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四則 엎친 데 덮친 격(雪上加霜)
垂示
靑天白日 不可更指東劃西 時節因緣 亦須應病與藥 且道 放行好 把定好 試擧看
청천백일 부가경지동획서 시절인연 역수응병여약 차도 방행호 파정호 시거간
서문
지극한 도의 절대적인 면은 청천백일과 같은 것이다. 지극한 도가 동쪽에 있다고 가리키거나 서쪽에 있다고 점을 찍어 보일 수도 없다. 그러나 상대적인 세상에서는 때와 장소와 사람에 따라 병에 알맞은 약을 처방해 주어야 한다. 과연 임기응변의 설법으로 중생을 제도할 것인가? 아니면 청천백일의
경지에서 침묵을 지킬 것인가? 자 여기 그럴듯한 이야기가 있으니 우리 모두 잘 살펴보자.
本則
擧 德山到潙山 挾複子於法堂上
從東過西 從西過東 顧視云 無無便出 (雪竇著語云 勘破了也) 德山至門首卻云 也
거 덕산도규산 협복자어법당상
종동과서 종서과동 고시운 무무편출 (설두저어운 감파료야) 덕산지문수각운 야
不得草草 便具威儀 再入相見 潙山坐次 德山提起坐具云
和尙 潙山擬取拂子 德山便喝拂袖而出 (雪竇著語云 勘破
부득초초 편구위의 재입상견 규산좌차 덕산제기좌구운
화상 규산의취불자 덕산편갈불수이출 (설두저어운 감파
了也) 德山背卻法堂 著草鞋便行
潙山至晩 問首座 適來新到在什麽處 首座云 當時背卻法堂 著草鞋出去也
潙山云
료야) 덕산배각법당 저초혜편행
규산지만 문수좌 적래신도재십마처 수좌운 당시배각법당 저초혜출거야
규산운
此子已後 向孤峰頂上 盤結草庵 呵佛罵祖去在 (雪竇著語云 雪上加霜)
차자이후 향고봉정상 반결초암 가불매조거재 (설두저어운 설상가상)
본문
덕산스님이 위산에 이르러 바랑을 옆에 낀 채 법당에 들어가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둘레를 살펴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없다 없어. 아무 것도 없어.”
그리고는 곧 나와 버렸다.
(이에 대하여 설두스님은
보충하여 말하길 “이미 검사는 다 끝났다.”라고 했다.)
덕산스님이 문 앞에 이르러 잠시 돌이키며 말했다.
“너무 경솔했나. 좀더 자세히 살펴봐야겠다.”
이번에는 법식대로 예의를 갖추고 문으로 다시 들어가 위산스님을 뵈었다. 마침 위산스님이 제자리에 앉아 있어, 덕산스님이 좌구를 불쑥 내밀며
말하였다.
“화상!”
위산스님이 곁에 있던 불자를 잡으려 하자 덕산스님이 “꽥!”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옷소매를 떨치면서 나와 버렸다.
(이에 대하여 설두스님은
다시 보충하여 말하길 “이미 검사는 다 끝났다.”라고 했다.)
덕산스님은 법당을 뒤로 한 채 짚신을 신고 그곳을 나가 버렸다. 그날 밤 늦게 위산스님이 수좌에게 물었다.
“아까 그 새로
온 놈은 지금 어디 있느냐?”
그러자 수좌가 대답했다.
“그 당시에 법당을
뒤로하고 짚신을 신고 떠나버렸습니다.”
이에 위산스님이 말했다.
“그 놈은 앞으로
큰 인물이 되겠지만 인적 드문 높은 산봉우리 위에 초암을 짓고, 부처를 꾸짖으며 조사들을 욕하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하여 설두스님은
보충하여 말하길 “엎친 데 덮친 격이군.”이라고 했다.)
頌
一勘破 二勘破 雪上加霜曾嶮墮 飛騎將軍入虜庭
再得完全能幾箇 急走過 不放過 孤峰頂上草裏坐 咄
일감파 이감파 설상가상증험타 비기장군입로정
재득완전능기개 급주과 부방과 고봉정상초리좌 돌
송
한번 살피고 또 살피니
설상가상 위험할 뻔 하였네
비기장군 포로 되어 고생할 뻔한 꼴이네
온전히 빠져 나올 자 얼마나 되랴
곧장 달려갔으나 선뜻 놓아주지 않았네
호젓한 산봉우리 수풀 속에 앉아 있으리
에잇! 이런!
