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득 1시집 『맑은 영혼의 땅』 발간
교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고, 대전신일여자고등학교 교장으로 봉직한 후 정년퇴임한 정인득 시인이 첫 시집 『맑은 영혼의 땅』을 오늘의문학사에서 발간하였습니다. 선생은 한국화의 대가이신 오당 이영래 선생으로부터 사사(師事) 받아 두 번이나 개인전을 개최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화 창작 모임인 ‘한국묵화회’ 회장을 역임할 정도로 중견 화가입니다.
선생은 나라와 겨레를 위하는 일이 2세 교육이라 작심하고, 신일여자고등학교 교원으로 출발합니다. 30여 년을 봉직한 후 교장으로 퇴임을 앞둔 시기에, 그를 만나 미술과 문학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중, 그의 시 창작의 열정에 감동한 바 있습니다. <가슴에서 퍼내지 않으면 넘칠 것 같은 감동들이 가득하지만, 아직 여물지 않은 알갱이처럼 아름다운 시어들을 정돈할 줄 몰라 서툰 작품>이라 겸양하는 분입니다.
= 서평—리헌석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발췌
#1 「저녁 밥상머리」는 약간의 변형을 거쳐 「어머니 꽃 8-저녁 밥상머리」로 첫 시집에 수록됩니다. 어머니가 텃밭에서 가지를 따 밀가루로 반죽한 후, 기름간장에 무친 가지나물 반찬을 자주 해주셨다고 시인은 추억합니다. 그 기억 때문에 가지 반찬이 상 위에 오른 저녁은 어머니가 다시 오신 듯 그리움의 정서가 발동한다고 합니다.
그때 어머니는 닭고기처럼 좋은 반찬이 준비되면 그 반찬만 시인 앞으로 자꾸 밀어붙입니다. 그것을 본 아내가 어머니를 향해 보기 싫은 것처럼 눈을 흘기었다고 합니다. 아내가 눈 흘기는 것을, 어머니께서 아시게 될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하였다고 술회합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고, 어머니께서 먼 길을 떠나신 후, 이제 시인은 혹여 아내에게 들킬지라도, 어머니께서 그와 같은 밥상을 다시 한 번 차려주셨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작품에 담아내어 어머니의 자애(慈愛)를 묵상합니다.
#2 가족의 달 5월이 되면, 시인의 가슴에서 어머니 사랑이 샘솟는가 봅니다. <어질거라 참되거라> 타이르시던 말씀이 꽃처럼 잎처럼 시인 앞에 다가옵니다. 그 어머니는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하시던 모습으로 시인의 가슴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세월은 흘러 시인은 70대 중반을 건너 황혼으로 기우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럴수록 뵐 수 없는 어머니가 더욱 그립게 마련입니다.
시인의 가슴에는 어머니와 아내가 동병상련의 관계로 수용되는 것 같습니다. 아내에 대한 작품 「영부인이 되어 사는 사람」에서 <이 나이 되어 대통령의 반석에 올려놓은 아내의 지혜와 배려의 큰마음이 내 마음의 그릇에 담은 큰 선물이었습니다. 지금도 아내가 올려 준 대통령 짓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라는 일상(日常)을 작품으로 남깁니다. 이런 일상을 기억하며 시인은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시로 빚습니다.
#3 정인득 시인은 허하심(虛下心)을 작품에 투영하고 있습니다. 여러 사전을 찾아보고, 불교 고전을 몇몇 탐구하였지만 확연하게 가늠되지 않아 시인에게 질문한 바 있습니다. 그는 현재 가톨릭 신자지만, 자랄 때부터 불교적 환경에서 자라서 그러한지, 불교적 사상과 도가적 사상에 영향 받은 바 있다고 답합니다. 이에 ‘욕심을 비우는 상태’ ‘마음에 아무 생각이나 거리낌이 없음’으로서의 허심(虛心)과 ‘욕심을 내려놓음’을 뜻하는 하심(下心)의 합성어로 보아도 좋은가, 시인에게 확인한 결과,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평소 언어생활에서도 자주 쓰고 있다고 밝힙니다.
#4 고희를 넘기면서부터 시인은 스스로 ‘황혼의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고 밝힙니다. 생의 반환점을 돌아 한참 거슬러 왔음을 고백합니다. 젊은 시절에 악착같이 짊어졌던 짐도 어느새 허수룩해졌다고 말합니다. 급히 뛰며, 헐떡이며 숨 고르며 살아온 과정을 지나, 이제 느린 걸음으로 살아가다 보니 보이지 않던 세상이 보입니다. 정다운 얼굴들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합니다.
의식하거나, 무의식중이거나, 그의 삶은 황혼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생의 후반기에는 비우고 내려놓음(虛下心)으로써 빈손의 자유와 빈 가슴의 여유로움으로 밝은 세상을 살아내고자 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마무리로 황혼의 걷는 그의 자세가 오히려 웅숭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