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신창침례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최재희목사,영혼의 빛)
영적 지도자가 필요합니다(마23:25∼28) 최재희목사(신창침례교회)
오늘은 목회자 주일입니다. 저는 목회자 주일 설교가 사실 가장 부담스럽습니다. 목사가 목사들 앞에서 설교하는 것은 그리 부담이 되지 않으나 목사가 평신도 앞에 목사에 대하여 설교하는 것은 매우 부담이 됩니다. 특별히 오늘 같은 메시지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잘못하면 자기 의를 드러내는 것 같을 수도 있고 자기 얼굴에 침뱉기가 될 수도 있으며, 목사에 대한 비판이 사실 금기시된 한국교회의 현실 때문입니다. 며칠 전 어느 기독교 신문을 보니까 이단을 구별하는 방법 중 하나가 기존 교회와 목사들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 그런것을 알면서 전해야 하는 제 마음도 사실 무겁습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전해야 할 강한 감동이 왔습니다.
약20년전부터 한국교회는 매년 6월 첫째 주일에 목회자 주일로 지켜왔으나 저희 교회에서는 스승의 날에 가까운매년 5월 셋째 주로 앞당겨서 지키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정보센터를 중심으로 시작된 목회자주일은 목회자를 위로하고 목회자의 아픔을 공유하자는 취지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땅에는 수많은 교회들과목회자들이 있습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지만목회자도 사람이기에 남모르는 아픔이 있고, 위로가 필요한 자입니다. 목사이기때문에 받는 스트레스와 상처가 많습니다. 그러나 목사는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할 대상이 없습니다.
목사가 스트레스를 받고 마음의 상처를받으면 일반 성도들은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다른 때는 그렇게 생각 안 하면서 그럴 때는 꼭 목사를 신(神)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목사가 아파하고상처 받으면 이해를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닌 이상 이 세상 어느 사람도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는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작된 것이 바로 목회자 주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타고난 성격인지는 모르지만스트레스나 상처를 잘 받지 않는 편이기에 그 누구의 위로나 이해를 구하지는 않습니다. 나쁜 일은 쉽게잊어 버리고, 그냥 쉽게 포기해 버리고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굳이 앞에서 뭐라 하건 뒤에서 뭐라 하건 신경 안 쓰고, 누가입이 마르게 칭찬을 해도 쉽게 지나쳐 보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하는 칭찬도, 미움과 오해도 사실 알고 보면 한 순간의 일이며, 사건과 상황에따라 달라져서 칭찬하는 그 입이 저주로 바뀌는 것도 한 순간이며, 저주하는 그 입이 칭찬으로 바뀌는것도 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일일이 신경 쓰다 보면 내가 더피곤해 지고 나만 더 손해 보는 것 같아서 어떤 일을 만나도 그냥 웃고 지나가고, 그러려니 하고 맙니다.
오늘은 목회자 주일로서 저는 여러분에게 위로를 받기 보다는 여러분의 기도를 요청하고싶습니다. 사실 목사를 위로하는 분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위로 백마디 보다는 주님의 위로한마디가 더 힘이 된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앞으로도 목회자 주일을 위로나 섬김보다는목회자들을 위한 기도를 하는 날로 갖기를 원합니다.
저는 몇 년 전부터 영적 지도자를 위한기도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세상 역사를 보아도 그렇고, 성경을보아도 그렇고 지도자의 영향력 특별히 영적 지도자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지도자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한 시대의 흥망성쇠가 영적 지도자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지도자와 영적 지도자의중요성을 깨닫고 눈물로 기도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세와 같은 지도자, 여호수아와 같은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요셉과 같은 다윗과 다니엘과같은 지도자가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사야, 엘리야, 예레미야나 아모스 같은 영적 지도자가 일어날 수 있도록기도해야 할 시점에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시대 세상 지도자와 현대 한국교회의 목회자를 생각하며지금 이 땅에는 어떤 영적 지도자가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런 지도자를 위하여 왜 기도가 필요한가를 말씀하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기도의 결단을 촉구하고 싶습니다.
