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나무산악회는 매월 둘째 주 토요일이 정기산행일이다. 근무 관계로 많이 참석을 못 했지만 이번에는 날짜가 잘 맞아떨어져서 월출산은 조건 없이 다녀오리라 마음을 다졌다. 10월 13일 오전 6시40분 안양 복개천 주차장으로 나갔다. 비가 온다는 예보 때문인지 35명 참석 예정자 중 24명만이 리무진버스로 출발했다. 내심 걱정이 되었다. 내가 회원 중 나이가 많은 편이고, 회원 대부분이 40~50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많은 산을 타본 경험이 있는지라 담담한 마음으로 동참했다.
월출산月出山은 1988년 20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호남정맥의 거대한 암류가 남해바다와 부딪치면서 솟아 오른 화강암이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지금과 같은 월출산이 만들어졌다. 월출산의 면적은 56.22k㎡로 비교적 작지만 다양한 동·식물이 분포하며, 국보를 비롯한 수준 높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월출산의 정상은 천황봉(809m)이며 신라 때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으로 알려져 있다. 천황봉을 중심으로 북쪽과 동쪽은 큰 바위가 굵직한 능선 줄기 위에서 웅장한 풍경을 만들어 내며, 남쪽과 서쪽 지역은 크고 작은 바위들이 마치 탑을 이룬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그 이름만큼이나 유명세를 떨치고 있어 전국 각지에서 찾아 나선다.
문과나무산악회 버스가 4시간 남짓 가을 속을 꿰뚫으며 천황사 주차장에 당도했다. 저마다 버스에서 내려 등산화 끈을 조이고 옷매무새를 고치며 산행 채비가 활기차다. 그리고 월출산을 배경으로 산악회 인증사진을 찍었다. 오전 11시 20분부터 산행이 시작되었다. 5년 전에 종주해 본 경험이 있었지만, 힘이 부치면 2진으로 갈 각오였다. 회원 24명 중 A조는 정상 정복조 11명, B조는 13명 구름다리까지만 산행하기로 한바, 나는 영암까지 먼 걸음을 했으니 정상 정복조로 편입했다. A조에서 60대 중반인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다.
전날 밤 찬 이슬에 흠뻑 젖은 맨살의 조각상이 차갑게 느껴지는 자연 관찰로를 따라 깊은 산 속으로 점점 흡입되어 갔다. 천황교 삼거리에서 구름다리 방향으로 오르는 길은 바위산답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파른 돌길이라 몸 밖으로 배출되는 많은 땀방울은 그만큼 정상에서의 환희와 비례할 것이라는 생각에 다리에 힘을 다진다.
사자봉 아래 자리 잡은 천황사를 지나 월출산의 명물이라 일컫는 구름다리에 올라섰다. 월출산 구름다리는 2006년 5월에 완공한 다리로 매봉과 사자봉을 연결하고 있다. 해발 510m 지상에서 높이 120m, 길이 54m, 폭 1m 크기로 내려다보면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아찔한 고도감을 자랑한다. 협곡을 건너는 그 아슬아슬함은 행여 목숨을 내걸고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과 다름없다. 구름다리 정면으로 보이는 장군봉의 암릉들은 수십 폭의 진경산수화 병풍이며 마치 금강산의 만물상 같다.
구름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월출산의 장엄한 기암괴석과 바위들은 연신 감탄사를 외치게 한다. 그리고 층층 올려놓은 듯 능선을 따라 산자락이 즐비하고, 바둑판처럼 보이는 영암의 가을 들녘은 노란 옷으로 갈아입은 채 농부의 피땀 어린 풍성함이 담겨 있다.
천황봉을 향하는 오름길은 철계단과 암릉을 밟고 올라가는 길이라 체력 소모가 심한 구간이다. 어느 산이든 깔닥고개가 있는 법. 다른 어느 산보다 경사가 심했다. 구름다리를 지나서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사자봉은 그 용맹스런 이름답게 등산객의 발길을 절대 허용하지 않고 있다. 날카로운 송곳니처럼 하늘로 치솟아 뒤편으로 우회하며 한참을 다시 내려가야 하니 맥이 빠진다. 다시 깔닥고개를 넘어야 비로소 통천문을 갈수 있으니 힘든 발걸음을 내딛는다.
