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고춧가루 모두 잘 도착했나요?
함께 담긴 편지를 읽으신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두호네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고춧가루를 판매하지 않을 예정이에요.
사실 이미 몇 년 전부터 고민해오던 것인데, 두호네 20년의 고추역사를 그냥 접기에 너무 아쉬움이 커 큰딸인 제가 받아 짓기로 했었죠. 덕분에 저는 지난 2년간 고추 농사를 지으며 많은 걸 느끼고 배웠어요. 특히 두호네가 이렇게 긴 세월 고추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이유-우리 고춧가루를 믿고 드셔주신 분들께 정말 깊은 감사와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제,
두호네 고춧가루 정말로 작별인사드려요.
올해 주문하지 못하신 분들도 계셔서 카페에도 편지글을 올려요. 그동안 두호네 고춧가루와 함께해주셨던 모든분들께 감사 인사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두호네농가 영주에요.
올해도 고춧가루 통해 인사드리네요 :)
이제 밭의 고추들은 마지막 수확까지 끝나 가뿐해진 모습이에요.
건조대 위의 고추들도 가을볕에 말라 훌쩍 가벼워진 몸으로 하나둘 자리를 떠납니다.
비어가는 밭과 건조대를 보면 홀가분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섭섭한 기분이 들어요.
매년 이 시기마다 겪는 감정이지만 올해는 진짜 마지막이란 생각에 더 허전하고 그렇네요.
네, 아쉽고 죄송한 소식 전하려고 해요.
두호네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고추농사를 정리합니다. 정말 오랜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어요.
사실 몇 년 전부터 해오던 고민이었지만,
오랜 기간 한결같이 두호네를 믿어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 어려운 시절을 버티게 해준 고추에 대한 애틋한 마음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어요. 그래서 재작년부터는 큰딸인 제가 물려받아 고추농사를 지었지요. 꽤 큰 결심이었어요.
그렇게 2년간 직접 밭을 돌보고 고추를 키우며
저는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이해할 수 없던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농사를 지으며 밭 위로 흘러가는 사계절을 온전히 느껴보았고, 한해 결실이 돌아오는 순간의 순수한 기쁨도 알게 되었어요. 고춧가루 발송 후엔 돌아오는 응원과 감사의 메시지들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했고요.
또 귀농 후 봉화에서 자리 잡느라 가족 모두가 힘들었던 시기도 돌아보았어요.
늘 고추농사를 중심으로 정해졌던 가족 일정들,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일들에 부모님이 밉고 원망스럽기도 했던 어린 마음들.. 그런 묵은 마음들을 풀어내고 보듬어주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만약 지난 2년이 없었다면 그런 감정들은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채 그저 미련이나 아쉬움으로 남았을 것 같아요.
이렇게 편지를 쓰다 보니 밭에서 보낸 시간들이
두호네 회원님들께 감사를 전하고, 우리 가족들의 지난날을 추억하는 나름의 의식이었다는 생각도 드네요.
이제는 한동안 미뤄두었던 일들을 시작해보려고 해요. 저뿐 아니라 가족들 모두- 그동안 고추에 올인했던 시간과 에너지를 이제는 좀 더 스스로를 돌보고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데에 써보려구요!
(그럼에도 저희는 한동안 이맘때마다 습관적으로 고추를 찾겠죠. 하하)
매년 고추 농사를 마무리 지을 때마다 고춧가루가 단순히 먹거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했는데 올해는 정말 더 각별하네요.
감사한 마음 글로 다 전할 수 없어 아쉬워요.
정말 많이 감사합니다.
고춧가루 판매는 종료되지만 농사는 이어갈 예정이에요. 종종 카페에 소식 전할게요. 행복한 가을날 되세요!
* 올해는 고춧가루가 좀 매운 편이에요. 고추의 맵기는 종자의 영향도 있지만 그 해의 기후나 토양의 상태에 따라서도 매년 조금씩 달라져 예측하기가 어려워요. 예년에 비해 살짝 매울 수 있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