첫째: 지금은 지혜로운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시대마다 그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상은 다를 수 있습니다. 난세(亂世)에는 지혜와 추진력과 결단성 있는 지도자를원하고, 치세(治世)에는 덕을 베풀 수 있는 성군(聖君)을 원합니다.난세(亂世)에는 명장(名將)이 필요하며,치세에는 덕장(德將)이 필요합니다. 난세(亂世)에 영웅(英雄)이 나오며 치세(治世)에는 성군(聖君)이 나옵니다.
특별히 세월호 침몰과 함께 우리는 정부의 무능함과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서 많은 백성들의분노가 폭발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계속된 여론 조사를 보면 여당도 야당도 지지율이 떨어지는 특이한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백성들이 얼마나 정치 지도자들에대하여 불신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모세나 여호수아 같은지도자 필요합니다. 모든 백성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래서 앞장서서 나갈 때 믿고 따를 수 있는지도자가 필요하고, 요셉과 같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과 새로운 비전을 가진 지도자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지도자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국가의 품격이 달라집니다. 나라의 흥망성쇠가 달라집니다.
둘째: 지금은 영적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어느 시대나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가있었고, 깨어 있는 선지자와 영적 소경과 같은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한가지 특이한 것은 어느 시대나 거짓 선지자, 영적 소경과 같은 선지자가 사람들의 지지를 더 받았고득세 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의 현실을 보면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영적 소경 지도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목사,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는 목사, 우상숭배에 빠진 목사, 성경을 모르는 목사, 시대를 보지 못하는 목사, 인본주의에 빠진 목사들이 오늘도 강단에서서 외치고 있습니다.
1)잘못된 구원관을 가르치는 목사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과 함께 요즘 계속 뉴스화 되는 것이 구원파(복음 침례교)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가족을 잃은 분들에게는 정말 애도를 표하고 가슴 아픕니다. 이런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구원파가 드러났으면 좋았을 텐데 어쨌든 이렇게라도 구원파가 드러난 것이 한국교회에는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릅니다.
한국교회가 구원파를 이단으로 정죄한 것 중 하나가 구원론에 있습니다. 그들의 구원론은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한 것이다. 구원받은 자는 어떤 죄를 지어도구원과는 관계가 없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제까지 한국교회의 구원론은 무엇이었습니까? 구원파의구원론과 다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이 터지고 나니 기독교 사이트에서는 구원파의 구원론과장로교의 구원론이 똑같다라는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는데 이 구원론에 대하여 우리 침례교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저는 목회 초창기부터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것이 아니며 예수님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고 지은 죄를 주님께 늘 회개하고 믿음으로살아야 구원 받는다고> 외쳐왔고, 결과적으로는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 라고 강조해 왔습니다. 제가 아마 방송을 타는 대형교회 목사였다면 이단이니 삼단이니 했을 것입니다.성경 어느 곳에 믿음으로만의 구원을 말하며,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한 것이라고 말씀하고있습니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라는 것을 주장하는사람들이 가장 강력하게 내세우는 성경구절이 마틴 루터가 보고 개혁의 깃발을 올렸던 로마서 1장 17절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기어느 부분이 믿음으로의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까? 여기에 중요한 단어는<의인>이라는 단어와 <믿음으로살리라>라는 말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믿음으로 살고 있느냐,믿음으로 살지않느냐가 중요합니다. 구원을 말할 때 누가 믿음과 행동을 나누어 놓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천국은의인들이 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의인은 분명히 <믿음으로사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사람의특징은 이원론적 사고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도 이원론적 신앙을 추구합니다. 가령 아이들에게 질문할 때도 아빠가 좋으니 엄마가 좋으니? 라고묻습니다. 결혼하면 미련한 아내는 이러한 질문을 합니다. 만약에어머니와 내가 물에 빠졌다면 나부터 구할 꺼야 아니면 엄마부터 구할 꺼야? 흑이 아니면 백으로 나눕니다. 이것은 데카르트의 이원론이나 동양철학인 주역의 음양 이원론적 방법으로 기독교의 구원론을 믿음과 행위로 갈라놓고논쟁하고 있습니다.
