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육강식은,
그들의 세계에 있어서는 자연의 섭리로서 할 수 없지만,
살아있는 한, 그들은 사랑스러울 만큼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
새끼 사슴은 잡혀 먹혔을까. 살아 있을까.
붓다는, 새끼 사슴의 앞길에 행운을 빌었다.
붓다가 거처를 정한 지, 벌써 나흘 째의 아침을 맞았다.
식량도 바닥이 나서, 세나니 마을로 탁발을 나갔다.
마을에 들어서자, 이미 낯이 익은 마을 사람이,
" 오랜만입니다. 어디에 가 계셨습니까.
너무도 보이시지 않아, 이제 아주 먼 곳으로 가버리신 줄 알았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자, 안으로 들어오세요."
하며 붓다의 손을 잡아, 강제로 집안으로 모시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인정이라는 것은 불가사의한 것이다.
번번이 탁발을 하려고 왔을 뿐인데도 농가의 노인들은,
한동안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해서, 붓다를 걱정해 주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붓다의 존재는 단지 수행승으로 인연도 관계도 없었지만,
이따금 얼굴을 마주치는 것에 의해, 마음이 서로 통해, 친근감을 가졌던 것이다.
붓다가 귀여운 새끼 사슴의 장래를 걱정한 그 마음도 인정의 발로였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 사람과 식물, 사람과 자연,
이런 것들이 엮어져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것은,
생명있는 자의 마음의 깊은 곳에서 자라고 있는 자연적인 감정일지도 모른다.
사랑과 걱정해 주는 마음씨가 깃들인 마을 사람들의 말에,
붓다는, 절로 미소를 띄었다.
붓다는 안방에서 자고 있던 노파를 문병했다.
노파의 이마에 가볍게 손을 대었다.
그러자 노파 몸속에 자리 잡고 있던 병마가 그 자리에서 물러가고,
허리에서 아래가, 지금으로 말하면 신경통이 눈 깜짝할 사이에 나아 일어나 앉았다.
노파는 눈물을 흘리며, 붓다에게 합장했다.
가족들은, 불가사의한 이 현상에 놀라 새삼스럽게 붓다를 달리 보며, 감사하는 것이었다.
감사의 표시로서 많은 쌀과 야채를 보리수나무 아래까지 날라다 주었다.
" 고타마님, 모레부터 가야다나에서 제사가 있습니다.
가 보시지 않으렵니까?"
이전의 고타마와 현재의 고타마는 형상은 변하지 않았지만
속에 든 것은 전연 다르다는 것을 이 사람은 몰랐다.
그러나 붓다는 상냥하게
" 어떻게든 형편을 보아 가 보고 싶습니다."
하고 말했다,
여기에 돌아온 목적은 실은 그 제삿날에 우루베라 카샤파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 제사는, 타국의 사로몬들도 많이 모입니다.
저희들도 참석하러 매년 가고 있습니다.
쿠난다 카샤파님이, 저의 집에 자주 제사의 보시를 구하러 오시니까.
상관없으시다면 붓다님을 소개하겠습니다."
하고 농부는 말을 계속했다.
" 고맙소, 근간 기회가 있으면, 또 들르리다.
오늘은 여러 가지 친절을 베풀어 주셔서 고맙소,"
"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병자를 고쳐주셨는데, 예를 올려야 할 것은 저희들입니다.
일이 있으시면, 연락해 주십시오. 이 정도의 일이라면, 언제라도 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정중하게 머리숙여 인사를 하고, 숲을 내려갔다.
농가의 주인은, 9개월 가량 이전에.
예의 그 민요를 흥얼거리던 츄다리아 츄다다의 소작인으로, 친절한 사람이었다.
인연이라는 것은 이상한 것이어서 하나가 연결되면,
그 사람과 연결된 사람과 또 인연이 생긴다.
인연의 실은 현상계의 오관의 세계에서는 절대로 모르지만
실재계(저세상)에서 보면,
『만나야 되기 때문에 만나게 된다』
고 한다.
세상은 넓은 것 같아도 좁다'라고 하는 감개(感槪)는 인연을 가진 사람들은,
바둑판처럼, 어디서인가 만나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농부가 돌아간 후,
붓다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내일의 날씨가 걱정이 되었다.
혹시 비라도 내리면, 모레있을 제사 행사가 연기될지 모른다.
어쨌든 날씨가 좋아야 하겠다고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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