월출산의 앞모습만 보지 말고 뒷모습의 구석진 곳도 둘러보란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역시 뒷마당에서 바라보는 월출산의 위용도 만만치 않다. 사자봉을 돌아 암릉으로 접어 오르니 다시 월출산의 앞자락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인다.
2개의 계단길은 하늘과 통하는 중후한 통문답다. 거친 숨소리를 내지 않고서는 이를 수 없는 가파른 시험대요, 월출산의 최고봉인 천황봉에 오를 수 있는 지름길이다. 숨소리 턱에 차오를 즈음 통천의 석문을 맞는다. 한 사람 겨우 빠져 나갈 수 있는 비좁은 통로에 들어서니 북서쪽 능선 계곡 아래에서 불어 올라오는 시원한 가을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이름 그대로 선계仙界에서 천계天界로 들어가는 문 같다. 이 문을 지나면 시야가 확 트이면서 천황봉 정상이 나타난다.
정상은 천황天皇이 사는 곳답게 널찍한 바위 마당이 있고 표지석이 서 있다. 정상에 올랐다는 희열감에 배낭을 던져놓고 사방의 경치를 둘러보니 지평선이 우리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보였다. 모처럼 보는 지평선이다.
영암 고을의 광활한 들판과 영산강 물줄기가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면서 다가오는데 이것이 바로 천상의 낙원이리라. 호남의 끝자락에 우뚝 서 있고 겹겹이 쌓인 주릉의 바위 바위마다 수석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그 장엄하고 오묘함이 가히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월출산의 내면 전체가 거추장스러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 되어 산객을 현혹시키고 있다.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사진을 찍어도 그것을 담을 수 없을 것 같아 사진 찍는 것을 포기하고 눈과 마음으로만 새기고자 노력했다. 이를 두고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경치라 하는 걸까. 그래도 표지석에서 인증 사진을 찍었다. 정상에서 맛보는 쾌미는 흘린 땀만큼이나 그 보상을 톡톡히 보고 즐기고 맛보게 했다.
기념사진을 가슴에 담고 바람폭포로 내려선다. 천황봉의 뒤통수 또한 오를 때와는 또 다른 형상으로 나타나 시선을 되돌려 연신 돌아서게 한다. 좌측으로 눈길을 돌리면 바위 위에 집채만 한 바위가 후덕한 부처님의 얼굴처럼 서 있는데 강한 바람에 넘어질세라 조마조마하고 위태하다. 곧이어 거대한 스핑크스 모습의 6형제봉이 다정하면서도 위용이 당당하다. 바위 덩어리가 월출산의 행운을 뿜어내고 있는 듯 부드러운 자태로 영암들을 지켜보고 있다.
멀리 또는 가까이 그리고 앞뒤로 들쑥날쑥 고개를 내밀고 있는 바위 능선이 줄 서 있다. 바위들은 갖가지 모양을 하며 수억만 년의 세월에 닳고 닳아 둥글넓적한 모습으로 구성지게 놓여 있다. 그들은 앞으로도 살아온 만큼의 삶을 더 살아가며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보이는 산릉마다 웅장한 바위와 기암괴석들이 갖가지 형상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균형을 이루며 쌓아 놓은 것 같아 더욱 경이롭다. 자연의 신비함에 다시 한 번 감동하며 주변의 풍광에 흠뻑 젖어든다.
이번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내려오니 모두 박수로 환호해 주었다. 명육룡 고문께서 멀리 신안에서 산낙지와 간재미무침을 배로 공수해 와 막걸리와 소주파티를 하면서 오늘 산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산악회 회원들 간의 돈독한 우의를 다지는 대화합의 장이 되었다. 맛있는 음식도 먹고 행복한 등산을 무사히 마쳤으나 두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하나는 도갑사 코스로 가 보지 못한 것이고, 또 하나는 월출산月出山에서 달이 뜨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이다. 미련이 있어야 또 오지 않겠는가. 회장님을 비롯해 회원님들께 감사와 고마움을 전한다.