이원론은 초대교회 때부터 이단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사람을 영혼과 육체로 나누어서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이원론적 이단의신학은 한국교회에 그대로 접목되었는데 영혼 없는 육체가 인간인가요? 아닙니다. 그럼 육체 없는 영혼이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귀신입니다. 나무를 이야기할 때 뿌리와 나무를 둘로 보는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믿음과 행위도 마찬가지 입니다. 구원에이르는 참된 믿음은 행위가 입증하고 또 행위는 믿음이 입증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사람들을 열거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믿음으로 이 땅에서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믿음을 한 번 말하면 행위는 열 번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구원론은 사기행위와 같습니다. 거짓 복음입니다. 그것에 목사들은열변을 토했고 연약한 성도들은 박수를 치며 아멘 했습니다.
예수님은 영생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사람이 적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한국교회는 넓은 길로 전했습니다. 천국 가는 방법이너무나도 쉬웠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믿기만 하면 된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고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구하고, 날마다주님께 죄를 자백하며 회개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왕자는 왕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자녀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를 나의 주님으로 모셨으면 당연히 주님의 명령대로 살아야합니다. 말로는 주님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주님의 말씀과는 전혀 다르게 살아가며 예수님이 주님이 아니라내가 주인이 되어 살아갑니다. 그러한 자가 어떻게 구원받고 어떻게 천국 갈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올바른 구원관을 가진 깨어있는목사들이 많이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2)하나님이 없는 목사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의아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 없는 교인들이 교회 안에 있듯이 하나님 없는 목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주님을 만난 경험없는 목사, 주님을 잃어버린 목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보면서 그런 자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활동할 당시,그리고 아합 왕 당시를 생각해 보십시오. 엘리야가 활동할 때 즉 아합 왕 때에 수많은 거짓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유다 멸망 당시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도 본문에서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 하는 이리라”(15절)
어느 시대에나 참 선지자 보다 거짓 선지자가더 많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예외일까요? 왜오늘날 목사는 다 참 목자라고 생각할까요? 예례미아 때보다 예수님 당시보다 과연 오늘날 참 목자가 더많다면 착각입니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예수님 당시보다 아합왕 때보다 이 시대가 거짓 선지자가 더 많습니다.
예수님은 종말의 시대에는 거짓 선지자가많이 일어날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거짓 선지자 하면 으레 이단 종교의교주로 생각합니다만 사실은 드러난 이단은 그리 두려워할 존재가 못됩니다. 정통 신학교를 나와서 정통교단 간판을 걸고 잘못 가리키는 거짓 선지자가 문제입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이단의 교주가 더 많은 사람들을 지옥 보낼까 아니면 기존 정통교회 목사들이 더 많이 지옥 보낼까 누구일까요? 정통교회 목사일 것입니다. WCC에 참석한 교단과 교회를 생각하면아찔합니다.
양의 옷을 입고 노략질 하는 목사가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하여 성도들의 희생을 강요합니다. 양들은 영, 육 간에 굶주려 메말라 있는데 목사는 부와 명예와 자기 욕망을 위해 치부 한다면 그는 분명 거짓 선지자 입니다.
자신의 명예를 위하여, 자신의 욕망을 위하여 더 이상 교회와 성도가 희생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오늘날 수많은 교회가 대형교회(매가처치)화를 추구했고, 교회가 아니라 기업이 되었다고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있습니다.