[解釋]
지극한 道의 절대적인 면은 푸른 하늘의 밝은 해와 같아 모든 것이 다 들어난다. 따라서
지극한 道가 동쪽에 있다고 가리킬 수도 없고, 서쪽에 있다고 점 찍어 보일 수도 없다. 모든 것이 다 지극한 道일 뿐이다. 그러나 상대세계에서의 지극한
道는 때와 장소와 사람에 따라 적절하게 사람들이 道를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중생을 구제하는
중들의 입장에서는 이와 같이 임기응변의 설법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방법과 청천백일의 경지에서 침묵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다.
임기응변의 설법으로 중생을 제도하고자 했던 스님이 선감선사(宣鑑禪師)인 덕산스님이고, 청천백일의 경지에서 침묵으로 중생을 제도하고자 했던
스님이 영우선사(靈祐禪師)인 위산스님이다. 두 스님의 중생구제 방법에 큰 차이가 있어 아마 덕산스님이 자신의 방법이 옳다고 주장하기 위하여 무슨 꼬투리를
잡으려 위산스님을 찾아간 것 같다. 두 스님이 점잖게 마주 앉아서 어느 중생구제 방법이 더 나은지 이야기하면
될 것을 덕산스님은 자기의 관점으로만 위산스님의 잘못 및 허점을 발견하고자 했으나 그것이 보이지 않자 “없다 없어. 아무 것도 없어.”하고 나가버렸던 것이다. 그런 덕산스님의 행동을 보고 위산스님이
또 “그 놈은 앞으로 큰 인물이 되겠지만 인적 드문 높은 산봉우리 위에 초암을 짓고, 부처를 꾸짖으며 조사들을 욕하게 될 것이다.”라고 한마디를 덧붙였으니
이 이야기를 정리한 설두스님이 “엎친 데 덮친 격이네(雪上加霜)”이라고 또 한마디를 덧붙였다.
道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중생구제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선사(禪師)들의 언행이 거의 애들 수준이다. 아마 이 이야기는 덕산스님과 위산스님이 道를 얻기 전의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의 화두를 약간 다른 관점으로 찾고자 한다. 우리에게는
관념(觀念)도 필요 없는 것인데 더 나아가서 그 관념을 굳게
믿으면 신념(信念)이 된다.
이 신념이 우리에게 얼마나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지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임기응변의 설법으로 중생을 제도하고자 했던 스님이 선감선사(宣鑑禪師)인 덕산스님이고, 청천백일의 경지에서 침묵으로 중생을 제도하고자 했던
스님이 영우선사(靈祐禪師)인 위산스님이다. 두 스님의 중생구제 방법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그저 자신이 행하는
중생구제 방법일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방법만이 옳다고 믿게 되면 그것에 대한 신념이
형성된다. 신념이 형성된 다음부터는 자신의 방법이 아닌 다른 모든 방법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다른 방법을 부정하게 되면 나의 방법과 다른 방법이 맞닥뜨리게 되면 그때는 是是非非를 가리려고 하게 된다. 인간이 해서는 안될 是是非非를 道를 닦으신 스님까지 하게 되는 것은 신념이다.
중생을 구제한다는 크나큰 자비의 마음이 신념이라는 것 때문에 한 순간 무너져 是是非非를 가리는 한낮 중생의 마음으로 타락하게 된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이같이 우리가 아무리 착한 심성을
갖고도 어떤 특정한 사안에 대한 신념이 강하면 그 신념으로 누군가와 부딪히게 될 때 우리의 착한 심성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정도로 신념은 우리에게
많은 폐해를 일으킨다.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하여 내가 행하는 방법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내가
행하는 방법에 대한 신념을 가져서는 안 된다. 다른 방법도 하나의 방법이다. 다른 방법에 내가 행하는 방법보다 뛰어나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따라서 내 생각과 내가 행하는 방법의 우수성을 내가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언젠가 사람들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판단될 뿐이다.
첫댓글 감사!!!
관념...신념... 일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