경 동북쪽 순의구(順義區)에 고려영(高麗營)이란 곳이 있다. 고려영은 구체적인 유적지는 남아있지 않지만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고려영'은 '고려의 군영'이란 뜻이다. 하지만 '고려영'의 정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 고려영에 대해 처음으로 주목한 이는 단재 신채호였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당태종이 안시성(安市城)에서 막혀 쩔쩔매고 있는 동안 연개소문(淵蓋蘇文)이 내몽고를 우회하여 지금의 북경지역을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고려영은 이때 세운 군영이라는 것이다. 이는 정사에서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는 주장이지만, 재야사학자들 사이에 호소력을 갖고 있다.
◆ 이와 관련하여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적은 내용이 주목을 끈다. 박지원은 당태종이 고구려를 정벌할 때 일찍이 북경의 동악묘(東岳廟)에서 5리 정도에 위치한 황량대( 糧臺)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거짓으로 곡식 창고를 만들어서 적을 속이려고 했다고 기록하였다. 청나라 때 고조우(顧祖禹)의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라는 지리서에도 비슷한 기록이 있다.
◆ 문제는 왜 당태종이 북경 일대에 고구려를 속이기 위한 군사시설을 만들었느냐는 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당나라와 고구려의 국경선은 요하(遼河) 부근이다. 북경에서 심양까지 700㎞가 넘는 점을 생각하면, 당태종이 왜 고구려를 속이기 위한 위장 시설을 국경에서 한참 먼 곳에 만들었는지가 의문이다. 그래서 고구려의 군대가 북경 부근까지 쳐들어왔기 때문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국내의 한 방송사도 이런 추론을 근거로 프로그램을 만든 적이 있다.
◆ 이와 달리 중국인들은 당나라 때 고구려 사신들이 거쳐 가던 역참에 사신들의 시중을 들기 위해 일부 고구려 사람들이 거주하여 고려영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역참이란 말을 갈아타거나 잠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국가에서 만든 교통망이다. 그런데 외국 사람들을 불러다 역참을 관리하도록 했다는 것은 좀 이상하다. 게다가 고려영의 위치는 고구려 사신들이 당나라로 가는 교통로라고 보기 어려운 곳에 있다. 중국 쪽의 주장도 신빙성은 떨어진다.
[글 : 고유민·중국여행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