부흥은 주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부흥과 주님의 거룩한 부흥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3)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목사와 한국교회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백성과 문화는 대립하여 왔고, 교회와문화는 대립하여 왔습니다. 교회와문화, 하나님의 백성과 문화가 연합하고 뒤섞일 때 그것은 바로 영적 간음이었고 타락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모세는 그것을 경계했습니다. 사사 시대를 지나고 왕정시대를 거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문화와 접목되기 시작하였고 그것은 결국 이스라엘과유다의 멸망을 가져왔습니다. 마귀가 가장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혼합입니다. 신앙과 정치를, 종교와 국가를, 믿음과문화를 섞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타락시키는 것이 마귀의 전략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기독교의 타락을 콘스탄틴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는 시기로 보고 있습니다. 박해를 받으며 신앙을 지킬 때는 순수한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자 기독교는 급속도로 세상문화와 접목되었고 급기야는 바벨론 종교를 흡수해버렸습니다.그렇다면 오늘 한국교회의 실상은 어떠합니까? 선교적인 목적으로 제사를 허용하자는 말도 나옵니다. 선교적인 목적으로제사 음식 만들고, 제사 음식 먹어도 구원과는 상관 없다고 가르치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장례식 때 영정 앞에 기도를 합니다.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입니다. 이것이 한국의 문화라는 것입니다. 전도를 위하여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만든 최고의 걸작품이상황신학이며, 상황 윤리입니다. 상황에 따라 하라는 것이고, 영혼 구원을 위하여서라면 주께서도 용납하실 것이라는 자기복음 신학을 하나님의 말씀인양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지만그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가족 구원이 중요하지만말씀을 어겨 가면서 하는 것을 주님은 결코 용납하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더 원하셨듯이한 영혼이 구원 받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을 더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문화보다 소중합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은 영혼 구원보다 선행되어야 합니다.
4) 제사음식을 먹어도 된다는 목사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은 고린도 교회에 전해진 바울의 서신을인용합니다. 바울이 여기에서 전하고자 했던 의미는 당시 고린도 교회 지역은 우상숭배가 심한 지역이라서장사꾼들이 시장에 나올 때 그들의 신에게 감사하며
오늘 이 물건을 잘 팔 수 있게 해달라고 우상에게 기도한 후에 가지고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것을 알기 때문에 물건을 살 때 그것을 물어 보고 샀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물건을 구입하고 나서도 시험에 들었던 것이고 어떤 믿음이 약한 자는 귀신이 옮겨 붙는 것은아닌가 하는 불안과 두려움에 쌓여 신앙에서 떠나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묻지 말고 사라고한 것이고, 사실 하나님 앞에 귀신이 무엇이냐 귀신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우월성을 강조하기위하여 말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우리들에게 제사 음식 먹어도 괜찮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초대교회 총회에서 결정된 사항을 아십니까? 신약시대에도강조되었던 것이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메어 죽인 것과 음행을 금지하는 것이었습니다.“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메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행15장29절)
그런데 한국교회 목사들은 제사 음식 먹어도괜찮고, 피를 먹어도 괜찮고, 목메어 죽인 것 먹어도 괜찮고음행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구원받았기 때문이며 그런 것을 금지하면 율법주의자라고매도합니다.
죄를 짓는 것에 자유 하지 마십시오. 힘들어도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 성도의 올바른 삶입니다. 요한계시록을보면 소아시아 교회 중 버가모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가 책망 받은 이유는 우상의 제물을 먹은 것이었습니다.
