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일 : 티끌이란 번뇌
사진/거원님
* 주라 판다카가 세존께 여쭈었다.
‘이제는 이미 지(智)가 있고,
이제는 이미 혜(慧)가 있으며,
이제는 이미 「쓰는 대비」의 의미를 알았나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어떻게 이것을 알았는가?’
주리 판다카가 여쭈었다.
「쓴다」는 것은 혜(慧)를 이름이요,
「티끌」이란 번뇌를 이름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착하다, 판다카야, 네가 말하는 바와 같도다.’
-증일아함경 12-
주리 판다카는 불교사의 소문난 바보입니다.
형과 함께 출가하였으 나,
워낙 I.Q가 모자라서 무엇 하나 외우지를 못했습니다.
마침내 승단에서 쫓겨나 문 밖에서 울고 있을 때
세존께서 친히 그를 곁에 두시고 보살폈습니다.
세존께서는 그에게 ‘비로 티끌을 쓴다.’ 하고 외우게 했습니다.
그러나 판다카는 ‘비로’ 하면 ‘티끌’을 잊고, ‘티끌’하면 ‘비로’ 를 잊었습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묵묵히 그를 격려하고 외우고 또 외우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판다카는 마침내 눈을 크게 뜨고 보리를 성취하였습니다.
‘비로 티끌을 쓴다.’ 는 것이 ‘지혜로 번뇌를 소멸한다’는 이치를 깨치고
아라한(聖者)이 된 것입니다.
전도 전법은 불법을 말하고 전하는데 그 참뜻이 있는 것 아닙니다.
전해서 알게 하고 깨닫도록 도와주는 것이 전도 전법의 본의(本義) 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불법은 쉽다. 어떤 바보라도 능히 깨칠 수 있 다.’라고
신념을 심어주는 데서부터 전도 전법은 시작됩니다.
불교는 교육입니다.
영재(英材) 교육이라기보다는
바보 열등생까지도 깨치도록 도와주는 평등 교육 만인 교육입니다.
지금 이 시대 부처님과 같은 스승이 더욱 그립습니다.
출처 : 염화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