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교수 자현스님 /bbs]
한글은 유생들이 만든 게 아니다. 왕실에서 만든 것이다.
세종대왕이 왕권강화책으로 신미대사 등 불교의 도움으로 만든 것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것은 양반들 힘이 너무 강력하니까
민중들을 끌어들여서 왕권을 강화시키려는.. 비밀 프로젝트였다.
유생들이 왜 협조하지 않았나 하면 어차피 그들은 문자사용에 아무 문제가 없었고
예전엔 문자를 아느냐 모르느냐로 차별을 두고, 기득권 보호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은 당시 양반들이 협조하지 않으니까 승려들을 끌어들이고..
글자의 새로운 체계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는 기존 한문체계에 너무 능통한 사람은 안 된다..
그래서 인도 음운학이 도입되었다.
'용제총화' 같은 데 보면 한글은 인도말을 참고해서 만들었다고 다 나온다.
한글을 만들고나서도 유생들 반대로 잘 안되니까
간경도감을 만들어서 언해작업을 해서 민중들에게 투여하였다.
(간경도감刊經都監: 조선 세조 때 불경을 번역하고 간행하던 기관)
왜냐 하면, 나라를 새로 세워 국시는 유교로 바뀌었지만 민중들은 여전히 불교를 믿고 있었다.
문화는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다.
요즘도 보면 유교가 사라진지 100년이 되었지만 추석과 설날, 유교식 명절은 건재하다.
사흘씩 공휴일로 해주는 날이 그 두 개뿐일 정도로 건재하다.
당시에도 민간에 남아있던 불교문화를 활용해서 문자 실험도 해보고..
이 문자가 괜찮은 건지..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는지.. 실험도 해보고
일반인들이 얼마나 빨리 받아들이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언해'를 했던 것이다.
그때 만약 유생들이 막지만 않았다면..
동아시아에서 한문이 무너졌을 것이다.
어차피 언어는 경쟁이고..
지금은 국경이라는 개념이 뚜렷하지만 예전엔 국경 개념이 그렇게 뚜렷하지 않았고
국가보다 민족 개념이 강했다. 그러다보면 언어는 섞여 들어간다.
섞여 들어갔다면 한글이 훨씬 경쟁력이 있어서 한문은 무너졌을 것이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도 한글 사용을 금했다면 문맹인구가 엄청 높았을 것이다.
한글을 사용한 덕분에 문맹률이 제일 작은 나라 중에 하나이다.
☞ 한글 창제의 주역, 신미대사
※ 세종대왕: 처음엔 불교 탄압을 심하게 하다가
(36개 사찰만 남기도 정리, 승려의 도성출입 금지)
40 넘어서 불경을 읽기 시작, 50대엔 궁궐 안에 법당을 만들어 (22세 즉위)
유생들 반대가 극심하자 "왕으로서 하고 싶은 대로 하지도 못 하니, 왕 못 하겠다" 하여
오히려 사죄를 받음 - (정말 그만두면 왕을 끌어내린 대역죄로 죽음이므로)
조선조에서도 왕 사후 궁녀들이 단체로 출가 비구니 된 일들도 있어
"아니, 나라에선 유교를 빛내려고 그렇게 애를 쓰는데 왕의 여자들이 이래도 되냐?"
그러나 "선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그랬다"고 하니 뭐라 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탁효정 '왕실원당 이야기' / bbs>
※ 왕실사찰: 조선은 정치적 이념으로 유교를 추구했지만
왕실은 유교의 덕목인 효를 명분 삼아 선왕과 선왕비의 명복을 빌거나
대통을 이을 왕자 탄생을 기원한다는 명목으로 각종 불사를 지원함.
이들 사찰에 대한 대규모 시주는 물론 세금감면 등 각종 혜택도 부여.
<봉(奉)자가 들어가는 사찰이 그런 경우가 많음.. 봉은사, 봉원사, 봉선사 등 / 남전스님>
(이런 절은 용 발톱이 5개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