5) 성경을 모르는 목사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분은 의아하게 생각할 것입니다.성경도 모르는 목사가 있을까? 일반 성도들은 목사는 날마다 기도하고 성경만 읽는 줄로생각합니다. 설교하기 위하여 늘 성경 연구하는 줄 생각합니다. 그런데솔직히 성경 안 읽는 목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성경세미나에서 목사님이 간증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분은 목회를 20여 년 했는데 성경 1독도 못했다며 회개한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어디 그분만 그러겠습니까? 성경을 읽지 않는 목사, 성경을 모르는 목사가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지 않으니 성경을알 수가 없습니다. 남의 설교만 탐독하며 전하는 목사가 많습니다. 기가막힌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목사는 적어도 자기 나이 수 만 큼은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읽지 않으니 성경을 모르는 것은당연합니다. 큰 교회 목사일수록 성경을 안 읽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바쁘기 때문입니다. 또 성경을 읽어도 성령의 조명을 받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합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짐승의 표 666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많이 공부한 신학자라고 하는분들도 성령의 조명을 받지 않으니 엉뚱한 소리를 하고 짐승의 표 666을 네로라고 이야기 합니다. 네로의 이름을 히브리어로 풀이하면 666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는데왜 그 부분만 히브리어로 풀까요? 또 설령 네로의 이름을 수비학으로 계산하여 666이 나왔다 하더라도 요한계시록이 쓰여질 당시는 이미 네로는 죽었을 때 입니다. 또 어떤 학자는 도미티안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도미티안도 히브리음을수비학으로 계산하면 666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도미티안을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얼마나 무지한 풀이입니까? 역사 가운데 숫자로 풀이하여 666이 나오는 자는 한 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마귀는 역사 가운데 수많은 사람을 짐승의 표 666으로 등장시켜 실제로 666이 등장하면 그것을 희석 시켜 많은 그리스도인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음모를 꾸민 것입니다. 특별히 이마와 오른 손에 표를 받지 말라고 했는데 그리고 그 표를 받지 않으면 매매를할 수 없다고 했는데 네로 때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도미티안때에 그런 유사한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그런데 우리 시대에 그러한 너무나도 명백한 666 생체칩이 등장했습니다. 그 생체칩은 정말 짐승과 같이 영혼이 없습니다. 어떤 분은 그런 말을 합니다.언제는 컴퓨터가 666이라고 했고, 신용카드가 666이라 하더니 이제는 베리칩이냐 하고 도전합니다.그것이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인 것은 이 모든 것이 하나라는 것입니다.
베리칩은 우리가 사용하는 신용카드를 보완하여 우리 몸 안에 이식하여 그것은 결국 컴퓨터와 연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컴퓨터가 사실 우리를 조종하고 감시하게 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신용카드를 보세요. 그신용카드는 결국 컴퓨터와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까?
실제로 컴퓨터의 숫자가 666이며, 신용카드 코드가 666입니다. 베리칩 속에 우리의 정보를 다 넣고 계산하는 기능까지 넣어서 그것을 받지 않으면 매매를 못하게됩니다. 요한계시록은 얼마나 정확하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많은 목사들은 그것을 믿으려 하지 많으며 믿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어떤 분은 그것 받아도 회개하면 된다고 하는데 그럴 것 같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이 베리칩 속에는 우리의 뇌를 조종하는 것까지 넣어서 그것을 받으면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들기 때문에 내 의지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회개할 수도 없게 한다는 것입니다.
또 만약 666 짐승의 표 받아도 회개할 수 있다면 왜 주님은 그것을 언급하지 않았을까요? 회개할 수 없기 때문에 받지 말라는 것이고 그것 받으면 마귀에게 영혼을 파는 것이 되기 때문에 받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 받는 것이지 회개하면 구원 받는 것인데 그 칩을 받는다고 지옥 가느냐하는 목사들이 있는데 그 칩을 받으면 예수님도 거부하게 만들고 회개할 수도 없게 만드는데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더 한 가지를 예를 든다면 예수님께서 받지 말라고 했는데 자기 편하겠다고 받았는데 그것이 어찌 믿음있는 자의 행동입니까? 그것을 받는 자는 믿음이 없는 자요. 구원받지 못한 자요,성경을 모르는 자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호흡을 불어 넣어 생령 즉 영원한 생명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는 순간 그 영원한 생명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666 짐승의표를 받는 순간 그 생명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구원 받으면 짐승의 표 받아도 구원은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이런 주장들이 어디서부터 나온 것일까요?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라는 잘못된 구원관에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 받았으면 칩 받아도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대해 무지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은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며 거짓말하는 자들은 거룩한 성에 들어 가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대해 무지하니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우리는 목회자 주일을 맞이하여 한국교회에 성경을 잘 알고 성령의 조명을 받는 목사들이 많이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6) 시대를 볼 줄 아는 목사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루의 날씨는 분별하면서 어찌하여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느냐라고 탄식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정보화 시대를 지나서 정보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우리는 뉴스를 통하여 인터넷을 통하여 또는 수많은 책을 통하여 시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대를 보지 못하고 양적 부흥에만 마음을 쏟는 영적 소경 목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너무나도 안타까운일입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는데 나도 모르고 적도 모르니 어떻게 이 시대 말에 바른 길을 가며 바르게 가르칠 수 있습니까?
