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평소 선언 - 거리의 철학자로 나서며
<삶과 죽음을 정신 위주로 보자 - 혁명의 시작이다>
(선언 배경: 2013. 12 “덕평소 갑오년 새해 한반도 평화기원 성명” 및 2014. 8. 08 덕평소 성명 “한국이 암담하다. 속히 인간 본성으로 돌아오라. -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며” 참조)
★ 삶과 죽음을 육체가 아닌 정신 위주로 보자. 그러면 인류의 의문과 문제들이 모두 풀린다. 이제부터 삶과 죽음을 육체를 위주로 보지 말고 정신을 기준으로 보며 정신을 기준으로 살자. 그러면 인류가 가진 철학적 의문과 현실적 문제들이 남김없이 해결되게 된다.
★ 지금까지 인류는 눈에 보이는 것 위주로 살아오고 눈에 보이는 것 위주로 죽었느냐 살았느냐를 말해왔다. 인류는 특히 현대에 들어와서 오감을 중심으로 한 과학 물질문명 - 현실과 물질과 육체 - 위주로 살게 되면서 더욱 어둡고 혼란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으며 전 인류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 움직이지 않으면 - 눈을 감고 쉬고 있는지, 기운을 완전히 잃고 지쳐 있는지, 잠을 자고 있는지 - 가까이 가서 흔들어 본다. 그런데 몸이 식지 않고 따뜻함이 있던가, 숨을 쉬고 있던가, 심장이나 맥박이 뛰고 있던가, 두뇌가 살아 있으면 아직 살아있다고 말하며 응급처방과 의술들을 동원한다.
모두가 - 물론 내부적으로는 정신이 활동하고 있느냐 아니냐를 은연중 포함하기도 하지만 - 육체에 초점을 맞추어, 육체를 기준으로, 살아 있느냐 죽었느냐, 얼마나 크게 또는 확실히 살아있느냐를 말함이다.
★ 만유에는 정신이 있다. 다만, 무생물보다는 미생물이, 미생물보다는 하등동물이, 하등동물보다는 영장류가 더 큰 정신을 가지고 있다. 이 때 말해지는 정신의 크기란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정신적 활동이라기보다는 계속하여 일관성 있게 일어나는 정신적 작용을 말한다.
★ 정신의 크기에 따라 삶에 있어서 활동력이 다르게 나타난다. 보통은 육체적으로 빨리 또는 넓게 활동하고 있으면 크게 살아있다고 하지만, 이는 눈에 보이는 것 위주로 말하는 것이며, 예술 문학 등 창작활동과 진리 공부를 포함해 큰 정신 활동을 하는 개념을 포함하지는 못한다. 동물의 달리기나 바람에 날려가는 쓰레기, 중력에 의하여 맹렬히 굴러 떨어지는 바위에게 크게 살아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 정신은 자발성 또는 능동성과 관련이 있다. 육체적 움직임이든 단순히 머리에서 하는 사고이든 반드시 개체 스스로 일으킬 수 있고 조절될 수 있어야 정신이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러한 자발 능동적 활동이 클수록 크게 살아있다, 큰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신이 매우 부족한 무생물은 항상 죽어 있는 것에 해당한다. 그리고 생물은 정신적인 활동만큼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100%가 진리이면서 정신인 신은 자발 능동성과 자유도가 100%이며 어느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결코 죽음이 없이 스스로 영원히 살아있으면서 물리적 시공간을 초월하여 어디에든 나타나 영향력을 미친다고 말할 수 있다. 같은 인간임에 있어서도 크고 참한 진리를 깨달아 신에 가까운 자가 더 밝은 삶을 사는 훌륭한 자이며 더 크게 살아있고 더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다.
현재 살아있는 우리들 누구도 석가부처,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 등 4대 성인을 만난 적이 없다. 이 성인들은 지금부터 2천년 내지 2천5백여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그들이 말하고 행동한 것들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
현인들은 성인들에는 못 미치나 그들 역시 각자 깨달은 진리만큼 세상에 영향력을 미친다. 육체적으로만 산 사람은 죽은 후 육체를 땅에 묻어버리면 조금의 흔적도 없게 된다. 좋은 책, 좋은 음악, 좋은 예술품일수록 보다 긴 세월동안 넓은 지역 사람들에게 좋은 것으로 추앙받는다.
큰 정신은 보다 큰 가치나 진리를 많이 소유하고 있는 정신이며 보다 훌륭한 영혼이란 일생동안 보다 훌륭한 진리를 많이 깨달았던 사람이 남긴 혼이다. 정신의 훌륭함 정도나 크기에 따라 살아있는 정도가 다르며 살아있는 정도에 따라 자발적 능동성과 영향력이 다르며 보다 넓고 길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와 같이 살아 있느냐 죽어 있느냐, 어느 것이 크게 살아있느냐를 육체가 아닌 정신 위주로 보면 굳이 천당과 지옥을 지어낼 필요가 없고 귀신 잡신 문제에 현혹될 이유가 없으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 사후 문제를 포함한 모든 철학적 의문들이 해결되게 된다.
★ 인류가 현재까지 전쟁하고 싸우고 죽이고 자살 자해하고 탐욕 폭력 독재 강도 도둑 착취 성범죄 거짓 사기 배타 갈등 증오하고 고민 고뇌해왔던 것들, 그리고 현재도 그러하고 있는 것들이 모두 삶을 육체 위주, 물질 위주, 현실 위주로 보면서 땅과 물질과 권세를 더 먼저 더 많이 차지하려 해왔기 때문이다.
육체와 정신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인간에 있어서 자신의 주체는 정신이고 인생은 육체가 주어져 있는 동안 이를 기반으로 정신을 늘려가는 과정임을 알게 되면 - 육체적 학대, 고문, 살인, 처형, 자살, 폭력을 포함해 앞에서 열거한 모든 비도덕 비양심적인 것들이 순리에 맞지 않음은 물론 ‘중도’와 같은 현실적 고상 고양된 삶이 매우 중요함을 인정하게 됨과 동시에 - 모든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정신을 키워가는 목표로 이루어지게 되면서 현실적인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게 된다.
각자에 있어서의 정신의 훌륭함과 크기는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자에 의하여 조금씩 출발점이 다를 수 있으나 결국은 각자의 노력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게 된다. 정신의 개발 없이 육체적으로 살다가 가는 사람은 인생을 허송세월 보내는 것이 되며 동물적 삶을 살고 가는 것이 된다.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면서 죄짓지 않고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건강하고 즐겁게 육체의 수명대로 살다가 가는 것은 70점의 인생으로 계속 인간의 삶을 돌리게 되며, 학생 신분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평균 C학점 정도로 퇴학 없이 최소한으로 해당 과정을 마치는 것과 같다.
일생 내에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면 해탈 상태에 들어 - 열반에 머물며 - 죽고 삶의 문제가 없어지면서 지상을 극락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며 지고의 안락과 복을 누리게 된다. 무기를 만들고 전쟁을 하고 탐욕으로 죄를 짓거나 폭력 폭압으로 남을 못살게 굴며 폐를 끼치는 자는 지상을 동물 아수라 아귀 지옥의 세계로 만들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자가 된다.)
★ 인류가 삶과 죽음을 육체 위주가 아닌 정신 위주로 보고 또한 정신 위주로 살아가게 되면 -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로 이어 이해하게 되면서 - 인간이 가지는 모든 의문과 현실적 문제들이 해결되게 된다. 인류 전체가 이를 깨달으면 지상은 천국이 되며 삶과 죽음이 없는 고통 고뇌가 없는 극락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