사탄은 인간 타락 이래로 끊임없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는데 정작 목사와 교회는 잠자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와 목사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깨어 있어야 할 우리가 정작 영적으로 잠자고 있고, 시대적으로 잠자고 있으니 마지막 때 무너지는 것은 불을 본 듯 뻔합니다. 깨어 있어도 어려운 싸움인데 잠자고 있고 영적 소경이 되어 있으니 어떻게 마귀를 대적하고 싸울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마지막 때 구원 받을 자가 적다고 하는 것입니다.
노아 때는 겨우 여덟 명만 구원 받았고, 소돔 성에서는 세 명 만이 구원 받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 종말의 때 과연 얼마나 들림 받을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미리 아셔서 좁은 문, 좁은길이라고 표현했고, 부자의 비유를 들어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기도하며 세상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주님만 사랑하며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갈 준비를해야 합니다. 신부 단장 해야 합니다. 그리고 죄악으로 무너져가는 이 나라와 영적으로 죽어 있는 교회와 주의 종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의무요 사명입니다.
7) 인본주의에 빠지지 않는 목회자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신본주의(神本主義)의 반대 개념이 인본주의(人本主義) 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인본주의 입니다. 세상의 모든 철학은 인본주의 사상입니다. 세상의 문화는 인본주의적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 인본주의 신학, 인본주의 사상과 이념들, 인본주의적인 행사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신앙의 적은 인본주의 입니다. 사실 현대 교회 안에 들어와 주인행세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인본주의 입니다.교회가 왜 타락하고 목사들이 왜 잘못된 길로 갑니까? 바로 인본주의에 젖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들어온 인본주의적인 것을 버려야 합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인본주의적인 것을 배격하라고 가리키고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세상자체가 인본주의적이고 인본주의 사상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아야 하고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종말의 시대에는 교회가 인본주의적인 신앙때문에 변질될 것입니다. 우리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 인본주의적인 신앙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따라 살아가면 안됩니다. 세상이 교회를 따라오도록 해야 하는데 지금 한국교회는 교회가 세상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배우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교회도 목사도 세상에서 세상적인 방법을 배우고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교회다와야 합니다. 왜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밟히고 씹히고 있습니까? 바로 세속화 되고 인본주의화 되었기 때문입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어버리면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라고 했는데 지금 우리 교회의 모습들이 그러하며 기독교인들이 그러하며 목사들이 그러합니다. 맛을 잃으니 밟히고 씹히고 하는 것입니다. 인본주의를 버리고 세상 따라가지 아니하고 세속적이지 않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면 세상은 교회를 두려워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흉내내지 못하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방할 수 없는 복음이 있고 영원한 생명과 구원이 있는데 교회는 이것을 버리고 자꾸만 세상을 따라가고 인본주의적인 것들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예수 중심으로 돌아와야합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멸망한 원인 중 하나는 그들의 신앙 자체가 인본주의로 흘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우상을 숭배한 원인은 인본주의에 빠져 있기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도 교회를 찾으며 하나님을 찾는 이유가 육신적이고 인본주의 적인 것으로 가득한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신앙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내용을 점검해 보세요? 인본주의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요?
사실 이러한 원인 제공을 한 자들이 목사일것입니다. 인본주의적인 목사 밑에는 인본주의적인 교인들이 몰려 듭니다.오늘날 종교간의 대화라는 것을 내세우며 승려들이 강단에 서고, 목사들이 절을 찾고 있습니다. 또 크리스람이라고 해서 기독교와 이슬람을 하나로 혼합 시키려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인본주의 목사들이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교회 목사가 승려를 교회 강단에 세우고 승려의 강의를 듣고 그 교인중 하나가 인터뷰하는데 너무나도 스님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고, 자주 이런 일들을 했으면 좋겠다고말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불쌍하고 안타깝던지요. 인본주의에 빠진 영적 사기꾼 목사 만나서 그렇지 어떻게그 교인을 나무랄 수 있겠습니까?
불신자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박수를 치겠지요. 그런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세상 사람에게 인기 있으면 무엇하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면 뭐합니까? 하나님 중심의 교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혼만 즐겁게 하는 교회를 주님께서는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종말의 시대에 영적 혼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와 목사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지난주에 예례미야서를 읽었는데 읽으면서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예례미야는 무너져 가는 조국 유다 나라를 보면서 회개를 촉구하며 홀로 눈물로 호소하며 외치는 선지자였습니다. 그 땅에 수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왕과 백성들이 듣기 좋은 메시지만 전하는 가짜 선지자, 소위 가짜 목사였습니다. 반대로 예례미야는 왕과 모든 백성 그리고 모든 선지자들에게 이상한 설교를 하는 정신 나간 선지자로만 보았습니다.
사람이 망하려면 귀가 먼저 망한다고 했습니다. 망하는 사람은 자기가 살 수 있는 생명의 말은 절대 귀에 들어오지않고, 자기를 죽이는 말은 축복의 말 인양 들려오는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귀가 열려 있어야 합니다. 다수의 소리가 옳은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소리가 옳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자는 복된 자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여러 번 말씀 드렸지만 저도 과거에는
누가 이사를 가서 교회를 정한다면 이단만 아닌 교회, 한국교단에서 인정한 정통교회만 나간다면 된다고 했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당신은 침례교인이니까 반드시 침례교회에 나가야 된다고 소개해 주기도 싫습니다. 교단을 떠나 깨어있는 교회, 시대를 준비하는 교회를 추천해 주려고합니다. 또 사실 지난 주에 어느 자매에게 전화가 와서 교회를 소개해 달라고 해서 저는 침례교 목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침례교를 소개해 주어야 하지만 또 그 지역에 잘 아는 침례교 목사 교회가 여러개 있지만 침례교회가 아닌 다른 교파의 깨어 있는 교회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지금은 교파가 중요한 것이 아니며, 유명 목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생명이 중요합니다.
유명 목사가 있는 교회가 생명 있는 교회가 아니고,사람들이 몰려 오는 부흥하는 교회가 생명 있는 교회가 아닙니다. 오늘날은 예수 없이도 얼마든지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참된 복음이 있는 교회가 중요하고 내 영혼이 살 수 있는 교회, 내 영혼을 올바른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목자가 있는 교회에 나가 신앙생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엘리야 때처럼 지금도 하나님은 우상에게무릎 꿇지 아니한 숨겨놓은 참 목자가 있을 것입니다.
목회자 주일을 맞이하여 이 땅의 목회자들을위하여 기도합시다.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목사, 성경을 모르고 목회하는 목사, 하나님이 없이 목회하는 목사, 인본주의에 빠져 있는 목사, 시대를 보지 못하는 영적 소경과 같은 목사들이 회개하도록 기도하며, 한국교회에 깨어 있는 주의 종들이 더 많이 일어나고, 예례미야와 같은, 아모스와 같은 종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합니다. 그래서 한국교회 안에 쭉정이 같은 종교인이 아닌 알곡과 같은 신자들로 가득 찰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주님의 거룩한 신부로 단장하는 교회와 성도 그리고 목회자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